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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폭포~화암사~불명봉~시루봉~장선리재 산행
작년 10월 왼쪽 무릎 연골 수술로 정규 산행을 하지 못하다가 근 6개월 만에 산 하나를 타고 왔
습니다. 산과 들에 하얀 벚꽃들이 한창일 때 벚꽃 꽃잎 비를 맞으면서요. 지지난달 관악산 둘레
길 두 코스와 지난달 북한산 중턱을 몇 번 타면서 시운전을 해봤지만 혹시나 싶어 높은 산은 피
하고 5월 부처님오신날 관련해서 아름다운 절 집을 품은 산을 택했지요. 바로 전북 완주군 경천
면 불명산(佛明山)입니다. 부처님의 밝음이 깃든 산. 이 이름은 아마도 산자락에 천년고찰 화암
사(花巖寺)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번 산행은 전주에 사는 우리 월간山 독자 김문규 선생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평소 제
이번 산행은 전주에 사는 우리 월간山 독자 김문규 선생의 초청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평소 제
칼럼을 즐겨 보고 연락처를 알게 돼 카톡으로 안부를 전하고 지내는데 시에 조예가 깊은지라
산행 중이나 마친 뒤 좋은 경치 사진을 바탕에 깔고 멋진 즉흥시를 한 수씩 보내와 저를 곧잘
감동시키곤 했지요. 그러다 언제가 한번 산행을 함께하자 한 것이 이루어지게 됐고 이날 오전
전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역사적인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또 가장 존경한다는 산
악인 김정길 선생을 모셔와 3인 산행이 시작됐습니다.
김정길 선생은 대한산악연맹 전북지부 상근부회장이자 전에 월간山 필자로도 10여 년간 활동한
김정길 선생은 대한산악연맹 전북지부 상근부회장이자 전에 월간山 필자로도 10여 년간 활동한
분으로 그래선지 저하고는 금방 공감대가 형성돼 오랜 지기처럼 죽이 잘 맞습니다. 전국 산은
물론 특히 전북 지방 산들을 산경표를 기본으로 구석구석 발로 뛰어 다 확인하고 그 체험을 글이
나 자료로 만들어 일반인들과 공유함으로써 우리나라 등산 발전에 큰 공을 세웠고 지금도 각종
단체에서 재능기부 봉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작은 큰 절’, ‘보물덩어리 절’ 화암사
산행은 화암사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화암사를 둘러보고 산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해 북
‘작은 큰 절’, ‘보물덩어리 절’ 화암사
산행은 화암사 주차장에서 시작합니다. 먼저 화암사를 둘러보고 산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해 북
쪽능선을 따라 돌아 서쪽으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약 1km 남짓한 숲과 작은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은 화암사를 처음 찾는 사람들을 반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작지만
촐촐 맑은 물이 소리를 내 흐르는 검은 암반 계곡은 천하절경은 아닐지라도 수묵화 그림 속의
풍경 그대로입니다. 주차장에서부터 까만 개 한 마리가 꼬리 치며 길 안내를 하듯 앞서거니 뒤
서거나 계곡을 따라 오릅니다. 수량이 그리 많지 않은 계곡인데 때마침 며칠 전 비가 좀 내려
계곡이 촐촐 소리 내며 흘러 다행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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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절 대문에서 바라본 저 남쪽 건물인 적묵당 처마 선입니다. 2 극락전 안에 모셔놓은 탱화와 아미타 삼존불입니다. |
길가엔 들꽃들이 많이 피어 있습니다. 얼레지는 이미 지고, 개별꽃과 현호색, 제비꽃이 많이 눈
에 띕니다. 계곡 중반에서부터는 하늘색 구슬붕이까지 관찰됩니다. 작은 계류를 끼고 핀 녀석들
이 하도 예뻐 렌즈를 접사로 바꾸며 카메라에 담아 봅니다. 절로 오르는 큰 길을 에둘러 탐방객
들이 찾는 이 길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점이 없어 안도합니다. 작지만 깊은 협곡을 이룬 계곡이
작은 폭포를 이룬 지류들과 만나며 고도를 높입니다. 하루 중 아주 잠시 햇볕이 들 것 같은데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 참 아름답습니다.
