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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내 마음 잃지 말고 살아갑시다(1) 여러번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종교가 다르기에 이 글을 읽는분들의 평가가 다르리라 봅

작성자웃고살자|작성시간24.06.03|조회수8 목록 댓글 0

본래 내 마음 잃지 말고 살아갑시다(1)



여러번 수정하여 다시 올립니다.
종교가 다르기에 이 글을  읽는분들의 평가가 다르리라 봅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종교마다 善을 장려하고 惡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한 순간이라도 깨어 있어 각자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실천하여 
스스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글이 길지만 내 마음에 보약이 되는 글은 이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스스로 내 자신을 위해 정독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우리 인생은  오직 한번뿐 입니다.

흐르는 물은 되돌릴수없듯이 오늘 하루 지나면 오늘의 시간을 다시는 되돌릴수 없습니다.
제가 한국 나이로 79세 입니다.
살아갈 세월보다  갈날이 가까워 제 뒤에 오는 인생후배님들에게 유언하는
심정으로 이글을 드립니다.

저번에 한번 올린글이지만 우리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읽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우리 덕화만발 가족 중, "웃고살자"  신일각(범철)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현 시국에 대한 비판의 글을 주로 올리셨는데, 알고 보니 아주 공부가
깊으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최근 올리신 글이 하도 좋아 <본래 내 마음 잃지 말고 살아갑시다>를 2회에 걸쳐
전문을 올립니다.

우리 함께 공부해 보면 좋겠네요.
 
 저 덕산(德山)이 이 글의 끝에 쓴 댓글입니다.
(덕산님은 86세이시고 詩人이시고 수필가이십니다,
대학교수 협의회 회장님이 덕산님을 "스승님"이라고 댓글을 달았더군요.)
 
 「하하하하하하하! 색즉시공공즉시색님! 참으로 공부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저부터 실천하지 못함을 참회합니다>. 
이 서원과 기도와 참회 하는 모습도 감동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덕화만발에서 모셔다가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글만 올리시면 錦上添花일 것 같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덕산(德山)님이 영어로 번역하시고 각국 말로 번역하여 세계인들이
읽을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 합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는 4층입니다. 
밖에 나갈 때나 밖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타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엔 사방이 거울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남을 쳐다보고 인식을 하거나 사물을 눈으로 보고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거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왜 사는지요? 
사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질문인가요? 
왜 밥을 먹습니까? 
살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다시 질문합니다. 
왜 사시는지요?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서 삽니다.
 
 불행하게 살고 싶은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하늘과 땅은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내가 하는 일거 일동을 다 보고 있습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는 내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엘리베이터를 타면 사방이 거울로 되어 있기에, 
내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깨달아야할 일이 엘리베이타 밖에서도 진리의 거울은 내가 순간순간 생활하는 모습을
CCTV가 입력하듯이 그대로 허공에 입력되고 있는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 같은 중생들은 생활속에서 몸과 마음 ,육근(육근 ḍindriya)이란 안(眼, cakṣus) · 이(耳, śrotra) · 비(鼻, ghrāṇa) · 설(舌, jihvā) · 신(身, kāya) · 의(意, )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이 천지가 진리의 거울인줄 모르고 어린아이처럼 아무도 모른줄 알고 생각없이 습관대로 ,본능대로 살고있습니다.

