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27편
안부자일행이 돼지우리같은 목책안에 갇히자 곧이어 날이 저물었다.
가을이라 해가 떨어지자마자 으슬으슬 한기가 몰려오는데 가는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배는 고파 죽겠는데 어떻게 해결해줄 기미가 보이질않았다.
문만 굳게 닫혀있을 뿐 지키는 군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을 부수고 나갈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추위와 배고품에 오돌오돌 떨다보니 어느새 해시(9시)가 넘어 있었다.
이것들이 사람을 굶겨죽일 모양이네. 따듯한 물이라도 한모금 얻어먹었으면 좋으련만.
그때 목책문이 열리며 삶은 감자가 한바가지 들어왔다.
한사람 앞에 딱 한개씩 돌아가는 양이었다. 그래도 호위꾼들은 그중에서 제일 커보이는것으로 골라 주인에게 바쳤다.
안호정도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주는 감자를 꾸역꾸역 목구멍에 밀어넣었다.
물은 말통으로 가득 들여보내 충분히 마실 수 있었다.
잠시 후 안호정은 장수의 군막에 불려갔다.
장수 앞에 무릎을 꿇린채 엎드려 취조를 받았다.
내가 이래도 풍기고을에서는 알아주는 부자요.
풍기군수와도 막역한 사이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십시오.
흠. 풍기군수와 막역한 사이라.
이거 일이 참 묘하게 돌아가는데. 풍기군수도 이번반역에 가담했단 말인가?
그럴리가 있겠습니까요.
소인은 병을 고치러 계룡산엘 다녀오는 길입니다.
그럼새재 위에서 누굴 만났느냐?
안호정은 새재 꼭대기에서 있었던 일을 세세히 일러바쳤다.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우두머리의 모습도 생각나는대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그자가 너희들을 순순히 내려보내주었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느냐.
한통속이 아니라면 그럴리가 없지않느냐?
그자의 이름이 허봉선이라고 했고 내가 계룡산 유구촌에서 치료받은 의윈의 이름이 허의원이라고 하니 두말하지않고 풀어 주었습니다.
모두 이백 명이라고 했느냐?
네 그정도는 되어 보였습니다
음,오합지졸이군.
어쨌는 오늘 밤은 여기서 유해야 할것같소. 내일 아침일찍 올라가서 놈들을 소탕한 다음에 처분을 내릴것이요ㅡ
※ 명의 28편 ※
다음날 아침 안부자 일행이 쪽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사위가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그도 그럴것이 주흘문을 지키던 장수는 날이 밝기도 전에 새재 위에 있는 역도들을 급습하기 위해 출동읕 했다.
목책을 지키는 병사 둘을 남겨놓은 채로 모두 총출동을 한것이다.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한것은 토벌군사들이 새재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은 것이었다.
안호정이 만났던 흑포장군 허봉선이라는 자는 꾀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일부러 안부자를 곱게 내려보낸 뒤 밀탐꾼을 뒤따라 내려보낸것이었다.
안부자 일행이 모두 체포되는 상황을 보고받은 허봉선은 급하게 새재를 버리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북쪽으로 이동해 버렸다.
텅빈 새재꼭대기에 오른 토벌대장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다시 주흘문으로 철수한 대장은 안부자 일행에게 분풀이를 했다.
모두 전신이 으스러지도록 몽둥이 찜질을 당했다.
안부자도 예외가 없었다.
부잣집아들로 태어나 이런 수모는 난생처음이었다.
그런 수모도 매타작으르 끝이 아니었다.
이놈들이 바로 우리가 잡으려던 역도들이 분명하다.
단단하게 묵어서 한양 으로 압송한다
안호정에겐 산 넘어 태산이었다.
한순간에 자신은 역모의 주동자가 되어버린것이었다.
어떻게든 풍기군수에게 구원을 요청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