이윽고 오른쪽으로 3단으로 떨어지는 계곡 최고의 명소 비룡폭포에서 대형 철제계단을 오릅
이윽고 오른쪽으로 3단으로 떨어지는 계곡 최고의 명소 비룡폭포에서 대형 철제계단을 오릅
니다. 철제계단 없이는 정말 불가능했을까? 옛 사람들처럼 오르는 게 위험해서 그랬을까? 폭
포를 카메라에 담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여지없이 해치는 철제 계단의 존재 의미를 의심해 봅
니다. 폭포 상단 평지에 불끈 솟은 암릉 위가 바로 절입니다. 시인 안도현 님이 ‘구름한테 들키
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라고 표현한 화암사.
근데 이 암릉의 높이만 한 폭포 하나가 왼쪽에서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단을 개울 물 건너
근데 이 암릉의 높이만 한 폭포 하나가 왼쪽에서 더 떨어지고 있습니다. 하단을 개울 물 건너
듯 징검다리 돌 더미를 딛고 건넙니다. 일주문 없는 절, 이게 세심천(洗心川) 역할을 하나 봅
니다. 금산사의 말사인 화암사는 다양한 이름에 화려한 단청을 한 당우와 큰 불탑이나 부처님
을 모신 여느 절들과는 달리 일주문이나 사천왕문은 물론 불탑도 하나 없습니다. 산신각까지
다 합쳐도 예닐곱도 안 되는 절 집, 그것도 주요 네 채가 ‘ㅁ’자 형으로 자리해 함축된 구조라
절보다는 암자 같고, 오래 전부터 빛바랜 단청 그대로 맨 얼굴로 서 있어 일견 초라하지만 ‘검
이불누(儉以不陋)’ 질박한 그 자체가 매력으로 심미안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
아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한번 느껴본 사람들은 절이 더 파괴되거나 발전을 위한 중창이나 개악의
그래서 이런 분위기를 한번 느껴본 사람들은 절이 더 파괴되거나 발전을 위한 중창이나 개악의
보수를 하지도 말고 원래 모습 그대로 오래 유지되기를 바라며 일부러 소문을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런 절 하나 비밀하게 마음에 두고 위안의 성소로 삼고 싶어서일까요. 저도 처음 찾
았던 2004년 기억을 더듬어 ‘얼마나 변했을까, 아니 파괴됐을까 걱정하며 만약 몰라보게 그리
됐다면 다시는 오지 않아야지’ 하면서 오르고 있고요. 바야흐로 벚꽃 철 만개한 하얀 산벚이
아직도 앙상한 나목 천지인 산을 곱게곱게 수놓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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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유형문화재인 동종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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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전 외부 시건장치입니다. 얼마나 환경친화적인지요! |
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절 동쪽으로 흐르는 또 하나의 개울을 건너야 합니다. 전에는 달랑 나
무 등걸 몇 개를 엮어서 걸쳐 놓았던데 이번엔 동승의 까까머리마냥 파르스름한 화강암 교각으
로 바뀌었군요. 우리는 먼저 절 밖에서 이 절이 ‘화암사’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인 꽃 바위부터
찾아보기로 합니다. 절 서쪽을 흐르는 비룡폭포 계곡 상단인데 절 담장 밖 재래식 화장실 해우
소 앞에 봉긋하게 암반이 솟아 있습니다. 그쪽에서 보니 절이 그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안내문
하나 없는 것도 이 절의 특성 같습니다.
비룡폭포 계곡 서쪽 둔덕에 조선조 선조 때 세웠다는 이 절의 중창비가 모셔져 있습니다. 여기
비룡폭포 계곡 서쪽 둔덕에 조선조 선조 때 세웠다는 이 절의 중창비가 모셔져 있습니다. 여기
서 보니 절터는 꽤 넓은데 건물이 한가운데로 응집돼 있군요. 비문은 알아보기 힘들지만 보이는
것만 탐독한 결과 이 절에 신라 스님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머물면서 수도했다는 기록이
있어 화암사의 창건연대를 신라 문무왕 이전으로 추정하고요, 실제로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원암대(元巖臺)가 절 동쪽에, 의상대사가 머물렀다는 의상암 터가 남쪽에 각각 있는데 이 두
암자는 본 절 화암사 없이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합니다.
