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학업과 진로 준비에 쏟아붓고 있다. 각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스스로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듯 보인다. 더 큰 문제는 좋아하는 것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유행을 따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요즘, 청소년들은 그들 무리의 공통의 화제를 따라가는데 익숙해져있다. 정작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에는 조심스럽다. 특히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처럼 마이너한 취향을 갖고있다면 더욱 말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 속 오로라 애니메이션 자치기구는 각자 좋아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당당하게 소개하고, 직접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좋아하는 것을 말해도 되는 분위기, 취향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시도이다.
오늘의 자리는 유정 대표의 2025년 오로라 활동소개로 시작되었다. 코믹월드 견학부터 팝업스토어 운영, 직접 애니메이션 제작해온 과정까지 우리가 스스로 만들고 움직여온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이어진 ‘최애 발표’ 시간은 오늘의 하이라이트였다. 유정이는 <페르소나5 더 로열>을, 별이는 <윈드브레이커(애니)>를, 예진이는 <아이나나>를, 채담이는 <프리파라>를 소개했다. 각자 좋아하는 작품도 캐릭터도, 좋아하는 이유도 달랐다. 어떤 청소년은 깊은 서사에 마음을 뺏겼다고 표현했고, 어떤 청소년은 얼굴이 맘에 든다며 솔직하게 웃어 보이기도 했다.
처음 발표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난다. 오로라 청소년들을 매주 달모임을 시작할 때 아이스브레이킹을 하며 5분 내외의 짧은 최애 소개하기 시간을 갖는다. 그동안 수도 없이 해온 최애 소개인데 각자 마음에 숨겨둔 최애는 따로 있던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려니 마음이 앞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서로 피드백을 하며 ‘어떤 서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면 좋을지’, ‘각 캐릭터에서 집중할 것은 어떤 점인지’, ‘발표가 늘어지지는 않는지’ 다듬는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오늘은 훨씬 차분하고 또렷하게 발표를 하는 모습이 있었다.
청소년들을 맞이하면서 입구에 ‘최애 보드’를 마련해 각자의 최애를 적을 수 있게 안내했다. 아이돌, 웹툰, 웹소설, 게임 등 각기 다른 취향들이 하나의 보드에 마구마구 적혀있었다. 한 청소년은 “저는 강경 웹툰파였는데, 우연히 접한 웹소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뒤로 같은 작가님이 쓰신 다른 웹소설을 읽게 됐는데 같은 작가가 썼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장르를 잘 써서 재미있게 봤어요.”라며 최애를 소개했다. 그렇게 서로의 최애 이야기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편 달그락 뒤쪽에는 오로라 청소년들이 집에서부터 정성껏 챙겨온 굿즈를 전시하는 공간을 마련했다.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포장도 뜯지 않고 모셔둔 굿즈였는데, 오늘만큼은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며 하나둘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햄스터가 볼에서 주섬주섬 해바라기씨앗을 꺼내 보여주듯,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을 전시대 위에 펼쳐놓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친구들과 있을 때 눈치를 보며 스스로의 취향을 조금씩 덜어내던 청소년들이, 오늘만큼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민해보고, 그것을 당당히 이야기하는 경험을 했길 바란다. 이 경험이 앞으로 청소년들 사이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작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취향을 숨기는 대신 표현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오늘 모인 청소년들 사이에서 더 넓게 퍼져가길 기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길. 오늘 오로라가 만든 이 작은 장면들이 앞으로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취향을 지켜가며 나아가는 힘이 되길 바란다.
25.11.16 글쓴이. 김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