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암 캐리(1761-1831)
1.출생: 1761년 8월 17일 영국 노셔햄프턴셔 폴러스퍼리 작은 마을에서 태어남.
2.가정환경: 부친은 작은 마을학교의 교장을 지냈던 덕망있고 매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으나, 윌리암 캐리의 가정은 무척 가난하였음.
3.어린시절
①캐리는 어릴 때 장티푸스에 걸려 앓다가 머리카락이 다 빠져 대머리가 됨.
②너무 가난하여 정규학교가 아닌 자선학교를 다니며 읽기와 쓰기, 산수와 종교 교육등을 받았고, 특히 어학에 대한 관심이 크고 독서를 굉장히 좋아하였다.
-12살 때 60페이지에 달하는 라틴 문법책을 다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았고, 졸업후 원예사가 되려 했으나 햇빛을쬐면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포기함.
③캐리는 14살이 되어, 구두 제조업의 견습공으로 12년간 생계를 이어감.
-캐리는 구두수선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성경을 읽고, 지리책과 외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여 불어와 독어, 라틴어와 히브리어, 헬라어를 마스터함.
4.청년시절 회심(回心)
①1779년 2월 18세 어느날 친구와 함께 비국교 침례교회 기도회모임에서 회심함.
-그때 1실링을 주인 몰래 숨기려고 하였는데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13:13)”는 설교 들으며 죄를 깨닫고 회개함.
②회심후비국교 침례교에 들어가 열심히 활동하며 여가시간에는 성경을 공부함.
-그는 특히 독학으로 성경을 원어로 공부하고, 많은 책들을 탐독하였는데 이러한 열정 때문에 책을 사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매우 잦았다.
③1781년 그가 20살 때 5살 연상의 여인 도로시와 결혼함.
-도로시는 주인의 처제로 문맹(文盲)이었고, 캐리는 자신의 가족뿐 아니라 주인의 미망인과 아이들 4명까지 부양하는 빈곤하고 비참한 생활을 함.
④1783년 10월 5일, 윌리암 캐리가 23살 때 침례교 목사로부터 침례를 받음.
5.선교사로서의 사명
①1785년 목사안수를 받고, 고향 근처 몰튼 지방의 작은 침례교회에서 전임목회를 시작, 목회 사례비로는 생활이 여전히 어려워 매일 골방에서 구두수선을 해야했다.
-그는 목회하는 동안 [쿡 선장의 마지막 항해]라는 탐험보고서를 읽으며 해외선교에 대한 열정과 함께 큰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됨.
②1792년 캐리는 [이교도의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에 관한 조사]라는 해외선교의 절박성을 표현한 책을 발간함.
③1792년 5월 30일, 침례교 교역자 연합회에 초청받아 유명한 설교(사54:2-3)를 함.
-“하나님으로부터 큰 것을 기대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큰 일을 시도하라”이것은 캐리의 일평생의 좌우명이 되고, 모인 청중들에게 큰감명을 주었다.
④1793년 캐리는 개신교 역사상 최초로 ‘해외선교회’를 런던에 설립하고, 가장 먼저 인도선교사로 자원함.(*1795년 ‘런던선교회’로 개명되고, 이후 많은 단체가 설립됨.)
⑤캐리가 32살이 되어 인도선교사 가기로 결단하자 가족들이 극심하게 반대함.
-그의 아버지는 캐리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고, 넷째아이를 임신중이었던 아내는 울면서 반대하고 아이들도 기뻐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함께 떠남.
6.인도선교 사역
(1)당시 인도의 상황: 1763년 동인도회사의 실권 장악
-동인도 회사는 인도선교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직 경제 수익성만을 계산함.
-인도는 가난에 찌들고 카스트 제도로 인해 자멸해가는 절망과 죽음의 나라
(2)인도로의 항해(1793년 6월 13일 출발)
-영국 Dover에서 출항하여 가족 모두와 처제, 동역자 토마스 선교사와 함께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격렬한 폭풍을 뚫고 5개월만에 인도에 도착함.
-인도 캘커타 외곽 말라리아가 만연하는 습지에 정착하여 6개월 지나도록 전도된 사람은 없고 재정은 바닥나고, 가족모두 이질과 영양실조에 걸림.
(3)말다지역: 7년간의 벵갈 원주민 사역과 시련
①이후 캐리는 450km떨어진 북쪽 말다지역에 한 농장의 지배인 자리를 얻어 농장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말을 배우며 전도 사역했으나 가족들은 싫어함.
-인도에 정착한지 1년여만에 5살난 아들 피터가 이질로 죽자 그 슬픔으로 아내는 정신착란상태를 보이며 반미치광이로 12년간 앓다 1807년 죽음.
②1795년 첫 번째 침례교회를 설립: 7년간 사역했지만 단 한명의 개종자도 없음.
(4)덴마크령 세람포 사역(34년간): 인도에서의 침례교 선교의 중심지
1800년, 19세기가 시작되자 동인도회사의 추방령으로 캐리는 덴마크 영내의 세람포로 선교지를 이동하고, 여기서 남은 34년간의 생애를 모두 보냄.
①사역의 열매: 기독교인 7천만명(전체인구 6%, 세계8위), 자국목회자 8만명
-1년이 못되어 1806년 첫 개종자를 시작으로 회개의 역사가 줄기차게 일어나 25명의 세례인, 그후 18년간 600명이 세례받고, 수천명이 예배하는 열매맺음.
②성경번역사역: 큰 인쇄소를 설립하여 번역사업을 꾸준히 진행
-세람포에서 3개 언어(벵갈어, 산스크리트어, 마라디어)로 성경을 완역함.
-그외 인도방언들과 버마어, 중국어, 말레이어등 44개 언어로 성경번역 출판
③1819년 세람포 대학 설립: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대학
-캐리는 젊은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회 지도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세람포 대학은 37명의 인도인 학생으로 개교(그중 절반이 기독교인)
④사회개혁: 사띠(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화형), 영아살해(못생긴 아이 죽임)폐지
7.별세와 평가
①1834년 6월 9일, 73세를 일기로 일생을 바쳐 헌신했던 인도 세람포에 묻힘.
-그는 32세부터 41년간 교사, 언어학자, 선교사, 사회개혁자로 인도에서 사역하며 안식년이나 휴가없이, 수많은 고통과 역경을 겪고 이겨낸 불굴의 신앙인이었다.
②평가: 영국은 윌리암 캐리를 “제2의 종교개혁의 아버지”라 부르고, 인도인은 “가장 위대한 성자”라는 뜻의 ‘마하투마라’라는 칭호를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