동행한 김정길 회장은 “역사란 정복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며 “문무왕 이전이면 이곳은 백
동행한 김정길 회장은 “역사란 정복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며 “문무왕 이전이면 이곳은 백
제였고 그래서 이 절은 백제시대에 창건된 백제의 절이 맞다”고 바로 잡습니다. 그러면서 “앞
으로 이 절을 소개하는 모든 자료에 이 부분은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런 역사 이야기보다는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며, 바위는 기이하
저는 그런 역사 이야기보다는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며, 바위는 기이하
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이라는 절 소개문이 더 마음에 듭니다.
화암사는 국보 제316호인 극락전과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를 비롯해 명부전(冥府殿)·
화암사는 국보 제316호인 극락전과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雨花樓)를 비롯해 명부전(冥府殿)·
산신각, 적묵당(寂默堂)·철영재(綴英齋)·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이 중 1425년 성달
생이 시주했다는 극락전은 중국 남조시대(南朝時代)에 유행하던 하앙식(下昻式) 건물로 유명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이랍니다. 아미타삼존불과 조선 후기에 그린 후불탱화, 신중탱
화, 현왕탱화를 봉안하고 있고요. 초선 초기 건축 양식인 우화루는 자연과 조화를 잘 이룬 공
중누각식 건물로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경치가 일품입니다. 또 명부전 지장보살상 뒤에는
역시 조선 후기 지장탱화들을 봉안하고 있어 화암사를 ‘작은 큰 절’, ‘보물덩어리 절’이라 불러
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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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의 서쪽 중창비가 있는 둔덕에서 내려다 본 화암사 전경입니다. 절터는 너른데 당우들이 한가운데로 몰려 있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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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 부 세 봉우리 능선 길엔 이런 숲 속으로 나무들을 돌아가는 코스가 많지요. |
이밖에도 전북 유형문화재 제40호와 제94호로 지정된 높이 1.4m의 동종(銅鍾)과 앞에 설명
드린 이 절의 중창비가 있는데, 이 중 동종은 광해군 때 호영(虎英)이 주조한 것으로, 사찰 또
는 나라에 불행한 일이 있을 때는 스스로 소리를 내 그 위급함을 알려 주었다고 해서 자명종이
라고도 부른답니다. 또한 극락전은 경판 200여 장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1469년(예종 1년)에
만든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비롯 1618년(광해군 10년)에 만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
家解)’ 등으로 지금은 전북대학교박물관에 보관 중이랍니다. .
또 고승들의 영정 8폭도 보존하고 있는데, 이들은 허주(虛舟)·고경(古鏡)·낭월(朗月)·보경(寶
또 고승들의 영정 8폭도 보존하고 있는데, 이들은 허주(虛舟)·고경(古鏡)·낭월(朗月)·보경(寶
鏡)·인파(仁坡)·낙암(樂巖)·월하(月河)·벽암(碧巖)의 것으로 전통적인 탱화기법을 그대로 따
르고 있는 오래된 작품이랍니다. 이밖에도 절 주위에는 덕운당(德雲堂)의 부도와 이름을 알
수 없는 3기의 부도(浮屠)가 있다는데 모두 조선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합니다.
절의 입구는 동쪽. 밖에서 보면 이층인데 들어서 보면 단층인 우화루(雨花樓)를 오른쪽으로
절의 입구는 동쪽. 밖에서 보면 이층인데 들어서 보면 단층인 우화루(雨花樓)를 오른쪽으로
두고 계단을 올라 절 안으로 들어섭니다. 절의 남쪽 적묵당의 처마가 동쪽과 서쪽의 우화루
와 극락전의 두 처마를 이으며 멋진 구도를 보여 줍니다. 전에는 극락전 죽담 아래 화단이 조
성돼 있었는데 지금은 깨끗이 치워져 정사각형 마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보물 극락전 가운데
문이 무쇠 고리로 채워져 있는데 빗장으로 꽂아놓은 게 작은 나뭇가지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소박하고 재치 있고 자연친화적인 시건장치라니요.