 이처럼 천지는 말이 없지만, 우리 일상 생활하는 삶이 하늘과 땅에 그대로 입력된다는 것을 깨달으시면, 우리 삶이 얼마나 엄숙하고 존엄한지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CC-TV를 보면 순간 순간의 모습이 녹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는 모르지만, 오늘 하루 내가 살아온 모습이 하늘과 땅 ,허공에 그대로 입력되어 있습니다.
즉 우리는 엘리베이터안 거울같이 내 삶 전체가 진리의 거울속에서 살고 있음을 모르고  살고 있는것 입니다.
눈에서 제일 가까운 눈섭을 볼수없듯이 눈으로 보는 사물만 인식했지 우리가 살다보면
눈섶은 있는지 알고 사는 사람 몇분이나 되실까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거울속에 비친 내모습을 볼수 있듯이 엘리베이터 밖에 나가면
나 자신을 볼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은 일상생활에서 내가 하는일을 아무도 모른줄 알고 진리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은 말이 없지만 나의 일거일동이 그대로 天地에 입력이 된다는것을 깨달은분이 몇분이나 될까요?
그렇기에 마음으로 죄 짓지 말고, 몸으로 죄 짓지 말고, 눈·귀·코·혀·몸·마음으로도
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 살아온 내 모습이 CC-TV에 입력되듯이 하늘과 땅, 허공에 입력되는
것을 안다면, 마음 하나하나, 말 한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진리의 거울에 내 모습(마음)을 비춰 보시지요. 
즉 이 세상이 진리의 거울안에서 살고있음을 예수님이나 부처님은 알고 있지만 우리같은 중생들은 말없는 하늘과 땅이  진리의 거울인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양계장에 있을때 느낀 일 입니다.
닭 출하하기 직전 마지막 사료를 줍니다.
몇 시간후면 기름에 틔겨져 통닭신세가 될줄 모르고 닭들은 정신없이 사료만 먹고 있습니다.
닭만 그럴까요?
사람 (나)도 역시  닭 같이 습관적으로 본능대로 살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닭 같이 한달후,일년후,십년후를 알턱이 없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이해관계만 따지고 옳고그름을 따지지 않고 본능(탐욕)대로 살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삶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중생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말한마디를 해도 이말이 상대방에게 유익할까 생각하고 유익한 말이면 하고
유익하지 않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같이 일상생활속에서 짐승과 다르게 항상 깨어있어 몸과 마음,눈,코,입,손,다리(6根)로도 죄를 짓지 말자는 것 입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했는지 성찰 해야 합니다. 
불교 믿는 분들은 오늘 하루 부처님 가르침대로  실천하셨는지요? 
원불교 교도님들은 소태산(少太山) 부처님이 주신 ‘일상 수행의 요법’ 9가지를
실천하셨는지요?

