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수필문학 강좌

19세기 여성 작가들

작성자촌사람(이동민)|작성시간15.09.03|조회수530 목록 댓글 0

 

 19세기의 여성 작가들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작가는 거의 대부분이 중산층(부르주아지)이거나 몰락한 귀족 계급에서 나왔다. 남성작가는 옥스퍼드나 캠프리지를 다닌 사람이 많지만 대학을 다닌 여성작가는 없다.

19세기에 활동한 여성작가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마르크 앙글노에 의하면 1880년에 활동한 프랑스 작가 중에 여성작가는 약 4%를 차지하였다. 영국은 이보다는 조금 더 많았다. 집안이 파산한 귀족 계급의 인물로는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어머니 요한나 쇼펜하우어가 있다. 그녀는 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썼다. 그 외에도 소피 코탱, 패니 트롤렙 등이 돈 때문에 글을 썼고, 성공하였다. 마거릿 올리펀트도 남편이 죽고 나자 아이를 부양하고, 가정을 이끌어가기 위해서 글을 써서 성공한 작가이다. (소설을 125편을 썻다.) 죠지 얼리엇(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은 드물게 문단의 인정도 받았고, 돈도 번 성공한 작가이다. 지금도 그녀의 책은 출판되고 있다.


  여성작가는 내러티브에 남성보다는 더 친근하게 표현하는 재능이 있다. 성적인 문제, 가정의 문제 등을 다루는 데도 여성작가가 남성보다 더 적절하였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여성작가를 이류작가로 분류하였다. 살롯 브론테가 당시의 계관 시인이었던 로버트 사우디(지금은 살롯 브론테보다도 인지도 떨어진다.) 자문을 구하였더니 그의 대답은 이랬다. “여자가 문학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브론테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였지만 결국에 ‘제인 에어’를 출간하였다.


  죠지 얼리엇 같은 유명한 작가가 쓴 소설도 저질이라고 혹평을 받았다. 조르쥬 상드도 글쓰기 보다는 아이 낳는 일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하였다. 19세기는 여성이 소설가가 되기는 어려운 사회였다. 그러나 여성작가가 쓴 소설은 대중의 인기를 얻고, 성공한 작품이 많았다. 일반적으로 19세기의 작가는 필명을 많이 사용하였다. 여성작가들은 대부분이 남성의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였다. 남성작가가 필명을 여성의 이름으로 한 작가는 없었다.

 

  명작을 남긴 여성자가를 대강이나마 훑어 보자.

 

제인 오스틴(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메리 올스턴크래프트 셀리(프랑켄슈타인

조르쥬 상드(마의 늪)

살롯 브론테(제인 에어)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앤 브론테(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엘리자베스 개스켈(남과 북)

죠지 얼리엇(플로스 강변의 물방앗간, 애덤 비드)

루이자 메이 올콧(작은 아씨들)

비처 소토아(톰 아저씨의 모두막)

 

 19세기이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도 없었고, 직업도 없었으므로 논 픽션 분야에서도 배척 당하였다. 이전의 문학살롱을(살롱은 주로 여인이 주인이 되어서 관리하였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에 의하면 살롱 이야기가 잘 나온다.) 대신하여 ‘문단’이 나타났지만 문단에서도 여성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여성들은 남자의 이름으로 회고록을 남긴 사람도 있다. 러시아의 나데르다 두로바(1783-1866)는 러시아 군에 남자로 위장하여 9년 간 복무하면서 나폴레옹 전쟁을 치루었다. ‘ 기병대 아가씨, 러시아 장교의 나폴레옹 전쟁 회고록(1836)을 써서 인기를 얻었다. 러시아 여성이 쓴 자서전이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앞 선 나라에서도 여성이 작가로 활동하기는 어려웠다. 문단에서는 극소수의 여성작가를 정상적인 존재로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