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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嘔吐) / Jean Paul Sartre, +1

작성자ralffinz|작성시간17.06.04|조회수53 목록 댓글 0

  편집자 원서(原書)의 서언


 이 기록은 앙투안 로캉탱의 서류 속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수정도 하지 않고 발표한다.

 첫 페이지에는 날짜가 적혀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일기 자

체보다 몇 주일 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

다. 그러므로 늦어도 1932년 1월초에 씌어졌을 것이다.

 그 당시 그는 중부 유럽, 북아프리카, 극동(極東) 지방의 여행을 끝마

친 다음에, 드 롤르봉 후작에 관한 역사 연구를 완성하고자 3년째 부빌

에 체류하고 있었다.

                                                                             편집자



 날짜가 없는 페이지


 최선의 방법은 그날그날에 일어난 일들을 적어 두는 것이다. 뚜렷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일기를 적을 것.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도, 그

뉘앙스며 사소한 사실들을 놓치지 않는 일과 특히 그것들을 분류하는

일. 내가 이 테이블, 저 거리, 저 사람들, 나의 담뱃갑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써야만 한다. 왜냐하면 변한 것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의 범위와 성질을 정확하게 결정지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여기에 나의 잉크병이 든 종이 상자가 있다고 하자. 내가

`전에`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었는가를 적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

고 지금은 어떻게 그걸(말 하나가 비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직각

평행 육면체요 테이블 위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할 말이 없다. 바로 그런 일을 피해야 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신기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일기를 쓴다면, 다음과 같은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모든 일을

과장하는 것, 너무 날카롭게 주의를 기울인 나머지 줄곧 진실을 왜곡하

는 것이다.

 한편 --- 바로, 이 잉크병이라든지 기타의 어떤 물건에 관해서 ---

그저께의 그 인상(印象)을 언젠가 다시 갖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늘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상이 손가락

틈으로 또 스며들어 올 것이다. 아무런 것도(낱말 하나가 지워져 있다.

아마도 `강요하다` 또는 `날조하다`일 것이다. 다른 말이 지워진 글자

위에 다시 써져 있으나 알아볼 수가 없다.)...... 해서는 안 된다. 생겨

나는 모든 일을 정성스럽게, 되도록 상세하게 적어야 하겠다.

 물론, 토요일과 그저께의 그 이야기에 관해서는 더 이상 명확하게 쓸

것이 없다. 벌써 나는 거기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다. 다만 내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경우에 있어서나 우리가 보통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토요일에는 아이들이 물치기를 하며 놀고

있었고, 나는 그 아이들처럼 바다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멈칫하며, 돌을 떨어뜨리고 와 버렸다. 등뒤에서 아이들이 웃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 나는 머리가 돈 사람같이 보였음에 틀림없다.

 외면적으로는 그뿐이었다. 내 마음속에 일어난 것이 명백한 흔적을 남

기지는 않았다. 나는 그 무엇을 보았고 그것이 나에게 혐오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이 바다였는지, 또는 해변가

에서 주운 돌이었는지 나는 이미 모른다. 돌은 반반하였다. 한쪽은 물기

가 없었으나 다른 한쪽은 젖어 있었고, 흙이 묻어 있었다. 나는 손을 더

럽히지 않도록 손가락을 벌려서 돌의 두 끝을 붙잡고 있었다.

 그저께 일은 훨씬 더 복잡했다. 게다가 공교로운 일, 어이없는 일들이

연달아 일어나서 지금까지도 무엇이 무엇인지 젼혀 알 수가 없다. 그러

나 그 모든 일을 종이 위에 늘어놓으면서 즐길 생각은 없다. 하여튼 나

는 공포심, 또는 그와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것만은 확실하다. 내가 무

엇을 두려워하고 있었던가, 그것만이라도 알았다면 나는 벌써 많은 진보

를 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나는 나 자신을 미친 놈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렇지 않다고 확신까지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물체에 관한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적어도 그것이 내가 확실히 알고 싶은 점이다.


