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그 역사적 배경(제37편)- 장이머우의 <인생>,중국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이야기-등려군의 '월량대표아적심'을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 작성시간18.03.07 조회수3707 댓글 6댓글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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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블라디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8.03.10 마오는 군벌들이 갈기갈기 찢어 갈라먹고 있는 중국을 통일했고, 수천년동안 뿌리박힌
봉건주의를 뽑아버린 공로가 높이 평가되지만 위에서 상술한 대약진운동과 문혁은 그에
게 있어 큰 과오로 남습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의 업적을 공이 7이요, 과는 3이라고 했지만서도...
마오의 초상화가 아직도 천안문 광장에 걸려 있는 것은 그가 오늘날의 공산당을 건설한 장
본인이기 때문에 마오를 부정하면 공산당 스스로를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당시 대약진운동과 문혁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져 마오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일
부 지식인들 외에는...실제로 그들도 대놓고 비난은 못하고 있지요. -
작성자 블라디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8.03.10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가 득세하면서 양극화가 심해지는 오늘날에는 가난한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은 평등을 주장했던 마오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대약진 운동을 벌이면서
수천만명이 죽어 나갔지만 중국 정부는 지독한 홍수와 가뭄때문이었다고 얼머부리며 넘어
갔고, 문화혁명 때는 주로 지식인들이 왕창 당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그렇게 아픈 기억
이 없기에 시끄럽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대약진 운동과 문혁에 대해서는 지금
도 왈가불가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아닙니다. 아직도 이런 정치적인 얘기(현재는 물론 과거
도)는 가급적 쉬쉬하고 있는 중국의 오늘날입니다. -
작성자 블라디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8.03.10 마오와 우리와의 관계에선 착잡한 심정입니다. 한국전쟁때 마오는 당,군 주요인사들의 결사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참전을 결정해서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철천지 원수로 남아 있습니다. 반
면에 우리가 박통이 앞장서서 수출을 통한 산업화에 매진할때 마오는 대약진운동,문혁 등 뻘짓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큰 경쟁자없이 산업화에 성공할수 있었는데...만약에 마오가 뒤로 물러나고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이 싼값의 인건비로 우리처럼 수출을 통한 자국의 산업화에 매진하였다면?
아찔한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