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ost와 함께 읽어보는 명감독 열전(제16편)-<대부 시리즈>를 만든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대부>의 '사랑의 테마'를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7.01.17조회수586 목록 댓글 0* 영화 음악의 거장 니노 로타가 작곡한 <대부>의 '사랑의 테마'
* < 대부 1편>에서
[ '대부 시리즈'의 명감독 프랜시스 코폴라 ]
코폴라만큼 심한 부침과 영욕을 경험한 사람도 드뭅니다. 그의 전성기는 70년대였습니다. <대부>로 영화사의 흥행기록을 깨며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비평적 찬사를 잃지 않았죠.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 이후엔 상업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몰락한 뒤, 안간힘을 써왔지만 다시는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코폴라는 지금은 최고의 감독들로 세계영화계를 쥐락펴락하는 마틴 스콜세지,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영화계악동'으로 불리웠습니다. 현장이 아니라 대학에서 먼저 영화를 배운 엘리트 영화광 출신답게 이들은 유럽예술영화풍의 작가주의영화나 영화사적 지식으로 무장한 새로운 영화를 선보였습니다.
뉴욕 변두리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밑에서 자랐으며 UCLA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은 코폴라는 이들 영화악동들 중에서도 가장 지적인 배경을 지녔습니다. B급영화의 대부인 로저 코먼에게서 영화실무를 배우며 소프트코어 포르노를 만들기도 했던 코폴라는, 1963년 코먼이 프로듀서를 맡은 최초의 장편영화 <디멘시아 13>을 만듭니다.
이후, 억눌려 살다가 가출하는 여인의 이야기 <레인 피플>같은 개인적 취향이 강한 소품에서 깔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으나 기타 몇 작품의 상업적 실패를 맛보고 있던 코폴라는 1972년 <대부>를 만들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습니다.
* <대부 1>에서
이탈리아계 마피아 패밀리의 흥망을 다룬 마리오 푸조 원작의 영화가 코폴라에게 맡겨진 것은 그가 이탈리아계라는 것이 감안된 선택이었습니다. 코폴라는 빚을 갚기 위해 억지로 연출을 맡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엄청난 명예와 부를 쥐게 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 대하여 ‘한시대와 마피아에 관한 웅장한 서사시’라는 비평적 찬사도 쏟아졌습니다. 2년 뒤에 만든 <대부 Ⅱ>는 오스카상 6개 부문을 석권하며 “1편보다 더 위대한 속편”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습니다.
* <대부 2>에서
상업적으로도 미학적으로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코폴라의 기세는 70년대 후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제작사 조에트로포사를 창립해 젊은 감독들의 제작을 도와주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졌고, <지옥의 묵시록>의 악몽을 거치면서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베트남전쟁의 경험을 그야말로 악몽으로 묘사한 <지옥의 묵시록>은 그 자체가 거대한 스캔들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제작비 3천만 달러를 들인 <지옥의 묵시록>은 촬영시한을 끝없이 어겨가며 필리핀 정글에서 1년을 보낸 코폴라와 제작진 전부를 패닉상태로 몰고 갔고 그들의 이상한 몰골은 매스컴의 화젯거리로 다루어졌습니다.
* <지옥의 묵시록>에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고, 제작비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가진 지나친 자기탐닉증에 비판적 언사를 보냈고, 코폴라도 이를 수긍했습니다.
80년대 들어 코폴라는 계속되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터커> 등을 내놓으며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했지만 어느 것도 70년대의 미학적 성취에도 상업적 성공에도 전혀 미치지 못했습니다.
마치 70년대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듯 만든 <대부 Ⅲ>(1990)는 어설픈 안간힘이라는 비아냥만 낳았습니다. 안쓰러운 그의 안간힘은 계속돼 <드라큘라>를 낳습니다. 이후 내놓은 <잭> 역시 범상한 휴먼드라마였습니다.
다만 존 그리샴의 법정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레인메이커>는 정의감을 버리지 못하는 젊은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 단순한 드라마지만, 인물 묘사와 극의 리듬에서 대가다운 원숙함을 보여주어 코폴라의 건재함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 <레인 메이커>에서
코폴라는 1960년대에는 감독 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더욱 명성을 날렸으며 1970년 <패튼 대전차군단>으로 에드먼드 H. 노스와 아카데미 각본상을 공동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1975년 부터는 '코폴라' 포도 농장을 사들여 현재는 이 농장에서 제조한 '루비콘'이라는 캘리포니아산 최상급 포도주를 생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 코폴라 브랜드 포도주와 코폴라 포도농장
[ 영화 '대부 시리즈' ]
이탈리아 이민족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마피아 대부로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하는지를 서정미 넘치는 화면에 수려한 음악과 함께 장대하게 그려나가고 있는 영화<대부>는 당시로는 신인에 불과한 코폴라의 꽉 짜인 연출로, 본격적인 TV시대의 개막으로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 영화계에 부활의 신호탄을 올린 화제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온 이후로 모든 갱스터 영화는 이것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유태인 폭력단에 대한 것이라면 '유태인 대부' 중국의 지하세계에 대한 것이라면 '동양의 대부' 현대에 일어난다면 '현대의 대부'가 되는 등 이른바 '대부 신드롬'을 창조한 갱스터 영화의 기념비적 걸작이 된 것입니다.
* <대부 1>에서
마피아의 어원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17세기에 부르던 이탈리아의 "마녀"라는 설을 비롯해 '아름다움' '자랑스러움'이라는 사라센어,시실리안의 방언,아라비아어로 '虛勢' 그리고 이탈리아어의 '種馬'라는 설도 있습니다.