 열 시 반(분명히 열 시 반일 것이다. 나중에 나오는 글은 앞의 것보다

훨씬 뒤, 빨라야 그 이튿날에 기록된 것이리라.)

 아마 그것은 따지고 보면 정신착란의 작은 발작이었을 것이다. 그런

흔적은 이미 없어졌다. 지난 주일의 그 이상야릇한 기분이 오늘은 참 우

스꽝스럽다. 다시는 그런 기분에 잠기지 않는다. 오늘 밤 나는 거북스러

움이 없이 안일하게 이 세상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는 북동쪽을 향한 나

의 방이다. 저 밑에는 뮈틸레 거리와 새로 짓는 역사(驛舍)의 공사장이

있다.

 나는 빅토르 누아르 거리 한 모퉁이에 있는 `역원 회관`의 붉고 흰 불

빛을 창 밖으로 내다보고 있다.

 파리발 기차가 지금 막 도착했다. 사람들은 구역(舊驛)에서 나와 거

리로 흩어진다. 구두 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마을 사람들은 마지

막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내 방 들창 바로 밑에 서 있는 가스등

주위에 조그마하고 쓸쓸한 무리를 지어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

직 5, 6분은 더 기다려야 될 것이다. 막차는 10시 45분 전에는 없을 테

니까. 오늘 밤에는 상인들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만큼 나는 자고

싶다. 그만큼 나는 밀린 잠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하룻밤, 하룻밤만이

라도 푹 자면 그런 이야기의 찌꺼기는 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열한 시 십오 분 전이다. 이제는 걱정할 게 없다. 장사꾼들은 오지 않

나 보다. 루앙의 남자가 올 날이 아니면 말이다. 루앙의 남자는 일주일

에 한 번씩 온다. 2층의 비데(세척기)가 있는 2호실이 그가 묵는 방이

다. 또 올지도 모른다. 그는 자기 전에 `역원 회관`에 가서 맥주를 한

잔 마신다. 그러나 그다지 귀찮지는 않다. 퍽 키가 작고 단정한 사람으

로 새까만 수염에 기름을 바르고 가발을 쓰고 있다.

 허어, 오고 있군.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소리는 내 심장에 가벼운

자극을 주었다. 그토록 그것은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도 규칙적인 사람들을 어찌 두려워할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나는 벌써

내가 깨끗이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는 `도살장(屠殺場) 경유 그랑바생 행` 7호 전차다. 낡은 쇳소

리를 덜그럭거리며 왔다가는 떠난다. 지금 그 전차는 여행 가방과 잠든

아이들을 가득 싣고 그랑바생 쪽으로, 공단 쪽으로, 어두운 동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막차 바로 앞차이다. 막차는 한 시간 후에 이

곳을 지날 것이다.

 나는 잤다.

 나는 다 나았다.

 내 생각을 깨끗한 새 공책에 계집애들처럼 매일같이 쓰는 일은 그만두

겠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일기를 적는다는 것이 유익한 일일 것이다. 그

것은 아주......

                                   (날짜 없는 페이지는 여기서 끝이 나 있다.)



                  일          기          



 1932년 1월 29일 월요일


 그 무엇이 나에게 일어났다.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것은 늘

있는 어떤 확신이라든지 자명한 일처럼 생겨난 것이 아니고, 마치 병에

걸리듯이 닥쳐왔다. 그것은 조금씩 엉큼하게 자리를 잡아 버렸다. 그래

서 그런지 나는 나 자신이 좀 괴상하고 어색한 느낌을 가졌다. 그뿐이

다. 한번 자리를 잡더니 그것은 벌써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무렇지도 않고 내가 괜히 놀란 것이라고 자신을 타

이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또 꽃잎을 열었다.

 나는 사가(史家)의 직책이 심리 분석을 하는 데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야심`이라든지 `이해 관계`라고 총괄적으로 부르는 전

체적인 감정만을 일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가 나 자신에 대한

인식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그것을 이용할 단계인 것이다.

