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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밭 나들이

엽기 조선왕조 실록(58,59,60편)

작성자창원흑표곽순태|작성시간26.06.17|조회수60 목록 댓글 0

엽기 조선왕조 실록(58편)

왕자들은 누구랑 놀았을까.

조선시대 세자나 대군은 거의 왕 다음으로 존귀한 존재로 대우받았던
인물 들이다.

절대왕조 국가에서 왕의 적장자들이니 ‘귀하신 몸’으로 대우받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귀하신 몸이라도 놀기는 놀았을 것 아닌가.

궁궐 안이니 또래 친구들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귀하디 귀한 왕자를 궁 밖으로 내보냈을 리도 없었을터.

그렇다고,그 당시에 유치원이나 놀이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말이다.

조선시대 왕자들은 누구랑 놀았을까?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왕자의 친구들이다.

어이구,이눔자식 누굴 닮아 이렇게 똘똘하게 생겼냐 역시.씨 도둑질은 못한다니까.

전하,전하 유전자의 승리이 옵니다. 하늘이 조선에 복을 내렸나 보옵니다. 그럼, 그럼, 내 유전자가 어디 보통 유전자이더냐.

이래봬도 유전자의 삑사리라 불리는 연산군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게 바로 나라니까.

중종반정으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왕답게 소심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래도 원자
(元子 : 아직 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왕의 맏아들) 를 낳고 보니원자만은 제대로 키워 연산군 같은 유전자의 삑사리를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어이 네들, 딴 건 모르겠고…네들도 겪어봐서 알지.
왕 하나 찐따 같은 놈 세워 놓으니까 나라가 개판 2분 전으로 돌아갔잖아.

물론 내가 워낙 괜찮은 놈이라 내 유전자는 괜찮겠지만, 이게 또 유전자 하나만 믿고 왕 시킬 순 없잖아.

네들이 알아서 우리 원자를 위한 커리큘럼을 짜봐라. 이게 내 새끼 잘되자고 하는 것도 쬐끔 있지만, 크게 보면 다 나라를 위한 일이야.

다들 언더스탠드 했냐.
예~전하.그랬던 것이다.
중종 시절, 반정에 성공한 혁명세력(훈구파)과 이후 중종이 끌어들인 개혁세력 (조광조)들이 한마음으로 주장한 한 가지가,왕세자 교육 잘못했다간 나라 절딴난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연산군이 아니었던가.해서 조정은 일치단결해 원자의 교육방법을 연구하게 되는데, 조선시대 왕세자 교육법의 완결판이 바로 이때 나오게 된다.

자, 문제는 애를 가르치는 건 가능했지만, 애랑 놀아주는 건 신하들이라도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요즘은 IQ로 먹고 사는 세상이 아니에요. 요즘 시대의 대세는 EQ예요 EQ!
이거 참 아무리 머리 좋아도, 싸가지가 없으면.요즘 초딩들 여름방학이라서 인터넷 폐인들이 얼마나걱정합니까.

요즘 초딩이 어디 애입니까
이것들 그냥 확! 어이, 이조판서 너무 오바하는 거 아닙니까

혹시 초딩이 이조판서 싸이에 와서 악플이라도 달았습니까.
그 그걸 어떻게 알았소? 내 이눔자식 IP를 추적해서 확.중신들의 이런 갑론을박을 듣던 조광조, 희대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게 되는데.

차라리 원자한테 친구를 붙여 주는 건 어떻습니까.친구.장동건 말이오.

걔 개런티가 꽤 비싼 걸로아는데. 이조판서…마이 무따 아이가,
그만 짜지라.왜 나만 갖고 그래.장난들 고만하고 좀 들어들 보슈.
연산군 그노마가 깽판치고 개스럽게 지낸 결정적인 이유는 어렸을 때 사가에서 질 나쁜 놈들이랑 어울려서 애가 일진으로 빠진 거요

그 친구를 보면, 그놈을 안다고 하는데, 아예 범생이를 데려다가 같이
놀게 하면, 애도 범생이로 자라지 않겠냐는 거지.그리고 노는 것도 교육이야.애들이랑 어울리고 놀다보면 협동심이나, 준법정신, 왕따.는 아니고, 그래 배려라는 것도 배우고, 여하튼 좋은 거야. 안그래.어이어이, 좀 진정해봐.

