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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영화 속의 미국, 미국 속의 영화(제14회)>캘리포니아편(2), <분노의 포도> & 1930년대 미국 중서부 '먼지폭풍'-영화 삽입곡 '홍하의 골짜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20.04.03|조회수619 목록 댓글 0


* 헨리 폰다가 분한 톰 조드



[ 영화, 분노의 포도 ]

 

살인죄로 교도소에서 나온 남자, 비관적인 자의식으로 방황하는 목사, 조상대대로 살았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피난민들의 아이러니하면서 가슴에 와 닿는 조합으로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흥행 공식과도 같은 러브스토리가 배제된 영화지만, 원작이 주는 묵직함 때문에 굳이 로맨스가 없어도 스토리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영화 <분노의 포도>에덴의 동쪽원작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입니다. 미국 대공황기에 경제적 곤궁에 빠진 톰 조드의 가족을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1939년 출간된 직후 빠르게 대중을 매혹시켰고, 스타인벡 리얼리즘 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1940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이십세기 폭스의 사장이었던 대릴 F. 자눅은 원작의 가치를 일찌감치 알아보고 판권을 구입하여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에게 연출을 의뢰했습니다. <시민 케인(1941)의 촬영감독으로 유명한 그렉 톨랜드가 촬영을 맡았고 존 포드의 작품 젊은 링컨(1939),모호크족의 북소리(1939)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헨리 폰다가 다시 한 번 출연하여 주인공 톰 조드 역을 맡았습니다.

 

그렉 톨랜드의 촬영은 전반적으로 짙은 어둠을 의도적으로 지향했습니다. 예컨대 톰이 가석방 직후 마을을 찾았을 때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않고 숨어 살던 남자가 톰에게 지난 일들을 이야기해주는 장면은 캄캄한 어둠과 흔들리는 촛불의 강한 대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트럭이 찌그러질 정도로 짐을 잔뜩 싣고 캘리포니아로...


 

혹은 후반부에 벌어지는 폭력들도 영화적으로 잘 표현된 짙은 어둠 덕분에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죠. 주인공 톰 역할을 했던 헨리 폰다의 역할도 큽니다. 헨리 폰다는 다소 우울하고 외로운 듯한 인상을 지닌 방랑자나 홀대받는 젊은 하층민의 이미지를 탁월하게 연기해냈습니다.

 

* 어머니


 

이 영화는 온갖 고난을 겪은 다음 사회의 어두운 모순을 깨닫고 변혁의 의지를 갖게 된 톰이 세상을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어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족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원작에서는 삶의 지속을 강조하고 있다면, 영화에서는 새로운 활동가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 목사 케이시

 

[ 간략한 줄거리 ]

 

영화가 시작되면서 깔리는 음악은 홍하의 골짜기라는 민요입니다. 존 포드의 영화 음악은 미국이나 아일랜드의 서정적인 민요를 배경으로 사용해서 미국적인 정감이 우러나오도록 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조드 일가가 나중에 캘리포니아로 떠나게 될 때도 이 음악이 애절하게 울려 퍼집니다.

 

전신주가 끝없이 펼쳐진 길을 톰이 걸어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장면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지나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톰은 어렸을 때 자기에게 세례를 준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목사는 한 때는 열정적이었으나 지금은 영혼이 메말라 버린 파계한 목사이기도 합니다.


* 캘리포니아로 떠나기 직전의 조드 가족


 

4년 만에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톰을 기다리는 것은 빈 집 뿐입니다. 그들 가족이 지금까지 평화롭게 살아왔던 땅은 거대 회사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는 사실을, 땅을 뺏기고도 떠나기지 않고 버티고 있던 뮬을 통해 알게 됩니다.

 

삼촌 집에 임시로 가 있던 어머니와 일가족을 만난 그들은 인부를 구한다는 광고지를 보고 꿈에도 그리던 캘리포니아로 떠나기로 합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는 거짓된 약속의 땅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그들에게 두 손 들고 환영해 줄 낙원은 없는 법입니다.


* 애리조나로 들어서는 조드 가족


 

조드 일가는 자동차를 구해서 짐을 싣고 캘리포니아로 향합니다. 이 과정에서 할아버지는 떠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평생 가꾸어 오고 지켜 온 것에 대한 애착입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캘리포니아로 가는 길목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머니는 캘리포니아로 들어서며 차 속에서 숨을 거둡니다. 평생을 땅에서 살아온 그들은 땅을 떠나는 순간 목숨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어렵게 도착한 조드 일가에게 캘리포니아는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그들은 여행자 캠프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곳은 먼저 온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고용하여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고용자의 문제점을 지적하던 오키(서부로 밀려드는 오클라호마의 유랑민을 말함)를 연행하려는 경찰을, 어떤 오키가 주먹으로 때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톰도 여기에 끼어듭니다.


* 난투극을 벌이는 톰 조드


 

톰은 가석방 중이므로 사건을 일으키면 다시 수감될 처지이기도 합니다. 목사 케이시가 대신 붙잡혀 가고 톰은 몸을 피해야 할 처지가 됩니다. 유랑민 캠프를 불 지르려고 한다는 음모를 들은 톰은 이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고 가족은 다시 캠프장을 떠납니다.

