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대부1 ]
<대부>는 1972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에 의해 175분짜리 대작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이 후 세계적인 대찬사를 받으며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 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하고 감독상과 조연상(3명)에 추천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 영화에는 말론 브란도, 알 파치노, 로버트 듀발, 제임스 칸, 그리고 다이안 키튼 등 유명배우들이 출연해 최고의 연기 각축을 벌였습니다. 각색은 코폴라와 원작자 푸조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두 사람은 이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1974년에 <대부2>를 만들게 됩니다.
<대부〉가 기획될 당시 영화화를 반대하는 마피아의 압력이 노골적으로 있었습니다. 마피아 보스 중의 하나인 조셉 콜럼보는 ‘이탈리아계 미국인 인권 연합’을 동원해 대규모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으로 방해를 했습니다.
결국 제작자인 앨버트 루디가 영화 속에서 마피아란 칭호 대신 패밀리를 사용하기로 함으로써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갱스터 무비의 대표작인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마피아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 건 그 때문입니다.
코폴라 감독이 비토 콜레오네 역으로 점찍은 말론 브랜도는 갖은 기행과 독선적인 태도 때문에 헐리우드의 제작자들이 꺼리던 배우였습니다. 더구나 영화 속의 콜리오네는 60대 노인인데, 40대에 불과한 말론 브랜도가 60대 노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브랜도는 즉흥적으로 비토의 모습이 불독을 연상시키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입안에 솜을 밀어 넣은 채 테스트를 받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해 아카데미는 남우주연상으로 화답했지만, 정작 브랜도는 수상을 거부했고 대신 인디언 의상을 입은 인권운동가 사친 리틀페더가 나와 미국 인디언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브랜도의 의사를 전달해 또 한 번 화제가 되었습니다.
<대부>는 이후 많은 아류 갱영화들을 산출해 냈고, 그 결과 할리우드 영화들에 갑자기 갱들이 미화되어 묘사되는 경향을 가져왔습니다. 또 이탈리아인들이 만들고 이탈리아인들이 주연한 영화들의 전성시대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대부>는 정의와 불의의 구별이 모호해진 시대, 법이 힘없는 자들 편에 서지 않는 시대, 그리고 애곡된 미국의 꿈이 편만한 시대를 사는 오늘날의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호소력을 갖고 다가왔던 보기 드문 작품이었습니다.
* 대부 2편의 장면(시칠리아), 비토 콜리오네가 어렸을 때...
이탈리아 이민족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마피아 대부로 어떻게 자리 매김을 하는지를 서정미 넘치는 화면에 수려한 음악과 함께 영화<대부>는 장대하게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당시로는 신인에 불과한 코폴라의 꽉 짜인 연출로, 본격적인 TV시대의 개막으로 불황에 허덕이던 미국 영화계에 부활의 신호탄을 올린 화제작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나온 이후로 모든 갱스터 영화는 이것의 기준에 의해서 판단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이 유태인 폭력단에 대한 것이라면 '유태인 대부' 중국의 지하세계에 대한 것이라면 '동양의 대부' 현대에 일어난다면 '현대의 대부'가 되는 등 이른바 '대부 신드롬'을 창조한 갱스터 영화의 기념비적 걸작이 된 것입니다.
<대부>는 1972년 개봉되면서 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 기록을 세웁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유지한 30년간 유지한 난공불락의 흥행기록을 단숨에 갱신한 것입니다.
음악은 <태양은 가득히> 등의 명음악을 만든 영화음악의 거장 니노 로타가 담당하였습니다. 코폴라 감독은 처음에는 음악가인 아버지에게 맡길 예정이었으나 아버지에게서 마음에 드는 곡을 발견해 내지 못하자 公과 私를 분명히 하면서 니노 로타를 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래서 불후의 영화 음악 중의 하나인 <대부>의 음악이 탄생되었습니다. 코폴라 아버지의 작품들은 결혼식 피로연 시퀀스에서만 일부 사용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이 되고 나서 아주 곤경에 빠진 가수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프랭크 시나트라였습니다. 영화에서는 가수 자니 폰테인이 직접 출연하였는데 이 자니 폰테인 역이 실제로는 시나트라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동안 마피아 덕분에 연예계에서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비난이 그를 몹씨 당혹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여론들 역시"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식으로 시나트라에게 우호적이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사가 <대부>를 개봉하면서 남긴 메시지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겨줍니다.
