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비가 추적추적 쏟는다. ‘군산’이라고 하는 낯선 도시에 짐을 푼 지 한 달이 지난다. 돌이켜보면, 군산에 내려온 그 순간도, 글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창밖은 슬레이트 판 위 빗물 궁그는 소리로 가득하다. ‘터널을 지나’온 군산은 어쩌면 비의 나라였을지 모른다. 늦게 마주하는 장마 느낌에 월명동의 골목골목은 부산하기만 하다. 휴일임에도 10시 참여포럼 TF 회의가 있어 달그락을 향한다. 긴 한가위 연휴의 초입이라 길목 여기저기 우산 꽃이 피어 종종 거린다. 빗방울은 덕지덕지 건물 벽을 물들이고, 비에 젖는 쎄멘벽엔 다양한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맺힌다. 뭔가 참 생소한 감정이 스친다.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낯선 감정 때문일지 모르겠다. 차마 밟아보지 못한 골목들은 ‘생활공간’이라는 느낌보다 여전히 ‘관광지’라는 느낌을 풀풀 풍긴다. 달그락에 둥지를 튼 지는 제법 오래된 느낌이지만 여전히 거리거리는 낯선 것이다. 대전에서, 그리고 안양에서 첫 삶을 시작했을 때에도 이런 느낌이었나 복기해본다.
고인 빗물을 찰박찰박 발로 때리며, 편의점 빵을 입에 가득 넣고, 한 달 꾸준히 걸었던 길을 걷는다. 매일 지나는 창작공방 화단의 로즈마리 향이 바닥에서 터지는 빗방울의 알갱이를 타고 퍼진다. 굳게 닫힌 문 앞에 일찍 온 청소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문이 열리고 줄지어 올라가는 청소년들을 따라 올라간다. 10시 조금 넘어, 각자 제 눈을 부비며 회의를 시작한다. 두 번째로 참여하는 TF 회의... 막 잠에서 깨기 시작한 회의는 천천히 굴러가기 시작한다. 달그락에서 활동을 시작한지 한 달이 되어가지만, 청소년들 각자 제 목소리로 일을 굴려나가는 모습이 여전히 낯설다. 학창 시절, 저만치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어 무언가 추진해 나갔던 적이 있었나? ‘리더’와는 거리가 먼 삶을 걸어왔기에, 더더욱 생소할지도 모른다. 전체 회의를 끝마치고, 분과 별 회의를 가진다. 간단한 일정과 인권·복지와 관련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을 마구잡이로 끄집어내 본다.
“노인 일자리처럼, 양질의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공공 시스템이 있었으면 해요.”
“계약서를 쓰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관련해서 감시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면 해요.”
“어떤 친구들에게 스터디카페 비용이 부담되는 경우도 있어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스타디카페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청소년 정책들이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지 의문이에요. 청소년 정책 모니터링단 같은 게 운영되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주변 삶과 관련하여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짧은 시간 쏟아져 나온다. 그저 불평, 불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과 주변 친구들의 삶을 통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오는 지적들... 스스로의 삶과 주변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물론 아직은 문제 제기 단계의 의제들이지만, 거기서 어떤 정책들이 만들어져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 청소년의 말처럼 과연 이렇게 던져진 의제들이 얼마나 정책으로 잘 반영되고 운영되고 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세상에 돌을 던지는 것이리라. ‘정책제안’... 청소년들이 목소리를 던진다는 것, 그건 분명 하나의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보통 젊은 사람들은 기득권에 대한 적대의식과 반항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대학 때만 해도, 촘스키의 『촘스키의 아나키즘』이라는 책을 옆구리에 비투 꽂고 그저 세상을 향해 불평불만을 던지는 데에 급급했던 그런 시기가 있었다. 허나 이런 태도 대부분은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 허공에 던져지는 담배연기처럼 그저 흩뿌려지고 마는 무언가에 불과했다. 당시의 목소리는 그저 허영심 가득한 대학생의 그저 그런 발버둥에 불과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을 향해 던지는 ‘기침’도 ‘가래’도 아니었을지 모른다.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던지는 청소년들이 이제는 눈앞에 있다. 그들의 ‘기침’이 ‘눈’ 위를 떵떵 울릴 때 분명 ‘눈’은 ‘살아있’으리라. 청소년들의 결기에 찬 시선을 바라보며, 이제 골아가기 시작한 이번 참여포럼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25.10.10. 김정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