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마을유적 발굴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 평탄 충적대지에서 2천년 전 대규모 마을유적이 발굴됐다. 이곳에서는 평면 呂ㆍ凸자형 주거지가 무려 65곳이 군집을 이룬 채 확인됐다. 사진은 이들 주거지 출토 각종 토기류.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2010-03-25
2천년 전 마을유적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 평탄 충적대지에서 2천년 전 대규모 마을유적이 발굴됐다. 이곳에서는 평면 呂ㆍ凸자형 주거지가 무려 65곳이 군집을 이룬 채 확인됐다. 사진은 17호 주거지.
2천년 전 마을유적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 평탄 충적대지에서 2천년 전 대규모 마을유적이 발굴됐다. 이곳에서는 평면 呂ㆍ凸자형 주거지가 무려 65곳이 군집을 이룬 채 확인됐다. 사진은 34호 주거지.
고구려 석실분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에서 확인된 고구려 횡혈식석실분. 사진은 석실 내부 유물 출토 모습.
고구려 석실분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에서 확인된 고구려 횡혈식석실분. 사진은 8호 석실분. 2010-03-25
민통선 임진강변서 2000년전 마을유적 발굴
군남홍수조절지 예정지, 고구려 석실분 9기
민통선 안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사업 예정지에서 2천년 전 대규모 마을유적과 고구려 석실분이 무리를 지어 발굴됐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모)은 한국수자원공사 의뢰로 지난해 3월 이후 현재까지 군남홍수조절지 수몰 예정지에 포함된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일원 임진강변 평탄 충적지대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4기와 초기 삼국시대 주거지 74기, 고구려 석실분 9기 및 경작 유구와 수혈 유구(성격 미상의 구덩이) 131기 등 총 218기에 달하는 각종 유구(遺構)를 확인했다고 25일 말했다.
이 중 한강과 임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서력기원 전후 무렵 한반도 중부지방 일대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평면 呂ㆍ凸자형 주거지가 무려 65곳이 확인됨으로써 당시 이곳에는 대규모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나아가 이들 呂ㆍ凸자형 주거지 대부분에서는 여타 지역 같은 유형의 주거지에서와 마찬가지로 한쪽 벽면을 따라 'ㄱ'자형 구들 시설이 드러나고, 벽체 및 지붕시설까지 불타 내려앉은 채로 고스란히 확인됐다.
27호라고 명명한 주거지는 길이 20.6m, 너비 9.7m, 깊이 0.99m에 이르러 지금까지 발견된 呂자형 주거지로는 초대형급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유물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양대 토기류인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를 비롯해 철도자(칼), 철부(도끼) 등이 있다.
조사단은 "마을 규모와 입지로 볼 때 이 일대는 초기삼국시대 임진강 유역 세력의 거점마을로 추정되어 경기북부지역 초기역사 연구에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고구려 전통이 강한 삼국시대 석실분(石室墳)은 구릉지대 3개 구역으로 나누어 각각 3기씩 군집을 이루는 형태로 발견됐다. 이들 석실분은 바깥에서 무덤 내부로 통하는 길을 석실 전면 오른쪽으로 치우친 지점에 마련한 이른바 우편재 횡혈식(右偏在橫穴式)이며, 석실은 대부분 장방형에 규모는 대략 길이, 너비, 높이 각각 2.5m×1.4cm×1.98cm 안팎으로 나타났다.
묘실 벽면은 깬돌을 이용해 비교적 정연하게 쌓아 올렸으며, 무덤길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안쪽 묘실에서부터 외부를 향해 약간의 오름 경사식으로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고분에서는 관정(널에 쓴 쇠못)과 관고리(목관에 단 고리)가 수습됐다. 이 중 8호 석실분에서는 남쪽 벽에 가까운 석실 바닥에서 겉면이 반질반질하고 검은색을 띠는 항아리형 토기인 흑색마연호(黑色磨硏壺) 1점과 금제구슬, 유리제구슬, 은제팔찌 1쌍이 출토됐고, 2호 석실분에서는 금제구슬, 유리제구슬, 은제팔찌, 철제품 등이 수습됐다.