다 좋은데 원자랑 놀만한 친구를 어디서 구하냐고, 원자 나이가 이제 두살인데. 궁궐 안에 두살 난 애가 어딨어? 그렇다고 원자를 궁 밖으로 내보내서 유치원에 보낼 거야. 놀이방에 보낼 거야.안되면 되게 하라!

대신들 중에서 좀 똘똘한 놈 아들놈들을 3명 뽑는 거야. 그래서 놀게 하면 되잖아.음 대신들 아들 뽑는건 이해하겠는데, 왜 3명씩이나 뽑냐 1명이나 2명이면 되지 않냐.

일단 2명은 돼야지, 1명만 하면, 원자의 친구관계가 너무 좁아지고, 적어도 2명은 돼야 애들이 원자랑 교대로 놀지 그리고 나머지 한명은 비번으로 해서 대기하는 거야.

2명 놀고,1명 쉬고 한마디로 밀어내기식 근무란 소리지. 어때 내 아이디어.여기가 GOP냐 밀어내기 근무하게?

음…그래도 참신해, 좋긴 한데 그게 애들 데리고 궁궐 왔다갔다 하는 걸 대신들이 좋아할까.뭐 일단 교통비조로 얼마씩 줘야지. 그리고 왕 아들이랑 친하게 지내는거, 이거 상당한 메리트 아니냐.

이렇게 해서 왕자의 친구인 배동(陪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공부만 계속하면 애가 세상 물정 모르고, 또래문화를 익히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머리를 쥐어짜내 탄생시킨 배동은 친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어린 관원’
같은 대우를 받았는데.

이들은 한달에 두번 정도 원자한테 가서 같이 놀아주고 교통비조로 돈을 받았던것이다.

호조에서 이들 배동들에게 돈을
건네준 기록이 있는 걸 보면, 꽤 진지하게 배동을 바라봤던 것 같다.

중종 이후의 조선 왕조 실록을 살펴보면 배동의 숫자는 날로 늘어나 정조 때에는 15명에 이르게 된다.

노는 것도 공부의 한 방편이라 생각한 선조들의 선견지명이 돋보였던 제도라 할 수 있겠다.

무조건 공부 공부 하는 우리네 부모들이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라 할 수 있겠다.

엽기 조선왕조 실록(59편)

술 먹을줄 몰라서 세자가 되지못한 왕자.

태종의 맏아들이자, 한때 세자였던 양녕대군과 양녕대군의 동생이자
훗날 세종대왕이 되신 충녕대군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에 대한 상식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에피소드다

이미 몇 편의 사극을 통해 양녕대군과 충녕대군에 관한 이야기가 소개
되었고, 이런 사극들을 통해 양녕대군이 보위를 양보했다는 주장에서
부터, 원래 성질이 더럽고 공부를 못해서 충녕에게 왕위를 빼앗겼다는 얘기까지 다양한 주장이 나오는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양녕이 충녕에게 왕위를 양보한 게 아니라, 빼앗긴 것이다(실제로 충녕대군이 양녕에게
도전한 모습이 보인다)갑자기 양녕과 충녕대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것은 역사의 패자와 승자로 갈리어진 이 두명 말고도 또 다른 한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왜 저만 가지고 그럽니까? 부친 께서도
후궁들 여럿 두고는 이 여자 저 여자랑 노는데.제가 노는 건 왜 그렇게
혼을 내는 겁니까.

그 아부지에 그 아들 아닙니까.아부지가 딴 여자랑 노는 건 왕실을 번창 시키는 일이고, 제가 딴 여자랑 노는 건
외도입니까.

엎어치나 메치나 노는 건 똑같은데, 이렇게 차별하는 게 어디 있슴까.

