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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잠시 쉬어가며...오늘의 중국을 있게한 대장정(大長征) 이야기,대장정 80주년 기념 특집드라마 <십송홍군 2014>의 주제곡을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5.09.28|조회수1,646 목록 댓글 0


* 홍군 대장정 80주년 특집 드라마 <십송홍군 2014> 엔딩 영상과 함께 흐르는 주제곡



[ 중국의 역사를 바꾼 대장정 ]



* 아아 루딩교!! 대장정 중 가장 드라마틱했던 루딩교 도하 장면

  루딩교는 사천성 동남부에 있는 진사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였습니다 







대장정이란 1만 5,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중국 공산군(홍군(紅軍))의 역사적 대행군(1934~1935)을 말합니다. 이 결과 공산당의 혁명 근거지가 중국 동남부에서 서북부로 옮겨졌으며 모택동이 확고부동한 지도자로 부상하였습니다.



홍군은 추격해 오는 장개석의 국민당 군과 계속 싸우면서 18개의 산맥을 넘고 24개의 강을 건너 서북 지방의 섬서성에 도달하였습니다. 중국의 많은 청년들은 장정이라는 영웅적인 투쟁에 자극을 받아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초에 걸쳐 공산당에 가담하였습니다.



* 대장정 길(빨간색은 우리나라 대장정 취재팀의 답사길이며 같이 붙어있는 파란색이 진짜

  대장정 길입니다)





* 아주 단순하게 표시한 대장정

  



처음 강서성에서 출발 할때 86,000명이었는데 1년 후에 섬서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7,000명만 살아 남았고 이중 4,000명만 출발 때의 멤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공산당 지부가 있었는데 그 곳 지도자 중의  한사람이 바로 현재 중국 시진핑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이었습니다.



시중쉰은 이 때문에 모함을 받으면서 문화혁명 때 핍박을 받았으나 나중에 등소평이 복권시키고 중용했습니다. 그 아들이 바로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 시진핑인 것입니다.



* 대장정 출발지의 유적지






[ 대장정의 의의 ]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인류역사상 전대 미문의 대사건 중 하나로 손꼽히는 대장정(大長征)!





80년 전 중공의 붉은 군대(紅軍)는 장개석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기약없는 도피길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년 후 그들은 온갖 역경을 다 이겨 내고 장장 2만 5천 리(약 1만km)에 이르는 실로 영웅적인 대장정의 전설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서 살아남은 모택동,주은래,주덕,팽덕회,유소기,섭영진,등소평 등이 바로 오늘의 중국을 만든 인물군인 것입니다. 이 역사적인 대사건은 그 후 이들이 주도가 된 중국 공산당으로 하여금 대역전극을 펼치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 루딩교 전투 장면






대장정은 한마디로 중국 홍군의 남녀 병사들의 의지와 용기, 그리고 힘을 시험한 위대한 인간 서사시였습니다.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행군'도 아니었고 군사 작전도 아니었으며 하나의 위대한 승리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 생존의 대승리였으며 장개석군의 포위망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려는 결정적이고도 끝없는 퇴각일 뿐이었습니다.



패배와 전멸의 위험이 숨 돌릴 틈도 없이 거듭된 싸움이었습니다. 대장정은 아무런 계획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모택동은 애초부터 그 준비 과정에서 제외되었으며 대장정이 시작된 즈음에야 겨우 통보만 받았을 뿐이었습니다.



* 오늘날의 루딩교






그러나 결국에 가서 모택동과 공산주의자들에게 중국을 안겨준 것은 바로 이 대장정이었습니다. 20세기의 사건 중 그처럼 강렬하게 세계인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사건은 없었으며 그토록 중국의 미래에 영향을 끼친 사건도 없었습니다.



[ 보다 상세한 대장정 이야기 ]



1934년 10울 15일 밤, 중국 남부 장시(강서)에서 약 8만명의 남자와 35명의 여자들이 길을 나섰습니다. 이들은 공상당 지도부가 결정한 ‘작전상 후퇴’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겉보기에는 도망자 행렬이나 다름없었습니다.



* 대장정 길의 유적지 중의 하나






이들이 바로 368일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믿기 힘든 행군을 해낸 중국 홍군이었던 것입니다. 총 9,654km, 그것도 지구상에서 가장 험난한 지역을 발로 걸었습니다. 산 열여덟 개를 넘었고, 강 열여덟 개를 건넜으며 험하디 험한 초지와 늪지대를 가로 질렀습니다.



게다가 장개석이 지휘하는 국민당군의 끊임없는 추격과 기습, 간단없는 폭격과 그리고 허기와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하루 평균 26km를 행군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장정의 마지막 도착지인 옌안에 도착했을 때에는 장시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는 고작 4,000명에 불과 했습니다.