이를테면, 내 손에 그 어떤 새로운 것, 즉 파이프라든지 수저를 잡는 어

떤 방법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쥐어지는 어떤 방법을 이제는 수저가 갖

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금 내가 나의 방으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나는 문득 멈춰 섰다. 왜냐하면, 내 손안에 찬 것이 있어 일종의 개성으

로 나의 주의를 끌게 하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손을 벌리고 바

라보았다. 나는 오직 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오늘 아침에

도서관에서 독학자(獨學者)(오지에 P. 이 사람은 일기 속에서 자주 문

제가 될 것이다. 그는 집달리의 서기였다. 로캉탱은 그를 1930년 부빌의

도서관에서 알게 되었었다.)가 나에게 인사를 했을 때, 그를 알아보는

데 10초나 걸렸다. 나는 알아볼 수 없는 얼굴, 거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긴 구더기 같은 손이 내 손안에 있었다.

나는 곧 그 손을 놓았다. 그 팔이 축 늘어졌다.

 거리에서 역시, 괴상한 소리가 꼬리를 물고 끊임없이 들려 온다.

 그러니 지난 몇 주일 동안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어디

에? 그것은 아무 곳에도 근거를 두지 않은 최상적 변화이다. 내가 변한

것일까? 내가 변하지 않았다면, 이 방이, 이 도시가, 이 자연이 변한

것이다. 그중의 어느 쪽인가를 가려내야 한다.

 변화한 것은 나라고 생각된다. 이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이다. 그것은

또한 가장 불쾌한 해결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국은 내가 그 갑작스런 변

동에 지배되어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사실인즉, 나는 사고(思考)

를 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자질구레한 변형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의 내부에서 축적되어, 그리하여 어느 날, 정말 혁명 같은 변

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생활에, 그 돌연스럽고도 비일관적

(非一貫的)인 양상을 띠게 만든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프랑스를 떠

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내가 변덕을 부려서 떠나 바렸다고들 말했었다.

그런데 내가 6년간의 여행에서 갑자기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역시 내가

변덕을 부려서 돌아왔다고 말했으리라. 나는 페트루 사건의 결과로 작년

에 사직한 프랑스 사람인 관리 메르시에와 더불어 그의 사무실에 있었던

일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메르시에는 고고학(考古學)의 임무를 띠고

벵골에 가려는 참이었다. 나도 늘 벵골에 가고 싶어해서, 그가 나에게

자기와 함께 가자고 졸라댔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

다. 그때 그는 포르탈이 불안했기 때문에 포르탈을 감시해 줄 것을 나에

게 기대했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거절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비록 포르탈에 관련된 그의 자질구레한 계략을 내가 그때 예감했

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의 제안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마비된 듯 단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화통 옆, 초록색 양탄자 위에 있는 크메르의 불

상(佛像)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나의 몸이 임파액이나 아

니면 미지근한 우유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메르시에는 천사 같은

인내로 나에게 말했으나 그 뒤에는 약간의 노기가 숨어 있었다.

 "그렇지 않소? 나는 정식으로 결정을 해 둘 필요가 있소이다만, 결국

은 승낙하시리라고 난 생각하오. 지금 당장 수락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

데."

 그는 향수 냄새가 몹시 나는 검은 밤색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나는 향수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6

년간의 잠에서 깨어났다.

 불상이 불쾌하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나는 내가 심각한 권태에 사로잡

히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왜 인도차이나에 와 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왜 나는 이런 괴상한 옷을 입고 있는가? 나의 정열은 사

라져 버렸다. 그 정열은 몇 년 동안 나를 뒤덮어 휘몰아 왔던 거였다.

이제 나는 나 자신이 텅 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지독한 일은

내 앞에 거대하고 무미한 하나의 관념이 맥빠진 듯이 놓여 이었다는 것

이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으나 그때 그것은 하도 나의 마음

에 불쾌감을 일게 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모

든 것이 나에게는 메르시에의 수염의 향내와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에 대한 노여움에 무뚝뚝하게 대답을 했다.

 "고맙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실컷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프랑

스로 돌아가야 되겠습니다."

