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의 삐딱한 이야기들
저는 손오공입니다.
어쩌다 삼장이라는 스님을 따라 서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삼장이라는 앞뒤 꽁꽁 막힌 스님과 동행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사연들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옥황상제가 살고 있는 천궁을 어지럽힌 죄로 오행산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뜻 밖에 남해에 살고 있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행산에서 꺼내줄 테니 삼장이라는 스님을 따라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오행산에서 꺼내준다는 말에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삼장이라는 스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니 여기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삼장을 기다리기도 지겨워 지난날들을 돌이켜 봅니다.
저는 부모가 없습니다. 돌에서 태어났으니 천지가 저의 부모나 마찬가지입니다. 알고 보니 저만 돌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라는 사람도 흙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흙에다 물을 조금 섞어 따뜻하게 한 다음 바람 기운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돌이 잘게 부서지면 흙이 되는 것이니 돌에서 태어난 저나 흙으로 빚어진 사람들이나 재료는 같은 셈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란 원숭이 같다고 합디다. 그러고 보니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설치고 다니는 저나 비슷하네요. 저도 한 때는 옥황상제의 말을 돌본 적이 있는데 그때 저는 필마온이라 불렸습니다. 원숭이가 말을 기르는 것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심원의마’라는 말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손오공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을 많이 합디다. 이 손오공이 부처님과 내기를 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황송하게도 옥황상제님께 제천대성이라는 관직을 달라고 해서 억지로 제천대성이 된 적이 있습니다. 권리도 녹봉도 없이 그냥 이름뿐인 제천대성이라 딱히 해야 할 일도 없어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하늘에 살고 있는 여러 신선들과 친구 삼는 것이 일이라면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왕모가 요지연에서 큰 잔치를 베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으레 저도 초대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만 쏙 빼놓고 자기들끼리 즐긴다고 합디다. 저는 홧김에 다른 신선들이 오기 전에 먼저 잔치 자리에 가서 술과 음식을 먹어버렸습니다. 남은 술과 안주를 들고 내 고향인 화과산으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이를 안 옥황상제가 십만 천병을 동원해 저를 체포하러 왔습니다. 그렇다고 순순히 잡혀갈 저가 아니지요. 주 무기인 여의봉을 들고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늘나라에는 장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제 상대가 될 만한 장수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저를 잡지 못하자 옥황상제는 제 뒷조사를 했습니다. 제가 수보리 존자의 제자라는 것을 안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십대 제자 중의 한 분이지요. 옥황상제는 부처님께 저를 잡아 달라고 부탁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저를 보더니 손을 펴면서 손바닥을 빠져 나가보라고 합디다. 저는 당돌하게 부처님께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제가 이기면 옥황상제를 대신해 하늘나라를 제가 다스리겠다고 했지요. 그런 저를 보고 부처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우선 손바닥이나 빠져 나가보라고 하십니다. 저에겐 너무 간단한 일이라 전용차인 근두운을 타고 우주 끝까지 갔다 왔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게 멀리 갔다 왔는데도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벌로 오행산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오행산이란 오음산이라고도 합니다. 오음이란 색, 수, 상, 행, 식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오음이란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이지요. 천상이나 천하에 내가 가장 뛰어난 줄 착각하는 사이에 저도 모르게 오행산에 갇히게 된 것이지요. 저만 오행산에 갇힌 줄 알았더니 세상에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오행산에 갇혀 있더군요.
저 멀리 흰 말을 타고 오는 스님이 보입니다. 아마 관세음보살님께서 말씀하신 삼장 스님인가 봅니다. 드디어 저를 구해 줄 삼장께서 오신 것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그분의 제자가 돼 서천으로 함께 가게 됐습니다.
사부와 함께 서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유백흠이란 사냥꾼을 만났습니다. 날이 저물어 유백흠의 집에서 하루를 묵고 출발하려는데 유백흠이 국경까지 바래다주었습니다. 유백흠의 말이 앞에 보이는 높은 산이 양계산이라고 합니다. 당나라와 달탄의 국경이니 자기는 더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양계산을 넘으면 당나라가 아닌 것이지요.
