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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ILAND]][무에타이 전설2]사마트 파야카룬

작성자英武會館|작성시간12.09.14|조회수1,986 목록 댓글 0

사마트 파야카룬은 1962년생으로 본명은 '사마트 팁타르마이' 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수의 파이팅 네임은 '파야카룬의 사마트' 인것입니다. 레젼드급 낙무아이들의 상당수가 이미 10세 이전에 이 경건한 수라의 세계로 진출했죠. 사마트는 다소 늦은 나이(?)인 만11세때 형의 손에 이끌려  무에타이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지' 룸피니 복싱 스타디엄

 

 

사마트 뤀클롱켓으로 데뷔한 그는 커리어의 초반 십여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1978년 방콕의 본무대로 진출했습니다. 데뷔초의 사마트는 오소독스 스탠스로 싸웠다고 합니다. (전성기 시절은 사우스포로 보냄)

 

1980년 사마트는 룸피니 105파운드 급 챔피언이 됩니다. 같은 해, 108파운드을 석권한 후, 81년에는 115 파운드급과 126파운드급을 연이어 집어삼키면서 1981년 Fighter of the Year에 선정됩니다. 남삭노이와 쌈코는 3체급 달성자입니다. 사마트는 4체급을 한것이죠. (나중에 소개드릴 사엔차이도 4체급)

 

1982년 사마트는 앞서 소개드린 디젤노이와 대전했고 고배를 들게 됩니다. 왜 이 두선수의 대전이 80년대 무에타이를 대표하는 메가 파이트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그만큼 엄청난 개런티를 챙길 수 있었는지는 역시 사마트라는 선수가 이렇게 화려한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더군다나 사마트는 꽃미남이었습니다. (디젤노이도 상당했습니다만 얼굴로는 사마트의 승리가 아닐까 싶어용)

 

 

젊은 시절

 

나이좀 드셨을 때, 여전히 멋지심

 

 

디젤노이와의 경기에서 패배하면서 82년 파이터 오브 더 이어는 디젤노이의 차지가 됩니다. 하지만 사마트는 83년에도 파이터 오브더 이어를 수상하게 되죠. 디젤노이에게 진것이 그에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던것으로 보입니다.

 

82년부터는 국제식 복싱(태국에서 복싱은 무에타이를 의미하고 프로 복싱은 국제식 복싱이라고 지칭합니다.)에 데뷔했습니다. 이 선수의 프로 복싱 데뷔전 상대가 무시무시하죠, 바로 WBC 라이트 플라이급 전 챔피언이었던 네트르노이 소 보라싱입니다.

 

네트르노이는 우리나라 복싱계에는 소 보라싱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선수는 챔피언이었던 1978년 9월 30일 내한해 김성준 선수와 대전했습니다. 김성준 선수의 3라운드 KO승으로 WBC 라이트 플라이급 벨트가 최초로 우리나라로 넘어오게 됩니다.

 

네트르노이(소 보라싱)은 그 후로도 계속 싸웠고 81년 11월에는 당시 WBC 라이트 플라이급 챔피언 일라리오 사파타에게 도전해 10회 KO패를 당합니다. (그리고 사파타의 벨트는 83년에 장정구 전챔피언이 다시 한국으로 가져오게 되고 이후 오랜동안 우리나라에 머물게 됩니다.)

 

네트르노이를 상대로 한 사마트의 프로복싱 데뷔전은 사마트의 10라운드 판정승으로 끝이납니다. (데뷔전이 무려 10라운드입니다, 이것은 WBC의 커미셔너 호세 슐레이만이 70년대에 무에타이 경기를 관람 한 후, 룸피니 챔피언에게는 세계랭킹 10위권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하고, 그 말을 지키면서 이루어지게된 일종의 무에타이-복싱 협약에 의한 것입니다.)

 

이 경기는 네트르노이의 마지막 시합이었습니다. 이 경기가 있은지 약 4개월 후 네트르노이는 유명을 달리 했습니다. 무에타이계에서 부터 프로복싱까지, 단신(149cm)이었던 이 선수는 많이 맞는 운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오랜시간, 치열했던 선수생활의 종국에 결국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 것입니다.

 

데뷔 후부터 85년까지 사마트는 6KO승을 포함한 11연승을 달립니다. 이 과정에서 이영호 선수와 박병수 선수가 사마트에게 당했습니다. 86년, 사마트는 강한 턱으로 유명했던 WBC 슈퍼밴텀급 챔피언 루페 핀토(당시전적 54승 8패 2무)를 5라운드 KO로 꺽으면서 국제식 복싱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1차방어전을 12회 KO승으로 달성한 사마트에게 호주출신의 한 복서가 도전해 왔습니다. 차후에 3체급 정벌을 달성하게 되는 그 선수의 이름은 제프 페넥(페네치)이었습니다. (페넥은 아주마 넬슨과의 치열했던 라이벌 구도로 유명했죠) 사마트는 4회 KO패로 타이틀을 페넥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제프 페넥(좌) 대 아주마 넬슨

 

 

낙무아이로써 사마트의 진정한 위대함은 페넥전에서의 패배 이후에 증명됩니다. 그는 다시 무에타이계로 돌아갔고, 여전한 경기력을 과시하면서 1988년 파이터 오브 더 이어에 선정됩니다.

 

그는 무에타이에서 출발해 복싱에서 최고의 위치에 올랐고 다시 무에타이로 돌아와 다시한번 큰 영광을 누린, 보기드문 파이터입니다. 당시 태국에서 그의 인기는 국왕급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인기인 답게 음반을 취입했던 기록이 남아있고, 다수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현재 그는 무에타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말도 잘하고 성격도 엄청 좋아서 제가 여기서 만난 나이 좀 있으신 낙무아이들 께서는 종합적인면에서 무에타이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바로 사마트 파야카룬이라고 주저없이 말씀하시는군용.

 

 

 

 

 

 

사마트의 스타일은 테크닉과 어그레션이 공존하는 아주 아름다운 형태였다고 합니다. 디젤노이가 체형의 특징을 특화한 형태, 그리고 남삭노이는 방어와 카운터, 쌈코는 공격적인 운영, 사엔차이가 기민함을 이용한 트릭과 변환기로 유명하다면, 사마트는 모든것을 다 가진 선수였다고 합니다. 체격도 디젤노이와 비교할 순 없지만 일반적인 선에서는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고, 공격, 방어, 공수전환, 변환기 및 변칙이 다 좋았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마치 우리나라에서 박지성이나 김연아에게 쏟아지는 찬양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뭐... 전설에 대한 존경심은 아무리 심해도 지나침이 없겠죠.

 

룸피니 4체급 달성자이며 타이복싱계에서 유일하게 파이터 오브더 이어를 3차례 지낸 전설적인 미남 낙무아이 사마트 파야카룬, 최강중의 최강이라고 불리우는 디젤노이에게 맞섰고, 호주 복싱의 넘버원 레전드인 제프 페넥에게 두번째 타이틀을 선물했던 그의 하이라이트를 보시죠.

 

 

 

[발췌]이용수님 블러그

http://blog.daum.net/vanmandera/12396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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