19세기 시실리섬을 거점으로 반정부운동을 벌이던 비밀결사조직 마피아. 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 후미진 곳에 정착하면서 금주법 시대와 경제공황 시대를 맞이하며 도박,마약,매음,개인금융,노동조합 등에 손을 뻗치며 암흑가를 지배해 왔습니다.
이러한 마피아의 지하세계를 파헤친 폭로소설 '대부'의 원작자는 이탈리아계 이민족으로 1920년 뉴욕 태생인 마리오 푸조(소설 '대부'는 1969년도에 출판하여 2천만부가 팔렸다)였으며 이를 다시 영화로 만든 이는 당시 31세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였습니다.
* <대부 1>에서
<대부>는 1972년 개봉되면서 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 기록을 세웁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유지한 30년간 유지한 난공불락의 흥행기록을 단숨에 갱신하면서 그해 아카데미 영화 작품상, 주연 남우상,각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당시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가 <대부>를 개봉하면서 남긴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겨줍니다.
"정치가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낌새를 터득하라. 그리고 사업가는 이 영화를 보고 현 사회를 배워라. 젊은이는 어버이와 자식의 애정을 보라. 여성은 뜨겁고 깊은 사랑의 진수를 만끽하라. 우리는 이 영화 한 편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화라는 것이 당시 세간의 평이었습니다.
각본,연출,연기,촬영,음악 등 모든 요소가 한데 어울려 영화예술과 상업적 흥행의 완벽한 결합을 성취한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대부로 나온 말론 브란도의 명연기였을 것입니다.
* <대부 1>에서
그는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레트 버틀러 역에 클라크 케이블 이외에는 상상도 할 없듯이, 브란도가 아닌 돈 꼴리오네는 있을 수가 없게 만들었던 것이죠. 이 소설을 읽고 꼴리오네 역을 연기해 낼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며 자청하고는 사전 테스트도 받는 등 정열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미국인들의 인디언 박해를 이유로 거부하는 소동을 빚기도 한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였습니다.
* <대부2>에서
아울러 알 파치노,제임스 칸,로버트 듀발 등의 명배우들의 연기도 이 작품의 성공에 큰 역활을 담당하였습니다. 애초에 코폴라 감독이 캐스팅한 말론 브란도나 당시 신인이었던 알 파치노를 파라마운트 사장이 결사 반대를 하면서 시작된 이 영화는 촬영 내내 코폴라 감독으로 하여금 중도 퇴출을 걱정하게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말론 브란도나 알 파치노가 없는 <대부>를 상상할 수 없는 우리로서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기도 하죠.
* <대부 1>에서
음악은 <태양은 가득히> 등의 명음악을 만든 영화음악의 거장 니노 로타가 담당하였습니다. 코폴라 감독은 처음에는 음악가인 아버지에게 맡길 예정이었으나 아버지에게서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해 내지 못하자 公과 私를 분명히 하면서 니노 로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래서 불후의 영화 음악 중의 하나인 <대부>의 음악이 탄생되었습니다. 코폴라 아버지의 작품들은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에서만 일부 사용되었습니다.
* <대부3>에서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 나서 아주 곤경에 빠진 가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였습니다. 영화에서는 가수 자니 폰테인이 직접 출연하였는데 이 자니 폰테인 역이 실제로는 시나트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동안 마피아 덕분에 연예계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비난이 그를 몹씨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여론들 역시"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식으로 시나트라에게 우호적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대부'의 의미]
영화의 초반에 대부 돈 꼬르네오(말론 브란도)는 억울한 사람들(특히 이탈리아인들)의 한을 풀어주는 존재로 나옵니다. 이는 흔히 마약과 매춘과 도박으로 사업을 벌이는 범죄집단으로만 여겨져 온 마피아를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며 이렇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판단을 유보케 하는 것이기도 하죠.
비록 시실리에서 맨손으로 미국에 도착하지만, 온갖 역경 끝에 이룬 막강한 재력과 권력으로 돈 꼬르네오는 소외된 자들을 위한 또 다른 <법과 질서>를 창출합니다.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단순히 <갱 이야기>를 넘어서서 비록 왜곡되기는 했지만 미국에서의 노력과 성취를 통해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대부2>에서
그러나 원작자나 감독 모두 결코 마피아를 찬양하거나 미화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위해서는 자신의 형제와 친척까지도 냉혹하게 살해하는 그들의 생리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마피아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윤리가 있고, 그 윤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은 가차없이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도 그 윤리라는 것이 얼마나 독선으로 흐를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가차없이 폭로하고 있죠. 그러므로 <대부>라는 위치는 언제나 보호자이면서 잔혹한 독재자라는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 <대부3>에서...대부의 최후
[코폴라 감독이 바라 본 마피아와 미국]
"근본적으로 마피아와 미국은 둘 다 스스로를 일종의 자선을 베푸는 기관이라고 여기지요.마피아와 미국은 둘 다 그들의 권력과 이익을 수호한다는 명목 아래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을 불사합니다.
둘 다 고도의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현상이며, 이익 이외의 다른 목표는 추구하지 않습니다.내가 생각하기에 미국은 국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미국은 국민들을 착취하고 우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가를 우리의 수호자라고 생각하지만, 국가는 우리를 바보 취급하고 속입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엔, 푸조의 소설이 그렇게 많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자신들을 위해 진심으로 신경을 써주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 코폴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