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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문틈사이로 거지들 박진력 있게 걸어가다.

작성자仁守/ 정 용하|작성시간13.08.29|조회수13 목록 댓글 0

어느 겨울날 이른 아침,

       문틈사이로 거지들 박진력 있게 지나가다


                          仁守/정 용하

 



유년시절부터 뇌 속에 각인되어 보관하고 있는 풍경의 한 장면이다.

6.25전쟁이 끝난 후 7~8년이 경과하였으나 전쟁의 후유증이 잔존하고 있었던 시절이다. 그래서인지 당시 시골의 산중마을에도 종종 거지들이 찾아오곤 했다. 행색이 초라할수록 동정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인지는 모르나 한마디로 눈 흰자위와 치아만 하얗고 나머지는 모두가 시커먼스다.


빗질을 하지 않아 제멋대로 머리카락에다 꼬질꼬질한 얼굴, 너덜너덜한 바짓가랑이 사이로 속살이 훤히 보이거나 땟국 물이 배어있는 남루한 옷차림으로 대표되며, 지저분한 손에는 항상 흰색자루를 쥐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쌀을 요구하는데 부녀자들만 집에 있으면 분량을 더 요구하거나 때로는 밥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들도 예절은 아는지, 아니면 식복을 기리는 자신들만의 믿음인지는 모르나 숟가락은 그들의 주머니 속에서 나온다.

최소한 2명이상 단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반드시 상의군인이라 하여 한쪽 다리나 팔이 없는 사람도 있었다. 동냥에 불만이 있으면 “나라를 위해 이렇게 되었다”며 가끔 한 성질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으나 요즈음 사람들처럼 그렇게 독하게 행동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결혼이나 환갑잔치 등 행사에 대한 정보도 공유한 듯 했다.

마을 어른들의 입을 빌리면 거지들이 자기마을에 와서 애를 먹이면 인근마을 행사정보를 의도적으로 흘려 거지들을 다른 마을로 가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공공연한 관례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마을에 결혼식이 있는 날이면 귀신처럼 알고 찾아오는데, 여러 패거리들이 단계적으로 와서는 아예 허리띠를 풀고 느긋하게 한쪽 모퉁이에 자리를 잡는다. 그 와중에도 눈썰미 있는 거지는 자기들이 받는 음식상과 일반손님이 받는 음식상을 비교해보면서 한두 가지 누락된 음식이 있으면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이를 지적하면서 특정음식을 요구하기도 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다른 패거리들이 오면, 오래지 않아 먼저 온 패거리들은 빠져나가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서로 알든 모르든 간에 그들 나름의 보이지 않는 법칙이 있는 듯했다.

  

필자가 출생한 마을은 산수동거(山水同居)즉, 산줄기와 실개천이 나란히 함께 흘러가는 협곡의 우묵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집들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해가 뜨는 동쪽이 높은 산으로 가려있어 동향가옥이 일조(日照)에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붉은 아침햇살은 항상 서쪽에 있는 높은 앞산의 정상에서 점차 산중턱과 기슭으로 이동한 후 백여 미터 폭이 되는 논밭을 지나 집 마당에 비치는 순서를 취한다. 달리 말하면 다른 외부지역보다는 아침을 여는 시간이 1시간가량 지연되는 것이다. 초등학교시절 겨울날 늘 지각했던 이유이다.


그런데 거지들 중 유독 뇌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는 한 그룹의 모습이 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어느 겨울날, 그날도 아침햇살이 앞산 중턱쯤에 횡으로 그늘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마을에서만 통하는 감각적 시간은 오전 7시30분경으로 느껴지나 객관적 시간은 8시30분쯤인 것 같다. 당시 필자가 살았던 집 구조는 서쪽을 향하고 있던 본채는 한일자형으로 부엌과 방 두 칸으로 되어있었고, 남쪽을 향하고 있는 아래채는 마구간과 방앗간으로 구성된 기역자 가옥이었다. 식사는 가운데 방에서 전 가족이 늘 함께하는데 방안 우측 편의 방문 쪽에는 선친께서 위치하시면서 별도의 밥상에 식사를 하셨는데 아마 외부의 방문객이 찾아왔을 때 대응에 편리함을 고려한 것 같다. 마당 끝은 1미터50센티 높이로 돌 축대를 횡으로 쌓아 마당과 수평을 이루게 하였는데 축대 바로아래는 좁은 농수로가 마을앞길과 나란히 함께 이어져 있고, 마을 길 바깥쪽은 실개천이 어깨를 같이하고 있다.  


