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성악가 요나스 카우프만이 부르는 <카르멘> 2막에 나오는 "꽃노래"
* 조르주 비제
[비제와 오페라 ‘카르멘’]
1875년 3월 3일,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Carmen>이 파리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는 유명 예술가들이 가득했습니다. 작곡가 들리브, 구노, 뱅상 댕디, 오펜바흐, 마스네뿐만 아니라 알렉상드르 뒤마 2세 같은 문인들도 이 공연을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비제는 재능이 뛰어난 신인 작곡가에게 주는 ‘로마 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에 유학한 바 있고, <닥터 미라클>,<진주잡이>,<페르트의 아름다운 처녀>,<자밀레> 등의 오페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특별히 눈에 뛸만한 걸작이 없었기 때문에 이 작품 <카르멘>에 특별히 공을 들이고 정성을 쏟았지요.
하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었습니다. 평론가들에게서는 대단한 찬사를 얻었지만, 일반 관객들의 반응은 차거웠습니다. 대음악가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찬탄을 보내며 공연을 20회나 관람했다고 합니다.
*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
철학자 니체는 “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이라고 말하며 <카르멘>을 극찬했습니다. 역시 독일 음악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답니다.
“만일 그대가 관현악법을 공부하고 싶다면 <카르멘>의 악보를 읽어라.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어쩌면 음표 하나하나가 그렇게 꼭 필요한 곳에 적혀 있는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처럼 당대의 대가들에게 찬탄을 받은 이 오페라가 대체 왜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을까요?
가장 큰 이유로 주로 거론되는 것은 카르멘이라는 여주인공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었습니다. 대체로 청순가련형인 이탈리아 오페라의 소프라노 여주인공들과는 달리 이 메조소프라노 여주인공은 전통적인 여성의 이미지와 도덕을 뛰어넘는 인물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드센 성격의 주인공이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당시 파리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은 가족이 함께 공연 나들이를 하거나 맞선을 보는 데 주로 사용되는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집시라는 하층민이 떼거지로 등장해 밀수를 하고, 점을 치고,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치정살인으로 끝나는 오페라를 봐야 하니, 관객은 심기가 영 편할 리가 없었겠지요.
특히 초연 때 카르멘 역을 맡은 가수 셀레스틴 갈리 마리의 관능적이고 공격적인 연기는 관객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카르멘은 극의 성격상 당연히 그래야 하는데도, 당시의 관객은 이런 여주인공에게 전혀 익숙할 수가 없었던 게지요. 사실 소설가 메리메의 원작 <카르멘>에 비하면, 오페라 속 카르멘은 훨씬 순화된 캐릭터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인식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이 오페라가 인기를 얻게되는 매력적인 요소로 하나하나 자리바꿈하는 아이러니가 됩니다.<카르멘>은 초연 이후 작곡가의 의도를 이헤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점점 인기를 얻게 됩니다.결국 초연 이후 30년이 지난 1904년에는 파리에서만도 상연 1천회를 돌파하기에 이릅니다.
[세비야의 집시이자 최하층 노동자 계급의 여자 카르멘]
집시라는 이름의 집단은 유럽에서 유태인보다도 더 심하게 천대와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의 하나입니다. 본래 서남 아시아에 살던 인도 아랍계 유랑민족인 이들은 살던 땅에서 내몰린 뒤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이들 집시는 어느 나라에서든 사회에서 정상적인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법적 사회적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남들이 하지 않으려는 맨 밑바닥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도둑질, 암거래, 밀수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끝없이 도피, 유랑생활을 지속하게 됐다고 합니다.
* 당시 세비야의 담배공장의 근로자들
* 현재는 세비야 대학인 당시 담배공장 건물
신대륙을 정복하고 나서 남미의 원주민들에게서 담배를 들여와 맛을 알게된 유럽인들은 유럽 곳곳에도 대규모의 담배공장을 지었는데, 이중 오페라 <카르멘>의 배경이 된 1820년경 스페인 남쪽의 세비야 담배공장 노동환경의 열악함이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통풍이 되지 않는 작업장 안에 5백 명쯤 되는 여자들이 빽빽히 들어앉아 담뱃잎을 말았습니다. 이 당시 담배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란 신분 면에서나 보수 면에서나 최하층 노동자에 속했는데, 이들 대부분이 안달루시아 지역의 집시들이었고, 카르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주요 등장 인물]
카르멘 집시 메조소프라노
돈 호세 하사 테너
에스카미요 투우사 베이스 또는 바리톤
미카엘라 시골 처녀,돈 호세의 약혼녀 소프라노
[카르멘 줄거리]
* 1막
보수적이고 순진하기도 한 바스크 지방 출신의 하사 돈 호세는 아바네라를 부르며 자신에게 꽃을 던져준 카르멘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맙니다. 어머니 뜻대로 얌전하고 착한 고향 처녀 미카엘라와 결혼하려고 마음먹어 보지만 도저히 카르멘을 마음에서 몰아내지 못하죠. 그때 담배공장 여공들끼리 싸움판이 벌어지고, 카르멘이 폭행죄로 체포됩니다. 그러나 카르멘은 호송 책임을 맡은 호세를 스페인 춤곡 ‘세기디야’로 유혹해 도주하는 데 성공합니다.
* 2막
무대는 파스티아의 술집입니다. 다른 집시들과 함께 카르멘은 ‘집시들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노래는 느리고 나른하게 시작했다가 템포가 점점 빨라져 나중에는 플라멩코의 ‘두엔데(duende: 강렬한 춤을 통해 영혼의 폭발을 체험하는 순간)’를 연상시키는 열정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때 이 술집에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자신의 숭배자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투우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출옥한 호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서정적인 아리아 ‘꽃노래’로 카르멘에게 절절한 심정을 전합니다. 그러나 카르멘을 찾아 온 자신의 상관과 싸움을 벌이게 된 호세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집시들과 함께 밀수의 길을 떠납니다.
* <카르멘>의 한 장면
* 3막
유랑 생활과 범법자 신세에 불안과 회의를 느끼게 된 호세는 가책에 시달리고, 카르멘은 호세가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한편 카르멘에게 반한 투우사 에스카미요는 집시들이 머무르고 있는 산 속까지 찾아와 카르멘을 투우장에 초대하고, 미카엘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이라는 투명한 아리아를 부르며 이곳까지 찾아와 호세에게 ‘어머니가 위독하시다’고 전합니다. 질투와 원망과 증오로 마음이 일그러진 호세는 카르멘을 위협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 4막
4막 도입부에 나오는 투우장의 합창이 울려 퍼지면서 등장하는 투우사들의 입장은 활력과 색채감이 넘치는 장면입니다. 카르멘은 투우장에 입장하는 에스카미요와 사랑을 확인합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마치고 투우장에 찾아온 호세는 카르멘에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애원하다가, 카르멘의 차가운 거절에 이성을 잃고 카르멘을 칼로 찔러 죽입니다.
이 오페라 여주인공 카르멘의 독특한 매력은 관객을 사로잡는 불같은 정열과 넘치는 에너지 뿐만 아니라 깊은 절망과 허무에 있습니다. 카르멘이 죽음을 무릅쓰고 지키려 했던 것은 결국 투우사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아니라 집시의 유일한 재산인 자유였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