 이틀 후, 나는 마르세유로 가는 기선을 탔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또 축적되어 가는 모든 징조(徵兆)가 내

삶의 새로운 파괴의 전조(前兆)라면, 정말이지 나는 두렵다. 나의 생활

이 풍부하다든지, 충족되어 있다든지, 귀중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생

겨나려고 하는 것, 나를 사로잡으려는 것......이 두렵다 --- 그리고 그

것은 나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가? 나는 연구와 책, 그 모든 것을 모

든 계획 속에 남겨 두고 또다시 가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수개

월 또는 수년이 지났을 때, 지쳐 빠져서 실망한 모습으로 새로운 폐허

(廢墟)의 한복판에서 깨어나게 될 것인가? 너무 늦기 전에 나는 나의

내부에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똑똑히 알고 싶다.


  1월 30일 화요일


 새로운 일이라곤 없다. 나는 아홉 시부터 한 시까지 도서관에서 일을

했다. 나는 제12장과 폴 1세의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러시아에 있어서의

롤르봉의 체재(滯在)에 관한 모든 사실을 완료했다. 거기까지는 끝났

다. 정서를 하게 될 때까지 다시는 문제될 게 없을 것이다.

 한 시 반이다. 나는 카페 마블리에 있다. 샌드위치를 먹는다. 모든 것

이 거의 정상적이다. 하기야 카페라는 곳에서는 모든 것이 언제나 정상

적이다. 특히 카페 마블리에서는 착실하고 믿음직한 서민적인 얼굴 모습

을 하고 있는 지배인인 파스켈 씨 때문에 더욱 그렇다. 곧 낮잠 잘 시간

이 되기 때문에 이미 그의 눈은 충혈이 되어 있으나 그의 태도는 활발하

고 확고하다. 그는 테이블 사이를 왕복하다가, 무슨 비밀 이야기나 하는

것처럼 손님들에게 가까이 간다.

 "괜찮으신가요, 손님?"

 그가 매우 활발한 것을 보고 나는 미소를 짓는다. 가게가 비게 될 시

간에는 그의 머리도 텅 빈다. 카페는 두 시부터 네 시까지 쓸쓸하다. 그

러면 파스켈 씨는 얼빠진 태도로 몇 걸음을 걷는다. 가르송(보이)들이

전등불을 끄면 그는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이 사나이는 혼자 있

으면 잠들게 마련이다.

 아직 스물 댓 명의 손님, 홀아비들, 하급 기술자들, 고용인들이 남아

있다. 그들은 그들이 포포트(Popote, 속어로 식당을 뜻)라고 부르고 있

는 여염집 하숙에서 서둘러 점심을 먹고는, 약간의 사치가 필요한 까닭

에 식후에 여기에 와서 주사위 포커를 하면서 커피를 마신다. 그들은 좀

떠들기는 하나 단속적인 소음이라 내게는 그리 방해가 되지 않는다. 그

들도 존재하기 위해 몇 명이 어울려야만 한다.

 나는 혼자서, 아주 혼자서 살고 싶다. 절대로 아무에게나 말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받지 않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독학자는 문제가 안

된다. `역원 회관`의 여주인인 프랑수아즈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그 여자와 말을 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간혹 저녁을 먹고 나서 그 여자

가 보크(값싼 맥주의 이름)를 한 잔 가지고 올 때 나는 물어 본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소?"

 그 여자는 절대로 없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가 시

간으로, 또는 하루 계산으로 빌리는 2층의 커다란 방들 중 한 방으로

그 여자 뒤를 따라서 들어간다. 나는 그 여자에게 값을 치르지 않는다.

우리들은 똑같이 육체의 거래를 한다. 그 여자는 쾌락을 맛본다(그 여자

에게는 하루 한 명의 남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나 이외에도 많은 남자가

있다.). 그리고 나는 원인이 뻔한 그 어떤 우울증을 씻어 버린다. 우리

는 두어 마디 주고받을까말까 한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제각기

자기를 위해서 하는 짓이다. 게다가 그 여자의 눈엔 내가 자기 카페의

한 손님 정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옷을 벗으면서 그 여자는 나에게 말한다.

