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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영화 & 그 역사적 배경(제51편)-영화<열정의 랩소디>, 고독하고 불우했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이야기-돈 맥클린의 '빈센트'를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8.05.19|조회수1,234 목록 댓글 1


* 고흐로 분한 커크 다글라스, 참 많이 닮았습니다.



[ 영화, 열정의 랩소디 ]


영화 <열정의 랩소디,Lust for Life)>는 어빙스톤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만든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 영화입니다. 광기와 가난과 고독으로 점철되는 불운한 천재 화가 고흐의 인생을 연대기 순으로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위대한 예술가(고흐)에 대한 영화 중에서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영화는 빈센트가 성직자가 되고자 했던 청년기부터 그의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전 생애를 그리고 있습니다. 또한 전기의 기본적 특성인 연대기를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빈센트의 인생행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몇 개의 시퀀스로 구성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더해 줍니다.





게다가 빈센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장소들이 실제의 그의 작품들과 결부되어 풍부하게 인용됨으로써 다큐적인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예술 영화를 많이 찍은 빈센트 미넬리 감독은 고흐가 살았던 벨기에의 보리나주, 네덜란드의 누넨, 프랑스의 아를, 오베르에서 촬영을 하며 작품의 배경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실제로 빈센트 미넬리 감독은 고흐의 작품 “The Baby Roulin”의 모델이었던 할아버지를 찾아내 고흐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고흐 작품의 진품 소장가들로부터 촬영을 허락받은 감독과 제작자는 관객들에게 200여점에 달하는 진품을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해줍니다. 진품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작품의 탁월함과 미묘한 차이를 카메라에 완벽하게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게다가 조명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작품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처절하고 고독했던 삶을 커크 더글러스가 생생히 연기하고 있습니다. <율리시즈>, <바이킹>, <스팔타카스> 등의 영화에서 전사 같은 역할을 했던 상황과는 달리, 열정적이지만 좌절과 고독 속에 묻혀 살았던 불안정한 성격의 인간 고흐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946년 데뷔 후 주로 액션 영화에 많이 출연하였던 커크 더글러스였으나 이 작품에서는 약간은 반대되는 이미지의 화가로서일생 일대의 열연을 했습니다. 1956년도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올랐으나(그해 <왕과 나>의 율 브리너에게 밀려서 수상을 못했음),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과 뉴욕 비평가협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영화에서 폴 고갱 역을 맡았던 안소니 퀸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저력을 보였습니다.







고흐와 고갱의 설전이 커크 더글러스와 앤서니 퀸의 열연으로 3분간 커트 없이 이어지는데, 당시 앤서니 퀸은 고갱의 역할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단 12분 출연으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아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짧은 출연으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배우로 기록됐습니다.


커크 더글러스는 고흐를 연기하기 위해 직접 프랑스 화가로부터 집중 지도를 받았으며,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고흐의 붉은 수염과 의상을 그대로 입고 배역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 동생 테오와...



원제인 <Lust for Life>는 번역하자면 ‘삶 혹은 생에 대한 갈구’ 등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생뚱맞게 <열정의 랩소디>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식 개봉은 안했고 이따끔씩 EBS 등 TV에서 방영하곤 합니다.


작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으로 고흐의 마지막 일생을 그린 <러빙 빈센트>는 고흐 애호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와 함께 감상하시면 고흐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러빙 빈센트>는 맨 아래에서 이미지로 소개합니다.


* <러빙 빈센트>에서...



[ 간략한 줄거리 ]


벨기에 복음선교회 후원의 전도사 자격을 받지 못한 빈센트 반 고흐(커크 더글러스 분)는 결국 벨기에의 오지인 보리나주 탄광지대의 전도사로 부임을 합니다. 그곳에서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전도사업을 벌이던 중 검열 나온 복음선교위원회의 위원들의 고압적인 관료 의식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고향에서 다시 미술 작업을 시작한 얼마 뒤 과부가 된 사촌 케이(쟈넷 스테크 분)가 찾아오고 그녀를 사랑하게 된 고호는 결혼을 신청하지만 그녀에게 걷어차이고 마음의 상처만 얻게 됩니다. 그러다 만난 창부 비슷한 여자와 살림을 차리지만 결국 그의 예술생활을 이해하지 못한 그녀로 인해 다시 헤어지게 됩니다. 동생 테오(제임스 도날드 분)가 화상으로 있는 파리로 가서 후기 인상파의 화풍을 공부하게 됩니다.





