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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명배우 열전(제3편)-헐리우드의 신사,그레고리 펙-영화 <나바론의 요새> 주제곡을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7.03.08|조회수801 목록 댓글 0



* <나바론의 요새>에서



[ 성실과 정직의 상징이었던 헐리우드의 신사, 그레고리 펙 ]





숯검댕이 같은 짙은 눈썹, 갸름한 얼굴, 189㎝의 훤칠한 키, 부드러운 살인미소로 세계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레고리 펙, 살아생전 “살아있는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렸던 그는 2003년 6월 12일 새벽 4시 향년 87세로 48년 동안 해로해온 사랑하는 아내 베로니크의 손을 잡은 채 평온하게 천국의 휴일로 떠났습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배우들의 위엄있는 아버지”, 원로배우 커크 더글러스는 “성실과 정직의 상징”, 그리고 원로배우 폴리 버건은 “완벽한 신사” 였다면서 그를 기리고 애도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1916년 4월 5일 미국 캘리포니아 라 졸라에서 약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5살 때 부모님 이혼으로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며, 샌디에고 고등학교 졸업 후 UC버클리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연극에 심취해 전공을 문학과 연극으로 바꾸게 됩니다.


* <모비딕>에서



그레고리 펙은 1939년 대학졸업 후 뉴욕으로 건너가 네이버후드 플레이하우스 연기학교에 입학해 착실하게 연기공부를 했으며, 1942년 연극 ‘더 모닝 스타’의 주연으로 발탁되어 브로드웨이 무대에 처음으로 섰습니다.


브로드웨이에서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1944년 영화 <영광의 나날들>로 스크린에 데뷔를 했습니다. 첫 데뷔작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두 번째 작품 <천국의 열쇠>(44년)에서 사려깊은 신부 역을 맡아 열연하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이후 <가장 특별한 선물>(46년), <신사협정>(47년)으로 46년, 47년, 48년 3년 연속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정오의 출격>(49년), <앵무새 죽이기>(62년)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모두 5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릅니다. 


* <앵무새 죽이기>에서



드디어 그레고리 펙은 <앵무새 죽이기>(62년)에서 자상하고 민주적인 아버지이자, 백인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억울하게 투옥된 흑인청년을 구명하는 데 앞장서는, 정의로운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 역을 맡아 196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2000년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고별무대 ‘그레고리 펙과의 대화’에서 그는 “내가 한 수많은 역할 중 애티커스 핀치가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었다. 그 때가 내 연기 인생의 절정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는, 미국영화연구소가 선정한 ‘100년 영화사상 100인의 영웅’ 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1947년 ‘가장 특별한 선물’(46년), 1963년 ‘앵무새 죽이기’(62년)로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 1951년과 1955년에는 각각 골든 글러브 세계영화 인기남우상을 수상했으며, 1999년에는 ‘백경’(98년)으로 83세의 나이에 골든 글러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 <앵무새 죽이기>에서


 

1969년에는 린든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암협회 회장을 지낸 공로로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훈장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오드리 헵번과 호흡을 맞춘 <로마의 휴일>(53년)에서 신문기자 조 브래들리 역을 맡아 전세계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93년 타계한 오드리 헵번은 그를 일컬어 “위대한 남자의 단순함, 단순한 남자의 위대함을 보여준 배우”라며 “우리시대의 진정한 남자”라고 평가했습니다.


*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은 자신의 역할을 잘 아는 배우였으며, 상대 배우의 명연기를 끌어낼 줄 아는 배우였습니다.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의 명연기도 그레고리 펙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레고리 펙은 60여편의 영화에서 폭넓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주로 도덕적이고 정의감 있는 인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도덕적이고 성실한 모습 그대로를 실제의 삶 속에서도 보여주어 타인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1942년에 결혼한 첫 아내와 이혼 후, 1955년 프랑스 여기자 베로니크 파사니와 재혼해 평생을 함께 했으며, 영화에서의 성실한 이미지처럼 사생활에서도 스캔들 한 번 없이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했습니다.