 "이봐요, 브리코라는 아페리티프(식사 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먹

는 술의 총칭)를 알아요? 이번 주일에 그것을 찾는 손님이 두 사람이나

있어서 그래요. 계집애가 몰라서 내게 물으러 왔어요. 뜨내기들이었으

니까 아마 파리에서 먹어 봤을 거요. 하지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사기는

싫지 뭐요? 괜찮다면 양말은 안 벗겠어요."

 전에는 --- 안니가 나에게서 떠나고 난 오랜 뒤에도 --- 나는 안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말 마디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말은 내 마음속

에서 다소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나는 아무것도 붙잡으려 하지 않고 가

만 놓아 둔다. 나의 사고는 대개의 경우, 말에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안

개처럼 머물러 있다. 어렴풋하고 재미난 형상(形象)을 그렸다가는 꺼져

간다. 나는 이내 그런 것을 잊는다.

 저 청년들이 놀랍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면서, 말끔하고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이 만약 어저께 한 일에 대해서 질문을 받더

라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짧은 말로 우리에게 알려 줄 것이다. 내가

그들이라면, 나는 우물쭈물할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가 무엇을 하고 있

는지를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혼자 살고 있을

때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조차도 모른다. 정말 같아 보이

는 것은 친구들이 없어짐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고독한 사람은 사건

에 대해서도 무심하다. 사람들이 훌쩍 나타나서는 지껄이다가 가버리는

것이 보인다. 고독한 사람은 밑도끝도없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런 사람이 무슨 일의 증인이 된다면 한심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그 대

신 정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 카페에서는 아무도 믿을 것 같지

않은 일을 혼자 사는 사람은 틀림없이 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토

요일 오후 네 시경, 역(驛)의 공사장 곁의 널빤지를 깐 보도 끝을 하늘

색 옷을 입은 키가 작은 부인이 웃으며 손수건을 흔들면서 뒷걸음질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크림색 레인코트를 입고, 노란 구두를 신고, 초록

색 모자를 쓴 흑인이, 길 모퉁이를 돌아가며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줄

곧 뒷걸음질을 치고 있던 여자가 밤이면 불이 켜지는 가로등 밑에서 그

흑인과 부딪쳤다. 그래서 거기에는 축축한 나무 냄새가 쿡 찌르는 울타

리와 가로등과 흑인의 품안에 안겨 있는 자그마한 금발의 여인이 노을

밑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다. 네 명이나 다섯 명이 함께 그 충돌 사건

을, 그 모든 부드러운 색채며, 솜털 같아 보이는 파랗고 좋은 외투며,

밝은 레인코트며, 빨간 가로등의 유리를 보았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들은

어린애 같은 그 두 얼굴에 나타난 놀란 모습을 보고 웃었을 것이다.

 고독한 사나이는 웃고 싶은 일이 드물다. 나에게는 그 장면의 전모가

강렬하고 광포하기조차 하면서도 순수한 의미를 지니며 활기를 띤 것이

었다. 그러자 그것이 분해되었다. 이미 가로등과 울타리와 하늘밖에 없

었다. 하지만 그건 그래도 퍽 아름다웠다. 한 시간 후에는 가로등의 불

이 켜졌고, 바람이 일고 하늘이 캄캄해졌다. 이미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

었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겐 아주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무례한 감

동을 나는 한번도 물리친 적이 없다. 차라리 그 반대다. 그런 감동을 느

끼기 위해서는 알맞은 순간에 정말 같아 보이는 것을 떨쳐 버리기에 족

할 만큼 그저 짧은 동안만 혼자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

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 즉 고도의 표면에 머물러 있으면서 급해지면 그

들의 사이로 피난해 버리려고 했었다. 사실 여태까지 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었던 것이다.