"정치가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낌새를 터득하라. 그리고 사업가는 이 영화를 보고 현 사회를 배워라. 젊은이는 어버이와 자식 간의 애정을 보라. 여성은 뜨겁고 깊은 사랑의 진수를 만끽하라. 우리는 이 영화 한 편을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1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화라는 것이 당시 세간의 평이었습니다.
[ 간략한 줄거리 ]
* 배반자 두 넘
이 영화는 1940년대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피아의 삶으로 시작합니다. 마이클의 아버지 비토 콜리오네는 대부(godfather)라고 불리우는 마피아의 두목입니다. 그는 정.재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매춘과 도박사업을 통해 재산을 형성한 사람입니다.
그에게 어느 날, 터키인 마피아 소로조가 찾아와 마약사업을 같이 할 것을 요구하나, 비토는 마약사업이 자신의 정재계 인맥들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 제안을 거절합니다. 소로조는 이에 앙심을 품게 됩니다. 다른 패밀리를 등에 업은 채 비토의 암살을 시도 하게 됩니다.
여러발의 총격에도 간신히 목숨은 건지지만 위중한 상태에 놓이게 된 대부 콜리오네, 그의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셋째 아들 마이클(알 파치노 분)은 사랑하는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되자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암흑가의 세계에 뛰어들게 됩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고 솔로조와 그에 동조하는 세력인 경찰반장이 제안한 화해의 자리에 참석하게 됩니다.
마이클은 화장실 안에 숨겨둔 총으로 그 둘을 사살하고 아버지의 고향인 시칠리아로 도피합니다. 도피 생활 중 순박하고 순수한 현지 시골 처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곧 이어 그녀와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녀와 행복하게 살고 있던 중, 그의 위치가 적들에게 발각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그는 은신처를 옮기려 합니다. 마이클보다 먼저 차에 타고 있던 그녀는 마이클이 신뢰하던 보디가드가 설치한 폭탄에 의해 폭사하게 됩니다. 한편 비토는 회복하고 그의 첫째아들 소니마저 죽게 되자 더 이상 패밀리 간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며 휴전을 선언합니다.
* 벌집이 된 큰아들 토니의 시신을 바라보는 비토
그의 아들 마이클은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전 여자친구 케이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패밀리들 간의 휴전 후 비토는 자신을 공격한 세력이 패밀리 1이아니라 2가 진짜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마이클에게 알려줍니다. 대부는 손자와 마당에서 놀던 중 노환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대부 콜리오네가 죽기 전 아들 마이클에게 마지막 남긴 말- 패밀리2와 만남을 중재하는 자가 내부의 배신자-을 토대로 마이클은 그 배신자를 낱낱이 파악하게 됩니다. 그 후 조직원들을 시켜 패밀리2의 보스와 나머지 배신자들(동생의 남편, 대부의 수하, 라스베가스의 호텔거물) 등을 모조리 처단합니다.
[ 마피아의 역사 ]
마피아라는 뜻은 "기업형 범죄조직" 이라는 의미로 이탈리아가 발상지이기 때문에 이탈리아 기업형 범죄조직을 마피아라고 합니다. 따라서 일본 마피아=야쿠자, 중국마피아=삼합회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즉 미국 마피아라고 해서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마피아가 아니라 미국의 기업형 범죄조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범죄조직 유형에 따라서 카르텔, 갱스터, 프리즌 갱으로 나뉘기도 합니다.