이눔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날리는 거야.
양녕대군이 태종에게 올린 항의문이다.

곽선의 첩이었던 어리를 빼앗아 와서 희대의 스캔들을 일으켰던 양녕은 근신하라는 태종의 명을 어기고.다시 어리를 만나더니 급기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런 항의문을 태종에게 날린 것이었다.

하.이 자식 이거 순 꼴통 아냐.사람이면, 그만큼 하지 말라고 말했으면 알아듣는 척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이 자식을 그냥 확 짤라버려.
이 결정적 항의문에 태종은 양녕을 포기하게 되는데 충녕대군그놈이 참 똘똘해.머리도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결정적으로 세자로서의 교육을 받지 않아서,

이거저거 가리지 않고 공부를 하는 통에 상식도 많고 애가 침착해.이 당시 태종과 조정의 마음은 충녕대군 에게로 모아지고 있었다.

일단 심성이 착하고, 공부도 잘했고, 결정적으로 왕자로서의 품위를 잘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충녕 에게는 형이 두명 있었다는 점이다. 폐세자가 된 양녕대군 이야 지나친다 하더라도 충녕의 바로 위에 효령대군이 있었던 것.

이걸 어쩌냐 적자승계의 원칙대로 첫째가 안되면 그 다음 차수인 둘째에게 넘겨야 하는데.

전하.그냥 무시하고 셋째한테 보위를 넘기시죠.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충녕대군이 세자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야! 이 자식아, 군대에도 군번이 있어! 충녕이 똘똘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효령이 바로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그럼 일단 효령에게
왕세자를 넘긴 다음에, 다시 양녕대군처럼 폐세자를 시키는 건 어떻
습니까.

야~그거 참 굿아이디어라고 내가 말할 거 같냐.이게 지 자식 아니라고, 왕자들을 마루타로 만들려고 그러네.

폐세자 한번 할 때마다 목숨이 간당간당 하는데, 나보고 둘째도 죽이라고 떠밀고 있냐.

이 자식 이거 완전히 개념을 상실해 버렸잖아.그랬다.폐세자.한때 왕이 될 뻔했다가 미끄러진 사람에 대해서 왕들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폐세자라도 한때 왕이 될 뻔한 존재에 대해서 왕이나 조정대신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해서 나온 방법이, ‘일단 죽이고 본다’는 것이었다.

야야, 과격한 방법 말고 좀 부드러운 방법 없냐? 걔도 왕자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말야.

효령대군이 세자로서의 자질이 없다 뭐 그렇게 둘러대는 건 어떻습니까.
그게 좋긴 좋은데, 애가 잘한 것도 없지만, 못한 것도 없거든.

딱 공무원 스타일이야복지부동 (伏地不動)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내가 뭔 말을 하면, 그냥 씩 웃고는 아무 말이 없어.

뭔 말을 해야지 무슨 꼬투리를 잡든가 하겠는데 도무지 말이 없으니까.

양녕대군 처럼 술을 마시진 않습니까? 술을 잔뜩 먹인 다음에 술꼬장이 심해서 왕세자로선 부적합하다고 몰아간다면.

이 녀석이 또 술은 입에도 안대요. 술이라도 마시면, 애가 술꼬장이 심해서 왕세자로선 부적합 하다고 몰아가면 좋을 텐데.

전하, 아예 역발상으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역발상.술을 못 마셔서 왕으로서는 자격미달 이라고요.

원래 우리나라
에서 남자가 일을 하려면 술 정도는 마셔야 하잖습니까.
영업사원들 능력을 검증할 때 1순위가 주량 아닙니까.왕도 하다보면 영업 뛸 때가 많은데, 술 못 마시는 건 결정적 약점이라고.그렇게 몰아가면 무난하지
않을까요.

야, 그런데 그거 좀 억지스럽지 않냐. 피바람 부는 것보다는 나을 거 같은데요.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태종의 효령 불가론인데,저번에 중국 사신들 왔을 때 보니까 충녕은 풍채도 좋고, 말도 잘하고,
결정적으로 술도 좀 마셨거든.