조사단은 출토유물 중 관고리가 백제 문화권에서는 보이지 않는 반면, 고구려 지역에서만 보이는 형태로, 원형인 고리에 화판형(꽃술 형태) 좌판으로 구성된 점이라든가, 고분이 강변 구릉지를 따라 몇 기씩 무리를 지은 점 등으로 볼 때, "고구려 석실분이 확실하며, 만든 시기는 빠르면 5세기 후반 무렵으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들 석실분은 고분 하나에 두 사람씩 매장된 것으로 보아 부부를 함께 묻은 묘로 추정되며, 나란히 조성된 각 3기의 고분은 가족 또는 가까운 혈연관계의 무덤군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조사단은 말했다.
아울러 조사단은 "이번 발굴성과는 고구려 장수왕(재위 413~491)의 지속적인 남진정책에 따라 임진강 유역이 일정기간 동안 고구려의 실효적인 지배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강력한 증거"라면서 "만약 임진강유역이 고구려의 남진을 위한 군사기지 기능만을 했다면 귀족계층의 고분이 9기나 축조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남한 지역에서 고구려, 혹은 고구려계 석실분은 용인 보정리와 판교 신도시에서 최근 확인된 적이 있다. 2010-03-25
수몰위기 군남댐 고구려고분 어쩌나
2천년전 마을유적 포함, 보존문제 대두
지난해 북한에 의한 임진강 무단방류는 무고한 야영객 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 일은 마침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 임진강에 건설 중인 군남홍수조절지(이하 군남댐) 건설사업 자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애초 2011년 5월30일로 예정된 군남댐 완공시점이 오는 6월로 훨씬 앞당겨진 것이다. 공기 단축은 군남댐 수몰 예정지 주변에 대한 고고학 발굴현장 풍경도 확 바꿨다. 당초 공기대로라면 영하 20도는 보통이요, 체감 온도 30도까지 떨어지곤 하는 겨울에는 발굴을 3개월 정도 쉬는 게 정상이지만, ’비닐하우스 발굴’로 돌입해 어떻게 해서든 올해 상반기 내로는 발굴을 끝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고려문화재연구원(원장 김병모)이 25일 언론에 공개한 군남댐 수몰예정지 발굴현장은 이곳 발굴이 얼마나 다급한 것이었는지를 증명하듯, 거대한 발굴현장 거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비닐하우스로 덮여 있었다. 발굴단 귀띔으로는 비닐하우스 설치에만 7억원 정도가 소요됐다. 고려문화재연구원이 담당한 지역 전체 고고학 발굴비용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라고 한다.
통상 고고학 발굴현장은 지도위원, 혹은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먼저 현장을 점검한 다음,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 있지만, 이곳 군남댐 현장은 그 순서를 바꾸어 언론에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이건무 문화재청장도 이날 오전 일찍 현장을 다녀갔다. 정부 측에서도 군남댐 발굴을 예의주시한다는 것이다. 발굴조사는 종료를 향해 치닫는 시점에 도달했지만, 더 큰 난제가 나타났다. 발굴된 유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큰 고민에 봉착한 것이다.
그저 그렇고 그런 유적이라면, 발굴 완료와 함께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유물을 수거해 발굴단이 현장에서 철수하면 그만이지만, 23일 언론에 공개된 발굴현장은 그런 ’처리방식’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
평면 凸자형ㆍ呂자형 주거지 70여 기가 다닥다닥 붙은 채 드러난 2천년 전 마을유적 현장과 그 인근 지역 고구려계 석실고분 9기는 단순히 현장에 놓아둔 채 수몰시키는 방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유적임을 각인시켰다.
