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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명곡을 들으며 찾아가는 세계명작의 고향(제1회)-하이네의 시 <로렐라이>,프리드리히 질러의 곡<로렐라이>를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4.08.20|조회수970 목록 댓글 2

* 독일가수 군터 에멀리히가 라인강 배위에서 부르는 <로렐라이>, 아래 글을 읽으시기 전에 화면을

   끝까지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선상에서 노래를 부르는 노가수의 모습이 근사합니다.

 

 

 

새 시리즈를 시작하며

  

 

예고 드린대로 오늘부터 [명곡을 들으며 찾아가는 세계명작의 고향]을 연재합니다. 그야말로 음악과 문학의 환상적인 만남이 시작됩니다.

 

 

오늘 게재하는 <로렐라이>같은 경우에는 음악이 작품과 딱 맞아 떨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제가 임의적으로 분위기에 맞는 곡을 골라 올리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명곡이라 함은 클라식이 위주가 되겠으나 필요하면 영화음악이나 현지 민요 등도 동원하려고 합니다.

 

 

 

 

이름 아름다운 세계적인 위대한 시인, 작가들은 어느 지붕 밑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누구나 한 번씩은 읽게 되는 세계문학전집 속의 명작들은 그 무대가 어느 하늘 아래를 그린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작가 자신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 우리는 이제 그길을 떠납니다.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의 큰 문학은 향토문학(鄕土文學)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가 애독했던 세계문학전집 속의 작품들은 거의가 작가들의 고향이 무대가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어릴 때 추억, 도시에서보다는 조그만 시골마을에서의 추억이 세계문학을 키운 토양(土壤)이었던 것입니다.

 

 

 

이 글은 오래 전 한국일보 주불 특파원이었던 김성우 대기자님의 <컬러기행  세계문학전집>을 주로 참고로 했음을 밝혀 둡니다.

 

 

 

[ 하이네의 로렐라이 ]

 

 

라인 강은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스위스, 독일, 프랑스, 네델란드 땅을 지나 북해로 흘러드는 유럽의 대동맥입니다. 전장(全長) 1,320km의 이 대하(大河)는 독일 서부의 라인란트에서 독일 경제를 부흥시킨 흑강(黑江)이 되지만 중류의 라인 협곡에서는 유럽에서 손꼽는 경승(景勝)의 아름다운 강이 됩니다.

 

 

 * 라인강

 

 

마인츠에서 쾰른까지의 로맨틱 가도라 부르는 강류(江流)를 선유하면 괴테와 빅토르 위고와 바이런이 예찬한 절경이 나옵니다. 깎아지른 절벽들과 언덕의 포도밭들, 혈암(頁岩)의 암산 위에 솟은 뾰족뾰족한 지붕의 고성(古城)들과 교회의 하얀 탑들, 그리고 흰 벽에 검은 지붕의 민가들...,

 

 

 

강물은 로렐라이에 이르러 급히 여울지면서 꺾어 돌아나갑다. 여기가 로맨틱 가도 중에서도 압권의 명소입니다. 로렐라이는 라인 강변에 솟은 높이 132m의 암벽입니다. 강가에 <LORELEI>라고 커다랗게 쓰여있어 놓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 로렐라이 언덕

 

 

 

 

육로로 가자면 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를 타서 잔크트 고아르하우젠에서 내립니다. 여기서 로렐라이 꼭대기까지 4km. 자동차 길이 나 있습니다. 로렐라이의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협곡을 굽이굽이 도는 강은 이 절벽 앞에서 폭이 좁아집니다.

 

 

물살은 세고 수심은 깊습니다. 여기서는 강폭이 180m, 수류(水流)는 시속 7m. 로렐라이는 고래로 암초와 급류 때문에 배들이 위험한 곳으로 유명하여 19세기 때까지만 해도 지나가는 뱃사람들은 반드시 기도를 올렸다는 난소(難所)입니다.