울창한 숲속을 헤매며 겨우 길을 찾아가는데 난데없이 산적 여섯이 나와 짐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산적 주제에 자기 소개하는 꼴이 가관입니다. 그놈들이 뭐라 하는지 한 번 들어 볼까요?
“나는 눈으로 보고 기쁜 일이면 어디까지든 달려가는 안간희(眼看喜)야.”
“나는 좋은 소리엔 솔깃하지만 잔소리 들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이청노(耳廳怒)지.”
“나는 비후애(鼻嗅愛)야. 냄새로 모든 것을 알 수 있어. 넌 왜 향수가 잘 팔리는지 모를 거야.”
“이 몸은 언제나 맛있는 것만 생각하는 설상사(舌嘗思)야. 맛을 알면 멋은 저절로 생기는 법이야. 그러니깐 일단 맛을 느껴야 돼.”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의견욕(意見慾)이다. 인간의 생각이란 욕심 덩어리지. 뭐든 봤다 하면 욕심내는 것이 인간들 아니냐?”
“나는 신본우(身本憂)다. 인간의 몸이란 근심의 뿌리야. 얼짱 몸짱 되느라 얼마나 많은 애를 쓰니? 그렇게 공들여도 잠깐 뿐이야. 곧 시들고 말지. 세상에 이만한 근심덩어리는 어디가도 찾을 수 없어.”
저런 놈들을 그대로 두고 서쪽으로 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여의봉 한 번 휘두르니 여섯 명이 한꺼번에 나자빠집니다. 사부의 얼굴이 파래집니다. 아무리 산적이지만 죽이는 것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자비의 가르침인 불경을 가지러 가는 길에 살생이란 있을 수 없지요. 그러나 그놈들을 살려두면 서쪽을 가는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섯 놈들은 평소엔 친하게 지내야하지만 서쪽으로 가는 길엔 장애물일 뿐입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안이비설신의 여섯 친구가 없는 곳인 무의식 세계인데 저 친구들이 있다면 그곳에는 들어설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사부님은 영 언짢은 기색입니다. 도둑이라면 관가에 넘기면 될 텐데 무고한 살생을 했다고 저를 나무랐습니다. 저도 삐쳤습니다. 서천이고 뭐고 그만 두고 싶었습니다. 전 원래 잔소리라면 딱 질색이거든요. 그래서 그 자리를 피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삐쳐서 뛰쳐나오고 나니 갈 곳도 없습니다. 좀 부끄럽긴 했지만 사부가 계시는 곳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새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노파로 변장한 관세음보살께서 뭔가 일을 꾸민 것입니다. 사부님께 되돌아 와보니 사부님은 예쁜 모자를 들고 있습디다. 한 번 써 봐도 되느냐니까 써 보라고 합디다. 그 모자가 저를 꼼짝 못하게 하는 긴고쇄였습니다. 사부님께서 긴고주를 외면 제 머리에 씌워진 긴고쇄가 점점 조여져 저의 머리는 부서질 듯 아픕니다. 저를 상대할 물건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긴고주 만은 당할 수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께서 저의 고약한 성질머리를 다스리라고 사부님께 긴고쇄와 함께 긴고주를 알려 준 것이지요. 그놈의 긴고주를 생각하면 끔찍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 준 것이 긴고주입니다. 사람마다 머리에 긴고쇄가 얹혀 있지만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삶 자체가 긴고쇄며 보고 들리는 것 모두가 긴고주입니다. 삶이 힘든 사람은 머리에 있는 긴고쇄를 한 번 만져 보세요.
사부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빈 다음 다시 서쪽을 향해 발길을 옮겼습니다.