당시 인상파의 화풍은 유행병처럼 화단을 휩쓸고 있었으나 고흐는 자기 나름대로 화풍을 수립하려고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폴 고갱(안소니 퀸 분)과 만나게 되고 그의 화풍을 이해해주는 그와 친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가는 자신의 화풍에 자연의 맑은 기운의 변화를 주고싶은 열망을 가지고 남 프로방스 지방으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고흐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합니다. 황금빛 들판과 태양이 작열하는 자연 등과 벗 삼으며 작업을 하던 도중 고갱이 찾아오고 그와 같이 생활을 하는 가운데 작업상의 이견이 끊이지 않고 강한 개성의 두 사람은 마찰이 계속됩니다. 마침내 화딱지가 난 고갱이 떠나던 날 고흐는 자신의 정신적인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립니다.


이후 동네사람들이 정신병자를 내좇으라고 아우성치자 고흐는 인근의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합니다. 여기서 잠시동안 안정을 찾으면서 다시 그림에 몰두합니다. 그러다가 고흐는 동생에게 파리 인근의 오베르로 가겠다고 부탁을 합니다.





오베르에서 고흐는 그의 마지막 불꽃 같은 생을 살게 됩니다. 여기서 그의 가정의이자 미술에 일가견이 있던 가셰 박사와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의 초상화도 남기게 됩니다. 그러나 점차 정신적인 질환이 심해지고 동생 테오에 대한 부담 때문에 결국 여관집 주인한테 빌린 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 고흐의 생애 ]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 준데르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형제가 많아 무척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겉으로는 내성적이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불같은 성격을 간직하였습니다. 자기 주장도 무척 강하였다고 합니다. 어려서 그림에 재능을 보였으나 그림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열 여섯살 때 숙부의 도움으로 벨기에의 헤이그에 있는 구필화랑에 취직하여 화상으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습니다. 이후 20세부터 23세까지 런던의 구필화랑 지점에서 근무합니다. 고흐는 그가 남긴 편지로 볼 때 네델란드어, 프랑스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고 또한 엄청난 독서를 통한 대단한 교양과 학식을 구비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를 비롯하여 휘트먼, 칼라일, 키츠, 브론테, 엘리엇, 디킨스까지, 그리고 프랑스의 발자크, 보들레르, 졸라, 플로베르 등 작품까지 모두 설렵했고 고대 그리스의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독일의 퀘테와 하이네 등 세계적인 문호들의 작품들도 모두 섭렵했습니다.


런던에서 한 여자에게 실연당하고 비참한 몰골로 고향으로 돌아온 그에게 고흐의 부모는 한없이 실망합니다. 시원치 않은 장남이라고 탐탁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숙부는 그런 그를 런던에서 파리로 전근을 시킵니다. 이때부터 그는 성직자를 지망하게 됩니다. 아마도 집안 분위기 탓이 컸으리라 짐작됩니다.


* 영화 <러빙 빈센트>에서...



영국에 있는 신학교를 다닌 후 그는 벨기에 보리나주의 탄광촌의 전도사가 됩니다. 임시직이기는 하나 전도사 자격을 부여 받은 고흐는 점점 열의를 더해 갔습니다. 참혹한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복음뿐이 아니라 자신의 의복과 돈마저 아낌없이 나눠 주었고, 진정한 기독교이길 자처하며 솔선수범했습니다. 이게 그의 성격이기도 했죠.


