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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轉落) / Albert Camus, +1

작성자ralffinz|작성시간17.06.13|조회수49 목록 댓글 0

 만일 당신에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도와드리고 싶습니다만. 이 술

집을 맡아 운영하고 있는 훌륭한 고릴라 씨한테는 선생의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저 사람은 사실 네덜란드 말밖에는 알아듣

지 못해서 저에게 변호해주도록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당신이 진을 주

문하고 있다는 것도 저 양반은 잘 모를 것입니다. 자아, 이제 됐어요,

저렇게 머리를 끄덕이고 있지 않습니까? 저것은 내 말을 알아들었다

는 증거예요. 보세요, 과연 저쪽으로 가지 않습니까? 날래기는 하지

만 덤비지는 않고 어디까지나 여유가 있지요. 당신은 참 운이 좋은 편

입니다. 주인이 투덜거리지 않으니까요. 시중들기가 귀찮아질 때면

투덜투덜 잔소리를 늘어놓기가 십상이지요. 그땐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이 없지요. 제 기분을 제 마음대로 지배하는 것, 그것은 고등 동

물만의 특권이지요. 그럼 저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도움이 되어드

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것 참 황송합니다, 방해가 안 된다면

받아 마시겠습니다. 당신은 퍽 친절하시군요. 그럼 제 잔을 당신 옆에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사내의 말없기란 귀가 멍해진 듯해서 원시림에 자

욱이 낀 무거운 침묵과 같지요. 과묵한 저 사내가 문명 제국의 언어에

집요한 적의를 나타내는 데는 저도 때때로 깜짝 놀랄 지경이지요. 암

스테르담의 이 바에 무슨 까닭에서인지 `멕시코 시티`라는 이름을 붙

여놓고 세계 각국의 뱃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 그의 직업이니까요.

직업상 저렇게 말을 못 해서는 꽤나 부자유스럽겠구나 하고 생각하시

겠죠? 바벨탑에 크로마뇽인이 하숙을 했다고 상상해보세요, 적어도

망향심 때문에 시달리겠지요. 그런데 저 사람은 타향에 있다고는 전

혀 느끼지 않는 거예요. 그저 자기의 길만을 가며 태평스럽기 짝이 없

어요. 그에게서 들은 얼마 되지 않는 말 가운데 내가 들은 한 마디는

`취하든가 버리든가 양단간의 하나이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체 무

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일까요? 그것은 틀림

없이 그 사내 자신일 거예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나는 저렇게 투박한

사람한테 완전히 반해버리거든요. 직업상 또는 타고난 천성 때문에

인간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있으면 때때로 영장류에게 향수를 느끼

는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영장류에게는 저의(底意)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실을 말하자면 이 집 주인한테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약간의 저의

가 있어요. 눈앞에서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자연히 남

을 의심하는 성격이 된 것이지요. 경계하는 듯한 태도는 그것이 원인

이지요. 마치 인간들 사이에는 서로 원활히 되지 않는 것이 있다고 의

심하고 있는 듯한 태도 말입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자기 일에 직접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가 않아요. 가령, 주인의 머리 너

머 저쪽 안의 벽을 보세요, 네모난 공간이 빠끔히 뚫려 있는 것이 보

이지요? 물론 그것은 그림을 떼어낸 자국입니다. 사실 아주 재미있

고 진짜 걸작품이라고 해도 좋을 그림이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주인

이 그 그림을 살 때나 팔아버릴 때도 나는 그 자리에 입회하고 있었어

요. 그런데 주인은 어느 경우에나 퍽 조심스러워서 몇 주일 동안이나

생각한 끝에 결정을 내렸어요. 이 점에 대해서는 사회 생활이 저 사람

의 꾸밈없는 담백한 성질을 약간 삐뚤어지게 만들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지요.

 특별히 말씀드려두지만 나는 누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절대로 아

닙니다. 그의 정당한 경계심은 물론 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이렇

게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나도 역시 그

렇게 될 것이지만 나는 아무래도 지껄이기를 좋아해서 누구와도 곧 친

해지는 성격이지요.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은 하면서

도 무슨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놓치지 않고 붙잡아버리지요. 프랑스

에서 살고 있을 때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당장 교제를

하지 않고는 도저히 배기지를 못했으니까요. 아니, 당신은 이러한 표

현이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군요. 사실을 말하면 나에게는 미묘한

표현, 일반적으로 고상한 말씨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나 자

신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고쳐지지

가 않아요. 비단 속옷을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발이 더럽다고 하지

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요. 어쨌든 고상한 말은 포플린 천과 같아

서 피부병을 감추고 있는 경우와 너무 비슷해요. 그러나 나는 스스로

를 위로하고 있어요. 요컨대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청결

하지는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네, 물론 진을 좀더 드십시다.