<일상 수행의 요법>이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음이 요란하고, 어리석으며, 그를 때, 정·혜·계(定 慧 戒) 삼학(三學)으로
마음을 안정 시키고, 신·분·의·성(信忿疑誠)으로 불신(不信)과 탐욕(貪慾), 게으름(懶怠), 우치(愚痴)를 제거하며,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자는 것 입니다..
그리고 잘 배울 줄, 가르칠 줄 모르는 사람을 잘 배우고,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며, 공익 심(公益心) 없는 사람을
공익 심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 나를 잃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를 잃고 사는 사람은 껍데기 인생입니다. 
세상을 다 주어도 내가 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허상의 육신을 나로 알고 본래 참 나인 자성(自性)을 잃고사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우리 같은 중생은 내 육신을 나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내 육신이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이 땅에서 숨 쉬고 살아있기 위해 천지(天地)로부터 빌려온 것, 옷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강을 건넌 뒤에는 나룻배는 두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 육신(肉身)도 살아 있을 때는 잠시 천지에서 빌려 사용하고, 이 세상 하직할 때는
원래 모습 그대로 두고 떠납니다.
인생은 일장춘몽( 一場春夢 )입니다.
어리석은 인간은 천 년 만년 살 것같이, 악착스럽게 한 개라도 더 가지려고 혈안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 떠날 때 모두 버리고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행복은 돈이나   물질을 많이 가져야 행복인지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이라 누구나 돈 돈 돈하고 돈을 추구합니다.
돈이 행복인줄 알고 있습니다.
돈만 있다면 우리 삶에서 불편한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행복할까요?
이 세상의 재물(돈)은 일시적입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 즉 돈은 허망한 것입니다.
돈이 없을 때는 기를 쓰고 많이 가지려 하지만, 막상 내 손에 들어오면  99개 가진 사람이 가난한 99명이 가진 1개마져 빼앗아 100개를 채우고 싶어 합니다.
욕심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만족을 모릅니다.
사람이 욕심없는 사람 없습니다.
법정스님은 작은것이라도 만족하는 사람이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가진자일수록 욕심을 채우려하니 이 세상에서 돈이 없는 弱者들이 힘들어 합니다.
우리 인간은 욕심의 노예로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저도 역시 돈에 환장하고 있고 다른분들도 "돈"만 알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이기에 누구나 살아가려면  돈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돈병이 깊이 들어 사람보다 돈을 숭배하는 돈병에 들어 자신이 돈의 노예로
살고있는분들이 많습니다.
즉 내 본래 마음으로 사는 시간보다 돈에 눈이 어두워 돈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옳으냐 그르냐 도덕적인 생활보다 나에게 유리하냐? 손해냐?
분별심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동물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참 나를 잃고 사는 것입니다. 
내 본래 자성(自性), 본 마음을 잃고 살고 있습니다. 
내 본래 편안함 마음, 본심을 잃고 살고 있으면서도 그런 줄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내 육신을 지배하는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이 육신의 본능대로 살고 있습니다.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결심하지만, 내 마음대로 끊지 못하고 담배를 피우고 있고,
아편 중독 자가 아편을 끊으려고 노력하지만, 너무 중독되어 내 마음대로 끊지 못하듯
하지 못하고,알콜 중독자가 건강을 위하여 술을 끊어야지 결심하면서도 중독되어 술을 계속 마시고 있습니다.
대종경에 소를 길들여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탐욕의 노예가 되어 소에게
끌려다니는 불쌍한 중생(衆生)의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 입니다
이 습관이 무서운 것 입니다.

습관에 끌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가 업(業)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대종사님은 예수님같이 이적이 없습니다.
콩 심는데 콩 나고 팥 심는데 팥 나듯이 오직 인과응보의 섭리로 심은대로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어려운 일. 지금 생명이 있는 것도 어려움이요.
세상에 부처 있음도 어려운 일이고, 부처의 법(法)을 듣기도 어렵다. -법구경에서 말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대종사님 만나기도 어려우니 이생에 깨쳐서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대종사님을 항상 마음에 모시고 처처불상,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 공부로 성불제중 제생의세로 내가 부처가 됩시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니고 하나 입니다.

9인 선진님의 사무여한( 死無餘恨) 정신과 인류를 위하여 소신공양의  봉공정신을
체 받아 우리가 정진 합시다.

지금 현재 이순간 나는 罪를 짓고 있나요?(남에게 피해를 주는것)
아니면 남에게 이로운 행동(福을 짓는것)을 하였나요?
항상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단 하루를 살아도 은혜를 깨닫고 감사생활하여 지금 현재 이순간을 웃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이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수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진리 눈을 뜨셨는지요? 
마음 공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우리 더 늦기 전에 마음 공부 수행에 전념하면 어떨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8월 14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창
 


【콩 심은 데에 콩 나고 팥 심은 데에 팥 나듯이, 자연의 섭리는 호리(毫釐)도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내가 하루하루 살며 내가 지은 대로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면, 언젠가 다시 나에게 복(福)이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나만 귀하고 나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 자는 나 잘되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남을 속이고 피해를 주면 언젠가 똑같이 나도 남에게서 피해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눈을 뜹시다. 
내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을 대접 해야 하지요.
 
 왜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복(福)을 짓기보다는 오히려 불행을 끌어들이고 있을까요?
거울을 보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환하게 웃어 보세요. 
내가 먼저 웃어야 거울도 따라 웃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나 혼자는 못산다는 걸 깨닫고, 내 주변 인연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이 세상 모두가 은인(恩人)으로 
보이며, 이 세상 모두가 은혜로 보입니다.