그런 그를 지방 전도위원회는 그를 해임해 버렸습니다. 고흐의 범상치 않은 봉사를 인정하긴 하지만 전도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설교에 필요한 어휘력과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또한 교회의 권위와 위엄을 유지해야 할 전도사가 그런 것들을 모조리 팽개치고 노동자들 사이에 뛰어들어 그들보다 더 누추한 옷을 입고 종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 마지막 오베르 시절, 의사 가셰(그는 미술에 대해 일가견이 있었고

  고흐의 병을 치료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흐는 그림이야말로 신이 자신에게 준 천직이라고 깨닫기 시작합니다. 세속적 권위에 침해당하고 있는 성직자들의 세계에서보다 제작 활동 속에서 진정한 신의 존재를 발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1880년 10월 고흐는 자신의 생애를 그림에 바치기로 굳게 결심하고 보리나주를 떠나 브륏셀로 향합니다.


* 영화에서...



27세의 늦깎이 화가가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이후 죽을 때까지 한 푼도 벌지 못한 그에게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그의 동생 테오의 형에 대한 헌신적인 지원이 이어집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테오만이 형의 그림을 이해하였습니다.


이후 동생 테오(그는 당시 파리에서 화상으로 있었다)가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히 그림공부를 하면서 벨기에와 네델란드를 전전하던 고흐는 32세에서 34세까지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계속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당시 파리 미술계를 주름잡고 있던 인상파 화가들과 교유했는데 비록 그들의 영향을 받긴 했으나 그들과 같은 그림을 그릴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회화 제작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그들과 달랐던 것이죠. 동생 테오가 곧 결혼을 하게 되자 같이 있을 방도 없게 되고 당시 인상파가 휩쓸던 파리 화단과의 관계도 소원해지자 그는 탈출구로서 남부 프랑스(아를 지방)로 옮길 것을 결심합니다.


* 꽃피는 아몬드 나무(아를 시절)



< 밝은 태양과 색채를 찾아, 프랑스 아를 지방에서의 생활(34-36세) >


밝은 태양과 짙푸른 하늘 등 지중해에 면한 아를 지방의 멋진 풍경 속에서 고흐는 질풍 노도처럼 작품 제작에 매달리게 됩니다. 테오가 보내주는 돈이 형편없이 적어 물감사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였지만 물과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해가 뜨고 질 때까지 그는 그림에만 몰두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작품에는 세상에 알려진 것들이 많습니다. ’해바라기’연작’, '도개교', '과수원’연작’,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 위로 별이 빛나는 밤', '노란 집', '우편 배달부 로랭’ 등, 고흐의 절정기 작품들이 이 때 죄다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독한 가난 때문에 제대로 영양 섭취를 못한 그의 몸은 점차 쇠약해 갔으며 이러한 신체적 쇠약은 섬세한 그의 정신세계를 점차 병적인 상태로 몰아갔습니다.


이때 고갱이 이곳으로 찾아옵니다. 고흐가 파리의 가난한 화가들에게 이곳으로 와서 같이 작업을 하자고 계속 편지를 보냈는데 고갱만이 찾아 온 것입니다. 고흐보다 다섯 살 위인 고갱은 유년시절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는데 천성적으로 모험심이 강해 그 동안 선상 노동자나 주식 중개인 등을 하며 지냈습니다.


* 영화에서...



그러나 결혼해서 가정을 꾸민 다음 마음을 바꿔 화가의 길을 선택하고 팔리지 않는 그림 그리는 일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처자는 수입이 없는 그의 곁을 떠나 버렸습니다.


두 사람의 동거 생활은 불과 두 달밖에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의 성격과 예술관은 완전히 달랐고 게다가 자기 주장을 내세우며 고집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었습니다. 극단적인 대립을 계속하던 두 사람은 드디어 1888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크라이막스에 도달하였습니다.


대판 싸움을 하고 난 다음에 면도칼을 들고 고갱의 뒤를 쫓던 고흐가 어느 골목길에서 고갱이 휙 돌아보자 그 길로 집에 돌아와 자기 자신의 귀를 짤라 버렸습니다.