마침 절에 기거 중인 주지스님께 양해를 구해 극락전 내부로 들어가 삼존불상과 탱화, 동종
마침 절에 기거 중인 주지스님께 양해를 구해 극락전 내부로 들어가 삼존불상과 탱화, 동종
등을 촬영하는 데 성공합니다. 지식은 없으나 카메라 파인더 속에 뜨는 대상들이 예사롭지 않
다는 건 금방 알 수 있지요. 그리고 문화재로서의 향기 같은 게 느껴집니다. 다시 절 밖으로 나
오니 우화루 앞에서 단체 관람객들이 해설사의 안내로 설명을 듣고 있는데 표정들이 아주 진
지합니다.
이들을 뒤로하고 산에 오르기 위해 절 앞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서며 길 양 옆으로 울창한 조릿
이들을 뒤로하고 산에 오르기 위해 절 앞으로 난 등산로로 들어서며 길 양 옆으로 울창한 조릿
대 속으로 몸을 숨깁니다. 명산대찰이란 말과는 달리 절만 유명하고 산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
니다. 숲길이 그리 잘 나있지 않은 걸 보면요. 그러나 가파르긴 여느 험산 못지않습니다. 간혹
길이 꿈틀거리는 모서리에서 내려다보면 화암사가 자꾸 손바닥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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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명산 정상입니다. 지도와 현장에 표시한 해발 높이가 다 제 각각이어서 하루 빨리 하나로 통일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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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의 서쪽 등·하산 길목 장선리재를 지난 능선 길에서 바라본 농바위산입니다. |
‘佛明’, 부처님의 자비가 뻗친 조화 즐기는 산행
불명산은 남서쪽 산자락에 화암사를 품고 크게 세 봉우리가 연봉을 이루며 서 있습니다. 우리
가 먼저 오르는 봉우리가 일명 불명산으로 부르는 동봉입니다. 등산로는 절 앞에서 동쪽으로
가다 북쪽으로 고도를 높이다가 다시 동쪽으로 꺾이며 능선으로 올랐다 서북쪽으로 향하며
우리를 꼭대기에 올려 세웁니다.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연두색 새순을 내 달고, 간간이 만개한 연분홍 진달래가 봄 산의 정취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연두색 새순을 내 달고, 간간이 만개한 연분홍 진달래가 봄 산의 정취
를 더해 줍니다. 동봉 꼭대기는 옛날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놓인 자연석들만으로도 그런 분위
기를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 돌탑을 쌓고, 그 곁 나무에 ‘불명산 (해발) 480m’라 쓴 팻말을 걸
어놓았습니다. 지도상의 높이는 428m. 어느 게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더욱이 김정길 부회장
은 연봉 서쪽에 삼각형으로 솟은 시루봉이 불명산의 정상이라고 해서 완주군에서 이를 정확
하게 정리해 주면 좋겠다 싶습니다.
