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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생활

중랑천 조선시대 ‘살곶이다리’ 발굴조사

작성자더드미|작성시간09.12.01|조회수433 목록 댓글 0

중랑천 ‘살곶이다리’ 발굴조사
성동구, 하부구조 유물 확인뒤 보수 계획


 조선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긴 중랑천 살곶이 다리의 하부 구조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다. 위 사진은 조선 말기 순종 때 살곶이 다리의 모습이며, 아래는 현재의 모습. /서울시 

현존하는 조선시대 다리 가운데 가장 긴 중랑천의 ‘살곶이다리’가 발굴·조사된다. 조선 성종 14년(1483년)에 완성된 살곶이다리는 길이 76m로, 1967년 사적 제160호로 지정됐다.

서울 성동구는 청계천과 중랑천이 만나는, 지금의 행당동과 성수동 경계에 있는 ‘살곶이다리’의 정확한 규모와 구조 등을 파악하기 위해 하천 바닥에 묻혀 있는 유물 등을 확인하는 발굴조사를 벌인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발굴작업을 맡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문헌을 통한 사전조사를 거쳐 1~1.5 m 가량의 하천 퇴적층을 걷어내 유물이나 유구를 찾아내고, 교각의 하부 구조를 조사할 계획이다.

‘살곶이’라는 지명은 상왕인 태조가 태종과 갈등을 겪을 때, 태조가 겨눈 화살이 태종이 있던 그늘막의 기둥에 꽂혔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졌다. 교각은 4개씩 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 안쪽 2개의 기둥 높이를 약간 낮춰서 다리의 무게중심을 중앙에 두었다. 교각의 위쪽은 가로대를 하나 놓고, 그 위에 긴 석재로 틀을 짜고 사이에 판석을 깔아서 마치 마루처럼 평평한 바닥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평평한 다리라는 뜻으로 제반교(濟盤橋)라고 불리기도 했다. 다리 상부에는 광통교나 수표교와 달리 난간 장식을 하지 않았다.

1920년 홍수로 다리의 일부가 유실된 것을 1972년 보수했다. 보수 당시 하천 폭이 넓어져 짧아진 다리 남단을 콘크리트로 연결했다. 김영미 성동구 문화공보체육과 팀장은 “사적으로 지정할 당시 다리 외부에 대해 조사했지만 하부 구조에 대한 발굴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화재청과 협의해 복원 방향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도성 안팎에는 조선 말기까지만 해도 수십개의 돌다리들이 놓여 있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궁궐 안에 있는 것을 제외하면 광통교, 수표교, 살곶이다리뿐이다. /윤영미 2009-12-01

 


 

1919년 3월 중랑천을 건너는 고종의 대여. 

 

 

 

 

 

 1926년 6월 10일 순종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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