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말편지는 '냄비는 억울하다'로 밥상을 차립니다.
오늘날 부엌의 조리도구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냄비입니다만
우리의 일상 표현 속에서는 좋은 뜻으로 쓰이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쉬이 달아올랐다 금세 식는 속성을 ‘냄비근성’이라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음식을 조리할 때 빨리 달아오르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잖아요?
그런데 왜 유독 냄비만 문제를 삼는 것일까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지만, 냄비는 우리 고유의 도구가 아니었습니다.
이전의 부엌에는 무쇠로 만든 솥만 있었는데
아마도 일본에서 이 조리도구가 전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조리도구와 함께 말도 같이 들어왔는데 아무래도 ‘나베’와 관련이 잇어보입니다.
1938년의 사전에는 ‘남비’가 나오는데 이것이 ‘냄비’가 되는 것은 흔한 일이지요.
그러나 ‘나베’가 ‘남비’가 되는 것은 설명하기는 조금 어렵습니다.
이 도구를 남쪽에서 온 솥이란 의미로 ‘남와(南鍋)’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런 여러 이름이 뒤얽혀 만들어진 듯하네요.
냄비와 마찬가지로 일본을 거쳐 들어온 외래어인데
지금은 그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단어가 많습니다.
‘담배’는 포르투갈어 ‘타바코(tabaco)’가 일본을 거쳐 들어와 우리말의 일부가 되었지요.
‘고무’는 영어 ‘검(gum)’과 어원이 같은 네덜란드어 ‘고무(gomu)’가
역시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구요.
성분도 어원도 같지만, 우리말에서는 ‘고무’와 ‘껌’이 분화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나라 사이의 관계가 원만하다면
냄비, 담배, 고무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담배나 고무의 어원이나 수입 경로를 따지는 사람도 없을 테니까요.
음식점 메뉴판에 ‘냄비’ 대신 ‘나베’가 쓰여 있어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한국과 일본 사이가 악화되어 가고 있어서 걱정이 됩니다.
이쯤 되면 분노가 뚝배기처럼 오래 지속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관심과 노력은 뚝배기처럼 오래 가되,
감정싸움은 냄비처럼 쉬이 식길 기대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우리말123^*^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