걷고 걸어 고로장에 이르렀습니다. 동에 어귀에 들어서니 청년 하나가 어디론가 부지런히 가고 있습니다. 동네 사정을 알아보려고 그 청년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청년의 말이 고로장에 돼지 요괴가 있는데 그 요괴를 쫓아낼 퇴마사를 구하러 간다고 합니다. 요괴 퇴치에는 저를 따를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고로장 안으로 들어가 주인 고 씨를 만나 요괴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어느 날 저의 집에 잘 생긴 청년이 찾아 왔습니다. 힘도 세고 일도 잘해 데릴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사위의 얼굴이 조금씩 변하더니 나중엔 아주 돼지 형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돼지답게 얼마나 먹어대는지 일 년이 지나자 자기 몫으로 받은 재산을 거덜 냅디다. 꼴에 요괴인지라 안개 타고 바람까지 몰고 다니니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려 집 밖에 나가기도 부끄럽습니다. 스님, 요괴를 물리쳐 주십시오. 그러시면 서천으로 가시는 길에 쓸 여비를 충분히 드리겠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습니다. 그놈 요괴하고 한 바탕 놀았지요. 잡아 놓고 보니 통 모르는 놈도 아닙디다. 그놈도 저를 잘 알고 있고요. 그놈은 원래 하늘에 살고 있었어요. 물을 잘 알아 옥황상제께서 수군 총독인 천봉원수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놈의 천성이 여색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요. 연회에서 과음해 예쁜 궁녀에게 동침하자며 졸라대다 곤장 이천 대를 맞고 하계로 쫓겨난 놈입니다. 그때 하필 임신한 돼지의 태로 들어갔기 때문에 돼지 형상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저를 보고 왜 여기 왔느냐고 묻기에 사부를 모시고 서천으로 불경을 가지러 간다고 했지요. 그놈은 불경 가지러 간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며 사부님께 데려다 달라고 합니다.
사부님을 만난 돼지 요괴는 무릎을 꿇고 사부님을 오래 기다렸다고 합니다. 이미 관세음보살님과의 약속이 있었다며 오능이라는 법명까지 받았답니다. 사부님은 그놈에게 팔계라는 별명까지 지어주시며 함께 서쪽으로 가게 됐습니다. 저도 동생이 하나 생겨 흐뭇합니다. 그런데 그놈에게는 묘한 버릇이 있습니다. 틈만 나면 잠이나 자려고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거나 입으로 가져갑니다. 꼴에 여자만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 팔계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을 보면 그놈의 버릇을 아셨나 봅니다.
저는 앞장서서 말을 끌며 길을 안내하고 동생은 짐을 지고 서쪽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이런저런 일 겪으며 유사하에 닿았습니다. 유사하는 강폭이 팔백리나 됩니다. 가벼운 거위 깃털 하나도 뜨지 못하고 갈꽃도 가라앉는다는 유사하입니다. 여기서 충실한 동생 오정을 만납니다. 오정은 팔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사오정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정만큼 성실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도 없습니다. 오정은 옥황상제의 수레를 호위하는 권렴대장이었습니다. 반도대회에서 실수로 서왕모가 아끼는 옥유리잔을 깬 죄로 하계에 귀양살이를 하다가 관세음보살님의 권유로 서쪽으로 함께 가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가 만나야 할 사람은 다 만났습니다. 사부님, 저와 두 동생 팔계와 오정, 짐을 싣고 가는 백마, 이렇게 해서 일행은 모두 다섯입니다. 길은 멀고 요괴는 득실거리니 앞날이 험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험하다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속 만큼 험하기야 하겠습니까?
크고 작은 사건을 겪으며 서쪽으로 가다가 백호령을 넘게 됐습니다. 산이 높고 험해 사부님은 두려워합니다. 요괴가 나올 것 같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줍니다. 제가 봐도 뭔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그날 드디어 큰 사고가 났습니다. 제가 파문을 당한 날입니다. 남우세스러운 일이라 이야기하기도 부끄럽습니다.
그날따라 사부님은 어린애 마냥 음식 투정을 합니다. 깊은 산 중에 인가가 없어 밥을 탁발할 수 없다고 해도 막무가냅니다. 팔계까지 나서서 배가 고파 더 걸을 수 없다고 투덜댑니다. 제가 잠시 하늘로 솟아 사방을 둘러보니 인가는 보이지 않아도 남쪽에 복숭아나무 숲이 보입니다. 복숭아라도 몇 개 따서 허기를 면하려고 그쪽으로 갔습니다. 제가 타고 다니는 근두운이 휙 지나가다 그 산에 잠자고 있던 요괴를 깨웠습니다. 요괴가 동굴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다 사부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사부님은 서방세계에 이름이 꽤 알려져 있습니다. 열 겁을 수행한 금선자의 화신이 우리 사부님입니다. 요괴들사이에는 사부님의 살을 한 점이라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그래서 요괴들은 우리 일행이 지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백호령의 요괴 백골정도 사부님을 기다리다 횡재를 한 것입니다. 백골정이 사부님께 다가가 낚아채려고 하니 팔계와 오정이 지키고 있습니다. 팔계는 천봉원수였고 오정도 권렴대장을 지냈으니 위엄이 남아있어 요괴가 감당하기에는 벅찹니다. 그래서 꾀를 내 시골 아낙으로 둔갑해 사부님께 접근합니다. 안 그래도 여자만 보면 치근거리는 팔계는 깊은 산 속에서 여자를 보자 눈이 번쩍합니다. 싱글벙글하면서 아낙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습니다.