뭐, 술이란 게 백해무익한 것이지만,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데 호스트가 돼서 술 한잔 못하면,이게 또 말이 안되거덩. 중국 사신 분위기 좀 맞춰 주려면 같이 보조도 맞춰주고 탬버린도 흔들어 줘야 하는 것이 왕된 도리가 아니겠냐.

그렇다고 충녕이 죽을 둥 살둥 퍼마시고 나서 개가 됐냐면 그건 또 아니거든.

애가 미리미리 컨디션도 챙겨 먹고, 겔포스도 빨면서 지 몸 챙길 건 다
챙기고 나서 적당히 마시는 ‘센스’를 보여주었단 말이지.

그런데 효령은 어쨌냐 하면, 애가 술을 한 잔도 입에 못 대는 거야. 비록 술이 나쁜 건 알겠지만.일국의 왕이 될 사람이 술을 못 마신다는 거…이거 문제 있거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효령을 제끼고, 충녕을 왕세자로 정해야겠다.

효령이 술만 좀 마실 줄 알았으면 내가 효령을 왕세자로 뽑았을텐데, 아쉽다.
그런데 어쩌냐.술을 못 마시는데.이렇게 해서 충녕은 ‘술을 마실 줄 안다’ 는 이유로 왕세자로 뽑혔고, 조선조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었다.

술을 못 마신다는 억지스러운 핑계로 왕세자 자리에서 떨어져 나간 효령으로 보면 억울한 이야기겠지만.효령대군이 술을 못 마셨기 때문에 조선은 최고의 성군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엽기 조선왕조 실록(60편)

중국에서 우리나라 사신을 꺼렸던 이유.

흔히들 조선의 외교정책을 말할 때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 하여, 대국인 중국을 지성으로 섬기고.이웃들과의 관계는 서로 싸움나지 않을 정도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아니꼽고 더러운 일이라 생각되지만,

조선 초기에는 중국으로 사신을 한번이라도 더 보내려고 갖은 핑계를 다 댔으니,

지극으로 큰 나라 중국을 섬기겠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다른 그 무엇이 있었으니.이번 이야기는 사신들에 관한 이야기다.

에, 울리 사람 조선 사람들의 아름다운 마음 알았다 해.쪼만한 조선이 큰나라 명나라를 섬기는 모습 정말 아름답다 해.

벗뜨, 쪼만한 나라가 너무 예의 차린다고 울리 나라 많이 찾아오면, 금방 나라 살림 거덜난다 해.

마음 같아선 다달이 입조
(入朝 : 황제를 알현하다)해 네내 나라 사정도 듣고, 너네 왕 안부도 묻고 싶지만, 내가 원래 통이 크다 해.

나 좋다고 계속 너네들 불렀다간 너네 나라 거덜나니까, 1년에 딱 3번만 울리 나라 찾아와 인사하라 해.

명나라 황제 조선사신을 보고 크게 인심 쓰듯이 1년에 3번만 명나라를 오라고 말을 하는데,아니, 황제 폐하! 그게 무슨 개념 가출시켜 버리는 토킹입니까.

황제폐하를 사모하는 우리 조선의 마음을 어찌 그리 무시하십니까.
어떻게 황제폐하를 1년에 3번밖에 못 본다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못합니다!

아니 우리 조선도 그런 짓은 못합니다!에.울리 사람이 너네 나라 재정을 걱정해서 그렇다 해.재정, 그까이 거 안되면 유류세 200% 올리고, 담배에 건강부담금이라고 붙이면 됩니다.

나라 살림이 거덜이 나든 IMF 구제금융을 받든, 황제폐하를 알현하겠다는 우리의 아리따운 마음을 버릴 수는 없슴다!

안된다 해! 너네는 무조건 1년에 3번만 와야 한다 해.그러니까…정월에 세배하러 오는 하정사(賀正使)내 버스데이 때 오는 성절사, 우리 태자 버스데이 때 오는 천추사 이렇게 3번만 보내라 해.앞으로 조선은 일년삼사.(一年三使 : 1년에 3번만 사절을 보내라)만 하라 해!