* 영화에서...파리에서 고갱과 다정했던 한때...



극도의 가난과 처절했다고 해야 옳을 장기간의 제작활동으로 심신이 지쳐 있던 고흐에게 거칠은 성격의 소유자인 고갱이 그의 예민한 신경을 더욱 건드렸으리라고 보여집니다. 병적인 광기가 아니라 극도의 정신적 긴장이 고흐에게 면도칼을 쥐게 한 것입니다. 이 때부터 그는 강한 자극을 받거나 피곤하면 발작이 재발하는 증상이 더욱 심해져 갑니다.


자신의 귀를 자른 사건을 일으킨 미치광이가 퇴원 후에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는 정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커다란 불안을 안겨 주었고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선량한 시민들에게 언제 다시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공포가 급기야 ‘미치광이 화가를 강금시키라’는 청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고흐는 아를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당했습니다.


* 밤의 카페 테라스



<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천상의 그림을 >


아를에 머물기를 싫어한 고흐는 아를 북쪽 25km에 위치한 생 레미 정신병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여기에서도 계속 작품에 몰두하게 됩니다.


당시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시간만 자꾸 간다.내게는 시간이 없어. 그래서 촌각을 다투며 계속 제작하고 있어. 만일 더 심한 발작이 엄습하면 영원히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그릴 수 있을 때 전력을 다해 그리고 있어. 지금 나는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것을 얻었고 시간은 지금밖에 없어.”


고흐는 점차 자기의 병세에 대하여 점차 초조감을 갖게 되며 테오는 이런 글을 써서 보낸 형의 제작에 쏟는 극단적인 정신 집중이 다시 발작을 유발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합니다. 이 병원에서 고흐는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Starry night)’을 제작합니다.


* 별이 빛나는 밤



< 고호의 마지막 거처, 프랑스 오베르,37세 >


1890년 5월 21일 고흐는 잠깐 파리에 들렀다가 그의 마지막을 기록한 오베르에 도착하였습니다. 1890년 7월 27일에 권총 자살을 기도하고 이틀 후인 29일에 절명할 동안 고흐는 거의 소묘를 포함하여 50점에 가까운 경이적인 작품을 제작하게 됩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운 셈입니다.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는 고흐가 불타 오르는 듯한 황금색 밀밭에서 권총을 쏘아 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고흐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고흐가 말년에 그린 음산한 분위기의 작품‘까마귀 나는 밀밭’을 보고 대충 짐작했을 뿐입니다.


* 영화에서...고갱과 한판 붙기 전...



사건 당일 날 고흐가 저녁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여관집 라부 부부가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해가 진 후 드디어 현관문을 열고 고흐가 돌아왔습니다. 옆구리를 구부리고 들어 온 고흐에게 라부 부부가 웬일이냐고 묻자 아무 말도 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간 고흐는 총탄이 관통한 심장 근처의 상처를 이들 부부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연락을 받은 테오는 즉시 형에게 달려왔습니다. 29일 오전 1시 30분 동생 테오는 형과 나란히 누워 형의 머리를 안았습니다. 잠시 뒤에 고흐는 “이대로 죽고 싶다”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 오베르 교회



그러면 왜 고흐는 자살했을까요? 유언을 남기지 않아 확실하게는 몰라도 자꾸만 발작 증세가 도지면서 동생 테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계획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완전히 지칠대로 지쳐있던 신경이 극도로 흥분해서 그랬다는 설도 있지만…


이 사건이 있은 후 테오는 빈센트 회고전을 개최하는데 그도 곧 심각한 정신 착란에 빠져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6개월 후에 신장병으로 숨을 거둡니다. 이 두 형제는 현재 오베르에 있는 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묘지 울타리 너머에는 한없이 넓은 밀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 고흐 형제의 묘지



두 형제는 아무런 성공에 대한 보장도, 일체의 원조도 없이 각자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용감히 싸우다가 패잔병처럼 사라져 간 것입니다.