*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은 사회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미국 영화연구소 초대 의장, 미국 암협회 회장, 미국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과학협회 회장, 미국 영화 TV 구호재단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또한 민주당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각종 자선단체를 포함한 여러 비영리단체에서 맹렬히 사회활동을 벌였으며, 자선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사회에 봉사를 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베트남전에 자신의 아들을 참전시켰지만 한편으로 반전시위에 앞장섰는데, “국민의 도리는 하지만 잘못한 일은 지적해야 한다”는 그의 평소 신념 때문이었습니다. 1972년에는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영화를 제작했으며, 1987년에는 고르바쵸프 치하의 소련에 초청되어 “핵 없는 세상과 인류의 생존을 위하여”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은 말년에도 미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삶에 대해서 강연을 펼쳤습니다.


"언제나 완벽한 영화를 만드는 꿈을 지녔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기회가 온다고 믿는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으며 죽음도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즐기는 일들을 할 뿐이다.”


2000년 고별무대에서 했다는 이 말은 그레고리 펙의 훌륭한 인생관을 엿볼 수 있죠. 그레고리 펙은 비록 이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한 할리우드의 전설”로서 언제나 세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 펙은 시대의 진정한 스타였으며, 그 별은 영원히 저하늘에서도 빛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후세에 남긴 모범적인 모습과 훌륭한 인간성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 커다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 대표작 소개 ]


< 빅 컨츄리 >





영화는 커다란 리듬과 중후한 터치로 사랑의 갈등, 동부적 사상과 서부 혼과의 대립 등을 그리면서 물이 풍부한 ‘빅머디’를 둘러싼 테릴과 해네시 두 집단의 심한 갈등과 분쟁을 묘사한 웨스턴입니다.

  

그레고리 펙과 찰턴 헤스턴은 숙적인 두 목장주 찰스 빅포드와 벌 아이브스가 빅머디의 소유자인 진 시몬즈 사이에서 서로 적이 되어 싸웁니다. 웨스턴에서 보여주는 박진감은 떨어지지만 탄탄한 구성이 돋보이죠.

  

동부적 사상과 서부 혼과의 대립을 사랑을 가운데 두고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연출로 그레고리 펙, 진 시몬즈, 캐롤 베이커, 찰턴 헤스턴 등 당시로써는 거물 스타들이 망라해 출연한 것도 이 영화의 무게감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상영 시간이 2시간 50분에 걸치는 컬러 시네마스코프 대형 스크린에 담은 거장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연출한 대형 서부극입니다. 이 영화의 주제곡 속에는 황야를 질주하는 역마차나 바퀴소리, 말달리는 소리들을 지속적으로 그려내어 광대한 서부의 원경을 아름답게 장식해 주고 있습니다.

 

도날드 해밀턴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이 영화는 웅대한 서부의 새로운 여명을 그린 격조 높은 서사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미동부에서 전직 선장이었던 짐 맥케이(그레고리 펙)는 텍사스 주에 사는 목장주 헨리 테릴 소령의 외동딸 패트리샤(캐롤 베이커)와 결혼하기 위하여 역마차를 타고 아득한 동부에서 광활한 서부의 텍사스를 찾아옵니다.




  

테릴 소령은 이웃 목장주 해네시와 앙숙지간인데 여교사인 줄리(진 시몬즈)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수원지가 있는 빅머디 목장을 두고 심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멕케이는 오자마자 헤내시의 건달 아들 버크(잭 코너스)에게 붙잡혀 쓰고 있던 모자에 총알을 맞기도 하고 밧줄에 묶여 끌려 다니는 등 큰 봉변을 당합니다.

 

한편 테릴 가의 목동장 스티브 리치(찰톤 헤스톤)는 남몰래 패트리샤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동부에서 나타난 약혼자인 미남 멕케이를 미워하게 됩니다. 두 사람은 패트리샤를 사이에 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대결이 시작되지만 멕케이는 부질없는 일이라고 응하지 않습니다.