아낙은 산 넘어 밭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점심을 가지고 가는데 마침 스님들을 뵈니 점심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합니다. 팔계는 공양을 받자고 하는데 사부님은 사양합니다. 제가 복숭아를 들고 돌아오니 공양을 놓고 팔계와 사부님이 입씨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눈에 요괴를 알아봤습니다. 사부님께 절대로 음식을 드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자 팔계는 입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립니다. 저는 급한 김에 여의봉으로 요괴를 단숨에 때려죽였습니다. 요괴도 요괴인지라 해시법으로 달아나버리고 땅에는 해골만 한 무더기 있습니다. 사부님은 저를 보고 살생을 했다며 긴고주를 외려고 합니다. 저는 사부님께 음식을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음식은 지렁이, 굼벵이, 두꺼비들입니다. 사부님은 정말 요괴인 줄 아십니다. 그런데 팔계가 말썽입니다. 눈앞에서 맛있는 음식이 사라지자 심통을 부립니다. 사부님께 제가 재주를 부려 시체를 해골로 만들고 음식도 바꾸었다고 합니다. 제가 다시는 살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사부님은 용서했습니다. 저 때문에 사부님을 놓친 요괴는 노파로 둔갑해 다시 나타납니다. 딸을 찾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괴를 단숨에 알아보고 또 때려죽였습니다. 분이 덜 풀린 팔계는 먼저 죽은 딸의 어머니라고 하며 사부님께 긴고주를 외라고 부추깁니다. 사부님도 연거푸 살생을 했다며 사정없이 긴고주를 욉니다. 저는 고통에 못 이겨 다시는 살생을 않겠다고 다짐하고 겨우 용서를 받았습니다. 얼마를 더 가니 이번에는 노인이 염불을 하며 나타납니다. 사부님은 이런 산골에 신심 있는 불자가 있다고 감동합니다. 요괴는 끈질깁니다. 아버지로 둔갑해 부인과 딸을 찾으러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또 요괴를 죽이면 사부님이 긴고주를 외겠지만 요괴를 없애야 후환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영감도 단숨에 때려 죽였습니다. 그러자 해골 한 무더기가 널브러져 있습니다. 바로 백골정인 것입니다. 그러자 사부님은 그만 넋을 놓고 주저앉습니다. 이번에는 긴고주 욀 것도 없이 바로 파문을 선언합니다. 살생을 일삼는 녀석이니 경전을 가져와본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저도 더 이상 말하기 싫었습니다. 돌아갈 테니 머리에 씌워진 긴고쇄를 풀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은 긴고쇄를 풀 줄 모른다며 난감해 합니다. 맹세코 다시는 긴고주를 외지 않겠으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화과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부하들 보기도 민망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오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사부님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하셨기 때문에 요괴를 알아보지 못하니 저를 보고 살생했다고 나무란 것도 이해가 갑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백골정이 있어 사람을 홀리고 있습니다. 욕망에 눈이 어두워 미인으로 보일 뿐입니다. 깨어나서 보면 백골 보다 더 무서운 백골정입니다. 옛말에 새 여자가 생기면 묵은 여자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고 합니다. 그토록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던 사람이 마음 한 번 돌아서는 순간 백골 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백골은 두고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백골정은 끝까지 따라오며 괴롭힙니다. 지혜의 눈 없이 애욕을 앞세우면 백골을 사랑하는 꼴이 되고 맙니다. 부처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무덤가에서 백골관을 권하셨는지 짐작이 갑니다.
