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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사

그때를 아십니까..

작성자더드미|작성시간09.10.04|조회수501 목록 댓글 0

1950년대 6.25전쟁 직후..

 

 

 방과후 아이들..

  

줄넘기..

 

2004-08 /새벽안택상

 

 

1969년 만화에 빠진 동심


사진=송호창 2011-04-22

 

 

 

“뻥이오∼” 대포소리 같던 뻥튀기 소리

 

 

1957년 한강舟橋… 물결따라 출렁 한강의 첫 보행교

1917년 완공된 제1한강교(현 한강대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군이 후퇴하며 폭파한 후 1957년 1월 보수공사를 시작해 1958년 5월에 공사를 완료했습니다. 보수공사 기간동안 제1한강교 옆에 작은 배다리가 생겼습니다. 사진은 서울시민들이 1957년 11월30일 개통된 한강주교(舟橋)를 이용해 강을 건너는 모습입니다.


미군이 돈을 대고, 육군 공병대가 공사를 맡은 이 주교는 한강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보행교입니다. 당시에는 많이 불편했겠지만 물결에 따라 출렁대는 배다리를 밟고, 한강을 건너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운치가 느껴집니다.  사진=김천길 전 AP통신 글=김구철 2012-10-16

 

 

 

끊어진 한강다리. 1953.01.01

끊어진 한강 인도교. 1954년

 

 

 

 

 

한강 인도교 옆에 임시로 놓인 부교를 건너 피난을 떠나는 서울 시민들 - 1951년 4월 29일


한강 철교 옆에 놓인 부교를 건너는 피난민들 - 1951년 5월

 

한강대교 복구 준공식에 참석한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 운집한 시민들- 1958년 5월 16일


그때 그시절..
‘단맛보다 추억’… 엿장수의 가위질 소리 그립네요


‘짤깍 짤깍’ 엿장수(고물수집행상)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가 나면 동네 아이들이 골목 어귀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즘처럼 과자가 흔하지 않던 1950년대에는 엿이 최고의 간식이었습니다. 엿장수 아저씨는 빈병, 헌책, 찌그러진 양재기, 깨진 그릇 등 쓸모없는 폐품을 달콤한 엿으로 바꿔줬죠.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들을 엿장수에게 갖다 주면 비슷한 양이라도 가위로 쳐서 잘라주는 엿가락의 양이 달랐습니다. 아저씨가 기분이 좋으면 길다랗게 쳐줬고, 때로는 야박하게 엿을 주기도 했습니다.

엿장수의 가위는 무디고 날이 어긋나 가위 본연의 자르는 기능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구수한 소리로 고달픈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줬죠. 사진=김천길 글=김구철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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