마피아는 이탈리아가 발상지로 시칠리아 지역 비밀결사를 근원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시칠리아는 외세의 침략을 여러 번 받으면서 사회가 혼란스럽다보니 법과 질서를 따르지 않은 운둔 세력들이 많았죠. 하지만 이들을 정의로운 세력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 1920년대 미국 마피아
* 마피아의 어원
마피아의 어원은 1282년 시칠리아 만종사건(이 사건은 1282년 부활절에 시칠리아 왕국에서 프랑스 앙주 가의 왕 카를로 1세에게 대항하여 일어난 반란을 말합니다. 6주에 걸쳐 이어진 반란에서 3천여 명의 프랑스인들이 살해당했고, 카를로 1세는 왕국에서 쫓겨났습니다)을 둘러싼 시칠리아 기사들의 구호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 라는 구호로 당시 시칠리아 기사들은 "프랑스인을 죽이자" 라는 의미의 구호를 불렀습니다.
그 때 이 구호의 이니셜 "MAFIA" 를 따서 마피아가 되었다고 하는데 문법이 맞지 않아 지어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피아는 당시 지주들이 자신들의 재산을 도적들에게 보호하기 위한 작은 사병조직 Mafie(채석장)이 어원이라는 주장과 기세등등하다 라는 단어 "Mafioso" 라는 단어에서 나왔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습니다.
* 마피아의 탄생지,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마피아 역사를 세계대전 이전으로 보게 되면 당시 이탈리아 왕국이 국력 확장과 마피아의 경제, 정치, 사법에 세력을 확장하다 19세기에서 20세기를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마피아는 전국조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당시 이탈리아의 미국 이민 붐이 일어나면서 마피아는 미국으로까지 진출하게 되죠.
그리고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파쇼정권 시절 군과 경찰을 총동원해 마피아를 철저하게 탄압하는 바람에 마피아들은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중앙정부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면서 미국의 마피아 규모는 더욱 커집니다.
사실 마피아라는 명칭은 자신들이 붙인 것은 아니고 이태리의 매체들과 법 집행기관이 시칠리아 범죄조직을 이야기하며 만들어진 명칭입니다. 미국에서도 이태리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범죄조직이 만들어지자 매체나 기관에서 그들을 이태리와 같이 마피아라 부르기 시작해 일반화 되었습니다.
* 영화에서...
* 마피아 역사의 시작
현대 미국 마피아의 생성지는 뉴욕의 이탈리안 이민자 빈민가였습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점에 시작된 뉴욕 거주 시칠리아 출신 범죄조직을 지역 거주민들은 검은손(Black Hand)이라 불렀습니다.
1890년대부터 190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뉴욕의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거주지역인 이스트 사이드에서 시칠리안 범죄조직인 파이브 포인츠 갱(Five Points Gang)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같은 지역의 유대인 갱단과도 자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또, 이스트 할렘 지역에서도 시칠리아 범죄조직이 부상하기 시작했고 브루클린에서는 나폴리 출신의 범죄조직인 니어폴리탄 캐모라가, 시카고에서는 19구역의 이태리 거주지가 범죄조직의 충돌로 인해 불러디 나인틴(Bloody 19)이라 불리기도 할 정도로 미국 전역으로 이탈리아 이민 범죄조직이 번져가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전부 이태리 이민사회에서 활동을 하며 강탈수법이 비슷해 서로 다른 조직이지만 모두 같은 조직으로 오해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고 이 모두를 지역주민들은 블랙 핸드라고 부르며 동일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1920년 1월 17일, 근대 민주국가에서 보기 힘든 상황이 미국에서 일어났는데 바로 금주령이었습니다. 수정헌법 제 18조가 발효되며 미국 내에서 술을 제조, 판매, 유통하는 모든 것이 불법으로 간주된 것입니다.
