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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락교회(김기동)] 베뢰아 비판(비일관성의 귀신론)

작성자조광선|작성시간09.07.17|조회수64 목록 댓글 0

베뢰아 비판(비일관성의 귀신론)


언제나 한 개인의 추측과 상상에서 비롯되는 황당한 주장은 그 첫 번째 특징으로 일관성이 없게 된다. 김기동목사의 저서를 읽으면서 김기동목사는 하나의 입으로 왜 이렇게 서로 다르게 말을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즉 그의 주장이 일관성이 없으며 서로 다른 것은 그의 주장이 너무나 즉흥적이며 개인적인 추측에서 비롯되어진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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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이 거하는 곳


베뢰아 김기동목사는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거하며, 귀신은 육체로 거한다고 주장한다.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마귀론 하 154쪽)

# 귀신은 사람의 영혼 속에는 들어오지 못하지만 육체 안에는 들어올 수
 있습니다.(마귀론 하 63쪽)

즉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에 거하며 귀신은 육체로 거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믿는 성도들의 심령은 거룩하여졌으므로 그 영에는 하나님이 거할 수 있지만, 성도들의 육체에는 하나님이 거할 수 없고 귀신이 거한다는 주장으로서, 예수를 믿는 성도들에게도 심령에는 하나님이, 육체에는 귀신이 동시에 함께 거할 수 있다는 이상한 주장이 된다.
그러나 성경은 성도의 몸 안에 하나님과 귀신이 동시에 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10:21)

김기동목사의 이러한 주장은 사람을 전인적(全人的)으로 생각하지 않고, 영과 육의 이원론적으로 분리하여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은 오직 죽어서만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지며, 살아 생전에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 전인적(全人的) 존재라는 것이 성경적인 견해이다.

또한 이러한 주장은 김기동목사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니라, 지방교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동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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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어보자.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우리는 우리 존재에 세부분이 있음을 알고 있다. 당신은 사단이 그의 거처를
 당신의 몸, 즉 당신의 육체 속에 만들었다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의 영을 그분의 거처로 삼으셨다는 것을 아는가?(왕국, 218쪽)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지방교회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동일하다.
게다가 베뢰아 김기동목사의 양태론적 삼위일체도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와 동일하며, 기독론과 인간론등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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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이러한 헬라철학적인 이원론이 비성경적일까?
성경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시켜 구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
- 내 영혼(soul, 네페쉬)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니"(시63:1)

김기동목사의 주장대로 보면 죄악된 육체에는 하나님이 거할 수가 없다. 그러나 위 성경구절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하나님께 간구하며 부르짖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사도행전에서는 구약 욜2:28-30에서 예언한 것을 그대로 인용하여, 성령을 "육체"에 부어준다고 하였다. 즉 육체는 귀신이 거하는 곳이라는 베뢰아 주장을 무색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샤륵스, Fresh)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또 바울은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함이라고 말하였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샤륵스, Fresh)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후4:11)

또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예배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소마, Body)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이와 같이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이며, 우리의 육체에 사단이 거하는 곳이라는 김기동목사의 주장은 성경에 부딪히게 된다.

또 죄에 있어서도 반드시 육체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혼이 죄를 짓는다는 구절과(벧전1;22, 계18:14), 영에 죄가 있다는 구절(시78:8, 잠 16:18, 전7:8, 잠16:2)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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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베뢰아의 주장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 육신은 끊임없이 귀신들의 공격과 도전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이
 거룩함같이 우리의 육신도 거룩하면 이를 대항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
 혼은 주님의 보혈로 거룩해지고 육체도 말씀을 순종함으로 거룩해지기에 우
 리에게는 귀신이 들어와 머물 수가 없습니다.(마귀론 하 155쪽)

위의 주장과 아래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위의 주장은 성도들이 심령이 거룩하듯이 육체도 거룩하면 귀신이 들어올 수가 없다는 것이고, 아래 주장은 성도들이 심령은 거룩하여지지만 육체는 거룩하여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 우리의 심령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기에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지만 육체는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없습니다.(마귀론 하 154쪽)

김기동목사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귀신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당뇨병의 지병을 갖고 있는 김기동목사는 성경말씀에 순종하지 않아서 그 육체가 아직 거룩해지지 않았으므로, 당뇨 귀신이 거하는가?
또 그러한 주장은 심령이 거룩한 사람도 그 육신은 거룩하지 못할 수가 있다는 주장으로서, 심령과 육신을 분리시키는 주장으로 헬라적인 이원론이 분명하다.
더욱이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면 육체가 거룩하여 진다는 것도 이상하다. 말씀을 순종하면 영혼은 거룩하여지지 않는가? 주님의 보혈로는 영혼만이 거룩해지는가?
인간을 전인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영혼 따로, 육체 따로 말하는 것도 참으로 황당하다.

