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도리
- 문성해
신생아들은 보통 아랫도리를 입히지 않는다
대신 기저귀를 채워 놓는다
내가 아이를 낳기 위해 수술을 했을 때도
아랫도리는 벗겨져 있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돌아가셨을 때도 그랬다
아기처럼 조그마해져선 기저귀 하나만 달랑 차고 계셨다
사랑할 때도 아랫도리는 벗어야한다
배설이 실제적이듯이
삶이 실전에 돌입할 때는 다 아랫도리를 벗어야 한다
때문에 위대한 동화작가도
아랫도리가 물고기인 인어를 생각해내었는지 모른다
거리에 아랫도리를 가린 사람들이 의기양양 활보하고 있다
그들이 아랫도리를 벗는 날은
한없이 곱상해지고 슬퍼지고 부끄러워지고 촉촉해진다
살아가는 진액이 다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신문 사회면에도
아랫도리가 벗겨져 있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걸 보면
눈길을 확 끄는 그 말 속에는 분명
사람의 뿌리가 숨겨져 있다
-문경문학관 소개글 중에서
********************************************************************************************************
어제 영주문인협회 문학특강에 초청되신 문성해 시인의 근작 중 하나입니다
1998년 매일신문 신춘 당선 이후 6권 시집을 출간하신 문경의 여류시인이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의 삶이 문학의 배경을 넓혀준다는 고백이 진솔해서 믿음이 갔습니다
문경문학관에서 소개글로 올려 둔 다섯 편 모두가 눈길을 잡아끌었는데
‘아랫도리'가 사람의 뿌리라는 시어가 강렬하게 빛을 뿜네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보다 감춰진 것들이 진실에 더 가깝다는 현실적 분석이 스며있습니다
그 누구라도 신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로 살고 있으니 산다는 것을 궁금증으로 채울지도 모릅니다
삶이 실정에 돌입할 때 다 아렛도리를 벗어야 한다는 말에 전부 동의할 순 없어도
사람의 뿌리가 아랫도리에 있다는 지적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