* 금주령 반대 시위
이 금주령은 1933년까지 무려 12년이나 계속되었는데 이런 법령이 생겨난 것은 공중의 도덕성 회복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것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신교도가 주를 이루는 사회였기 때문에 음주에 대한 부분은 식민지시대부터 문제가 되어 왔었고 1657년에는 메사추세츠 법원이 럼, 브랜디, 와인 등 알콜 도수가 높은 술에 대한 판매를 금지시킨 일도 있어 금주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 압수한 술통의 술을 뽑아 버리는 장면
그런데 이슬람 국가같이 전통적으로 금주를 해온 미국이 아니기에 법령에 반대하는 단체도 나오고 국민들 역시 강제로 규제를 하는 것에 대해 탐탁치않게 생각했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술이라는 것이 스스로 끊는 것도 힘든데 법으로 못 마시게 한다고 포기할 것은 아니라 불법양조가 기승을 부리고 암암리에 유통이 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 압수한 술을 쏟아 버리는 장면
금주령 기간 동안 주류 불법유통으로 적발된 케이스가 90만 건에 달했고 이런 불법유통에 관여한 것은 정치인들과 범죄조직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금을 확보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버려 이 시기를 맞아 이탈리안 범죄조직은 급속히 성장게 됩니다.
미국이 금주령시대를 맞은 1920년대 초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인 무솔리니의 정부가 국가를 장악하자 수많은 이태리인들이 조국을 떠나 미국으로 이민 길에 오르게 됩니다.
마피아들 역시 무솔리니 정권의 대대적인 소탕령으로 인해 조직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시칠리아를 떠나 미국행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무솔리니의 집권은 미국의 아메리칸 마피아의 초석을 다지게 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많은 이탈리아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그것에서 탈피하기 위해 조직에 가입을 하게 되고 자연적으로 범죄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고 결국 점차 범죄조직이 비대해지게 된 것입니다.
* 이탈리아 이민자들
이탈리안 범죄조직들은 떼돈을 벌 수 있는 이 불법 주류제조와 유통에 손을 대고 그 수익은 전통적인 범죄였던 보호명목의 갈취, 도박, 매춘사업을 훨씬 능가하며 조직의 주 수입원이 되어갑니다.
결국 미국의 금주령은 아메리칸 마피아를 탄생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아 역사적으로 정말 잘못된 부분이라 할 수 있죠. 애초에 법으로 술을 못 마시게 한다는 발상 자체가 정치인들이나 종교인들의 한심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심한 것으로 그친 게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친 악법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금주법으로 돈이 쉽게 벌어지자 미국 대도시의 이탈리안 범죄조직은 자금력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패밀리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 세를 불리기 시작한 이탈리안 범죄조직들은 도처에서 자신들이나 다른 민족의 범죄조직과 충돌을 빚게 되고 서로 간에 피 터지는 폭력전쟁이 시작됩니다.
뉴욕에서는 프랭키 예일이 이끄는 이탈리안 조직이 아일랜드 갱 조직인 어메리칸 와잇 핸드와 전쟁을 벌였고 시카고에서는 알 카포네와 그의 조직이 역시 아일랜드 갱 조직인 놀스 사이드 갱단과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 알 카포네
또 뉴욕에서는 1920년대 내내 조 마세리아 조직과 살바토레 마라자노 조직이 같은 이탈리안이지만 세력다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 전쟁을 카스텔라마레세 전쟁이라고 하는데 1931년 마세리아가 살해되며 살바토레 마라자노의 승리로 끝을 맺습니다.
그는 뉴욕을 다섯 패밀리로 나누어 분쟁을 해결하고 자신이 그 모든 패밀리의 최고 보스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진정한 미국 마피아가 시작되는 시점이고 살바토레 마라자노는 첫번째 마피아 대부로 기록됩니다.
* 최초 대부, 마라자노
하지만 이런 마라자노를 못 마땅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웬만해서는 한번쯤 다들 이름을 들어본 럭키 루치아노였습니다. 럭키(Lucky)는 별명이고 본 이름이 살바토레 루치아노인 그는 원래 마라자노와 전쟁을 벌였던 마세리아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마라자노쪽으로 붙어 마세리아 살해를 주도한 인물이었습니다.