 지금 아무  데나 저 테이블 위에 있는 맥주컵 같은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이제 그런 놀음은 그만둘 테야

...... 하고. 다시 발길을 돌릴 수가 없을 만큼 나는 고독의 길을 너무 먼

데까지 와 버렸따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고독의 한계`를 그어

놓을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기 전에

침대 밑을 들여다보거나, 한밤중에 갑자기 방문이 열리는 것을 상상하고

두려워하거나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불안하다. 이 맥

주컵을 `바라보기`를 피하려는 것이 벌써 30분이 된다. 나는 그 위를,

그 아래를, 그 오른편을, 보고 싶지 않다. 나의 주변에 있는 모든 홀아

비들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이제는 늦었다. 이제는 이미 그들 사이로 피난 갈 수가 없다. 그들은 나

에게로 와서 나의 어깨를 두들기고 나에게 말할 것이다.

 "아니, 이 맥주컵이 어쨌단 말이오? 다른 맥주컵들과 매한가집니다.

손잡이가 달려 있고 깎아진 듯이 보이지요. 삽이 그려져 있는 조그마한

방패 무늬가 달려 있고, 그 위에 `슈파텐브라우`라고 씌어져 있지요."

 그 모든 것을 나는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거의 아

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보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누구에

게도 설명할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살며시 물 밑으로, 공포의 밑바닥

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나는 이 즐겁고 제법 이치에 맞는 목소리의 복판에서 외롭다. 이 모든

작자들은 제 생각을 말하고, 자기들의 의견이 같다는 것을 기쁘게 확인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들 함께 같은 일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을. 제기랄, 그들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그

들 사이에 분명히 자기들의 내면을 노려보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리고

결코 그들과는 의견이 일치할 수 없는 물고기 같은 눈을 가진 한 인간이

들어올 때, 그들이 짓는 얼굴 표정을 보기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내가 여덟 살에 뤽상부르 공원에서 놀고 있을 때 오귀스트 콩트 거리에

연한 울타리에 맞붙여 지어진 초소에 와서 앉는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때로 다리를 뻗고, 공포에 사로잡힌 눈으로 자기의 발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한쪽 발에는 편상화(編上靴)를 신고 있었으나 한쪽

발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공원지기가 우리 아저씨에게 한 이야기로는

그가 예전에는 중학교의 훈육주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카데미 회

원의 예복을 입고 교실에 들어가서 학기 시험의 점수를 불렀기 때문에

면직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가 몹시 무서웠다. 그가 고독하다

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가 멀리서 팔을 내밀고는 로베르에

게 미소를 지었다. 로베르는 기절할 뻔했다. 우리가 무서웠던 것은 그

사람의 비참한 모습도 아니었고, 목덜미에서 칼라와 닿아 비비대고 있

는 종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게 아니라 그가 머릿속에 게나 새우가

가지고 있는 고독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원지기의 초소나 우리들의 굴렁쇠나 그 근처의 숲에 관해서 그

러면 나를 기다리는 것이 그것이란 말이냐? 처음으로 고독하다는 사실

이 나를 괴롭힌다. 너무 늦어지기 전에, 내가 애들에게 공포를 주기 전

에, 내 마음에 생겨난 일에 관해서 누구에게 말하고 싶다. 안니가 있었

으면 좋겠다.


 이상하다 나는 10페이지를 썼는데도 진실을 쓰지 못했다 --- 적어도

진실 전부를 쓰지 못했다. 내가 날짜 밑에 `새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없

다.`고 쓴 것은 솔직하지 않았던 탓이다. 사실은 수치스럽지도 않고 비

정상적도 아닌 짧은 이야기가 입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새

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사람이란 진담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얼마

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나는 경탄하여 마지않는다. 분명히 새

로운 일이란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 아침 여덟

시 십오 분에 도서관에 가려고, 프랭타니아 호텔에서 나왔을 때 땅에 떨

어진 종잇장을 주우려 했다가 줍지 못하고 말았다. 일이라곤 그뿐이다.

그리고 그런 것은 사건일 수조차도 없다.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죄다

말하자면 그것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이다. 나는 이미 내가 자유

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나는 그 생각을 없애 버리려고 애썼

으나 허사였다. 나는 그 생각을 쫓아 버리려고 카페 마블리에 갔다. 밝

은 데서는 그것이 사라져 버리리라고 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마음에 무겁게, 고달프게 남아 있었다. 나로 하여금 앞

에서 얘기한 여러 페이지의 글을 쓰게 한 것이 바로 그 생각이다.

