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멍에를 메어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멍에를 메라고 하시니 선뜻 내키지 않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명에를 메고 나를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명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그러나 당시의 이스라엘에서는 여러 마리의 소를 함께 부려 밭을 갈았기 때문에 당신께서도 함께 멍에를 지시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내가 멜 멍에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멍에라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 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정서적, 심리적 부담이나 계약을 나타내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합니다.
잠깐 ‘머칵 원숭이의 연민에 대한 실험결과’ 예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원숭이를 두 부류의 우리에 넣고, 한 우리의 원숭이가 버튼을 누르면 적은 양의 음식이 나오고, 다른 쪽을 누르면 많은 양의 음식이 나오도록 했다. 머칵은 다른 우리에도 다른 원숭이를 넣는다. 그리고 많은 음식이 나오는 버튼을 누를 때 마다 옆 우리의 원숭이는 전기 충격을 받게 했다. 그러자 아주 빨리 처음 원숭이는 많은 양이 나오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적은 양을 만족해했다. 동료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자신의 행동을 억제해갔다. 이렇듯 원숭이가 많은 사람들보다 더 큰 인간적 연민을 보여 주고 있었다.
또 하나는 ‘미켈란젤로와 스승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켈란젤로는 기억하지만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스승을 기억하는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가 14살 때, 보톨도의 문하생이 되려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스승은 어린 미켈란젤로를 테스트해 보았고, 그의 놀라운 재능을 본 보톨도는 이렇게 묻습니다. "너는 위대한 조각가가 되고 싶으냐?"에 “네, 스승님”하며 답을 했다. 그렇다면 “위대한 조각가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에 ”저의 재능과 기술을 더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한다. 스승은 기술만으로는 안 된다며, 네 기술을 무엇에 쓸 것인가를 먼저 분명하게 결정을 해야 된다며 어린 미켈란젤로를 데리고 두 군데를 구경시켜 주었다.
처음은 술집이었다. 스승은, 술집 입구에 아름다운 조각은 아름답지만 조각가는 술집만을 위해서 사용한 다라고 말한다. 다음은 손을 잡고 거대한 성당으로 갔다. 그리고 성당의 입구에 세워진 아름다운 조각상을 보여줍니다. 너는 이 아름다운 천사의 조각상이냐, 아니면 술집 입구의 흥행과 쾌락을 위해 세워진 조각상이 마음에 드느냐? 너는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하여 쓰기를 원하느냐 묻는다. 어린 미켈란젤로는 세 번씩 대답했다.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쓰겠습니다.“ 스승은 그래 그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네 재능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재능을 누구를 위해 쓴다는 것이다.(2019년 2월17일. 실로암 요양원 주보에)
우리는 스스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하면서 그 책임감, 부담감, 일의 성취여부에 대한 초조감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일들이 내 뜻과 노력만으로 되지 않음에도 모두가 내게 달린 듯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분은 당신의 멍에를 지라고 하시면서 일은 당신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일의 진행, 성공과 실패 등 모든 것은 당신의 몫이며, 우리는 당신의 일을 당신가함께 해야 할 뿐이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께서 하셔야 할 몫은 주님께 맡기고, 그분의 멍에를 메는 것이 오직 우리의 몫이라 믿고 따를 때,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 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