* 전설의 럭키 루치아노
그런 럭키 루치아노에게 마라자노도 마피아 대부가 된지 불과 6개월 만에 살해당하고 맙니다. 루치아노는 루치아노 패밀리를 만들게 되고 후일 그것이 제노비스 패밀리가 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루치아노 역시 시칠리아 출신이지만 그곳을 떠난 나이가 불과 10세 때여서 마라자노와 같이 이탈리아로부터 마피아가 될 기회는 없었습니다.
1933년 금주령이 해제되고 주류판매가 다시 합법이 되자 마피아는 수입원이 급격히 떨어지며 비대해진 조직에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그들은 방향을 전환해 노동조합의 결성, 건설, 위생사업, 마약거래 같은 분야로 진출하게 됩니다.
럭키 루치아노가 최고 자리에 오르고 그는 커미션(The Commission)을 창설하는데 이것은 쉽게 얘기해 마피아의 통치 위원회 같은 기구입니다. 각 패밀리의 보스들이 중요사항에 대해 투표권을 행사하고 패밀리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위원회가 조직되며 루치아노는 명실상부한 마피아의 최고 보스로 등극하게 됩니다.
위원회는 범죄 신디케이트로 거듭나고 패밀리간의 평화가 시작되며 이후 마피아는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합니다. 20세기 중반까지 마피아는 뉴욕에 기반을 둔 다섯개 패밀리를 제외하고 26개 도시에 위원회를 조직하게 됩니다. 뉴욕의 다섯 패밀리는 루치스, 보나노, 감비노, 루치아노(추후 제노비스), 프로파치(추후 콜롬보) 조직을 말합니다.
각 패밀리는 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각각의 영역에 대한 통제권과 독점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두목이었던 마라자노나 마세리아와 달리 루치아노가 이끄는 젊은 마피아는 유대인 범죄 신디케이트나 다른 민족의 범죄단체들과도 협력을 하여 더 큰 수익을 창출해 나가게 됩니다.
비록 배신을 하고, 자신의 보스를 죽인 인물이지만 루치아노는 구시대와 달리 범죄단체를 기업경영 하듯이 효율적으로 이끄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마피아는 이때부터 침묵의 코드라는 엄격한 규칙을 정해 조직의 비밀을 지켜나가며 번성하게 되고 규칙을 위반한 조직원에 대하여는 죽음으로 처벌하게 됩니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1933년 금주령이 해제되며 다시 주류제조와 판매가 합법화 되자 마피아는 수입원이 줄며 자금을 확보하는 다양한 사업을 벌이게 됩니다. 전통적인 사업인 불법도박장 운영, 고리대금업, 보호명목 갈취와 함께 마약거래, 노동조합 결성으로 노동분쟁 배후조정 등 분야를 넓혀나가게 됩니다.
* 마피아들, 비지니스 천재 모에 달리츠(오른쪽에서 세번째)
20세기 중반, 특히 봉제노동조합과 부두노동조합에 마피아 조직원들이 많이 활동을 했습니다. 이밖에 건설, 철거, 폐기물 관리, 트럭, 해변, 의류사업 등 수익성 좋은 합법적 기업에 손을 뻗치고 노동조합 파업을 유도하고 입찰에 관여하는 등 광범위한 범위로 사업을 확장을 하게 됩니다. 뉴욕시의 대부분 건설 프로젝트는 다섯 패밀리의 승인 없이는 수행할 수 없었고 항구나 하역에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마피아는 조합원을 장악하였습니다.
마피아 제국에서 회계를 움직였던 메이어 랜스키가 쿠바에 카지노를 열고 마피아는 쿠바산 설탕과 럼주 무역에도 관계하게 되었습니다. 메이어 랜스키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루치아노의 동료로 전국적 범죄 신디케이트를 조직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뉴욕의 사라토카부터 플로리다의 마이아미, 아이오와의 카운슬 브럽스, 네바다의 라스베가스까지 도박제국을 건설한 인물입니다.