성경에서 "육신의 소욕"이라는 말은 언급되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영혼을 배제한 육체만의 소욕이라는 뜻이 아니라, 육체적인 욕망을 언급하기 위함이다.
특히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란 말은 인간에게 두가지의 소욕을 느끼는 기관이 별도로 두 장소가 있다는 의미가 되어지지 못한다.
전인적인 한 사람으로서, 육체의 소욕을 따른다는 것은 육적인 욕망을 따른다는 의미일 뿐이다.
인간이 육체로 있는 한, 육적인 소욕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육체는 내버려두고 인간의 영혼만이 성령의 소욕을 따르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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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기동목사의 다음 주장을 살펴보자. 또 앞에서 언급한 주장과 바뀌게 된다.

# 귀신이 영적존재라는 말은 사람의 마음과 육체 어느 부분에나 쉽게 침범
 할 수 있으며 또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마귀론 하 113쪽)

이 주장은 무엇인가? 방금 전까지 영혼에는 귀신이 들어 올 수가 없다고 하더니 이제는 마음과 육체 어느 부분에나 쉽게 침범할 수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다음 주장을 한번 보자. 또 달라진다....

# 귀신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의 중간계통에 들어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있게 됩니다. 귀신은 신경계통과 의지 속에 들어가기 때문에 동물 속에
 도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동물은 비인격체이기에 귀신이 인격적인 역사
 는 못하나 신경동작으로는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신경이 통하는 곳
 이라면 어디에나 거처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마귀론 하 173쪽)

이젠 귀신이 육체와 영혼의 중간계통인 신경계통과 의지속에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신경계통이 영혼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중간단계라는 주장도 황당하지만, 이번에는 영혼도 아니고 육체도 아니고 중간단계로 들어온다는 주장이다.
원래 베뢰아 김기동목사가 주장하는 "귀신"이란 제 명에 죽지 못한 죽은 자의 영혼이다.
그는 모든 질병의 원인이 모두 귀신때문이라고 주장(마귀론 하 166쪽)하는 사람이며, 모든 사고와 중독도 모두 귀신때문이며(마귀론 하 166-188쪽) 차멀미, 배멀미, 임산부의 헛구역질도 모두 귀신때문(마귀론 하 190쪽)이며, 신경통과 관절염은 귀신이 병균을 파송하는 것(마귀론 하 192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제 그가 말하는 또 다른 주장을 들어보자......

# 예를 들어 발가락 끝에 신경이 있다면 귀신은 그곳에 고통이 있게 하며
 그곳을 사역할 수 있는 장소로 삼습니다. 이 신경계통을 의식 또는 마음
 이라고도 합니다.(마귀론 중 110쪽)

앞에서는 신경계통을 육체와 영혼의 중간계통이라고 말하다가, 이젠 신경계통을 의식, 마음이라고 주장한다.
김기동목사가 의학적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발가락 끝의 신경을 김기동목사는 마음 혹은 의식이라고 하는가?
김기동목사가 이가 아프다고 가정하자. 김기동목사는 치신경이 아픈 것인가? 혹은 치아의 의식과 마음이 아픈 것인가? 더욱이 김기동목사는 이가 아픈 것이 육체와 영혼의 중간단계가 아프다고 하는가?
치과에 가서 신경치료를 하면 그것이 의식과 마음치료인가?
이번에는 또 어떤 주장을 하는지 한번 살펴보자.....

# 귀신은 사람의 의지를 속이고 들어 오기 때문에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의
 지가 어머니에게 있어 그 어머니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면 됩니다. 그
 러나 7세 넘은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의지가 벗어나 아버지에게로 옮겨갑
 니다. 이들의 의지가 엄마속에 있을 때는 엄마를 무서워 하지만 엄마에게
 서 벗어나면 말을 잘 듣지 않고 아버지를 더 무서워 하는 것입니다. 대략
 8세부터 15세 까지의 의지는 아버지에게 속합니다. 그러나 그 때의 의지
 는 자기의 의지 절반, 아버지의 의지 절반입니다.(마귀론 중 116쪽)

즉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의지가 엄마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그의 어머니의 의지로 들어오고 8-15세의 어린이는 의지가 아버지에게 있으므로 귀신이 아버지의 의지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제는 정도가 지나쳐 마치 코메디를 보는 듯 하다.
즉 7세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어머니의 의지 안에 있고, 8-15세의 어린이는 그 의지가 절반이 아버지의 안에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7세 이하의 어린이의 신경계통이 아프면 어머니가 아프며, 8-15세의 어린이의 신경계통이 아프면 아버지가 아픈가?
실제로 김기동목사는 어린아이가 연탄가스중독이 되었을 때에 어머니가 귀신축출을 받으면 치료된다고 주장을 한다.