*대장정 유적지(사천성 설산)






그러나 뒷날 많은 역사가들은 이 행군을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대장정이라는 밑거름 때문에 오늘날의 중국이 이룩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바로 세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이지요.



이 행군이 이토록 위대한 사건으로 기록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장정을 거치는 동안 살아남은 자보다 죽은 자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대장정은 고난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또 그 이야기에 감동 받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강한 사명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수많은 이들이 혁명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겁니다.



* 섬서성 도착지의 유적지 기념탑






모택동이 “대장정은 열한 개 성, 2억에 달하는 인민들에게 홍군이 걷는 길만이 해방을 향한 유일한 길임을 알리는 일이었다. 대장정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렇게 빨리 홍군이 이루려는 위대한 진리가 무엇인지 인민들에게 알릴 수 있었겠는가?”라고 평가했듯이, 대장정은 중국 공산당이 인민을 만나고, 온몸으로 설득하고, 끝내는 인민의 지지를 끌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국민당의 장개석의 군대는 수많은 농민들이 처한 현실을 방치한 채 공산당을 섬멸하는 일에 전력을 쏟았습니다. 무려 9십만 명의 친위대와 3백여대의 폭격기를 가진 막강한 군대를 두고도, 그것을 수많은 인민들을 학살하는 데 동원했습니다.



공산당을 섬멸한다며 다섯 차례에 걸쳐 ‘포위 토벌’ 작전을 펼치는 동안, 군대가 지나가는 지역은 철저히 파괴되었습니다. 집, 농작물, 가축, 심지어 사람들까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농민들이 홍군 유격대들에게 도움을 줄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참으로 험난했던 대장정 길






국민당 기관지는 국민당 군대가 장시 소비에트(장시에 있던 홍군 기지)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백만에 달하는 인민들이 살해당하거나 굶어 죽었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홍군을 만나기 전까지 농민들은, 군대하면 으레 약탈과 살인, 간음과 방화를 연상할 정도였습니다.




* 대장정 유적지 중의 하나(사천성)




그러나 공산당은 적어도 이 점에서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대장정 기간 동안 중국공산당은 홍군에게 다음과 같은 행동 지침을 전달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1. 공손하게 말하라

2. 인민들에게 바늘 한 개, 실 한오라기도 빼앗지 말라

3. 물건을 살 때는 제값을 받아라

4. 밀린 것은 꼭 갚아라

5. 피해를 끼친 것은 반드시 보상하라

6. 사람을 때리거나 말을 함부로 하지 말라

7. 농작물을 망치지 말라

8. 부녀자를 회롱하지 말라

9. 포로를 학대하지 말라



* 홍군이 건넜던 다리 중의 하나






이 원칙은 나중에 홍군이 장개석군을 패배시키고 대만으로 쫓아내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할 때까지 지켜졌습니다. 그러니까 모택동이 이끄는 홍군은 중국의 민심을 얻은 반면에 장개석군은 철저하게 민심을 잃어버리면서 패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국민당군의 이루 말도 할 수 없는 부패는 더욱 이를 부채질 했습니다.





대장정은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는 한국인들이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장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오늘날의 중국과 중국 인민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 쭌이 회의, 구이저우 성의 쭌이에서 홍군은 대토론을 거쳐 그제서야 모택동을 홍군 지도자로 선택합니다.

   왼쪽에서 세번째가 모택동, 그 오른쪽이 수염을 기른 주은래, 이 연필화(이하 동)는 제가 끄적거린 겁니다






[ 사족(蛇足) ]



모택동의 홍군이 국공내전에서 민심을 얻으면서 장개석군을 대만으로 쫓아내면서 중국 통일을 이룬 역사적 대업은 그들로서는 칭송받아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한국전쟁시 중공군이 모택동의 독단으로 참전하면서 우리의 통일이 물 건너가게 된 것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또한 중국인들에게도 모택동이 벌인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인하여 수천만명의 인민이 죽어 나간 것도 정말로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 대장정길의 모택동과 주은래, 당시 주은래는 관운장처럼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이제 돌고 돌아 현재 우리는 중국과의 교역규모가 1위를 차지하고 있어 감히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을 정도에 이르렀고, 또한 좌충우돌하는 지구촌의 망나니인 북한의 목덜미를 꽉 틀어쥐고 있는 것도 중국이라면 우리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더우기 일본의 극우 보수들이 아베를 앞장세워 우리와 중국의 신경을 시도 때도없이 긁어대는 이때 중국과 우리는 더욱 가까운 이웃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절실한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도 오늘날의 중국을 있게 한 대장정의 이해가 우리들에게 간절히 요구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끝으로 역사의 가정은 무의미한  일이지만, 장개석이 자체 부패를 척결하고 민심을 잃지 않으면서 월등한 군사력으로 홍군에 패배를 안겨주면서 중국을 통일했다면, 한반도는 일찌기 통일이 되었을 것이고, 아직도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벗어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연필화 루딩교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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