 

 

게다가 좁은 산협(山峽)이라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가 커서 이것이 유령의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로렐라이 전설을 낳게됩니다. 1825년 처음 증기선이 다니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은 석탄,시멘트 등을 실은 화물선들이 수시로 오르내립니다. 하루 평균 220척이 지나다닌다고 합니다.

 

 

 

 * 유장하게 흐르는 라인강

 

 

 

강가에는 암벽을 돌아가며 강변도로가 나 있고 로렐라이의 허리를 관통하고 터널이 뚫려 전철이 지나갑니다.

 

 

 

로렐라이 바위 위의 고대(高臺)는 포도밭이요, 밀밭입니다. <아우트 데어 로렐라이>(로렐라이 위에)라는 이름의 산장 호텔 하나만이 빈 마루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이네의 시에 나오는 금발의 미녀 <로렐라이>가 앉았던 자리쯤에는 하얀 석상이 서 있습니다. 호텔측에서 만들어 세운 로렐라이 상(像)입니다.

 

 

 * 로렐라이 석상

 

 

 

하이네는 뒤셀도르프 태생입니다. 하이네가 "나의 요람이 있었던 라인 강"이라고 말했듯이 뒤셀도르프는 라인 강변의 도시입니다. 하이네의 <로렐라이>는 그가 26세 때인 1823년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이네 이전에도 로렐라이를 읊은 시는 1801년에 나온 클레멘스 브렌타노의 <로렐라이 민요>와 1815년에 쓴 아이헨도르프의 <숲 이야기>가 있었죠. 1821년에는 뢰벤이라는 사람이 쓴 <로렐라이-라인 강의 설화>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하이네가 로렐라이의 전설을 읽은 것이 바로 이 책에서였습니다.

 

 

뢰벤이 쓴 책의 전설에 따르면 로렐라이는 아름다운 마녀였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로렐라이는 분풀이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다 죽이기로 했습니다. 밤이 되면 달빛 아래 하얀 옷을 입고 바위 위에 나가 앉아 어깨까지 늘어진 금발의 머리를 금빗으로 빗으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 라인강변 포도밭

 

 

 

 

뱃사람들은 이 소리에 홀려 넋을 잃고 마녀를 바라보다가 배가 암초에 부딪쳐 물에 빠져 죽곤 했습니다. 팔라티나테라라는 궁전에 살던 로날트라는 용감한 젊은이가 이 마녀를 잡겠다고 나섰다가 역시 익사하자 그의 아버지는 4명의 전사를 보내 로렐라이를 잡아 오게 했습니다.

 

 

전사들이 가까이 다가갔을 때 로렐라이는 라인 강에게 구원을 청했고 가은 큰 파도를 일으켜 마녀를 안아갔습니다. 그 후로 마녀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나 그녀의 신비스런 노래는 이따끔씩 들렸다고 합니다.

 

 

 

 * 로맨틱 가도의 소도시

 

 

 

이 전설을 하이네가 민요풍으로 읊은 것이 바로 <로렐라이>인 것이죠.

 

 

하이네는 1816년 은행원 견습생으로 함부르크에 갔을 때 숙부의 집에 있으면서 사촌누이인 아말리에를 사랑했고 이어 그의 동생 테레제를 좋아했으나 둘 다 실연에 그치고 맙니다. 사랑을 못이룬 한 난파(難破)한 젊은이의 원(怨)과 미련이 <로렐라이>의 시가 되었습니다.

 

 

<로렐라이>의 시에 붙인 프리드리히 질러의 곡은 하이네 생존 중에 작곡된 것이었습니다. 하이네가 파리에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쾰른에 사는 한 가수가 찾아와 이 노래를 불러 위로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 로맨틱 가도의 소도시

 

 

 

뒤셀도르프의 하이네 기념관에는 하이네가 친필로 쓴 시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파리에 살던 한 출판업자의 청에 의해 하이네가 1838년에 써 준 것이었습니다.

