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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일한자

30. 夙興夜寐(숙흥야매)와 31.拈花示衆(염화시중)

작성자昊山|작성시간16.05.04|조회수79 목록 댓글 0

사자성어(四字成語)2016.5.05()

30. 夙興夜寐(숙흥야매)31.拈花示衆(염화시중)

 

숙흥야매(夙興夜寐)

일찍 잠잘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잔다는 뜻으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까지

직무에 몰두하여 부지런히 일함을 이르는 말]

 

17세 소년왕(조선14대 선조宣祖)을 위하여 퇴계(退溪) 이황(李滉)68세 때 지은 글로 帝王의 학문을 요약한 그린 열매를 성학십도:聖學十圖라는 이름으로 그려 올렸다. ‘어린 나이에 세상 최고의 자리에 앉은 난사람된사람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녹아 있다. 이 글은 聖學十圖책의 맨 끝부분인 夙興夜寐箴圖(숙흥야매잠도)의 말씀이다.

 

닭이 울어 잠에서 깨면,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어찌 그 동안 조용히 마음을 정돈하지 아니하겠는가! 과거의 허물을 반성하기도 하고, 새로 깨달은 바를 가다듬어 차례대로 정리하여 분명하게 마음에 새겨두자.

 

이처럼 마음가짐을 바로 하게 되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빗질하고 의관(衣冠)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안색(顔色)을 가다듬은 다음, 마음 이끌기를 마치 솟아오르는 해와 같이 밝게 한다. 몸을 엄정(嚴正)하게 가지고 마음의 상태를 해맑고 고요하게 가져야한다.

 

이때에 책을 펼쳐 성현(聖賢)들을 대하면 공자(孔子)께서 그 자리에 계시고, 안자(顏子)

증자(曾子)가 앞 뒤에 계실 것이다.

 

성현의 말씀에 귀 기울여 경청(傾聽)하고 제자들의 질문에 반복하여 참고하고 바로 잡아야 한다.

일이 발생하면 그동안 배운 것을 실천으로 시험(試驗)하여 볼 수도 있다.

하늘의 이치는 밝고 맑은 것, 언제나 여기에 눈을 두어야 한다.

 

일을 처리한 다음에는, 나는 즉시 예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한다.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신(精神)을 모으며, 잡념을 버려야 할 것이다. 움직임[]과 고요함[]이 순환

(循環:좇을 순,고리 환)하는 가운데서도 마음만은 이것을 지켜 볼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할 때는 보존(保存)하고 움직일 때에는 살펴야 하지만 마음을 두 갈래, 세 갈래로

흐트려 뜨려서는 아니 된다.

 

날이 저물고 사람이 권태로워 지면 흐린 기운이 엄습하기 쉬우니 장중히 가다듬어

밝은 정신을 떨쳐야 한다.

 

밤이 늦어지면 잠자리에 들되, 손은 가지런히 하고 발을 모아라.

잡생각을 일으키지 말고 심신이 돌아와 쉬게 하라.

 

이때 夜氣(寅時3-5)로써 길러 나가라. 이미 정()이면 원()에 돌아오느니라.

이것을 마음에 새기고, 여기에 마음을 두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지런히 힘쓰라.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 들 때에 지켜야 할 선비의 마음가짐을 일깨운 글이다.

이 글을 자세히 검토(檢討)해 보면, 인간은 언제나 부질없는 잡념과 유혹에 시달리는 연약한 존재인데, 그러한 사실을 겸허(謙虛)하게 받아드리면서 그 잡념(雜念)과 유혹(誘惑)에서 벗어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 다스림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자기 다스림은 단정(端正)한 몸가짐과 맑고 고요한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면, 잡념과 유혹은 무엇이며 그것을 이겨내는 몸가짐과 마음가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흥미롭게도 잡념과 유혹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다스리는 몸가짐과 마음가짐도 역시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잡다(雜多)한 생각에 파묻혀 산다. 언제나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산만(散漫)한 생각, 조리(條理)있는 생각이 뒤범벅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반드시 언어(言語)로 표출(表出)될 수 있다. 그 모든 생각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언어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언어로 드러난다.

