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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고려 역대 왕..

작성자라이프114|작성시간09.08.31|조회수1,340 목록 댓글 0

⊙ 고려 현종(顯宗) 992~1031

 


고려 제8대 왕(재위 1010~1031), 휘(諱)는 詢, 자는 안세(安世), 시호는 원문(元文),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안종(安宗) 욱(郁)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경종의 둘째 비(妃)인 헌정왕후(獻貞王后)(孝肅太后)이다 비는 성종의 두 딸 원정왕후(元貞王后)와 원화왕후(元和王后), 시중(侍中) 안산김씨 김은부(金殷傅)의 딸 원성왕후(元成王后), 대종의 손녀 원용왕후(元容王后)이다 1009년 서북면도순검사(西北面都巡檢使) 강조(康兆)의 옹립으로 왕위에 올랐다 이 해에 강조가 목종을 살해한데 대하여 문책한다는 구실로 거란의 성종(聖宗)이 쳐들어오자 참패하고 친조(親朝)할 것을 조건으로 화의가 성립되어 거란군은 물러갔으나


끝내 친조를 하지 않았다고 또 6성을 요구해 온 것도 거절하였다 1018년(현종9)거란의 장군 소배압(蕭排押)이 6성을 빼앗고자 침입 했으나 강감찬의 활약으로 물리쳤다 다음해 부터 거란과 국교를 열어 평화정책으로 일관하여 우호관계를 회복하고 모든사치와 호화로운 의식. 제도를 폐지하고 승려의 횡포를 엄금하는 한편 기민(飢民)의 구제에 만전을 가하였다    능은 개성의 선릉(宣陵)이다

 

 

북한 개성 교외 만수산 기슭 언덕에 있는 고려 8대 임금 현종의 선릉. 병풍석이 묻힌 채 민묘처럼 퇴락한 무덤을 훼손된 석물들이 쓸쓸히 지키고 서 있다. 무덤 바로 앞에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다. 장경희 교수 제공

 

 

⊙ 고려 덕종(德宗) 1016~1034

 


고려의 제9대 왕(재위 1031~1034), 자는 원량(元良), 이름은 흠(欽), 시호는 경강(敬康), 현종(顯宗)의 장자(長子), 모후(母后)는 원성태후(元成太后) 안산김씨 1022년(현종13) 태자로 책봉 즉위한뒤에 거란(渠丹)에 억류된 고려인 송환을 요구했으나 거란의 반대로 하정사(賀正使)를 중지 하였으므로 삭주(朔州). 영인진(寧仁鎭). 파천(派川)과 동북(東北)의 여진(女眞)이 대립하고 있어 이 양 적을 방어 하기 위하여 평장사(平章事) 류소(柳韶)에게 명해서 압록강 어구로 부터 영원(永遠)등14성을 거쳐 동해안의 도련포(都連浦)에 이르는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축성하게 하자


동여진인(東女眞人)과 거란인들의 투항이 속출하였다 천리장성은 규모가 매우 웅대하여 길이 천리와 높이와폭이 각각 25측의 석축(石築)이었다 전략무기를 창안하여 새로운 병기를 만들었고 덕종 즉위년에 국자감시(國子監試)를 비로소 시행하여 부(賦)와 시(詩)로써 인재를 등용했다 현종때 시작한 국사 편찬사업을 완성하였으며 능은 개성의 숙릉(肅陵)이다

 

⊙ 고려 정종(靖宗) 1018~1046

 


고려 제10대 왕(재위 1035~1046), 휘(諱)는 형(亨), 자는 신조(申照), 시호는 용혜(容惠), 현종(顯宗)의 둘째아들이며 덕종(德宗)의 동생, 어머니는 원성왕후(元成王后) 안산김씨 비(妃)는 용신왕후(容信王后) 한씨(韓氏), 용의왕후(容懿王后) 한씨 용목왕후(容穆王后) 이씨 1027년(현종18)개부의동삼사 . 검교태사 겸 내사령이 되었다 34년(덕종3)즉위하여 명주성(溟州城)을 수축 다음해에는 북계(北界) 송령(松嶺) 동쪽장성을 수축 하였으며 또 창주(昌州 :平北昌成)에도 성을 쌓았다 36년(정종2) 각 도(道)의 양전(量田)을 다시 실시하고 여러 위(衛)의 군인중 경전(耕田)이 부족한 자에게는 공전(公田)을 더주었다


이후 북방 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1044년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완성시켰다 또 같은해 예성강(禮成江)의 병선(兵船)180척으로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운반하여 서북계 주진(州鎭)의 창고에 보관케 하는등 국방정책에 힘을 기울렸다 이듬해 비서성(秘書省)으로 하여금 예기정의(禮記正義) 모시정의(毛詩正義)등을 간행하게 하였고 46년 장자상속법(長子相續法)과 적서(嫡庶)의

구별을 법으로 정하였다

 

⊙ 고려 문종(文宗) 1019~1083

 


