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토리와의 첫 답사 날이 밝았다. 어제 제법 달려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이런 지긋지긋한 부분에서 나이듦을 느끼는 것이 참 싫다. 몸이 찌뿌둥하다. 간밤 추위가 쩍쩍 장판 위를 기어 다닌다. 간단히 몸을 씻고 베란다로 난 통 창을 통해 가을을 받는다. 푸른 하늘 아래로 가을 햇살이 쏟고, 산모퉁이 구석탱이까지 햇살 빛깔로 넘실거린다. 약을 털어 넣는다. 부엌에 난 창 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은행나무엔, 이제 막 가을이 찾아오기 시작했는지 잎만이 살짝 가을에 발끝을 담갔다. 첫 답사... 과연 즐겁게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간단히 준비를 마치고, 차 시동을 건다. 차디찬 금속의 몸뚱어리는 긴 숨을 밭어낸다. 차창을 통해 따뜻한 햇살이 쫓아들고, 한철을 새기는 철새의 깍깎거리는 소리는 점점이 아침을 나아간다. 잠깐의 소동 끝에, 청소년들을 모두 태우고 천천히 군산을 떠난다. 달리는 길 위에 희끗희끗 안개가 깔린다. 해는 떠있는데 안개만 차분히 깔리니 분위기가 묘하다. 모 공포게임의 도입부 같다고 시끌시끌이다.
1시간 즈음을 달려 전주 시내로 들어선다. 전주의 가로수엔 가을이 이쁘게 찾아와있다. 군산과는 또 다른 분위기에 무시매들이 시끌시끌 소란스럽다. 어디선 ‘우와 도시다!’, 어디선 ‘저긴 군산이네~’ 등등등... 비교적 얌전하고 의젓스러운, 애늙은이 같은 녀석들이지만, 제법 순수한 구석들이 슬몃슬몃 보인다. 이런 지점지점들 때문에 청소년들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첫 번째 목적지인 전주국립박물관, 전주역사박물관에 도착한다. 주차를 하고, 우선 전주역사박물관을 든다. 목표인 동학혁명실은 가장 위층이기에 아래서부터 차근히 보며 오른다. 전주의 역사, 전북에서 활동했던 근현대 미술가들의 작품 등을 관람한다. 어제 새벽까지 전주에 대해 공부를 했다는 대표 청소년이 가이드를 자청하여 이것저것 설명을 한다. 제각각 흥미가 가는 전시물 앞에 섰다 걸었다 한다. 마침내 동학혁명실.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각종 전시물과 예술품이 전시되어있다. 다들 전시물과 설명문에 열중이다. 잘 무장된 정규군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농기구 들고 일어설 수 있음에 대해 묻자 다들 고개만 조용히 갸웃거린다. 나는, 우리는, 과연 대의를 위해 일어설 수 있는가? 그 용기로움은 어디서 발한 것일까? 주권을 가진다는 것, 그 당연해진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한다.
박물관들을 돌고 다음 목적지를 향한다. 도시의 풍광 사이사이 역사의 흔적들이 슬몃슬몃 스며있고, 그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바삐 지난다. 그렇게 전주객사와 전라감영, 풍남문을 지난다. 사이사이 대표 청소년의 설명을 듣는다. 목소리에서 신남이 느껴진다. ‘문화재’에서 ‘문화유산’으로 정식 명칭이 수정되었다는 공고 배너 앞에선, 그 이유에 대해 길게길게 설명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눈을 빛낼 수 있는 그 순수함이 참으로 눈부시다. 과연 저 나이 때, 스스로는 어떠했는지 돌아본다. 풍남문에서 잠시 쉰다. 대학 때 방문했을 때와는 제법 달라진 모습이다. 풍남문은 바뀌지 않은 채, 흐르는 로타리를 끼고 서있건만... 그 주변을 두른 풍경은 무엇이 그리 조급했던지 그때와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편의점 로고가 박힌 창을 통해 풍남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뭔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이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는 게... 풍남문이 보이는데 그걸 편의점에서 보고 있는 거잖아요. 군산도 그렇고 이런 도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하는 대표 청소년의 감상이 천천히 전해진다. 대학 때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그 때는 정말 ‘도시’가 심심했다. 그 말대로다...
잠시 쉬고 경기전을 향한다. 경기전은 한복을 입은 사람부터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았던가? 이미 한 번 방문해본 적이 있는 서기 청소년이 열심히 자신이 아는 사실들을 설명해준다.
“용두산 화재로 어진들이 소실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과거에 있어서 참 안타까워요.”
“이성계 풍채가 좋았다는데, 어깨가 정말 넓군요.”
“아무래도 기존 국가를 뒤집고, 나라를 세운, 우리나라 역사에선 굉장히 드문 무인이었으니까...”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경기전과 어진박물관을 돌고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을 향한다. 제법 걸은지라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계획했던 일정을 줄여 진행하기로 한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동학농민혁명기념관. 휴관이다.... 어허..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주향교와 오목대를 향한다. 이성계에게 오목대는 의미 있는 장소라며 열심히 설명하는 대표 청소년의 모습이 환하기만 하다. 오목대에 올라 잠시 쉰다. 앞으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대학의 학과 등등.... 뭐 하다 나왔는지 군대 이야기도 한다. 저런 측면들을 보다보면, 참... 요즘 청소년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 끼인 존재가 되었구나하는 생각이 맴돈다. 물론 철없던 것은 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전주는 제법 자주 다녔고, 그때마다 지났던 장소들이었는데, 이번에 그 장소들에 대한 의미들을 알면서 돌아보니, 또 다르게 다가왔어요.”
군산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번 답사의 감상이나, 앞으로 어스토리가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아주 사소한 평소의 이야기 등등. 혼자 고민했을 때에는 역사와 답사를 가지고 어떤 의미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파생시켜나가야 할지 골치 아팠는데,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최근 인기였던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처럼, 군산을 배경으로 한 아이디어 굿즈들을 만들어보자 같은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조잘거림으로 가득 찬 길엔 어느덧 어둠이 내리고, 차는 군산으로 들어선다. 청소년들을 한 명 한 명 내려주고, 집을 향한다. 어쩌면... 답사를 통해 청소년들과 한 발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참.. 아쉽다... 이렇게 친해진 청소년들은 내년엔 고등학교 3학년이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고등학교 3학년이어도, 적당히 바쁜 사회 분위기였다면... 다양한 아쉬움들이 어둠 뒤로 종종 걸음친다. 오늘의 활동을 바탕으로, 다음을 그리자. 아쉬움을 걸음걸음 삼아 더 나은 활동으로 이어나가자. 어스토리의 청소년들이 즐거울 수 있게...
25.11.11 김정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