현재 이 순간 행복해야 합니다.
나중에 행복해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일 내일 하다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공기가 있어 내가 숨 쉴 수 있어 공기 님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있어 오늘날까지 살아왔음에 부모님! 감사합니다. 
나 혼자는 못사는데 동포님! 감사합니다. 
법률이 있어 우리가 안녕 질서를 유지할 수 있으니 법률님
! 감사합니다.
감사한 눈으로 이 세상을 보면 모두가 은인이고 부처입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고 만족할 때 참 행복이 오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내 편안한 본래 마음 잃지 않고 하루하루 편안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여러분께서 본래 마음 잃지 말고 감사한 마음으로 언제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짓고 내가 거두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은 행복을 원하면서도 실제 일상생활에서는 환하게 웃으며 밝게 사는 분들이
드물까요?
 나이가 들면 노인들은 꾀죄죄하며, 초라하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돈이 없어도 표정이 밝고 건강하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나는 돈 많은 사람 부럽지 않고 대통령도 부럽지 않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 마음은 하늘과 땅에 부끄럽지 않고, 이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내 마음은 부자입니다.
 
 여러분!
 남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잘 낫건 못 낫건 이 세상에 오직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나를 내가 사랑해야 합니다. 
이 순간 숨 쉬고 살아 있음도 은혜입니다.
어제 가신분들이  그렇게 살고 싶었던날이 오늘 현재 입니다.
하루하루 감사하며 맑고 밝고 훈훈하게 삽시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내가 맛있게 먹어야 합니다.
 
 남 탓하지 말고 내 탓으로 돌리며, 살아있는 날까지 감사하며 환하게 웃고 삽시다.
 나 자신을 위해서 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글이 있지만, 내 영혼에 보약이 되는 글은 많지 않습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가정도 편안해집니다.
천지와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우주(天地)의 氣(일원)와 내가 하나임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남을 도와주면 왠지 기분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天地의 氣가 나와 통하기 때문 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마음이 괴롭고 불안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佛性이 있기 때문 입니다.
天地의 氣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 합니다
즉 일원(0)입니다.
天地와 내가 하나 입니다
미움도 없고 사랑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이 텅 비어서 고요 합니다.
대종사님이 깨치신 일원의 진리는 물과 같아서 모든 만물을 기르면서도 낮은곳에 흘러 갑니다.
이 우주에서 오직 한 사람 뿐인 나 자신을 귀중한 존재로 알고, 내가 부처이며,
예수임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진리도 하나, 인류도 하나, 우리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 우리는 하나 입니다.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여러분! 부디 행복하세요.
 
 이 글을 읽는 님은, 이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귀한 분임을 자각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귀중한 분이 순간 순간 자신을 잃고, 돈의 노예, 욕심의 노예로 살고 있지 않은지 항상 내 본래 마음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전 원불교 교도(敎徒) 입니다. 
우리 원불교 교도는 ‘마음 공부 잘합시다’가 인사입니다. 
항상 깨어 있어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 감사 생활을 했는지, 남에게 유익한 일을 했는지 스스로 마음을 챙기고, 
일상생활에서 경계마다 마음 공부의 기회로 알고 정신 수양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우리 원불교도들은 처처불상(處處佛狀 ) 사사불공(事事拂共)을 실천하려 항상 노력 합니다.
언제, 어느곳이나 부처님 아닌것이 없으니 일상생활에서 부처님 공경하듯이 정성스럽게 공경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것 입니다.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저부터 실천하지 못함을 참회합니다. 
원불교 소태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함을 용서 하소서! 
새벽마다 좌선 하면서 오늘은 부처님 길 가게 하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부처님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 합니다.
‘돈이 있건 없건 누구나 평등하고, 인간 답게 대접 받는 세상, 맑고 밝고 훈훈한 세상이 오게 하소서!】
오늘 하루도 처처불상 사사불공 [處處佛像事事佛供] 무시선무처선 (無時禪無處禪)
공부 부지런하여 성불제중(成佛濟衆)의 큰 서원 이루게 하소서!