 암스테르담에는 오래 묵을 생각이신가요? 아름다운 도시지요? 매

혹적인 도시라구요? 이것은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소리로군요. 내가

파리를 떠나고 나서 벌써 몇 년이 됩니다. 마음이란 것은 참 잘도 기

억하고 있군요. 저 아름다운 수도, 강둑을 따라 나 있는 길, 무엇 한

가지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파리라는 곳은 정말 허세의 도시, 4백만

명의 환영(幻影)이 살고 있는 기막힌 무대 장치로군요. 네? 최근의

인구 조사로는 5백만 명에 가깝다구요? 그럼 모두들 어린애들만 만

들었군요. 놀라울 것은 없는 일이지요. 나는 말입니다, 언제나 이런

생각이 들곤 하였지요. 우리 파리 시민들이 미치도록 열중하고 있는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사상이요 또 하나는 간통이라구 말입니다.

둘다 무분별하게 좋아하지요. 그러나 그들을 욕하지는 맙시다. 어쩌

면 그들만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요. 전체 유럽 사람들이 다 그런걸요.

이따금씩 나는 후세의 역사가들이 우리들을 두고 뭐라고 할 것인지 상

상하곤 해요. 현대인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면 충분할 거예요. 즉 현

대인은 간통을 하고 신문을 애독하였다고 말입니다. 이렇게 확실히

정의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겠지요.

 그러나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대인과는 아

직도 거리가 멉니다. 저들을 가만히 보세요.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구요? 이곳 사내들은 여자들이 일해서

버는 돈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저 사람들은 남자도 여자도 극히 부르

주아적인 인종으로서 환상에 빠지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하러 이곳에 모

여들지요. 그것은 상상력 과잉이나 상상력 결핍 때문이지요. 남자들

은 때때로 단도(短刀)나 권총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별로 좋아서 그러

는 것은 아니랍니다. 단지 맡은 바 역할이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러

는 것뿐이지요. 마지막 탄환을 쏘아버리고 나면 공포에 질려서 뻗어

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말은 하지만 조금씩조금씩 가족을 등쳐대는

무리보다는 그들 쪽이 훨씬 더 도덕적인 것 같아요. 우리들 사회가 만

들어진 것은 이러한 인간을 처치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없나요? 당신은 물론 브라질의 강물 속에 살고 있다는 그 쬐그만 물

고기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겠지요? 어리석은 인간이 멋도 모르고

수영을 할라치면 떼를 지어 달려들어 그 작은 주둥이로 삽시간에 물어

뜯어 새하얀 해골만 남긴다는 그 물고기 말입니다. 바로 그것이에요,

저들의 사회 조직이라는 것은. `반듯한 생활을 원하십니까? 남들처

럼?` 물론 그렇다고 대답하겠지요. 싫다고는 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좋아요. 그럼 당신을 깨끗이 처분해드리지. 자아, 여기에 직업과 가

족, 그리고 오락이 있소.` 그러고는 작은 이빨이 살을 발라먹고 나아

가서는 뼈까지 먹어치우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말해서는 좀 불공

평하군요. 이것이 그들의 조직이라고 해서는 안 되겠군요. 그들의 조

직이라고 해도 결국은 우리들의 조직과 마찬가지이니까요. 누가 먼저

상대방을 깨끗이 정리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문한 진이 왔습니다. 그럼 당신의 성공을 비는 의미에서

건배를 합시다. 네, 고릴라가 드디어 입을 열고 나를 선생이라고 불렀

지 않습니까? 이 나라에서는 누구한테나 선생이나 아니면 교수님이

라고 부른답니다. 선량하고 조심스러워서 남을 존경할 줄 알기 때문

이죠. 여기서는 적어도 악의가 국가적 기관으로까지는 되어 있지 않

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의사는 아닙니다. 굳이 알고 싶으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에 올 때까지 나는 변호사를 하고 있었습

니다. 지금은 개전한 판사이지요.