황제 폐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사신은 그렇게 황제의 칙명을 받아들고 조선 조정으로 오게 되었는데,

야야, 그게 무슨 토킹 어바웃이야 1년에 3번만 오라고 그런게 어딨어.
그게.황제가 좀 삐졌나 봅니다.
너무 많이 온다고. 하긴 우리가 좀 많이 갔습니까.

이거 참…그럼 우린 어쩌라고.일단 황제 말대로 했다간 대중국 교역에서 무역적자를 보는 건 확실 합니다.

야! 알면 대책을 내놓으라니까!
네들은 머리를 액세서리로 달고 다니냐.문제가 있으면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지! 이것들이 그동안 가만히 있었더니 누굴 가마니로 알고 있나.

전하.솔직히 우리가 너무하긴 했습니다.
뭐가 너무해 없는 놈이 있는 놈 거 좀 먹겠다는데!
아니, 그래도 일년에 열댓번 이상씩 왔다갔다 하는 건.좀.아무리 통큰 황제라지만, 그 정도면 삐질 만합니다.

그랬다. 조선 초기 명나라와 조선의 무역은 소위 말하는 ‘조공무역’황제에게 조공을 한다 인사를 하러 간다 하면서 우르르 명나라로 가서는 교역을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나라의 선진문물과 기술을 빼오는 것이었다.

조공이란 것이 조선의 물건을 공짜로 황제에게 진상하는 ‘세금’ 같은 것이지만, 여기에도 비밀이 하나 있었으니.

쪼메난 조선에서 황제를 생각한다고 물건 보내왔다 해.
거기서 여기까지 오는 것도 만만찮은데,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오나 해

너네 마음만 받아도 족하다 해.
폐하, 그렇게 섭한 말씀이 어딨슴까 그래도 없는 살림 쪼개서 가져온 건데 가져온 사람 성의를 봐서라도 좀 받아주세요.

알았다 해 그래도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어야 하는데, 내가 갈 때 차비라도 하라고 용돈 좀 줄테니 챙겨가라 해.황은이 망극하옵니다!이렇게 된 것이었다.

조선이 특산품이랍시고, 모시나 부채, 활, 인삼 같은걸 보내고 반대급부로 금이나 그 당시 최고의 기술이 담겨져 있는 책이나 각종 선진문물을 빼왔던 것이었다.

조선으로서는 120% 남는 장사였다. 황제 체면에 조공국이 그 먼길을 찾아왔는데, 빈손으로 보낼 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에서 조선은,황제폐하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찾아왔사옵니다!

이러면서 북경을 옆집 마실 다니듯이 뻔질나게 드나든 것이었다.
이러니 황제로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아무 말 하지 못하다 일년삼사(一年三使)란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전하, 우리가 언제 황제 말 들었습니까.
까짓 거 핑곗거리 계속 만들어 뻔질나게 들락날락거리면 황제가 어쩌겠습니까.

삐지면 어쩌지.조선이 원래 동방예의지국이라, 예의를 좀 심하게 챙긴다고 말하면 되잖습니까.
그까이 거 예의 챙기겠다는데 황제가 뭐라 하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조선은 계품사(計稟使)주문사(奏聞使) 사은사(謝恩使) 진표사(進表使) 압마사(押馬使) 절일사(節日使) 사은진표사(謝恩進表使) 진전사(進箋使) 재진관(齎進官) 마적도자문재진관
(馬籍都咨文齎進官) 관복사은사(冠服謝恩使) 등등 각종 핑계를 대고 뻔질나게 명나라를 찾아갔던 것이다.

1년에 3번만 오라는 황제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그야말로 문지방이 닳도록 명나라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오지 말라고 말리는 황제와 오지 말라는데도 뻔질나게 명나라를 방문했던 조선.

그 뒤에는 저마다의 계산이 다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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