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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만남 40주년 특집] 빛향기 가득한 행복 산책7. 수통 속의 가르침

작성자辛旿정광호|작성시간26.06.09|조회수43 목록 댓글 14

 

수통 속의 가르침

-잡는 재미 놓아주는 즐거움-

 

 

“아닌데요, 메뚜기 안 잡았는데요!”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의 이야기다. 그날은 학교(현재 남산초등학교) 앞 나락밭에

누렇게 익은 벼 이삭 사이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메뚜기들을 잔뜩 잡아들였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메뚜기는 별미 반찬 중 으뜸이었고,

가을 나락 밭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메뚜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침, 수업도 일찍 끝났겠다,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메뚜기들을 잡으러 뛰어다닌 나는

일단 잡은 놈들을 허리춤에 차고 있던 빈 수통(물통)에 집어넣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통도 꽉 차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앞 못 보는 노인이 속도 들여다보이지 않는 수통 속 메뚜기를

감쪽같이 알아내자, 너무도 놀란 나머지 시치미를 뚝 떼어버리고 만 것이다.

 

“허, 이 녀석, 그럼 그 수통 안에 든 것은 메뚜기가 아니고 무엇인고?”

노인 역시 어림없다는 듯 맞받아치신다.

“너 아까 메뚜기 잡았다고 자랑하지 않았어?”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지가 넌지시 도경 할부지 편을 드시는 바람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그래, 몇 마리나 잡았느냐?”

몇 마리? 확실치 않았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분명 열서너 마리까지 세었던 기억은 나는데 그다음부터는 가물가물했다.

“흠, 어디 보자…, 일흔여섯 마리나 들었구먼. 그래, 그 많은 메뚜기를 다 어디에 쓰려고?”

한나절 내내 들판을 누비며 벼메뚜기를 신나게 잡던 날이었다.

노인은 허리춤에 찬 수통 속을 환히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말했다.

 

"할부지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호기심에 찬 나는 노인의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수통에서 메뚜기를 한 마리 한 마리 꺼내며 헤아려 보았다.

"하나, 둘, 셋…, 일흔넷, 일흔다섯. 어, 한 마리밖에 차이가 나지 않네요."

"예끼 이 녀석, 뚜껑 속도 봐야지!"

 

수통 뚜껑을 들여다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안에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콕 처박혀 있었다. 노인의 말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하지만 놀라움도 잠시. 오후 내내 애써 잡은 메뚜기들이 모두 달아나 버렸다.

 

"할부지 때문에 메뚜기들이 다 도망가 버렸어요."

입이 뿌루퉁해진 소년에게 노인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얘야, 잡는 재미가 있다면 놓아주는 즐거움도 있는 거란다."

 

그분은 내게 잡는 재미와 놓아주는 즐거움에 관해 이야기해 주셨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말씀이 잊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거기엔 나눔의 참뜻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잡는 재미)은 나눔(놓아주는 즐거움)을 통해 더 찬란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 교훈은 내 삶의 중심에 뿌리내려, 직장 생활에서도 이어졌다.

 

틈나면 각종 성금 모금과 물품 후원으로 소년소녀가장과 불우이웃돕기에 힘썼다.

물론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게 한다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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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유창명 | 작성시간 26.06.10 감사합니다.
  • 작성자박선하 | 작성시간 26.06.11 귀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 작성자최운겸 | 작성시간 26.06.13 감사합니다.
  • 작성자신연걸 | 작성시간 26.06.13 귀한 말씀 마음에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이서형 감사합니다. | 작성시간 26.06.14 수통 속에 메뚜기 숫자를 정확히 맞추시는 그분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어릴적 메뚜기 잡았던 기억이 많습니다.
    애써 잡은 메뚜기를 놓아 주는 기쁨을 저도 깨닫게 되는것 같습니다.
    나락(벼) 소리를 참 오랜만에 들으니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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