* 까마귀가 날으는 밀밭



< 인간 고흐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고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알려진 화가입니다. 그의 작품보다도 흔히 ‘스스로 귀를 자르고 타는 듯한 밀밭에서 결국은 자살한, 태양과 같은 정열을 지닌 미친 천재 화가’라는 식의 전설로서 말이죠. 이에 대하여는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기 전 발작 증세가 심해진 마지막 몇 년과는 달리 대부분의 생애를 고흐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냈습니다. 요컨대 그는 미치지 않았다는 얘기죠. 따라서 ‘미치광이 화가’라든가 ‘광화사’따위로 가볍게 그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정신 질환은 그의 그림과 무관하다는 의학적 연구가 정설이 되고 있습니다.


* 영화에서...생 래미 정신병원의 고흐



또한 그는 참으로 책을 좋아했던 뛰어난 지성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모국어인 네델란드어는 물론 영어와 불어 그리고 독일어에도 능통했고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공부한 바 있어 각 나라들의 문학과 종교서들을 섭렵했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편지(특히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는 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또한 타고난 천재적인 화가였던가요? 아닙니다. 그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가지는 정도의 그림 재주정도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재주를 보이기 시작하는 일반적인 천재화가들과는 달리 그는 스물 여덟살 때에야 본격적으로 뎃상을 시작했고 이후 10년 동안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했습니다.


* 화구를 메고가는 고흐



 그는 해가 떠서 질 때까지 그림만 그렸습니다. 요컨대 노력을 통해 자기 그림을 완성한 화가라는 점입니다. 그는 무턱대고 남의 화풍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기만의 미술 세계를 추구한다는 고집이 아주 유별났고 결국은 이 점이 그를 불후의 화가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면 왜 고흐의 작품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가요? 그는 애당초 처음부터 보통 사람들을 주제로, 보통 사람들을 위하여, 보통 사람들의 눈으로 그리겠다고 결심했고 평생 그 서약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보통 인간이면서도 온갖 불행에 굴하지 않고 고뇌를 예술로 승화시켰기 때문입니다.


* 영화에서...



고흐에게서 우리가 감동 받는 이유는 이런 참다운 인간에게서 전해지는 풍부한 인간미 때문이지 결코 지금가지 알려진 대로 그가 미쳤다거나 광기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의 그림은 단순합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힘이 있습니다. 구도도 색채도 형태도 묘선도 단순함을 추구했습니다. 그것은 인공적인 조작에 의한 가식적인 조화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풍경, 정물, 인물을 간단하고 쉽게, 그리고 빠르게 그렸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알아보게끔, 누구나 좋아하게끔 말입니다.


* 고흐의 방(아를)



그는 동양의 화가처럼 자유로운 선을 구사했습니다. 아니 더욱 거칠게 그어진 선은 동양화의 선보다 더욱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빨강, 노랑, 파랑을 거의 원색에 가깝게 사용했습니다. 구도도 원근법과 음영법을 파괴하여 멋대로 그렸습니다. 그림자도 그리지 않았습니다. 형태와 색채를 명백하게 보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은 단순미의 추구였습니다.


물론 이런 화풍은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거부 당했습니다.그 들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고흐가 증오한 전통적이고 귀족적인 그림에 매료 당했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 모릅니다. 지금 어떤 아이가 그처럼 그린다면 미술 대학에 입학하기는커녕 초등학교 미술 수업에서도 쫓겨날 것입니다. 그만큼 이미 1백년 전에 고흐가 구사한 것은 당대의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거부한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 영화 <러빙 빈센트>를 그리는 화가



고흐의 사후 11주년이 되던 1901년에 회고전이 열렸을 때 인간의 정념과 혼을 완벽하게 표현해 낸 실로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는 그의 작품들을 접하고 깊은 감동과 무한한 계시를 받은 포비즘(이른바 야수파)의 거장 블라맹크는 “이날 나는 아버지보다 고흐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블라맹크나 마티스 등의 야수파 화가들이 과감한 활동을 전개하여 현대 회화의 신기원을 이룩한 것은 고흐 예술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킨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고흐는 과거의 아카데미즘을 완전히 청산하고 참신한 인간성을 회복시켜 현대 회화의 육중한 문을 열어젖힌 혁신적 화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귀를 자른 고흐