그날은 겨울이었으나 날씨가 크게 춥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침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방안의 조명이 어두운 관계로 한쪽 방문을 열어 놓은 채 식사를 하던 중 선친께서 창호지 문 중간에 별도로 만든 작은 유리를 통하여 밖을 보셨는지 “무슨 일이지, 이른 시간에 동냥하는 사람들이 지나가네.”라고 말씀하시기에, 때마침 반대편 열려진 방문 쪽에서 식사를 하던 필자가 문을 통하여 마당우측 끝 편을 쳐다보니, 아래채 마구간 담 모서리에서 3~4미터 사립문 없는 공간으로 상체만 보이는 십칠팔 명의 거지들이 박진력 있게 마을 위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머리가 반백인 50대 남자가 2명가량 있었고, 대다수는 30~40대로 보였으며 20세 전후의 사람도 다수 있었고, 필자 또래의 어린아이도 몇 있었다. 특이한 것은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인들도 서너 명 섞여있었고, 그들 중 젊은 남자 몇 사람은 3분의 1가량 곡식이 담긴 흰 자루를 어께뒤쪽 등에 걸치고 있었고, 여인들은 냄비 등 간단한 취사도구를 담은 보자기를 가슴에 안고 걸었는데 모두들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기특한 풍경은 7~8세 되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을 뒤따르려는 착오 없는 걸음걸이 모습이었다. 아마 몇몇 가족이 모여 한 그룹을 형성한 듯 했다. 필자가 반세기 넘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마 그들의 강한 이미지 때문이라 생각된다. 보통의 거지들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는 것이 통상적인데 그들은 마치 누군가의 초청을 받고 목적지를 향하여 이른 아침부터 활기찬 행보를 강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궁금한 것은 그들이 이동하는 방향이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시골에서 도시 방향이 아니라 그 반대방향이기 때문이다. 마을 위쪽으로 간다는 것은 두 가지 이유로 추정된다. 마을에서 위쪽으로 2킬로미터 걸어가면 저수지가 있고 이내 험준한 산으로 막혀있다. 그들이 화전민이 되려고 했다면 아마 그쪽방향을 선택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을 지나 바로 오른편 골짜기로 간다면 예부터 사람들이 자주 이용했던 산길이 나있는데 인근 공덕마을 재를 넘어 30여리 정도가면 오지인 자천이란 지명의 면소재가 있다는 동네 사람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필자는 그 길로 걸어가 본적이 없다.


다만 유년시절 마을 어른들이 ‘자천 5일장’에 간다며 그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으며 특히 자전 5일장에는 우(牛)시장이 유명하여 아랫마을 사람들도 소를 매매할 때는 읍내5일장에 가지 않고 반드시 그곳을 이용했던 것 같다. 한번은 선친께서 자천5일장에 가셨는데 마을에 어둠이 내려지자 어머니께서 마중을 나가보라고 하시어 3살 위인 형과 함께 마을 위에 있는 세 갈래로 길이 나누어지는 뙤기 밭 입구에서 선친을 기다리고 있는데 계절은 여름이라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고 어둠이 내려진 푸른 밭 위로 반딧불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었다. 의식은 온통 공덕재가 있다는 골짜기 방향을 집중했으나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은 없고 주변이 조용하니 은근히 두려운 생각이 점차 스며드는데, 이때였다! 약200미터 가량 떨어져 있는 어둠에 가린 골짜기 입구에서 갑자기 몇몇 사람들의 안도감 소리가 들리면서 그 소리사이로 딸랑거리는 소의 방울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그때의 기쁨과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을 어른들과 이웃마을 어른 20여명이 소와 함께 어깨에 짐을 짊어지고 상단(商團)을 이루며 실개천을 건너 논밭사이 좁은 길로 일렬종대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아름다운 전설이었고 삶의 소리와 모습 그 자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살아계시는 당숙어른의 말씀을 빌리면 6.25 당시 인민군 수천 명의 행렬이 그 골짜기를 걸어서 자천으로 이동하던 중 미군의 폭격에 의해 거의가 전멸했다고 한다. 앞서 말한 걸인들도 그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점쳐진다. 필자는 보무당당하던 그들의 그 후의 삶이 늘 궁금했다. 화전민이 되었을까? 아니면 단순히 다른 마을로 동냥하러 다녔을까? 또래였던 아이들은 살아있을까? 살아있다면 지금은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혼자서 나름대로 생각하다가 한편으로는 행색만 거지일 뿐 인간에게 목적이 있다면 이미 거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오늘날의 노숙자와 은근히 비교도 해본다.

겨울날 이른 아침, 거지들이 박진력 있게 산속을 향하여 걸어가는 모습은 참신하고 철학적인 느낌마저 든다. 그들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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