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말이야, 공깃돌처럼 작고 아름다운 질감 속에 있어.
“시간의 질감, 공간의 질감, 날씨의 질감, 시선의 질감, 감정의 질감 따위로 바람 속에 깎아진 돌 하나 앉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바람의 집은 이러한 질감들로 건축된 양식일 테지. 문을 열면 은하수로 세수하거나 블랙홀을 가지고 도미노게임을 하게 되겠지, 예삿일은 하나씩 별빛을 꺼뜨리는 일일거야. 집안은 늘 계절과 상관없이 무작정 토네이도가 발생하지. 언제나 단 한 번의 망설임 없는 전운, 비망록을 일기로 쓰는, 쉼 없는 나날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칠 줄 아는 낭만 한 줌이 있지. 그걸 먼지라 부르는 건 아마, 털어버리기 편해서였을까.”
공깃돌을 만지면 세상과 만나게 되고, 질감처럼 느껴지는 속도가 보이게 돼.
압력이 높을수록 온전히 질감에 가까워져. 공중을 삼킬 줄 아는 종족에 대해 말하게 되고,
암모나이트처럼 안개에 대해 화석으로 부르게 될 거야.
아킬레스는 눈물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한 시초라 생각하겠지.
프랑켄슈타인이 질감으로 버퍼에 정지한 외부는 누군가의 공깃돌이었다.
공깃돌은 플라나리아처럼 변형되지 않고 복제된다,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질주가 시작되면 레플리카 아리는 정점을 향했다, 질감 비슷한 누군가의 내부가 되고 발목을 바라보면 별들이 왜 아름답게 빛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쉴드에 몰렸다 사라지는 반영들은 간판이나 명함으로 거리에 던져진다. 그 오후엔 카페 앞으로 바이크를 대고 커피 향 가득한 시간을 마신다, 기억된 계절을 음미한다.
마하에 이르면 바람이 된 프랑켄슈타인과 아리를 만나게 된다.
비 오는 날의 질감은,
톤이 무거운 장미와 바람에 흔들리게 되겠지. 축축한 공깃돌이 뜨거워지는 방식으로,
플립(flip).
아리의 공깃돌은 추락하는 바닥모를 공중에 있었다. 낭만이 붓질된 스퀴즈마크가 드리프트되었다 타이어에 흉터로 아문다. 공중은 다른 의미의 기다란 장미의 시간이다. 우주인처럼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프랑켄슈타인은 공깃돌처럼 생긴 오후에, 레플리카 아리를 보다 기류와 닮아가고.
2016.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