  

이럴 즈음 멕케이는 빅머디 목장에서 줄리를 만나 수원지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가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얘기하면서 사랑이 싹트게 됩니다. 이 때 해네시의 망나니 아들 버크는 이를 목격하고 질투를 느끼며 시비를 걸면서 멕케이와 결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나 이 결투는 뜻밖의 사건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그것은 버크의 아버지 해네시가 아들의 비열한 행동에 격분하고 아들 버크를 사살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결투는 테릴과 해네시의 1대 1의 결투로 끝을 맺고, 멕케이는 전통적인 서부 사나이들의 기질과 고집을 이어온 위대한 서부의 풍경을 뒤로하며 줄리를 동반하고 텍사스 주의 협곡을 떠나갑니다.






< 나바론의 요새 >




 

2차 세계대전 시대를 배경을 벌어지는 특수부대의 목숨을 건 작전을 숨가쁘게 다룬 수작입니다. 제작 당시 역대 최고의 제작비로 만들어졌고, 1961년 개봉했을 때 최고 흥행수입을 올린 빅히트작이었습니다. 그레고리 펙, 데이비드 니븐, 안소니 퀸 같은 명배우들이 출연했습니다. 조연으로 나온 안소니 퀘일,스탠리 베이커, 이렌느 파파스같은 이들도 모두 당대의 톱 스타들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무렵. 영국군은 그리스 케로스 섬에 억류돼 있는 영국 병사 2천명을 구출하려 하지만 그 인근 절벽에 있는 독일군의 나바론의 거포 때문에 작전성사가 불투명합니다. 영국군은 그 거포의 제거 작전을 위해 암벽 등반가, 폭파 전문가, 테러리스트 등으로 구성된 특공대를 구성합니다.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나바론 요새에 잠입하기 위해서 등반전문가인 말로이 대위(그레고리 펙), 게릴라전에 능한 안드레아(안소니 퀸), 폭약전문가 밀러(데이비드 니븐),그리고 암살전문가 2인과 지휘관인 프랭클린 대령(안소니 퀘일)등 6명이 차출되어 사실상 무모할 수도 있는 나바론 작전을 6일간에 걸쳐서 수행하는 내용을 장장 2시간 30여분동안 다루고 있습니다.

  

거친 폭풍우 속에 가까스로 목적지 섬에 도착한 6명의 대원들은 깎아지른 수직의 200여미터 암벽을 한밤중을 틈타서 오르는 과정에서 벌써 지휘관인 프랭클린 대령의 다리가 부러지는 악재가 발생하는 등 천신만고 끝에 마을에 진입합니다. 식량과 의약품까지 잃어버린 이들 특공대원들 앞에는 수많은 독일군들이 첩첩이 에워싸고 있는 요새로 가기 위해서는 험난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접선하여 만난 내부의 동료 중에 배신자도 있었고, 결국 전원이 체포되기도 하고...... 아무튼 이들은 극적으로 임무수행을 하여 나바론의 대포를 폭파하게 됩니다마는 이 마지막 과정까지를 긴박하게 그려낸 J 리 톰슨 감독(영화 '대장 부리바'의 감독)의 연출이 꽤 볼만한 영화였지요.

 

디미트리 티옴킨의 멋진 음악과 그리스 현지촬영을 통한 생생한 분위기가 영화의 재미를 더해줍니다. 작전성공을 위해서 부상당한 프랭클린 대령을 이용하는 말로이 대위를 향해서 “나는 케로스의 2,000명은 모르지만 프랭클린 대령은 좋아한다”라고 내밷는 데이비드 니븐의 말은 전쟁과 살상에 대한 아픔과 고통을 되짚게 합니다.




 

큰 희생과 아픔이 없이 전쟁의 승리와 작전의 성공은 있을 수 없겠죠. 나바론은 오락적인 재미와 통쾌한 작전성공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이면의 아픔도 슬쩍슬쩍 건드렸던 그런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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