 자기 소개를 하는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장 바티스트 크라망이라고

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가까이 뵙게 되어서 정말로 다행입

니다. 당신은 실업가 같은데요? 네, 대충 비슷하다구요? 아, 정말

멋진 대답이십니다! 정당하기도 하고요. 우리들은 매사에 있어서 기

껏해야 비슷한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니까요. 탐정 흉내를 한 가지 내

도 괜찮을는지요? 당신은 나와 거의 비슷한 연배이시고 모든 것을 꿰

뚫어보는 40대의 분별있는 눈초리, 그리고 거의 고급이라고 할 수 있

는 복장 즉 프랑스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복장이고 손은 반질반질합

니다. 즉 부르주아이지요! 그것도 이만저만 세련되지 않은 부르주아

입니다. 그리고 고상한 말씨를 사용하는 등 모든 것이 당신의 교양 정

도를 잘 나타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선 당신은 고상한 말투를 사용

할 줄 알고 그리고 그것은 당신을 퍽 초조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

니다. 다시 말하면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무척 재미있게 바라보고 있

습니다. 제 자랑은 아닙니다만 이것이야말로 당신이 공평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거의, 아니, 이런 것은 아

무래도 좋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직업보다도 그 사람이 어떤 인간

인가 하는 쪽이 더 흥미가 있습니다. 두서너 가지 물어도 괜찮겠습니

까? 혹시 실례라고 생각되시면 대답을 않으셔도 좋습니다. 당신은

재산을 갖고 계십니까? 어느 정도는 갖고 계시다구요? 좋습니다.

그럼 가난한 사람에게 재산을 나누어준 적이 있습니까? 없으시다구

요? 그렇다면 당신은 이른바 사두개 교도이시군요. 성서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가 없다면 이렇게 불러도 당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시겠

지요. 네? 무언가를 느끼신다구요? 그럼 당신은 성서를 잘 아신단

말입니까? 이거 정말로 흥미가 있군요, 당신이라는 분 말입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니, 당신이 판단해 주십시오. 키하며 어깨,

사람들로부터 흔히 야성적이라는 말을 듣는 이 얼굴하며 모든 점으로

미루어보아서 내 풍채는 오히려 럭비 선수 같지 않아요? 그러나 말투

로만 판단하면 나에게도 조금은 세련미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가 없을 테죠. 내 외투에 모피를 제공한 낙타란 놈이 옴을 앓고 있었

던 모양인지 털이 다 닳아빠졌지만 그 대신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어

요.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분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신

의 겉모양에만 끌려서 경솔하게 이런 고백을 하고 있답니다. 결국 아

무리 점잖은 태도를 취하고 고상한 말씨를 사용한다 해도 나는 제지크

의 선원 바에 출입하는 단골 손님에 불과합니다. 뭐, 그 이상 캐고 들

어갈 건 없어요. 내 일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중의 직업을 가지

고 있지요.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개전한 판사입니다. 내 경우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일푼이라는 사실입니다. 네, 옛날에는 아주 부자

였어요. 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무엇 하나도 나누어준 적이 없어요.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나 역시 사두개 교도였다는 것이지

요. 아! 항구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십니까? 오늘 밤에는 쥐데르제

에 안개가 끼겠군요.

 벌써 가시려구요? 이거 너무 오래 붙잡아둔 것 같아서 죄송합

니다. 괜찮으시다면 셈은 내가 치르도록 해주십시오. `멕시코 시티`에

온 이상 당신은 내 손님이고 내가 여기서 대접해드릴 수가 있어서 매

우 기쁩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내일 밤도 반드시 여기에 있을 테

니 청해주신다면 기꺼이 응하겠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시는 길 말입니

까? 가만있자,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 간단하겠군요, 내가 항구까지

바래다 드리면 안 될까요? 거기서 유대인 거리를 우회하면 꽃을 가득

싣고 전차들이 요란스럽게 달리는 아름다운 거리가 나옵니다. 당신의

호텔은 그 중의 하나인 담라크 가에 있어요. 아무쪼록 먼저 나서시지

요. 나 말입니까? 나는 유대인 거리에 살고 있죠. 히틀러를 지지하는

무리들이 그곳을 광장으로 삼을 때까지 그렇게 불리던 곳이랍니다.

얼마나 끔찍한 대청소였는지요! 7만 5천 명의 유대인이 추방되고 학

살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이잡듯이 말입니다. 정말 굉장했지요! 그러

한 근면과 방법적 인내라는 것 말입니다! 사람은 분명한 성격을 가지

지 못했을 때 확실한 방법을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곳

유대인 거리에서는 그 방법이라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승리

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역사상 최대 최악 중의 하나가 저질

러진 곳에 살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고릴라와 그

의 조심스러움을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또 이렇게 남들과 빠르게 공명

하고 마는 성질에 거역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초면의 사람과 만나게

되면 내 내부에서 무엇인가가 경보를 울립니다. `위험하다! 천천히

가라!`고 말입니다. 설사 아무리 강하게 동감을 느낄 만한 경우에도

나는 자신도 모르게 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레지스탕스의 보복 운동이 한창이었을 무렵 고향의 작은 마을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아세요? 한 독일군 장교가 어느 노파를 향해