* 메이어 랜스키(오른쪽)
그는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유대인이라 애초에는 유대인 범죄조직 소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피아와 손을 잡고 전국적 범죄 신디케이트를 구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발휘했고 수십년 간 마피아 세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랜스키는 이미 1930년대에 쿠바에서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고 마피아는 쿠바산 설탕과 럼주 무역에 참여했습니다. 1952년에 쿠바 대통령으로 선출된 바스티다는 랜스키의 친구였고 이런 관계로 많은 마피아 보스들이 쿠바의 카지노에 합법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이 일어나 바스티다가 실각한 후 피델 카스트로가 미국의 투자를 금지하는 법령을 발표하고 나자 마피아는 더 이상 쿠바의 카지노 사업이나 무역을 영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931년 네바다 주에서 도박이 합법화 되며 라스베가스는 모든 마피아 조직들의 관심대상이 되었고 얼마 후 영화 <벅시>로 유명한 벅시 시걸과 메이어 랜스키는 라스베가스 도박산업을 펼치게 됩니다.
* 벅시 시걸
벅시는 유대인으로 뉴욕의 5대 패밀리인 제노비스(루치아노 패밀리의 후신) 조직과 함께 활동을 했던 인물로 메이어 랜스키와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미국의 범죄역사에 이탈리안과 함께 깊숙히 관련되어 있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마피아가 이렇게 세를 불려나갔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미국 각 지역의 법 집행기관들은 이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범죄 사실로 기소를 하려해도 증인을 협박하고 법 집행에 관련된 기관의 사람들을 매수를 했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마피아가 전국적 범죄조직이라는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피아가 전국을 장악하는 범죄조직이라는 것이 국가적으로 인식이 된 것은 1951년 키포버 청문회(상원의원 에스티스 키포버)에 의해서였습니다. 마피아로 의심되는 인물들에 소환장을 발부하고 일부는 증언도 들었지만 어느 누구도 의미있는 정보를 발설하지는 않았습니다.
1957년 뉴욕 경찰이 마피아의 주요 인물을 체포하게 되었고 FBI는 마피아에 대한 조사방식과 법 집행을 변경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마피아 조직원 중 처음으로 조직에 대한 정보를 일러바친 것은 1963년 조 바라키였습니다.
* 조 바라키
바라키는 마라자노와 마세리아가 전쟁을 할 때 마라자노 조직원 이었고 마라자노가 최고 보스가 된 후에는 그의 경호원을 맡았지만 6개월만에 마라자노가 살해당할 때 루치아노의 행동대원으로 활동을 했던 마피아 조직원 이었습니다.
바라키는 마피아의 보복으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고 1971년 연방교정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바라키의 증언으로 인해 마피아는 더 이상 숨어있는 조직으로 있을 수가 없었고 FBI는 전국적인 범죄조직의 와해를 위해 특별팀을 구성하게 됩니다.
이런 FBI의 노력은 1980년대 초부터 라스베가스의 카지노 사업에서 마피아의 영향력을 배제시키게 되고 마피아에 장악되었던 노동조합도 정상을 되찾을 수 있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국정부가 마피아에 강력한 대응을 하기 시작한 것은 리코 법의 제정과 시행이었습니다. 이것은 마피아 두목들을 기소하는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가 되었는데 범죄조직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을 확대 적용한다는 연방법이었습니다.
리코 법은 한 번의 범죄행위가 적발되어 기소되고 유죄로 인정을 받으면 회당 최고 20년씩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으로 마피아에게 큰 타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 법안으로 인해 1980년 초반부터 10년간 마피아의 부두목 13명과 중간보스 43명이 줄줄이 유죄판결을 받아 이 때부터 마피아 세력은 약화되기 시작합니다.