고려 제11대 왕(재위 1046~1083), 초명(初名)은 서(緖), 후에 휘(徽)로 개명, 자는 촉유(燭幽), 현종(顯宗)의 세째아들로 어머니는 원혜태후(元惠太后) 안산김씨 처음에 낙랑군(樂浪君)에 책봉되었으며 정종(靖宗) 때에 내사령(內史令)에 임명되었다 나중에는 정종의 뒤를 이어 고려의 제11대왕으로 즉위 하였으며 고려시대 중에서도 가장 찬란한 문화 황금기(文化黃金期)를 이룩하였다 한편 문종은 왕자 후(煦)를 출가(出家)시켜 승려가 되게 하였으니 그가 곧 대각국사 의천(義天)이다 문종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儒學)도 함께 장려하여 최충의 구재(九齋)를 비롯한12도(徒)의 사학(私學)을진흥 시켰다


문종은 특히 중국 송(宋)나라와 친선을 도모하여 선진문화(先進文化)의 수입에 힘썼다 이와같은 여러가지 현명한 정책이 차차 큰효과를 나타내어 문종의 치세(治世)에는 고려의 문화도 찬란한 빛을 발휘하게 되었다 문종은 인재 등용에도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적재를 적소에 배치했기 때문에 제도의 개혁 빈민의 구휼(救恤)등에도 큰 치적을 올렸다 학문을 좋아 하고 서도(書道)에도 뛰어났으며 능은 경능(景陵)이다

 

 

판문군 선적리에 있는 11대 문종(재위 1046~1083)의 경릉. 12도의 사학을 진흥시켰고 송나라와 국교를 열었던 왕이다. 능역이던 무덤 앞은 논밭으로 변했다.

 

원성태후(元成太后)

시대 고려

생몰년 ?-1028(현종19)

본관 안산김(安山金)

시호 광선(廣宣)

활동분야 왕비


원성태후(元成太后)에 대하여   원성태후(元成太后)

?∼1028(현종 19). 고려 제8대왕인 현종의 제3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시중을 지낸 은부(殷傅)의 딸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1010년(현종 1)에 거란병이 내침하자 왕은 나주로 피난하였다가 적병이 물러가자 왕궁으로 귀환하던 중 공주에 묵게 되었다.

이때 절도사인 은부는 왕을 영접하고, 그 딸로 하여금 어의를 지어드리게 하고, 편안히 모시게 하였다. 왕은 이를 맞아들여 연경원주(延慶院主)로 삼았다. 정종을 낳은 뒤 궁주(宮主)가 되고 얼마 뒤에 왕비로 봉하여졌다.

한편, 왕비의 두 자매도 함께 맞아들여 비로 삼았다. 세 자매가 함께 한 왕의 왕비가 된 예는 이것이 처음이며, 광종 때 왕실족내혼이 이루어진 이래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다.

현종과의 사이에 덕종·정종의 두 아들과 인평왕후(仁平王后)와 경숙공주(景肅公主)를 두었다.

시호는 원성왕후이고 명릉(明陵)에 장사하였으며 현종 묘실에 합장하였다. 덕종 즉위 후에 왕태후로 추존하였고, 뒤에 용의(容懿)·공혜(恭惠), 1056년(문종 10)에 영목(英穆), 뒤에 양덕(良德)·신절(信節)·순성(順聖), 1140

년(인종 18)에 자성(慈聖), 1253년(고종 40)에 광선(廣宣)의 시호가 거듭 추증되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 閥族에 관한 硏究(黃雲龍, 親學社, 1978). 〈鄭容淑〉


원혜태후(元惠太后)

시대 고려

생몰년 미상

본관 안산김(安山金)

활동분야

왕비

 

원혜태후(元惠太后)에 대하여

원혜태후(元惠太后)

생몰년 미상. 고려 현종의 제4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아버지는 시중이었던 은부(殷傅)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원성태후(元成太后)와 원평왕후(元平王后)와는 자매간이다.

1010년(현종 1)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로 피난하였던 현종이 왕궁으로 귀환도중 공주에 들렀을 때 납비되었다. 이것은 그동안 왕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혼인이 귀족가문으로 확대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현종과의 사이에 문종·평양공 기(平壤公基)·효사왕후(孝思王后)를 낳았다. 문종은 고려 제11대왕이 되고, 그뒤 고려왕통은 문종의 후손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그리고 평양공 기의 후손은 대대로 왕실 공주와 계속적인 혼인관계를 맺는 집안으로 고정되었다.

처음에 안복궁주(安福宮主)라 칭하였다가 연덕(延德)으로 개칭하였고 사후에 원혜의 시호가 추증되었다. 능호는 회릉(懷陵)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閥族에 관한 硏究(黃雲龍, 親學社, 1978). 〈鄭容淑〉


1025년에 왕비로 추봉되고 1027년에 평경(平敬)의 시호를 내렸으며 문종이 즉위한 뒤에 태후로 추존되었다.


