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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시방

스치는 바람의 뜻 알 듯도 한데

작성자素人|작성시간02.06.29|조회수44 목록 댓글 0



1.

초록으로 부푼 숲 아래서도 내 마음 감출 수 없어 새들 집으로 돌아가고 푸르슴한 저녁 연기 속으로 그리운 표정 떠오를 법도 한데 묵정밭 개망초꽃 아우성치며 올라오고 오래 전 집터 주인 없어도 주렁주렁 매달린 개살구 낯선 손들 찾아와 마른 입 적시는 맛이 꿀맛이야 앞으로도 살아갈 날 얼마나 많은 땀 쏟아야 심중의 미망(迷妄) 씻어낼 수 있는가 허물어진 돌각담 구르는 돌 하나에도 그때 사람들 뜨거운 입김 남아 있는데 다잡아도 풀려나는 일상의 끈 조일 수 없어 산등 하나 넘으면 도린결 외딴 골짜기 너머 새로운 등 나서는데 삿갓구름 산정(山頂)으로 산꼬대 불어재끼는데 언제나 반가운 얼굴들 풍덩한 풀밭 당도할지는 새소리만 무성한 과원(果園) 인적 끊어져 적요(寂寥)한데 붉게 익어 가는 사과알 꿈꾸던 참노루 화들짝 달아나고 실도랑 버들치 노리던 수달 귀찮은 듯 뒤뚱거리며 집으로 돌아간다 키 낮은 떡갈나무 빈 둥지엔 이미 떠난 새들의 체온 남아 둥지만큼의 동그란 하늘로 피어오르는데 산초가시 온 몸 찔러도 비탈에 씨끈벌떡 미끄러져도 덩굴에 걸려 옴짝달싹 못해도 나는 좋아 개똥밭에 굴러도 자갈밭에 뒹굴어도 벌어먹을 수 있는 이승이 나는 좋아 나 죽어 불땀머리 양지 밭에 국화꽃이 무슨 소용이람



2.

쭉쭉 쏘아라 주입기 포스팜 약제 찔러댄 구멍에 물 제대로 들어가야 조선솔 물관 타고 쭉쭉 올라가야 그놈의 미국산 솔잎혹파리 확실하게 죽이지 미국 놈 모가지처럼 우수수 떨어지지 그래야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좆같은 설움 떨쳐내고 천 년 만 년 살아가지 아재요 확실하게 찔러주소 넣다 말면 약물 우째 들어가능교 물 들어가야 온갖 사연 뭉치 새록새록 불거져 나오지 우리 어매 아배 하룻밤만 참았어도 내 오늘 산판 나와 좆뺑이 치지 않을 것을 손자녀석 할배랑 참마 구워 먹다가 할배 물건보다 굵어졌단 얘기 커야 좋은가 잘 돌려야 오래오래 박아줘야 죽이지 묵은 된장 고추짠지 마냥 군침 돌지 하늘 노래지지 엊그제 산비알서 만난 풀 대궁 산삼인지 개삼인지 하 궁금해 잠 설쳤단다 몇 해 전 어느 산판서 만나고 오늘 보니 죽은 아들 살아온 듯 반가워 지난 파수 베어 넘어진 나무들 참 좋았는데 그때 대성식당 밥맛이 꿀맛이었는데 밀주(密酒) 받아주던 월암사 할배 죽었다던데 니기미 눈발만 들이치지 않았어도 쏠쏠한 재미 봤을 텐데



3.

변전소 앞 잔디밭에 수육(熟肉) 파티 벌어졌다 올해 수간작업(樹幹作業) 오늘로 쫑이다 개미 덩달아 뭉근한 살점 물어뜯고 알싸하게 돌아가는 소주잔에 고단한 삶 제풀로 달아난다 누가 나더러 험한 산 오르며 개떡수제비 먹으라 했나 누가 너더러 좋은 의복 맛난 음식에 편한 길 가라했나 애시당초 글른 삶 이래도 한 공수 저래도 한 세상인데 치미는 가슴 불콰한 술기 오른다 오늘 하루만큼만 욕심 내어도 돌 맞아 부은 다리 욱신거려도 가시밭 휘청거리는 개씹 같은 인생이 그래도 나는 좋아 뜨거운 가슴으로 그들 야윈 일상 보듬고 싶은데 어찌하나 내 자리 하나 보전하기도 힘겨운데 질긴 인연들 건사하기도 팔뚝 저려오는데 어찌하나 스치는 바람의 뜻 알 듯도 한데 훌훌 저녁구름 타고 번지는 노을처럼 젖어들고 싶은데 급식교사 아내 마음 돌릴 수 없어 떠도는 일자리 흔들리는 그의 비젼(vision) 김주사 오늘도 산에 오지 않았는데 헤어지는 아쉬움 다음 파수엔 임도(林道) 사방공사 벼랑 끝에서 다시 만날까 알 수 없지만 *간주나 빨리 해주소 공수 확인에 벌통 모여든 꿀벌처럼 감독 장부 에워싸고 돌아가는 길가엔 마네킹 같은 루드베키아 흐드러지고.




* 간주(勘定, かんじょう) : 임금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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