 

 

<로렐라이>는 시집 <노래의 책>에 나오는 것이지만 이 시가 처음 발표되기는 1828년 베를린에서 나온 월간지 <게젤샤프트> 지상(紙上)이었고 기념관에서는 이 잡지를 볼 수 있습니다. 기념관에는 이밖에도 하이네의 육필원고가 5천장 가량이나 보관되어 있습니다.

 

 

부모가 유태인이던 하이네는 비록 사후였지만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심한 박해를 받아야만 했지요. 그가 죽은 지 77년 후 그의 책은 분서(焚書)되고 이름은 지워졌습니다. <로렐라이>는 그 후로도 계속해서 불리워졌으나 작자미상으로였습니다.

 

 

 

 * 하이네 생가

 

 

 

독일에서 하이네의 이름이 다시 살아난 것은 1955년에 와서였습니다. 1963년 뒤셀도르프의 한 거리가 하이네의 이름을 붙인 이래 현재 독일에는 150개의 하이네 가(街)가 생겨 났습니다.

 

 

뒤셀도르프 시(市)는 1972년 하이네 상(賞)을 제정했고 시의회는 뒤셀도르프 대학을 하이네 대학으로 개명하기로 했으며 나치 때 동상을 철거해 버린 함부르크 시에서는 당시의 동상을 그대로 다시 세웠습니다.

 

 

뒤셀도르프의 하이네 생가는 2차대전 때 무너진 것을 다시 세워 지금은 1백년 전통을 가진 빵집이 들어 있습니다.

 

 

 

 * 하이네 생가

 

 

 

<프랑스인의 머리에 독일인의 마음을 가졌던 시인> 하이네는 후반생의 25년을 파리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살던 아파트 건물은 샹젤리제 대로로 올라가는 입구인 롱 포엥 네거리 부근의 번화가에 남아 있지만 눈여겨 보고 지나가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신 그의 유언에 따라 묻힌 몽마르트르 공동묘지의 무덤에는 춘희(椿姬)의 무덤과 함께 찾아오는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합니다.

 

 

 

 * 하이네 기념관

 

 

 

 

[ 하인리히 하이네 ]

 

 

 

 

 

 

"옛날부터 전해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 속에 그립게도 또다시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아래 고요한 라인 강 저녁 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하인리히 하이네(1797-1856)의 <로렐라이>는 시집 <노래의 책>의 2번째에 나오는 24행짜리 시입니다. 프리드리히 질허의 곡으로 애창되어 널리 알려져 있죠.

 

 

 

 * 함부르크의 하이네 동상

 

 

 

<로렐라이>외에도 많은 시들이 슈만,슈베르트에 의하여 작곡된 <노래의 책>에는 하이네의 청춘시대의 서정시들을 모은 것으로 두 사촌누이들에 대한 비련이 기조(基調)가 되어 애절하고 아름다운 가편(佳篇)이 많습니다.

 

 

청년 독일파의 대표적 시인인 하이네는 독일의 제국주의에 항거하다 프랑스에 7월 혁명이 일어나자 1831년 파리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평생을 마쳤습니다.

 

 

 

 

 * 파리 몽마르트 묘지의 하이네 묘지

 

 

 

 

* 독일 어린이 합창단이 부르는 <로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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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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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돌쇠 | 작성시간 14.08.22 고지찬님! 좋은 음악자료 올리느라 수고많습니다. 로렐라이 노래를 오랫만에 들으니 옛 중학시설 음악시간에 열심히 따라부르던 기억이 새록 떠오르네요. 또 현대근무시절 독일 출장으로 잠깐 로랠라이 언덕을 방문한 기억도 좋은추억으로 갖고 있습니다. 계속 좋은 음악 올리세요. -원길중-
  • 작성자블라디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8.22 댓글 고마워요, 처음에는 독일,프랑스,이태리,영국 작가들의 고향을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그 다음에는 러시아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갈려고 해요. 그럭저럭 60편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좋은 음악 선곡하는데 많은 조언들 부탁해요. 가급적 쉽고 재미
    있게 쓰려고 합니다. 어부인들도 함께 일독하시면 부부간의 대화도 더욱 돈독해지면서
    금실도 좋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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