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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음악사의 재밋는 뒷얘기(제25편)-"인생아! 나는 통곡한다" 차이코프스키의 짧은 결혼생활 & 폰 메크 부인 이야기-그의 <교향곡 5번 E단조>를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18.11.25|조회수2,238 목록 댓글 0





[ 인생아, 나는 통곡한다! 차이코프스키와 교향곡 5번 E단조 ]


* 파탄으로 막을 내린 짧은 결혼생활


늘 우수에 젖어 지낸 차이코프스키는 언제나 자신의 성적 정체성(동성애)에 대해서 무척이나 고민했습니다. 혼자 살던 그는 37세이던 1877년, 자신을 사모하던 제자 안토니나 밀류코바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열렬한 사랑을 거부하면 자살하고 말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푸쉬긴의 시를 각색한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을 쓰고 있었습니다. 마침 여주인공 타치아나가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부분을 작곡한 직후였기에 타치아나에게 연민을 느끼던 때였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밀류코바가 오페라 속에서 결혼을 잔인하게 거절당한 타치아나로 생각되어 그녀와의 결혼을 승낙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극과 현실의 혼돈에 의한 이들의 결혼은 당연히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 차이코프스키와 밀류코바



한편으로 이 결혼은 그동안 동성애자라는 주위의 소문에 시달리던 차이코프스키가 이를 감추려고 감행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표면적으로 결혼식을 올리면 자기를 향한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 결혼생활이 얼마나 지독하게 힘들 줄은...


차이코프스키는 결혼 2주째에 신경쇠약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모스크바의 차거운 강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남녀 간의 결혼생활이 오죽 끔찍했으면 그 차디찬 강물 속으로 몸을 던졌을까 생각해 보면 성적 정체성이 도대체 뭔지 알 수 없는 일반인들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의 결혼 생활은 불과 2개월 만에 파국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결혼생활은 끝났지만 그는 죽는 날까지 그녀에게 일정한 위자료를 보내야 했습니다.


* 기묘하고도 든든한 후원자, 폰 메크 부인


위에서 애기한 것처럼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 때문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습니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그에게 우울증을 안겨 주었고 이는 그를 한없이 괴롭혔습니다. 이제 48세가 된 그는 지쳐있었습니다. 아울러 악상(樂想)의 고갈까지 느끼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 작곡을 못하리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러한 그를 격려해주고 후원해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폰 메크 부인이었습니다.


음악사에서 많은 패트런이 있었지만 차이코프스키와 폰 메크 부인은 관계만큼 구설수에 많이 오른 예도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기묘하다면 기묘한 관계로서, 특이한 패트런과 역시 고집스럽고 독특한 예술가로서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 폰 메크 부인



폰 메크 부인은 과부였습니다. 그녀는 마흔다섯 살 때 남편과 사별하면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남편은 돈만 물려준 게 아니라 무려 열한 명이나 되는 아이들도 남겨주었습니다. 남편은 두 개의 철도 노선(땅이 넓은 러시아의 철도회사 규모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과 화려한 저택, 몇 개의 별장 그리고 거대한 농장을 남겼습니다.


혼자가 된 메크 부인은 남편의 사업을 이어받아서, 사업에 전념하였습니다. 그 결과 남편이 물려줄 때보다 더욱 거대한 부를 이루었습니다. 아마도 그녀의 능력이 범상치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그녀는 어린 자녀들 때문에 모스크바의 사교계와는 일절 손을 끊고, 오로지 사업과 자녀들의 뒷바라지에만 매달렸습니다.


자녀교육에만 신경을 쓰던 메크 부인은 한편으로는 음악에 심취했었고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메크 부인은 새로운 음악교사인 요제프 코테크라는 사람을 채용했는데, 마침 그는 모스크바 음악원생 시절 자신의 교수였던 차이코프스키의 열렬한 숭배자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차이코프스키라는 당시 막 떠오르던 작곡가에 대해 관심이 있던 메크 부인에게 코데크의 열정적인 선전은 이제 막 타오르려는 불꽃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음악교사를 통하여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세계에 점점 끌려 들어갔으며, 그의 많은 곡들이 그녀의 집안에서 연주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돕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부인은 코데크를 통하여 차이코프스키에게 새로운 작품을 위촉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거래되던 금액보다 훨씬 높은 액수를 차이코프스키에게 지불함으로써 그에 대한 도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상당한 액수를 연금형식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리하여 차이코프스키는 더 이상 경제적 곤란에 시달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성을 마음껏 발휘하며 명곡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 돈은 보내주되 만나지는 말자는 메크 부인의 편지