< 인간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한 마지막 정리 >


그는 위인도 천재도 거장도 대가도 사표도 도사도 아닙니다. 그는 언제나 모자랐고 약했으며 약지도 못했으며 또한 슬펐습니다. 지독하게 못났고 어설펐으며 서글펐습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오직 약간의 손재주와 감각으로 예술가연하고 짐짓 미친 체하는 예술가들이 많이 있는 것도 이 세상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들이야말로 순수하지 못한 정신적 사기꾼이고 또한 그들은 똑똑하고 영리하며 재빠르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가짜로 미친 체한 적이 없는 고흐는 결국 진짜로 미쳐버린 것처럼 보인 것은 그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술수를 부리거나 사기를 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정신이 순수했기 때문입니다.


고흐의 친구 중 한 사람인 화가 에밀 베르나르는 고흐에게는 선천적으로 신앙심이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이 그의 인격을 드높였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고흐 성격의 일부를 정확히 드러내 준 것이었습니다.


* 별이 빛나는 론강



그에게 신앙심이란 구체적으로 말하면 연민과 사랑이었습니다 주위의 불행한 사람들을 대하는 연민과 사랑은 그의 삶과 예술을 구성했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과 사람들에 대한 연민으로 ‘어째서 인간은 단지 이 세상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평생 슬픔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가’하고 탄식했습니다.


고흐의 그림은 생명력이 흘러 넘치면서도 아름답고, 항상 격조 높은 참신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그의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깊은 슬픔과 탄식, 그리고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받아들이지 않는 한 고흐의 그림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 영화 <러빙 빈센트>의 삽화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하여 106명의 화가가 모여 10년 동안 6만여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작년에

 개봉했습니다. 올레 채널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 밀밭에서 가슴에 총을 쏘고 여관에 들어와 고통스러워하는 고흐


*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들


* 이 영화의 주인공, 고흐의 죽음의 미스테리를 찾아서 길을 떠난 프로방스의 우체부

  로랑(그는 고흐와 친했었습니다)의 아들















* 돈 맥클린이 부르는 <빈센트> 노래 가사


별이 많은 밤입니다.

빠렛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하세요.

내 영혼에 깃들인 어둠을 알고 있는 눈으로

여름날에 바깥을 바라보아요.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그리세요

미풍과 겨울의 찬 공기도 화폭에 담으세요.

눈처럼 하얀 캔버스 위에 색을 입히세요.


당신이 이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합니다.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와지려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별이 많은 밤입니다.

이글거리는 듯한 꽃들의 색이 불꽃같이 여겨집니다.

보랏빛 연무 속에 소용돌이치는 구름들은

빈센트의 푸른 눈빛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색조를 바꾸는 빛깔들

황금색의 아침 평야

고통 속에 찌든 얼굴은 예술가의 사랑스런 손길로 달래지네요.

사람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지만

하지만 아직도 당신의 사랑은 진실합니다.


이 별이 빛나는 밤, 내부에는 아무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당신은 연인들이 종종 그러듯 자살을 택했죠.

빈센트, 당신에게 어떤 세상도 당신만큼 아름답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별이 아름다운 밤

당신의 초상이 빈 벽에 걸려있습니다.

틀도 없이 이름도 없는 벽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당신이 만나왔던 이방인처럼

누추한 옷을 입은 누추한 사람을 잊을 수가 없어요.


순백의 눈에 부서지고 상처받은 새빨간 장미의 은빛 가시

당신이 이제 무얼 말하려 했는지 나는 이해합니다.

당신의 광기로 당신이 얼마나 고통 받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유로와지려 노력했는지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아마 그들은 이제는 듣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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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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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변호정 | 작성시간 18.05.19 고흐 커크,더그라스
    고갱 안소니퀸 두 스타들의 연기를 함 봐야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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