원평왕후 김씨(元平王后 金氏) 

생몰년 미상. 고려 현종의 제7비.

안산김씨(安山金氏)로 아버지는 시중을 지낸 은부(殷傅)이며, 어머니는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에 추증된 이허겸(李許謙)의 딸이다.

현종의 제3비 원성태후(元成太后)와 제4비 원혜태후(元惠太后)와는 자매간이다.

거란의 침입으로 나주까지 피난하였던 현종이 왕궁으로 귀환하던 도중 공주지방에 들렀을 때 납비(納妣)된 언니들을 따라 왕비가 되었다. 현종과의 사이에 효경공주(孝敬公主)를낳았다. 1028년(현종 19)에 원평왕후로 추증되었으며, 능호는 의릉(宜陵)이다.


인평왕후

생몰년 미상. 고려 제11대 문종의 제1비. 고려 제8대왕인 현종의 딸로 어머니는 현종비인 원성태후(元成太后) 김씨(金氏)이다. 문종의 모후인 원혜태후(元惠太后)와는 자매간이다.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이 혼인은 친계로는 남매간 혼인이며, 모계로는 이종4촌간이 된다. 고려시대에 이와같은 근친혼은 태조가 어머니를 달리하는 그의 자녀를 혼인시키면서 비롯되었으며 이후 왕실혼의 한 특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복남매간의 극단적 근친혼은 광종·덕종·문종의 사례가 있을 뿐 그다지 많지는 않다. 왕자들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근친혼의 사례가 있으며, 그런 경우 왕실 내부의 반대를 받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도 문종과 인평왕후와의 혼인은 모계 4촌이라는 면에서 종래의 혼인보다도 특이한 경우이다. 이는 현종이 김은부(金殷傅)의 세 자매를 모두 왕비로 맞고 거기에서 낳은 자녀를 서로 결혼시킨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왕실내의 단결을 강화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高麗史

≪참고문헌≫ 高麗初期 婚姻政策의 추이와 王室 族內婚의 성립(鄭容淑, 韓國學報 37, 1984)

 

 

 현종 (왕순, 22년)

 
천추태후의 자객에도 여러차례 살아남은 현종은 강조의 옹립으로 18세에 등극하는데,
거란의 침입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강감찬-귀주대첩).
현종의 할머니는 신성왕후 김씨로 경순왕의 큰아버지인 김억렴의 딸로 경순왕 사촌누이이다.
현종의 어머니는 헌정왕후로 성종과 천추태후의 동생이다.
경종의 왕후였으나 경종이 사망한 뒤 사가에 나가 홀로 지내다가 삼촌인 안종을 만나 정을 통해 임신하게 된다.
이 일로 성종은 안종을 유배보냈고, 헌정왕후는 현종을 출산하고 산고로 사망하였다.
 

(1) 원정왕후 : 성종의 딸로 문화왕후 성을 따라 김씨로 하였다. 1010년 거란이 침입하자 임신한 몸이라
                     외가가 있는 선산으로 피했고 왕은 나주로 피난했다.
(2) 원화왕후 : 성종의 딸로 낙랑군대부인 성을 따라 최씨로 하였다. 거란 침입시 나주로 피난하였다.
(3) 원성태후 : 안산 김씨로 시중을 지낸 김은부의 딸이다. 현종이 나주로 피난하였다가 귀환하던 중
                     공주에 묵게 되고 원성태후가 어의를 지어 드리고 편안히 모시었다. 김은부의 세자매가
                     (원혜태후, 원평왕후) 모두 왕비가 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며 광종 때 왕실족내혼이
                     이루어진 이래 새로운 양상이다.
(4) 원혜태후 : 김은부의 딸로 이것은 왕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혼인이 귀족가문으로 확대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아들 문종은 11대왕이 되고 그 뒤 고려 왕통은 문종의 후손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5) 원용왕후 : 태조의 친손자인 경장태자의 딸로 할머니 선의왕후를 따라 유씨라 하였다.
                     경장태자는 현종의 생모인 헌정왕후와는 남매간이다.
(6) 원목왕후 : 993년 거란이 침입하였을 때 이를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의 손녀이며 내시령이었던
                     서눌의 딸이다. 현종은 태조 이래 가장 많은 13인의 비빈을 두었고 그 중에는
                     귀족가문의 타성도 다수 있었다. 광종 이래 새로운 혼인관계로 귀족과의 연결을 통하여
                      왕실의 고립을 막고 많은 자녀를 두어 왕족을 번성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7) 원평왕후 : 김은부의 딸
(8) 원순숙비 김씨 : 김인위의 딸로 덕종의 1비가 된 경성왕후를 낳았다

 

 

 

 

숭의전 내부 중앙의 고려 태조 위패 및 영정입니다 

 

아래 숭의전 내부 우측의 고려 현종 위패 입니다

 

 

아래 숭의전 내부 좌측의 원종, 문종 위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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