 
 어떻습니까? 
우리는 이렇게 진리 눈을 뜨셨는지요? 
공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지요. 
우리 더 늦기 전에 수행에 전념하면 어떨까요!
 
단기 4356년, 불기 2567년, 서기 2023년, 원기 108년 8월 18일
덕 산 김덕권(길호) 합장

 우주의 눈으로 나를 관조해보면  나란 존재는 파도의 물거품처럼 찰나의 인생 입니다.
잠시 지구의 행성에서 살다갈 나그네 입니다
 육신이 영원한줄 알고   육신을 참 나로 알고 나(我)란 감옥에 갇혀 고해(苦海)에 헤매이다가 빈손으로 가는것이 인생 입니다.
육신의 병은 일시적 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떠한 불행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하늘에 구름이 지나가듯 눈에 보이는 세상일은 항상 변화 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병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육신의 병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실상 육신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크고 무서운것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할줄 모르고 원망하는 마음병에 걸렸습니다.
잘되면 내탓이고 잘 안되면 모두 남 탓으로 돌립니다.
동물과 같이 은혜를 모르고 고마운줄 모릅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도 지금 이순간까지 내가 살아갈수있기 까지 부모님,친구,스승,동포님이 없었다면 불가능 합니다.
천지님이 없었다면 내가 숨쉬고 살아갈수 있을가요?
농사짓는 분이 없었다면 내가 밥을 먹고 살수 있을가요?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일용할 양식을 구할수있습니다.
하지만 농산품은 공산품같이 공장에서 생산하듯 무한정 생산할수 없습니다.
오직 논밭에서 봄,여름,가을 농민의 땀 흘린 댓가 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살수있음도 농민이 있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농사짓는분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는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살아갈수 있음도 누군가 땀 흘린 분들이 있기 때문 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이기에 근로자들의 땀흘린 고마움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기계같이 생산도구로 전락한지 오래 입니다.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동학의 창시자 최재우님은 인내천,즉 사람이 하늘이라고 하셨습니다.
원불교 창사자이신 대종사  님은 일찌기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인류에게 가르치십니다.
모든 물질은 오직 사람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돈도 사람에게 행복하기 위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은 돈이 주인이 되고 사람은 돈의 노예로 전락 했습니다.
탐욕의 인간들이 사람보다 돈을 숭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 모두 돈을 벌기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돈 때문에 부모형제를 죽이고 남편과 아내를 죽이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고 생활이  풍족해졌지만 인심은 메마르고 삶은 각박해졌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물질을 사용하는 인간들이 인간에게 유익하게 사용핳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 하는데 오히려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여 스스로 고통의 바다에서 
평생 허덕이는것을 안타까워하셔서 소태산 대종사님이 원불교를 창시하게 되었습니다.
대종사님은 해와 달 같이 너무 높은분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교도님 한분 한분이 잘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직 나를 위해서 지금도 눈물 흘리고 계십니다.
내가 9가지 일상생활 수행의 길 실천하여 부처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대종사님의 은혜를 깨달아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실천 합시다.
내가 먼저 부처님이 되어 대종사님의 은혜에 보답 합시다.
처처불상,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의 공부로 우리 회상의 참 주인이 됩시다.
항상 깨어있어 대종사님을 마음 속에 모시고 부처의 길을 갑시다.
남을 위하여 노력하는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우선 내 자신을 구하고 나부터 살립시다.
내가 행복해야 내 주위도 행복의 바이러스를 전파할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날까지 罪를 안 짓고 福을 짓고 산다면 그 福이 어디가겠습니까?
심은대로 거두는것이 인과응보의 섭리 입니다