예전처럼 화과산에서 즐거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느닷없이 팔계가 찾아왔습니다. 백호령에서 긴고주 외라고 부추기던 걸 생각하니 괘씸했지만 그래도 한 때는 동생이었기에 따뜻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팔계가 돌아가지도 않고 뭉그적거립니다. 무슨 꿍꿍이냐 싶어 바른대로 말하라고 하니 사부님이 저를 못 잊어 자꾸 찾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전하러 왔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사부님은 보상국에서 요괴에게 혼이 나고 있었습니다. 요괴 잡는 일이라면 저의 특기 아닙니까? 어렵사리 요괴를 물리치고 다시 서쪽으로 가는 길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서쪽으로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습니다. 지친 팔계가 얼마나 더 가야하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만 팔천 리도 넘어 아직 십분의 일도 못 왔어. 너나 오정 같으면 한 열흘 정도면 다녀 올 수 있어.”
“그럼 형은?”
“나 같으면 하루에 쉰 번을 다녀와도 아직 해가 남아있을 거야.”
듣고 있던 사부님도 한 마디 하십니다.
“그럼 나는 언제쯤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나?”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걷고, 새로 태어나서 또 늙을 때까지 걷고 이렇게 하기를 천 번 이상 되풀이해도 어렵습니다. 다만 사부님께서 정성이 있으시다면 찰나에 머리 돌리는 그곳이 바로 영산입니다.”
마음 한 번 돌리는 일은 죽는 일 보다 더 어렵습니다. 사부님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나서야 겨우 고개를 돌릴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 바로 영산인 것입니다.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뒤에서 비치는 영사기를 볼 수 없지요. 재미있는 영상이 계속되면 고개를 돌리기는 더 어렵지요. 현실에서 고개를 돌려 현실을 만드는 영사기를 보아야합니다.
몇 해를 더 걸어가다 지친 사부님께서 묻습니다.
“오공아, 서천이 왜 이리 머냐?”
“멀었습니다. 비유하면 아직 대문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팔계는 이렇게 넓은 집이 어디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어디를 가도 자기 집 안입니다. 대문 밖이 바로 서천입니다. 사부님께서도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이 손오공이 호위를 해야지요.
그간 겪은 일들이야 많지만 이제 사부님이 눈을 뜬 날의 이야기를 하렵니다. 걷고 걸어 서천 가까이 이르니 눈앞에 큰 강이 가로 놓여 있습니다. 저 강만 건너면 바로 목적지인 영축산입니다. 강은 넓고 물살은 거센데 배도 사공도 보이지 않고 긴 외나무다리만 있습니다. 가늘고 미끄러운 외나무다리를 보더니 도저히 건널 수 없다고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저쪽에(서) 어떤 사람이 노를 저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건네주겠다고 합니다. 고마운 마음에 배에 오르고 보니 배에는 바닥이 없습니다. 놀란 사부님은 두려워하며 그만 내리겠다고 합니다. 사공이 웃으며 노래를 부릅니다.
이 배는 하늘 땅 열리기 전부터 이름났었지.
풍랑이 일어도 흔들리지 않고 육진에도 물들지 않네.
만겁을 유유히 헤치고 나아간다.
모두들 건너기 어렵다고 하지만
여러 사람 이 배 타고 저쪽으로 건너간다.
사공이 배를 몰아 나아가니 상류에서 시체 하나가 떠내려 옵니다. 사부님은 벌써부터 벌벌 떨고 있습니다. 시체가 가까이 오자 살펴보니 사부님의 시체입니다. 놀란 사부님께 시체를 자세히 보라고 했더니 사부님은 그제야 긴 꿈에서 깨어납니다. 바로 이 순간 환골탈태를 합니다. 그 뒤로 세상 사람들은 사부님을 보고 자기 시체를 본 사나이라고 합니다.
바닥없는 배를 탔기 때문에 자기의 시체를 볼 수 있었지요. 배의 바닥은 나와 물과의 소통을 막는 장애물입니다. 밑바닥 없는 배를 타고 줄 없는 거문고를 희롱할 때 바로 영축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원래 설치고 다니기 좋아하는 저의 삐딱한 이야기니 마음에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또 삐딱한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