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비의 고장, 영주의 상징이기도 한 부석사가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세계문화유산에는 지정 번호가 없습니다.
현재 문화재 지정 번호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과 북한뿐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정 번호는 관리와 행정 편의를 위해 부여된 것일 뿐,
우열을 가리거나 서열을 매기는 수단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물 가운데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며,
제작 연대가 오래된 것 중에 지정되는 국보의 제1호는 상징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오래전부터 숭례문(崇禮門) 대신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을 국보 1호로 지정하자는 주장은
숭례문이 국보 1호로 적합하지 않다는 데에서 출발했습니다.
한양도성의 정문이자 조선 건축술의 총화인 숭례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 고적(古蹟) 제1호로 지정됐고,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되면서 국보 제1호로 승격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끄는 왜군이 한양으로 입성한 문이어서
일제가 숭례문을 고적 1호로 만들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현재의 문화재 지정 번호는 일제의 잔재이고
숭례문은 역사적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은 20년 전부터 국보 1호를 뒤흔드는 논거입니다.
특히 2008년 2월 발생한 숭례문 화재는 또다시 자격론 시비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지요.
당시 화재로 인해 숭례문은 문루의 상당 부분이 소실됐으나,
문화재위원회는 역사성과 장소성이라는 측면에서 숭례문이 갖는 가치가 여전하고
돌로 된 성문과 문루 중 일부가 남았다는 점을 들어 국보 1호의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거든요.
하지만 복구 과정에서 부패와 부실 공사 의혹이 불거지면서
숭례문은 국보로서의 권위 실추를 감내해야 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20년 전부터 숭례문을 대신할 국보 1호로 꼽혀 왔습니다.
여러 설문조사에서도 숭례문보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국보 1호로 낫다는 결과가 나왔고요.
유홍준 교수는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2005년 국보 1호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에 동의한다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후보 1순위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훈민정음 해례본은 사립기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고,
1940년 입수 과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습니다.
이런 차에 경북 상주에서 2008년 또 다른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굴됐지요.
소유권이 문화재청에 있으나 최초 발견자인 배익기 씨가 내놓지 않고 있는 이 책은
발견 당시 간송미술관 소장본보다 학술 가치가 더 높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국보 1호 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새로운 문화재가 끊임없이 나오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국보 1호를 바꾸면,
보물이나 사적 같은 다른 국가지정문화재의 제1호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를 보이기도 합니다.
관리번호에 불과한 문화재 지정 번호를 놓고 대립하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국보 1호 교체 찬반 논란이 일었던 2005년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국보 1호는 서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 국보와 보물의 지정은 해방 이후 전문가들이 광범위한 논의를 거쳐 한 것"
이라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당시 한 문화재위원은
"국보 1호 변경을 요구하는 이들은 문화재의 가치를 중요한 근거로 들지만,
가치를 저울로 달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꼬집고
"국보 1호를 바꾸면 2호, 3호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끝없이 전개될 수 있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는 "문화재에 서열을 매길 수 있다는 발상이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면서
"국보든, 보물이든, 지방문화재든 모두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음을 새겨야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