나부터 부처되고 보살 됩시다.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나부터 실천하고 나부터 변하여 일원 세상의 참 주인이 됩시다.
내가 변해야 세상도 변하는 것 입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 됩니다.
지금 이순간 감사하고 은혜를 깨달아 보은 생활 합시다.
감사의 안경으로 세상을 보면 온 세상이 은혜로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같이 원망하며 살지말고 언제나 감사생활하며 보은하는 부처의 삶을 살아 갑시다.
대종사님의 소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되는것 입니다
대종사님은 지구도 하나, 진리도 하나,인류도 한가족,일가 친척이라고 모두 한형제라고 평화를 기원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전쟁으로 지금도 수십만명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한것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존재해야할 종교마저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것 입니다.
기독교의 십지군 전쟁이 증거 입니다.
성전이라는 속임으로 살생을 당연시하는 기독교의 만행은 인류의 양심에 어긋 납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하나인줄 모르고 서로가 만져본곳만 진짜 코끼리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 때문 입니다.
대종사님은 집을 지을때도 서까래도 필요하고 흙과 나무도 필요하듯이 이세상 많은 종교도 방편은 다르지만 목표는 하나라고 이 세상 모든 종교도 다 포용 합니다.
이 세상 모든것을 은혜로 보는 감사의 종교,이세상 모두를 은인으로 보는 원불교사상이야말로 물방울같이 이세상 모든 만물을 살릴수 있습니다.
내가 남을 부처님같이 공경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적대시하겠습니까?
벌이 꽃을 찾아 수정해주고 벌은 꽃에서 꿀을 얻듯이 서로 상생 합니다.
우리 인간도 서로 상생 해야 합니다.
인류가 1초에 1억의 전쟁비용을 쓴 답니다.
녹색연합에서  '모두를 위협하는 군사비, 1초에 1억 너무 많아! 이렇게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위험 합니다.
현재  개발한 핵만 가지고도 이 지구를 몇10배 파괴할수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머리맡에 화약을 놓고 잠을자고 있습니다.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사람을 죽이는 독(毒)이 만들어 지고 
젖소가 마시면 사람에게 유익한 젖이 나오듯이 돈도 악(惡)한 사람에게 가면 이 돈이
어려운 사람의 돈을  피뽑아 가듯 흡혈귀같이 빨아 갑니다.
놀부같이 99개 가진사람이 가난한사람 99명이 가지고 있는 한개마저 빼앗아 100개를 
채우려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 착한 사람에게 돈이 있다면 경주 최부자같이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어 여러 사람을 구휼 합니다.
이래서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것 입니다.
일체 유심조( 一切 唯心造)이지요
이 세상 사람 모두가 부처가 되어 고해에서 벗어나 참으로 극락에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를 서원하고 계십니다.
나도 대종사님의 큰 서원을 가슴에 안고 날마다 부처의 공부와 실행으로 부처가 됩시다.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이신 대종사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대종사님의 가르침이신 9가지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하면 나도 부처가 될수있음을 믿고 순간 순간
깨어있어 실천에 최선을 다 합시다.
이 글을 읽는 교도님 한분 한분이 대종사님의 분신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수행의 요법 9가지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여 내가 부처님 닮아가 봅시다.
하루 24시간 자나 깨나 대종사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고 삽시다.
대종사님의 은혜를 깨닫고 대종사님께 보은하는 삶을 살아 갑시다.
저의 좌우명 입니다.
감사 생활 내가 먼저
웃는 얼굴 내가 먼저
보은 생활 내가 먼저.
구술도 꿰어야 보배 입니다.
실천없는 삶은 열매 없는 꽃
첫째도 실천.둘째도 실천 입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해서 잠을 못자고 괴로운 경험은 누구나 있습니다.
몇년전 국제 마음훈련원 교육때 남궁원장님이 "그럴수도 있지"이렇게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마음 상처 받지 않는다고 말씀 하셔서 그땐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의미 심장한 지혜의 말씀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럴수도 있지"마음 한번 돌려서 서로가 
상처받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군산교당 覺山     申一覺  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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