동봉 봉우리 너머로 펼쳐진 동네는 운주면 금당리. 그곳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금강으로, 이
동봉 봉우리 너머로 펼쳐진 동네는 운주면 금당리. 그곳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금강으로, 이
화암사 쪽으로 흘러내리면 만경강으로 가 불명산 세 봉우리를 잇는 능선이 두 강을 가르는 분
수령인 셈입니다. 아무튼 동봉 정상은 앉아서 쉬거나 몇 명이 둘러앉아 점심을 들기 ‘딱’입니
다. 우리도 여기에 자리를 펴고 점심을 듭니다. 마침 앉기 좋은 의자처럼 생긴 바위며 소파를
닮은 바위도 있어 앉거나 비스듬히 기댄 포즈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얼굴을 처음 보는 김문규 선생이 저를 위해 준비한 점심은 김밥, 호박식혜, 갓김치, 초석
오늘 얼굴을 처음 보는 김문규 선생이 저를 위해 준비한 점심은 김밥, 호박식혜, 갓김치, 초석
잠, 과일포, 생과일 등입니다. 이 중 김밥을 빼곤 모두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감동입니다. 우악
스럽기 이를 데 없을 것 강골의 경상도 사나이에게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 정성과 자상함입
니다. 자리 가까이는 몸을 낮춘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고, 멀리는 산벚들이 희끗희끗한 산 중
에서 이 지방 막걸리를 반주로 드는 점심이란!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조오타!”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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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화암사 입구 계곡의 백미 비룡폭포입니다. 검은 암반 사이로 10여 m짜리 폭포가 삼단으로 떨어지는데 맨 위쪽 한 단은 가려져 보이질 않습니다. 2 갑산제비꽃. 3 큰구슬붕이. |
산이 높지는 않지만 첩첩 산중이라 생태계가 좋은지 곳곳에 멧돼지들이 출몰한 흔적이 많습니
다. 급하게 내리꽂은 길을 다시 올라 당도한 가운데 봉우리에는 마치 유명 배우가 발 도장을
찍기라도 하듯 선명하게 난 멧돼지 발자국도 봅니다. 마침 주머니 속에 500원짜리 동전이 있어
꺼내 놓고 크기를 비교하는 사진도 한 장 찍습니다. 이 봉우리도 주변에 잡목들이 우거져 사방
조망이 여의치 않습니다.
산 능선이 화암사를 품고 반달모양으로 이어지는데 전 구간이 촘촘하게 자란 활엽수들로 밀림
산 능선이 화암사를 품고 반달모양으로 이어지는데 전 구간이 촘촘하게 자란 활엽수들로 밀림
을 이룹니다. 마지막 세 번째 봉우리 시루봉은 멀리서 봤을 때는 삼각 봉우리인데 다가서니 가
파른 작은 능선이 겹쳐져 있습니다. 북동쪽으로 하얀 암릉이 돋보이는 천등산과 그 뒤 북쪽으
로 암봉으로 유명한 대둔산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미세먼지가 낀 날씨라 카메라로 잡을 만큼
선명하지 못하고 잡목들로 가려져 더 안타깝습니다. 시루봉엔 삼각점이 설치돼 있고 해발 423
m라 적혀 있습니다. 지도상엔 427.6m. 이 또한 어느 게 맞는 건지, 인증 샷을 하고 능선을 따라
그대로 직진 장선리재 쪽으로 하산합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 길 장선리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린 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내리막 길 장선리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우린 그
대로 능선을 따라 오르기로 합니다. 그러다 오른쪽으로 새로운 경치를 만납니다. 벌목한 사면
건너로 펼쳐지는 농바위산입니다. 하지만 바라보기만 해야 할 산 우린 반대편 처음 주차장 쪽
으로 언제부턴가 사라져버린 길을 찾아 가파른 밀림의 사면을 헤집고 내려섭니다. 해묵은 낙
엽 더미를 얼마나 파헤쳤던지 등산화 속에 검불이 가득 들어찹니다. 그래도 참 즐겁습니다.
무릎 수술 후 첫 등산이 이런 푹신한 육산인 것도 다행이고요.
다 내려와보니 옛날 절터였음직한 골짝 상단입니다. 얼레지, 바람꽃, 현호색에 개구리발톱까지
다 내려와보니 옛날 절터였음직한 골짝 상단입니다. 얼레지, 바람꽃, 현호색에 개구리발톱까지
봄 들꽃들이 골짜기에 많이 자라고 있습니다. 오늘 들꽃 많이 못 본 거 보충하라는 것 같아서 퍼
질러 앉아서 카메라에 담습니다. 들꽃이 만발한 인적 없는 깊은 계곡에서 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습니다. 골짝 깊이 찾아든 따뜻한 봄 햇살과 촐촐촐 소리 내며 흐르는 맑은 계곡 물, 이런 자
연의 은총이 어디 있고, 이런 날 이런 곳을 산과 자연과 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어울려 산행을
하니 이런 행복이 어디 있나 싶어서일 겁니다. 이 또한 ‘佛明’, 즉 부처님의 자비가 뻗친 조화라
할까요. hanseungguk@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