뉴욕의 다섯 패밀리같이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곳들은 그것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많은 조직원들이 쇠고랑을 차게 되고, 조직의 운영에 곤란을 받게 되면서 급기야 뉴욕 마피아 최고위급 보스들까지 운신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새미 그라바노라는 마피아 조직원이 1991년 FBI에 협조를 한 일이었습니다. 새미는 뉴욕 5대 패밀리중 하나인 감비노 패밀리의 부두목으로 그 세계에서 막강한 위치의 한사람 이었고 수많은 살인사건의 배후조정으로 기소가 되었었습니다.
* 새미 브라바노
FBI는 두목을 잡는데 협조를 하면 새미의 기소에 대한 것은 전부 면제해주기로 하고 그를 증언대에 세우게 됩니다. 새미의 증언으로 감비노 패밀리의 보스였던 죤 가티는 살인 등 죄목으로 종신형을 살게 되었고 두목급 고위직에서 마피아의 규율인 침묵의 코드를 깬 사람은 새미가 최초였습니다.
그 덕분에 가티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1998년 후두암 수술을 한번 받고 건강이 악화되어 10년의 감옥생활 만에 2002년 6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증언을 한 증인에 대해 실형을 면제하고 신분변경과 함께 재정지원을 하는 미국의 연방증인 보호법이 생기게 됩니다.
* 존 가티
물론 새미도 이런 증인보호법에 의해 이름을 바꾸고 애리조나에서 새생활을 시작했지만 1990년대 말, 제 버릇 개 못준다고 그는 다시 범죄세계로 들어섭니다. 그의 아들 제라드가 지역의 젊은 갱조직 두목과 친구가 되며 새미는 마약유통조직을 만들게 됩니다.
조직원은 47명이었고 거기에는 자신의 아내와 아들, 딸까지 포함되어 일주일에 평균 50만달러 상당의 마약을 유통시켰고 2001년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게 됩니다.
그는 20년형을 선고받고 아직도 감옥에 있으며 아들은 9년형을 받았고 아내와 딸은 몇 년간의 집행유예 선고로 풀려났습니다. 자신의 두목까지 팔아넘기고 살아남으려 했지만 개과천선은 못한 케이스였습니다.
* 영화에서...
어쨌든 새미 그라바노로 인해 이후 패밀리를 배신하고 증언을 하는 수십 명의 조직원들이 계속 등장하면서 마피아의 세력은 급속도로 약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마피아의 세력을 약화시킨 또 하나의 요인은 이탈리안 이민들이 세대를 이어오며 급격히 미국인으로 동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신세대들은 그들의 커뮤니티에 안주하기보다 주류사회로 들어가 미국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조직원을 구하는 것도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마피아는 폭넓은 불법적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살인, 협박, 부정부패, 도박, 합법을 가장한 기업 진출, 노동착취, 고리대금과 세금포탈, 주식조작, 돈세탁 등이 그들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습니다.
* 영화에서...마이클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한때 전국적 조직을 자랑하던 마피아는 현재 전통적 마피아 지역인 동북부와 시카고 정도로 행동반경이 축소되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9.11 테러 사건 이후 법 집행기관의 대부분 인력이 국토안보에 집중되며 마피아가 다시 부흥할 것이라 추측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FBI가 추정하는 연간 마피아 조직의 수입이 500억 달러에서 90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하기 때문입니다.
900억 달러의 연간 매출이면 미국 내 기업순위 23위 정도로 세계적 기업인 시티 그룹보다 약간 아래 순위라는 이야기입니다. 세력이 약화된 것이 이정도니 한참 전성시절에는 얼마나 대단했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 마피아의 조직구도
먼저 가장 최고 위치에 보스가 있습니다. 그 보스의 곁에 있는 위치가 컨실지엘레(Consigliere)로 조직의 자문이며 보스의 오른팔 역할을 합니다. 다른 조직과의 분쟁 해결사 역할도 하며 전통적으로 조직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원로로 보스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 맡게 되고 서열로는 3위에 해당합니다.