 

지금 유능한 사람은 소설가나 시인처럼 비교적 자세하고 핍진(偏眞)하게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자기의 처지가 어떤 것인가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표현은 해낸다.

 

마음이 착한 사람은 세상의 만물(萬物)하게 보기 때문에 어떤 사실이나 사건을 특별히 나쁘게 말할 수가 있다.

 

퇴계선생의 윗글은 인간이 하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로 연약(軟弱)한 존재이기 때문에 굳은 의지로 부단히 자기 다스림을 하지 않으면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사람은 훈련(訓練)과 수양(修養)을 통해서만 바람직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활동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생각하기와 말하기도 인간으로 태어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생각하기의 방법, 말하기의 방법을 익혀야 제대로 생각도 하고 말도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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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시중(拈花示衆)

집을 빛날 보일 무리

 

[꽃을 따서 무리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뜻을 전()하는 일.]

 

나라의 중 도언(道彦)이 석가(釋迦) 이후 고승(高僧)들의 법어를 기록(記錄)한 전등록(傳燈錄)에 보면 석가가 제자인 가섭(迦葉)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를 전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송나라의 중 보제의 오등회원(五燈會元)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어느 날 석가는 제자들을 영산에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손가락으로 연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拈華) 말없이 약간 비틀어 보였다. 제자들은 석가가 왜 그러는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가섭만은 그 뜻을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 가섭만이 연꽃은 진흙 속에서 살지만 꽃이나 잎에는 진흙이 묻지 않듯이 불자(佛子) 역시 세속의 추함에 물들지 말고 오직 선을 행하라는 뜻을 이해(理解)했던 것이다.

 

그제야 석가는 가섭에게 말했다.

 

나에게는 정법안장(正法眼藏:인간이 원래 갖추고 있는 마음의 묘덕)과 열반묘심(涅槃妙心:번뇌를 벗어나 진리에 도달한 마음), 실상무상(實相無相:불변의 진리), 미묘법문(微妙法門:진리를 아는 마음), 불립문자 교외별전(不立文字 敎外別傳:모두 언어나 경전에 의하지 않고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하는 오묘한 뜻)이 있다. 이것을 너에게 전해 주마.”

 

석가는 세상의 이치(理致), 인생의 이치를 설법하시다가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조용히 못 가에 다가가 연꽃을 따서 대중들에게 들어 보이셨을 때 석가의 행동을 올바로 알아들은 제자 한 사람이 빙긋이 웃었다는 것처럼, 언어는 심오한 진리를 전달하는 일에 턱없이 부족한 때가 있다.

 

우리도 가끔 가슴속에 응어리진 어떤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그것을 나타낼 수가 없어 쩔쩔맨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흔히 사람들은 萬感이 교차(交叉)한다.”는 표현을 써서 곤혹(困惑)스러움을 모면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언어가 필요 없는 생각도 있으며, 생각이 들어 있지 않은 언어표현도 있을 수 있다.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하는 사람이 화폭 앞에서 색조(色調)를 구상하며 붓을 휘두를 때, 악보(樂譜)에 악상(樂想)을 정리할 때 그것이 빨강, 파랑, 진하게, 묽게, 2박자, 3박자, 높은음, 낮은음이라는 언어형식을 통하여 화폭(畫幅)에 옮겨지고, 악보에 나타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며 옹알이를 하거나 종알댈 때에 그 언어가 무슨 생각이 들어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사고작용(思考作用)이라는 생각하기와 언어작용이라는 말하기는 원래부터 안과 밖의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에 생각이 안에 있고 말이 생각을 드러내는 바깥구실을 하지만, 이것도 반드시 1:1로 한결같이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언제나 생각과 말이 맞아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 말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드러나서 그 말만 들으면 향기(香氣) 그윽한 꽃밭에 있는 듯한 행복감(幸福感)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할 따름이다. ***

 

(栗浦)

 한글과 한자문화 2016년 4월호 기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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