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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

작성자창원흑표곽순태|작성시간26.06.07|조회수28 목록 댓글 0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장옷을 왼팔에 걸치고 우리 집에 들어오면 할머니가 반갑게 맞았다.


그 여인이 할머니에게 절을 하고 살며시 고개를 들 때면 내 어린 눈에도 그 얼굴이 기품 있어 보였다.

어머니보다는 나이가 많아 보였으니 아마도 마흔 이쪽저쪽이었을 것이다.

여인과 할머니가 겸상을 한 저녁 식사가 끝나면 하나둘 동네 아낙들이 우리 집에 모여들어 어느새 안방 건넌방 대청마루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툇마루 기둥을 등지고 선 그 여인의 분 바른 얼굴이 발치의 촛불에 얼비칠 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입추의 여지 없이 들어찬 청중의 침 삼키는 소리뿐이던 긴장을,

그 여인은 장화홍련전 이바구 보따리를 풀면서 깨기 시작했다.

여인의 목소리는 높았다 낮았다, 굵었다 가늘었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목소리…. 자유자재로 천변만화했다.

귀신 목소리를 낼 때는 대들보 위에 올라간 듯했고, 개 소리를 낼 때면 마루 밑에서 기는 듯했다.

장화와 홍련이 계모에게 구박받을 땐 여기서 훌쩍 저기서 훌쩍, 동네 아낙들은 눈물 콧물을 찍어 냈다.

할머니 다리를 베개 삼아 누워 있다가 잠들기 일쑤였던 어린 나는 자지러지는 아낙들 웃음소리에 종종 잠이 깨곤 했다.

그 이바구꾼 아지매는 동네 아낙들의 눈물샘과 웃음보를 마음먹은 대로 터뜨렸다.

여름이면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 위에 하얀 버선발로 선 그 여인의 공연에 넋을 놓았다.

입담 공연이 끝나면 동네 아낙들은 돌아가기 전에 각자 집에서 갖고 온 쌀 한홉, 보리 두어홉,

또는 엽전 한닢을 입장료(?)로 내려 했지만 그때마다 할머니 손짓에 모두 도로 가져갔다.

할머니 방에서 함께 잠을 자고 난 이튿날이면 이바구꾼 여인은 할머니가 곳간에서 퍼 담아 준 쌀자루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라디오가 등장하고 서커스단이 오고 극장이 생기면서 프로 이바구꾼 전기수(예전에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사람)의 명맥은 끊어졌다.

세상은 급변하여 이제 지구촌 구석구석 돌아가는 일이 티브이다 컴퓨터다 스마트폰이다 하며 코앞에서 펼쳐지는 세상이 되었지만,

나는 그때 그 이바구꾼의 구수한 입담을 이날 이때껏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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