보스의 아래는 언더보스(Under Boss)로 부두목인데 보스가 임명합니다. 부두목은 조직의 모든 관리를 하며 수익성 높은 이권에 대해 총괄하며 유사시 보스를 대신해 조직을 관리하는 실질적 후계자입니다. 죤 가티를 배신한 언더보스 새미 그라바노가 얼마나 막강한 인물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두목의 아래에는 카포레힘(Caporegime)이 있는데 부두목은 하나지만 카포레힘은 우리나라로 얘기하면 중간 보스급으로 그 수가 많습니다. 이들은 보스나 부두목이 임명하는데 자신의 구역을 관리하며 수익의 일부를 상납하고 할당된 실무를 처리하게 됩니다.
카포레힘은 실무를 담당하고 지역을 관장하기 때문에 왕왕 보스나 부두목보다 막강한 파워를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5대 패밀리중 하나인 루치스 패밀리의 8대 보스였던 안소니 코라로 같이 두목이 사망하고 중간보스에서 바로 보스가 된 인물도 있었습니다. 안소니 코라로는 10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연방교정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습니다.
* 안소니 코라
마지막 위치는 솔져(Soldier)로, 말 그대로 병사, 즉, 행동대원 역할을 하는 조직원들입니다. 솔져는 원래 부모 모두 이탈리안이어야 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아버지 쪽만 이탈리안이면 가입이 가능합니다.
이들은 모든 범죄의 전면에 서서 활동하고 조직 간의 전쟁 시에 전투요원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카포레힘(중간보스) 아래 수십명씩 있는 것은 아니고 보통 10내지 20명 선입니다. 솔져는 자기 밑에 어소시에잇(Associate)을 두게 됩니다.
어소시에잇은 한마디로 범죄에 협조하는 인물들을 말하며 이들은 마피아 조직원이 아닙니다. 행동대원의 가족이나 친구로 그들을 돕기도 하고 마피아에 가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예비 조직원들을 이야기 합니다. 물론 솔져가 이들을 조직원으로 이끌게 되고 이런 협조자들도 각종 범죄를 돕거나 혹은 직접 수행하기도 합니다.
유대인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마피아와 손을 잡았던 랜스키나 벅시 같은 인물도 크게는 보스급 어소시에잇에 포함되지만 아무리 파워가 막강해도 조직원이 존경하는 대상은 되지 못합니다. 이탈리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피아 조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요구하는 시험을 치러야하고 그것은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 마피아 미국 드라마 <소프라노스>, 왼쪽에서 두번째가 주인공 토니 소프라노스
* 마피아 조직의 규칙
조직의 규칙은 첫번째로 침묵의 코드(기관에 증언이나 협조하지 않는 것), 두번째로 이탈리안이어야 한다는 것, 세번째로 패밀리의 사업을 조직원이 아닌 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는다는 것, 네번째로 피에는 피로 갚아준다는 것(하지만 보스의 명령이 하달될 때까지 기다려야하며 독단적으로 복수를 하면 처벌받음),
다섯번째로 같은 패밀리끼리 절대 싸우지 말 것(주먹다짐도 안 됨), 여섯번째로 매월 상사에게 상납을 해야 하며 상납액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것, 일곱번째로 다른 조직원의 아내와 간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 여덟번째로 콧수염이나 구레나루등 어떤 수염도 기르면 안된다는 것 등 입니다.
* 영화에서...
영화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 역의 말론 브랜도가 가느다랗게 콧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것은 감독의 실수가 아니라 당시 마피아의 압력에 의해 캐릭터의 모습을 변형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마피아 보스나 조직원의 자료사진을 봐도 수염을 기른 인물은 없습니다.
마피아의 세력이 약화되며 미국 내에서 다른 민족의 범죄조직들이 성장했지만 마피아만큼 부흥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전통이 있어야 장구한 세월을 지탱할 수 있는 것은 범죄에도 적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 최고의 마피아 미드 <소프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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