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의 여자와 20시의 여자, 그리고 열한 번째 마찰
여자는 매시간 아라비아산 올리브가 된다. 역사驛舍의 플랫폼으로 나서는 여자라면 발착지가 아라비아임을 아는 것이다.
10시에 정차한 기차는 십분 후 객차 문을 봉합하고 행선지로 이동하겠는데 대략 여분의 일분이 더 소요된다. 다음 역을
경유하더라도 이러한 행태는 반복 순환하게끔 유도된 유기적 고리의 결속으로 `전리傳理`하여있다. 머리에 이고 있는 히잡
이 풀어지며 열차가 암영을 뚫고나간 레일 위로 물고기꼬리를 늘어뜨려 허공을 헤엄치는 형상이 된다. 물속은 허공을 누빈
비단물고기가 돌아갈 곳도 아닐 진데, 지느러미는 이미 유속을 타고 부레관은 자유롭겠다. 올리브유油 동이가 누르는 히잡
아래 아라비아는 척박한 기후와 토양에 `할례`의 물 부대끼는 소리가 났으므로 베일은 감금당한 꿈속에 있지 않아도 된다.
아낙은 아라비아의 올리브유油가 되어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가, 세계로 나가는 지중해에 든 표정의 눈망울로 세상을 보
는 것이니까. 올리브는 수세기동안 히잡에다 강을 냈고 세헤라자데의 구술口述 속을 흐르기도 했을 테니, 그 얼마나 빼곡이
들어찬 농밀한 시간이련가. 올리브로 된 시간이 기차를 타고 플랫폼을 부대끼며 너울이 되었다. 히잡에서 동이 찬 기적이
부러져 아랍에 담기고서야 밀랍의 비누거품으로 가벼워지는 관습이 있다. 10시의 여자가 떠난 역사대합실은 지중해만을 옮
겨다 놓은 듯 터번을 쓴 무리가 향신료와 비단, 노예와 섞여 혼잡을 이루었다. 상공인들은 주로 티켓을 발매하고 화폐로 된
주화를 타국상인과 거래하여 환전차익으로 수익을 남겼으며 중개인에게 수수료를 떼어주고 통역까지 선임한 모습이었다. 안
개처럼 희뿌연 물비늘에서 각질로 벗겨지듯 그 모습은 전시풍 화양에 배겨 그림으로 남았다. 일찍 도착한 아낙이후 20시에
대합실로 들어설 여자는 그림 속 풍경을 빠져나와 다시금, 예정된 열차에 오르려고 플랫폼으로 나올 것이다.
다시 아라비아산 올리브를 표방하여 여자가 등 칸에 오르려고 한다. 여자는 고대로부터 이어내려 온 히랍을 둘렀겠지만
아라비아가 담긴 동이를 이고 있지 않다. 그녀는 발착지가 불분명한 열차를 타고 예정에 없는 종착역을 가는 것이므로, 눈
동자에는 어둠이 똬리를 틀고 방울뱀소리로 섬직하였다. 불과 수세기 이후의 시간은 아낙의 머리에 무엇을 이게 한 것인가.
플랫폼이 육중한 축에 흔들려지고 수족관의 누수에 젖은 듯 베일이 레일 아래로 새었다. 불꽃은 사그러들지 않고 성전높이
오를 것처럼 사방으로 뻗치었겠다. 20시의 시간에 여자는 관습을 기차에 태우고 스스로 폭약이 되어 물속으로 침전하였다.
올리브향이 짙게 역사 주변으로 퍼졌겠는데, 대합실 화양에선 향신료와 인파로 붐비는 냄새가 그림에 있었다. 열두 번째만
의 결심과 열한 번째 의지에서 여자는 히잡을 벗고 역사를 벗어날 수 있었다.
올리브는 더 이상 아라비아에서 지중해를 꿈꾸지 않았다. 지금의 아낙은 스스로 터번을 쓰고 히랍을 태워버릴 것이므로.
201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