두 사람의 관계는 음악사에서 가장 기묘하며 미스테리한 관계로 일컬어집니다. 무려 14년 동안 관계를 유지하면서, 둘은 편지로만 왕래했을 뿐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때문에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둘은 만나지 않았기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독특하고 창조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메크 부인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어떤 공명심이나 다른 욕심을 채우려 했던 그 어떤 경우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차이코프스키의 경우에는 돈에 관심이 있었음을 두 사람간의 편지 속에서 간간히 볼 수 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짧았던 결혼 생활에 실패한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여자라면 끔찍하게 생각했던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메크 부인과의 관계는 이런 점에서 그야말로 정신적인 연인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성과의 성적 관계에서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었던 차이코프스키는 메크 부인과의 만남을 꺼려했을 것입니다.


편지와 작품 그리고 돈만 오가는 관계가 편했을 것이고 아울러 이것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정신적 섹스였을 수도 있습니다.


* 모스크바 근교의 차이코프스키 저택(지금은 기념관)



차이코프스키가 연상의 메크 부인에게서 언제나 마음껏 정신적인 안정을 갈구하고 칭얼대며 돈을 요구했던 것은 분명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의 태도를 연상시킵니다. 즉 차이코프스키에게 메크 부인은 어머니와 애인, 아내를 합쳐놓은 여성으로서 동침을 요구하지도 않고,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꾸짖지도 않는 여성상이 아니었을까요?


메크 부인도 비슷한 입장이었을 겁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의 음악가로서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보람을 느끼고 만족했을 겁니다. 그녀는 또 하나의 아들과 젊은 애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즐겼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고 이런 것이 그녀를 나무랄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비판받을 객관적인 여지조차 애시 당초 만들지 않았습니다. 즉 그녀는 차이코프스키를 만날 뻔한 결정적인 순간을 두 번이나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들의 비난과 자책감으로부터 벗어나 14년간이나 자유롭게 그를 정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었던 겁니다.


* 차이코프스키 동상



[ 인간의 슬픔을 통곡하는 교향곡 제5번 E단조 ]


<교향곡 제5번 E단조>를 쓰던 즈음 차이코프스키는 작곡가로서 최고의 전성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유럽에서도 인기가 좋아 자주 해외여행을 했고 많은 사람들은 만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차이코프스키는 잊을 만하며 규칙적으로 재발하는 우울증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가 찾은 것은 메크 부인이었으며,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열렬히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가 힘들 즈음에 메크 부인의 건강이 나빠졌으며, 그녀는 요양을 위해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의 니스로 갔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당신의 글을 그리워하는지 아십니까?‘


이때 작곡된 대표적인 곡이 교향곡 5번입니다. 그녀에 대한 차이코프스키의 애증과 미련과 갈망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도 이 곡입니다. 이 교향곡의 느낌은 일견 슬픈 것 같지만, 그보다는 내적으로 침잠하는 철학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명곡입니다.


이 곡이 주는 아름다움은 참으로 뛰어나며 어두운 색채가 주는 질감은 부드럽고 직조는 탄탄합니다. 슬프면서도 달콤한 멜로디가 선사해 주는 조형적인 아름다움은 세련되기 그지없습니다.


1악장은 유명한 주제로 시작하는데, 이 주제는 전곡을 관통합니다. 2악장은 유려하면서도 달콤 씁쓸합니다. 3악장은 특이하게 스케르조나 미뉴에트가 아닌 왈츠로 만들어졌는데, 관현악이 연주하는 왈츠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아름다운 것 중의 하나입니다. 4악장의 장대한 피날레에서는 처음의 주제가 다시 나타나는데, 이제 그 느낌은 실로 다릅니다. 아직은 슬픔과 우울함에 맞서려는 차이코프스키의 의지가 이 대목의 관현악에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작곡가들이 슬픔을 그릴 때 그것에 대한 극복과 관조에 주력했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오로지 통곡만 하는 느낌이 강렬합니다. 이처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만큼 인간의 슬픔을 그토록 처절하게 울면서 그린 작품도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의 교향곡들이 그토록 통곡하는 것은 그 속에 어쩌면 우리의 한(恨)과 같은 것이 있어서 한국인들이 그의 작품에 유달리 애착을 갖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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