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과 거지
초저녁 슬그머니 '여보 당신 없으면 난 독거노인... 난 거지야'
아들 셋을 둔 아내와 남편이 나눈 대화 한 토막이다.
나이듦의 서글픔이 아닌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이다.
우여곡절의 세월을 같이 한 흔적을 뒤 돌아 본 시간이다.
얼마 전,
모 방송에서 스님 한 분과의 인터뷰에서 속세를 떠날 수 밖에 없는 사연의 질문에 '누구나 가야하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이 있는데 그 절의 이름을 아시나요?'
반문하신 스님의 대답은 '우여곡절'. 우스개 말 안에 얼마나 깊은 내용이 함축된 대답이던지,
그리고 덧붙여, '각박한 세상살이 하면서 겪게 되는 숱한 아픔과 배신감을 느낄 때 꼭 가 볼 섬은 어딘가요?'
휴양지 하와이? 아님 제주도? 연상하며 머뭇거리는 분위기에 선뜻 '그래도'.
자신의 어릴 적 얘기들을 풀어 놓으며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나날들.
'그래도'에 가보니 그 아버지를 용서하고 평안을 얻었다는 감동적인 얘기다.
아니 벌써?.... 노랫말이 아닌 이젠, '우여곡절' '그래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돌아가고 싶은 나이가 언제냐? 질문에 난 지금이 제일 좋은 시절인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주원이와 손잡고 잠자리에 들면서 주고 받은 얘기다. 외로운 타국 중국에서 만나 정을 나누었던 피붙이의 사랑을 여전히 나눌 수 있음이 감사하다. 며칠 전 주원이는 부부교사로 방학을 틈 타 일박 이일 사랑을 나누었다.
자매들과도 세 며느리와도 손잡고 자 본 기억이 없는데...
1년 6개월 키운 손녀와 어릴 적 손잡고 자 본 지 8년 여 만에.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 불평불만 보다 감사할 거리가 많음이 또 감사하다.
지난 일년에 두 번의 끔찍한 경험을 했다. 고관절과 척추골절, 불현듯 찾아 온 짖궂은 친구를
보듬어야지 하며 생각을 바꾸니 감사가 넘쳐났다.
원하든 원치 않던 난 일흔이 지났다. 조심 또 조심 운동을 선별하는 혜안을 가진 것이다.
둘째는 자녀들의 배려다. 사대 독자에게서 세 아들의 출생은 감사넝쿨이 아니던가.
시절이 바뀌어 딸 둘은 금 메달 아들 둘은 목 메달이라고들 하지만 말이다.
키우면서 받은 기쁨은 또 얼마였던가. 지금부터 받는 건 덤으로 생각하니 오직 감격할 뿐이다.
허지만 불쑥 불 쑥 올라 오는 또 다른 나의 쓴 뿌리들.
싹이 나기 전에 댕강 잘라 버리기로 작정하고 나니 고맙고 감사한 가족이란 단어다.
언젠가는 독거노인이 되고, 자녀 집 다니며 식생활을 해결해야 한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