정중하게 신청을 했지요. "두 아들 중에 어느 한쪽을 총살할 텐데 어

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라고요. 그런 선택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

니까? 형 쪽이냐, 아니 동생 쪽이냐? 그리고 그가 끌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겁니다. 설마 하고 생각하실 테죠? 그러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옛날에 경계심을 잘 갖지 않는 순수

한 마음을 가진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주의자이며 절대 자

유주의자로서 전인류를 사랑하고 동물까지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선

량한 혼(魂), 바로 그 자체인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종교 전쟁 말기에

그는 시골로 은퇴해서 자기네 집 문간에 이렇게 써붙여놓았어요. `아

무나 마음대로 들어오십시오. 환영할 것입니다.`라고요. 이런 훌륭한

초대에 응한 것은 누구였다고 생각하세요? 바로 민병들이었어요. 그

들은 마치 자기들의 집처럼 들어와서는 주인의 창자를 도려내고 말았

어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마담! 아니, 프랑스 말로 했으니 마담에게는

통하지 않았을 테지. 이런 늦은 밤에, 더욱이 며칠째 비가 내리고 있

는데도 이 사람들은 잘도 나다닌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고맙게도

진이란 것이 있군요, 암흑 속의 유일한 광명처럼 말입니다. 당신은 진

을 마시면 몸 안에 금빛이나 구리빛 같은 광채를 느끼지 않습니까?

나는 진의 열기에 감싸여서 밤거리를 걸어다니는 게 좋아요. 노상 꿈

을 꾸거나 아니면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밤새도록 걸

어다니지요. 네, 오늘 밤처럼 말입니다. 내가 너무 떠들어서 좀 성가

시지 않습니까? 그렇지도 않다구요? 이거 고맙습니다, 그렇게 친절

히 말씀하셔서. 정말 속이 꽉 차 있어서 입만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 쏟아져 나오지요. 하긴 이건 이 나라가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셈이지요. 나는 이 네덜란드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보도에서 웅

성거리고 운하와 집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에 끼여서 답답하게 살아가

는 그들 그리고 안개와 싸늘한 땅, 잿물 같은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그들을 사랑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이중적인 존재들이니

까요. 여기에 있으면서 실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암, 그렇구말구요! 축축한 돌이 깔린 길 위를 걷는 무거운 발소리

를 듣거나 금빛을 한 청어며 낙엽 빛깔의 보석 등이 가득 찬 가게들

사이를 우울한 모습으로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마 오늘 밤 그들은

틀림없이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드시겠지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모양이시군요. 이 선량한 사람들은 촌장

과 상인의 종족으로서 돈 계산을 하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기회를

꿈꾸고 유일한 즐거움이란 차양 넓은 모자를 쓰고 이따금씩 해부학 강

의를 듣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요? 그건 틀린 생각입니다. 그들은

우리 곁을 걷고 있어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이 어

디에 있는지를 잘 보십시오. 붉고 푸른 간판에서 내려오는 네온과 진

그리고 박하수의 저 안개 속에 있답니다. 네덜란드는 한갖 꿈입니다.

낮에는 보다 칙칙하고 밤에는 더욱 금빛으로 변하는 황금과 연기의 꿈

이랍니다. 그리고 이 꿈은 밤이나 낮이나 이 사람들과 같은 로엔그린

으로 충만된답니다. 이 로엔그린들은 핸들이 높은 검은 자전거를 불

길한 흑조(黑鳥)처럼 꿈꾸듯이 달리고 운하를 따라 바다의 주위를, 아

니 온 나라 안을 쉬지 않고 빙글빙글 돌아다니고 있어요. 구리빛 구름

에 얼굴을 묻은 채 그들은 몽상에 잠기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고 흡사

몽유병자처럼 안개의 금빛 향기가 감도는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

니다. 그러면 이미 그들은 거기에 없습니다. 수천 킬로나 떨어진 먼

자바 섬을 향해 출발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모든 쇼윈도에 진

열된 인도네시아의 찌푸린 신들을 향해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 우리

들의 머리 위를 방황하고 있는 이 신들은 이윽고 호사스러운 원숭이와

같은 모습으로 간판이나 층계 모양의 지붕으로 내려옵니다. 그러고는

향수에 젖은 식민지 사람들을 향해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단지 상인들

의 유럽만이 아니라 바다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미칠 듯한 행복에 취해

서 죽어가는 저 섬들과 치팡고로 인도하는 바다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

기시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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