 

그들은 우연히 복숭아 따는 일을 하게 되고 시간당 5센트의 돈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농장의 분위기가 뭔가 수상합니다. 어딘지 이상한데 감을 잡을 수 없었던 톰은 우연히 케이시를 만납니다. 그는 이 농장 안에 있는데 파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시간 당 5센트를 주다가 나중에 2.5센트로 깎인 것에 대한 항의의 파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 처음 장면, 감옥에서 나온 톰


 

농장주는 사설 경비원을 고용하여 케이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날 밤 케이시는 그들에게 걸려 목숨을 잃게 되고 그 과정에서 톰은 케이시를 친 보안관을 살해하게 됩니다. 조드 일가는 다시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우연히 들른 캠프는 정부의 농업국에서 운영하는 캠프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모처럼 인간 대접을 받으며 잠시 편안함을 맛봅니다. 매주 토요일에 벌어지는 댄스파티도 있습니다. 하지만 톰 조드에게 다가오는 수사망은 그를 피해가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가족과 헤어져 새로운 사회 투쟁의 길을 걷기 위해 떠납니다.


 

[ 1930년대 미국 중서부를 휩쓸었던, 먼지 폭풍 혹은 모래 사발(Dust Bowl) ]




 

대평원(그레이트 프레어리), 축복받은 땅, 북미 대륙 중앙의 넓은 초지와 풍부한 수자원은 19세기 초중반부터 지금까지 세계적인 목축지대로 일컬어져 왔습니다. 사막도 있지만 지력 좋은 땅이 널려 있었습니다. 일찍부터 씨를 뿌리고 한없이 나아가 돌아오면서 추수 한다.”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경제·사회분석가 겸 행동주의철학자 제러미 리프킨의 저서 <육식의 종말>에 따르면 미국 중서부의 공짜 목축업이 시작된 곳도 대평원이었습니다. 스페인 선교사들과 목축업자들이 기르다 멕시코 독립전쟁 때 놓아버린 소들은 야생에서 1830년대에 30만 마리, 1860년대에는 350만 마리까지 늘어났습니다.




 

목장주나 축사, 사료가 없이도 소들은 최적의 조건에서 자랐습니다. 대평원의 다년생 풀이 소에게는 이상적인 식량이었던 겁니다. 심지어 겨울에도 자라는 천연 목초를 뜯어 먹으며 소 떼는 번식하고 유유히 돌아다녔습니다. 대평원에서는 스페인이 놓친 소뿐 아니라 북미 대륙에 6,000만 마리가 있었다는 미국 들소(버펄로)까지 배불리 먹었습니다.

 

1890년 미국 국세조사국이 공식적으로 서부 개척 종식을 선언했을 때. 대평원에는 서유럽 전체 면적과 맞먹은 초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농사도 잘됐습니다. 세계적인 냉해로 국제 곡물 가격이 두 배 치솟은 1894~1895년 유달리 미국만 대풍을 거둔 것도 대평원의 옥토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부터 대평원에 재앙이 찾아들었습니다. 무성하던 풀밭이 사막으로 변하고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먼지 폭풍이 일었습니다. 세상이 꼭 먼지 구덩이(Dust Bowl) 같았습니다. 여름 기온이 5에서 43를 오가는 이상 기후에 비도 내리지 않아 강줄기가 메말랐습니다.

 

* Dust Bowl 지역



 

최악의 가뭄은 1934년과 1939년의 가뭄이었고, 최악의 먼지 폭풍은 1935년에 발생했습니다. 더스트 볼은 한때 비옥했던 땅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거대한 먼지 폭풍이 오클라호마 주와 텍사스 주, 캔자스 주, 콜로라도 주, 뉴멕시코 주, 그리고 심지어 동부에 위치한 주까지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한낮에도 강력한 모래바람이 하늘을 가려 밤처럼 캄캄한 적도 많았습니다. 대평원에서 이는 모래 폭풍이 뉴욕과 워싱턴까지 날아가 사람들을 질식시켰습니다. 다락에 먼지가 쌓여 천장이 무너지고 겨울이면 붉은 눈이 내렸습니다. 온도까지 올라갔습니다.




 

더스트 볼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시카고의 1935724일 낮 온도가 관측 이래 최고치인 섭씨 44도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축복의 상징과 같던 대평원이 죽음의 땅으로 변한 이유는 인간의 탐욕과 가뭄. 영농기계화 바람 속에 1차 대전으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대거 도입된 들창코 괴물이라는 별칭을 가진 트랙터를 모는 농장주들은 야생풀을 뿌리째 갈아엎었습니다.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야생 초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야생화한 소 떼가 뜯어먹고 빗물에 의한 토양 침식을 막아주며 지하수를 가두는 역할을 했던 야생 초지를 없애고도 미국인들은 <문명의 발달로 인한 농업기계화 찬가>를 불러댔습니다. 그럴 만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소출이 늘어났으니까... 땅은 곧 지력을 잃었습니다. 지반이 약해져 옥수수 줄기가 쓰러졌습니다.




 

사람들은 알곡을 생산하지 못하는 농지를 떠나 살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중부에서 서부로 떠난 인구가 250만 명, 미국 역사상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인구의 이동은 없었습니다. 고향에 남고 싶어도 대부분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농사가 안 돼 은행 빚으로 사들인 트랙터는 고물로 변해가고 원리금을 갚지 못해 집과 땅을 금융회사에 내준 채 쫓겨나듯 삶의 터전을 등졌습니다.

 

새로 이주한 곳이라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1929년 가을 월스트리트의 주가 대폭락으로 촉발된 세계 대공황 탓이었습니다. 어딜 가도 실업자 천지고 일자리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간혹 일감을 주는 회사나 농장주들은 터무니없는 품삯을 주며 노동력을 착취했습니다.  




 

중부 출신 이주 농민들에 대한 일부 농장주들의 착취와 비인간적인 행태를 취재하던 <샌프란시스코 뉴스> 신문사의 한 기자는 취재 수첩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당시 참상을 생생하게 전했습니다. 미국의 사실주의 소설가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1939)>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분노의 포도>의 가장 유명한 구절

 

사람들의 눈에는 낭패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의 포도가,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분노가 충만하면서 알알이 더욱 무겁게 영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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