凸자형ㆍ呂자형 주거지는 그 대부분이 화재를 만나 건물 전체가 폭삭 내려앉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대체로 주거지 동쪽 벽면을 따라 북쪽 벽면까지 ’ㄱ’자형으로 꺾이는 부엌 아궁이와 온돌시설이 완벽한 것은 물론이요, 벽면을 따라, 그리고 지붕에서 그대로 내려앉은 나무기둥이 탄화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이 중 27호라고 명명한 凸자형 주거지는 길이 20.6m에 너비 9.7m에 이르는 초대형으로, 내부 면적은 50~60평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단에서는 “지금으로 치면 맨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장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당초 예정대로라면 이런 주거지 유적들은 발굴조사와 더불어 모두 수장될 운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번 유적이 수몰예정지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만수위 때나 잠깐 잠길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날 언론 공개회에 참여한 한 고고학자는 “저런 주거지 유적은 아무리 보호조치를 취해 현장에 그대로 둔다고 해도 일단 물이 한 번 들어가면 완전히 훼손되어 흔적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유 장관과 이 청장을 수행한 문화재청 엄승용 문화재정책국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유적들은 보존하겠다”고 했지만 “보존 방법은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일단은 아무리 군남댐 건설이 국가 중점 정책이라고도 해도, 2천년 전 마을유적, 나아가 고구려 고분을 ’수장’(水葬)하는 방식은 피할 것으로 예측된다. 군남댐 유적은 그 운명이 일차적으로는 다음달 2일로 예정된 발굴설명회와 문화재위원회, 그리고 문화재청의 의지에 따라 정해질 전망이다. 2010.03.25
민통선 내 임진강변서 대규모 고구려 유적 발견
경기 연천군 강내리의 민통선 내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건설 예정지에서 2000년 전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 74곳 등 마을 유적과 5세기경 고구려 귀족들의 고분 9곳이 발굴됐다. 이 지역을 발굴하는 고려문화재연구원은 25일 발굴설명회를 갖고 현장과 유물을 공개했다. 위 사진은 초기 철기 주거지. 아래 사진은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못과 관고리, 유리구슬 등. 연천 2010-03-26
고구려 고분 9기 연천서 첫 무더기 발굴
부부 매장 등 3기씩 군집 이뤄 혈연관계로 추정
금제구슬과 유리구슬, 은제팔찌 등이 출토된 8호 고구려 횡혈식 석실묘 전경. /문화재청
임진강 군남홍수조절지 공사로 수몰예정인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내리에서 5~6세기 고구려 귀족집단의 고분군인 횡혈식 석실묘(橫穴式石室墓·굴식돌방무덤) 9기가 확인됐다. 고구려 석실묘는 지금까지 남한 지역의 경우 경기 판교와 용인 보정동, 화성 청계리, 연천 신답리, 충북 충주 두정리 등지에서 2~3기 씩 총 10여기가 발견됐을 뿐이며 이번처럼 9기가 한꺼번에 조사된 것은 처음이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단법인 고려문화재연구원은 지난 2009년 3월15일부터 연천 강내리 일대를 발굴조사한 결과 고구려 횡혈식 석실묘 9기와 삼한시대 대규모 마을유적의 존재를 입증하는 주거지 74기 등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발굴의 최대 성과는 삼한시대 주거지 옆 구릉부에 3개의 구역으로 나눠져 각 3기씩 군집을 이루며 조성된 고구려 고분군. 조사결과 횡혈식 석실묘로 한 고분에 부부로 추정되는 두 사람씩 매장됐으며 나란히 조성된 각 3기의 고분은 가족 또는 가까운 혈연관계로 보인다고 조사단은 밝혔다.
석실 내부에서는 흑색마연항아리와 금제구슬, 유리구슬, 은제팔찌 등의 부장품과 관못·관고리 등이 출토됐는데 금제품과 유리구슬은 남한 지역 고구려 고분에서 나온 사례가 드물다. 소상영 고려문화재연구원 조사부장은 “최소 한 세대(30년)는 지나야 고분군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고구려 장수왕(재위 413~491)의 남진정책에 따라 임진강 유역이 최소 한 세대 이상 고구려의 실효적인 지배 아래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임진강 유역이 고구려의 남진을 위한 군사기지(보루성 등)의 기능만 수행했다면 귀족계층의 고분이 9기나 축조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조사단의 견해다. 한편 삼한시대 여(呂)·철(凸)자형 주거지 65기와 방형·장방형 주거지 9기에서는 내부시설로 ‘ㄱ’자형 구들과 ‘一’자형 부뚜막, 화덕자리, 기둥구멍 등이 확인됐으며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쇠칼, 쇠도끼 등의 유물이 출토됐다. /최영창 201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