 왜 나는 그 이야기를 안 했을까? 그것은 아마 자존심 때문이었으리

라. 그리고 또 어느 정도는 내가 서둘렀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나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게 익숙하지 못하다. 그래서

나는 사건의 연속을 잘 찾아내지 못하면 어떤 것이 중요한가를 잘 구별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다 끝났다. 내가 카페 마블리에서 쓴 것을

다시 읽고 나는 부끄러웠다. 마음속에 숨겨진 것이라든지 상태라든지 무

어라 표현할 수 없는 것, 그런 것은 집어치워야겠다. 내면 생활 놀음을

할 만큼 나는 동정녀도 아니고 승려도 아니다. 대수로운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종잇장을 줍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나는 밤이나, 낡은 헝겊이다. 특히 종이 조각 등을 줍기 좋아한다. 그 

것을 줍고, 그것을 손에 쥐는 일은 기쁘다. 어쩌면 애들이 하듯이 나는

그것을 입에다 갖다 대기라도 할 지경이다. 내가 무겁고 사치스러운, 그

러나 더러운 것이 묻었을지도 모르는 종잇장의 한 귀퉁이를 잡고 집어

올릴 때, 안니는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여름이나 초가

을에는 햇볕에 익어 낙엽처럼 마르고 푸석푸석한, 마치 피크르 산(산)을

친 것처럼 누렇게 보이는 신문지 조각을 공원에서 볼 수가 있다. 겨울에

는 다른 종잇장들이 찌그러져서 짓밟혀, 더럽혀져 있다. 그것들은 흙이

되어 가고 있다. 또 다른 아주 새 종이, 반질반질하기까지 한 아주 희

고, 아주 빳빳한 종이들이 백조처럼 굴러다니고 있으나 그 밑에서 이미

땅이 그것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그것들은 몸부림을 치며 진흙에서

빠져 나가지만 결국은 얼마 못 가서 땅에 철썩 붙어 버린다. 그 모든 것

을 손에 쥐는 게 즐겁다. 가끔 나는 아주 가까이서 그것들을 보면서 쓰

다듬어 보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그 종이들이 길게 뽑는 빠지직 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그것을 찢어 보거나 아니면 종이가 축축할 때는 불을

붙이는 것인데, 그건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는 흙투성이가 된

내 손바닥을 벽이나 나무 둥치에다가 문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군영의 문에서 나온 기병 장교의 연한 황갈색 장화

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장화에 눈이 팔려 있다가 물구덩이 한 모퉁이에

드리워진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장교가 뒤꿈치로 그것을 짓밟고

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그는 한걸음으로 그 종이와 물구

덩이를 건넜다. 나는 가까이 갔다. 줄을 친 것이 분명히 학교 공책에서

뜯어진 종이였다. 비에 젖고 뒤틀어져 그것은 화상을 입은 손처럼 물집

과 부종(부종)투성이였다. 여백의 붉은 선이 분홍빛 안개처럼 흐려지고

사방에 잉크가 번져 있었다. 종이 아래쪽은 진흙덩어리에 가려져 있었

다. 나는 허리를 굽혔다. 내 손가락 아래에서 회색의 조그마한 공처럼

구를 그 부드럽고 산뜻한 반죽에 손을 대는 것이 즐거웠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잠깐 몸을 굽히고 있었다. `받아쓰기 --- 흰

부엉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빈손으로 일어섰다. 나는 이미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없다.

 물체들, 그것들은 사람이 `만져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고, 그것을 정리하고,

그 틈에서 살고 있다. 그것들은 유용하다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나를 만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마

치 그것들이 살아 있는 짐승들인 것처럼 그 물체들과 접촉을 갖는 게 나

에게는 두렵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이 이제 잘 생각이 난다. 그런데 시

큼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그것

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

었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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