또 신경계통이 마음과 의지를 말한다는 김기동목사의 주장이 맞는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는 신경계통이 청결한 자는 복을 받는다는 말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의지)을 다하여....."는 신경계통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인가?

김기동목사의 비상식인 의학지식은 일단 덮어두자.
그러나 김기동목사는 도대체 귀신이 육체로 들어 온다는 것인가? 신경계통으로 들어 온다는 것인가? 육체와 영혼을 맘대로 드나든다는 것인가? 마음과 의지로 들어온다는 것인가?
게다가 7세 이하의 어린이는 어머니의 의지로 귀신이 들어 온다면, 7세 이하의 어린이는 마음과 의지도 신경계통도 없는 허수아비란 말인가?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은 마음과 의지와 신경계통이 반은 아버지에게 있다는 것인가?

김기동목사의 이러한 횡설수설은 그의 책을 읽어보면 많이 발견된다.
예를 들면 김기동목사는 창세기의 뱀에 대해서 또 일관성이 없는 횡설수설을 한다.

# 그런데 왜 에덴동산에 들짐승인 뱀이 들어 왔습니까? 왜 천사가 뱀을 사
 용했을까요? 에덴 밖에도 사람들이 있었지만 동산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없는 곳
 이기에 마귀는 뱀을 이용한 것입니다.(마귀론 상 72쪽)

에덴 밖에도 사람이 있었다는 소위 이중아담론도 비성경적인 주장이지만, 에덴동산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였으므로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들어 왔다는 이야기는 어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불과 몇페이지를 넘기지 못해 또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사단이 뱀을 이용하여 들어왔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단이 뱀으로 둔갑하였다고 주장한다.

# 이 때에 사단은 뱀으로 둔갑하여 사람을 속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말쟁이가 되었고 또 거짓의 아비가 되었습니다.(마귀론 상 150쪽)

그 다음에는 마귀는 뱀이 아니라, 피조물과 저주를 받아 타락한 자라는 "상징적"인 것이라는 주장으로 또 바뀌게 된다.

 "그런데 왜 마귀를 뱀이라고 말합니까? 마귀 자체가 피조물이기 때문입
  니다. 마귀를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실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창조하셨을 때는 이름답게 지음을 받은 존재였
  으나 저주받은 존재로 타락한 자라는 데서 마귀의 상징으로 뱀을 등장
  시킨 것이며 또 마귀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씀하기 위함입니다.(마귀론 중 16쪽)

김기동목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 도대체 몇번을 계속 바꾸는가?
이제는 뱀이 사단에게 유혹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또 있다. 즉 뱀 자체가 마귀가 아니라 앞잡이였다고 주장하는데, 참으로 언급할 때마다 달라진다.

# 창세기 3장 1절의 들짐승이 마귀의 유혹자가 된 것은 그리스도로 인해 갈보리에서
 패배당한 원수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마귀론 중 211쪽).....
 .....(귀신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 돼지를 몰살시키듯 뱀 자체가 마귀가 아니라
  뱀을 앞잡이로 사용하였기에 이용당한 뱀이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뱀을
  볼때 마귀의 앞잡이로 활동했던 수천년 전 사건의 결과를 현재 눈으로 보는 것
  입니다. 범죄한 뱀은 저주와 함께 종말이 있게 되었습니다.(212쪽)

김기동목사의 마귀론을 읽어보면 마치 만화책이나 황당무괴한 소설을 읽는 것 같다. 도대체 무슨 주장인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일관성이 없으며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비성경적이라는 것이며, 즉흥적이며, 인위적인 추측과 공상이라는 점뿐이다.

사단은 뱀을 이용하여 들어 온 것인가? 사단이 뱀으로 둔갑한 것인가? 마귀가 피조물인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단지 상징적으로 뱀을 등장시킨 것인가? 뱀은 마귀가 아니라 그 앞잡이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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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daerim.or.kr/cgi-bin/technote/read.cgi?board=ptdata&y_number=270&nn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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