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용음회

<영화속 미국, 미국속 영화(제20회)>샌프란시스코편(2), <더티 해리> & 명배우이자 명감독 클리트 이스트우드-영화의 OST를 들으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20.06.18|조회수833 목록 댓글 2


* 열혈형사 해리 캘러한



[ 영화, 더티 해리 ]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는 열혈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형사 액션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본격화하게 된 계기를 만든 영화입니다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기한 해리 캘러한 형사는 법보다는 총이 앞서는 열혈 형사로 범인에게는 인정사정없이 총질을 해대는 무자비한 인물입니다

 

1960년대까지의 할리우드 경찰영화에서의 형사의 역할은 '건맨'이라기보다는 탐정에 가까웠습니다경찰영화들도 총격이 난무하는 액션물이 아니었고, 수위도 낮은 편이었습니다. 70년대에 만들어진 <더티 해리>는 고전적인 경찰영화와는 달리 '현대영화'의 틀을 갖추고 18금의 높은 수위와 폭력이 묘사되었습니다


* 어린 소년을 인질로  잡고있는 스콜피오, 그러나 캘러한한테 한방에...

  

60년대 <황야의 무법자>를 통하여 마카로니 웨스턴의 총아가 되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는<더티 해리>를 통하여 할리우드 본무대에서도 빛을 발하는 스타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다질 수 있었습니다.그는 서부극의 총잡이 이미지에 굳어지지 않고 현대물에서의 형사로서의 역할로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특히 <더티 해리>가 등장했던 70년대는 웨스턴 장르가 급격히 퇴조하는 분위기였는데 클린트 이스트우드로서는 재빠르게 돌파구를 찾은 셈입니다.


* 사이코패스 스콜피오

 

<더티 해리>는 서부극에서의 무법자, 총잡이, 보안관 등의 소재를 현대물로 바꾸어 놓은 느낌입니다영화의 주된 내용은 해리 캘러한 형사와 사이코 패스 살인마 스콜피오와의 쫓고 쫓기는 대결입니다어느 백주 대낮, 샌프란시스코의 고층빌딩 옥상에서 수영을 즐기던 한 여성이 총에 맞아 살해됩니다범인은 스콜피오라는 사이코 패스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장에게 거액을 요구하며 돈을 줄 때까지 계속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고 협박합니다


해리 캘러한을 비롯한 샌프란시스코 경찰들은 그를 잡기위해 잠복을 하지만 번번이 코앞에서 놓쳐버립니다계속되는 살인이 벌어지고 마지막에는 스콜피오는 어린이들 스쿨버스를 납치하게 됩니다. 해리 캘러한은 상관의 명령도 무시한 채 범인을 잡기 위해서 단신으로 뛰어듭니다.

 

해리 캘러한의 역할은 못된 악당을 처단하는 서부극의 총잡이 역할과 유사합니다악당을 처단하고 경찰 뱃지를 던져버리는 마지막 장면은 서부 영화에서 악당들을 해치우고 석양노을을 향하여 다시 또 정처 없이 방랑의 길을 떠나는 서부극의 안티히어로가 떠오릅니다


해리 캘러한의 캐릭터를 재활용한 속편이 계속 등장하면서  <더티 해리> 시리즈는 총 5편이 제작되어 형사액션물의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후 정상급의 인기스타와 거장 감독으로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여 미국 영화계의 거목을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 "어서 쏴! 이 자식아, 그리고 나를 즐겁게 해봐!"

  

<더티 해리>에서 악당 스콜피오를 연기한 앤드류 로빈슨은 요즘 폭력 범죄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이코 패스 역할을 했는데 당시로서는 이러한 전형적인 사이코 패스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라서 굉장히 독창적인 악역 캐릭터로 느껴졌을 것입니다아무런 이유 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고 어린 소녀를 납치하여 살해한 다음 나체로 유기하고 아이들을 단체로 납치하여 노래를 시키면서 광기를 보이는 등...


열혈 형사 해리 캘러한의 상대로 손색이 없는 비호감 사이코 패스 악당이었습니다선을 넘지 않고 점잖은 품위를 지켰던 고전적인 형사 영화물을 떠나 강한 수위와 성인용 폭력을 적용시킨 영화의 초기 작품이 바로 <더티 해리>였습니다


  

여성의 누드, 폭력, 무자비한 총격장면, 사이코패스 악당 등이 등장했던 <더티 해리>를 요즘 기준으로 볼 때는 매우 소프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이러한 폭력액션장르에서 꽤 앞서갔던 작품이었습니다특히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인 금문교와 빌딩옥상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도시속의 액션이 운치를 더해주기도 했습니다

 

<더티 해리> 5편의 시리즈 중에서 1~4편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는데 5편은 별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이 영화를 연출한 돈 시겔 감독은 굉장히 은인 같은 존재로 <더티 해리>보다 3년 전인 1968년에 이미 <석양의 맨하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두 사람은 형사액션물의 감독과 배우로 콤비를 이룬 바 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어린이들이 탄 스쿨버스를 납치한 범인이 쓰러진 채 총을 겨누자, 해리가 그 자의 얼굴에 매그넘 대형 권총을 겨누며 어서 쏴 봐. 그래서 나를 즐겁게 해줘 봐(Go ahead, and make my day)”라는 유명한 대사를 내뱉는 대사가 인상 깊습니다.


*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 명배우, 명감독이자 음악인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




 

현재 미국 영화계를 통틀어 단지 산업적인 기준만이 아니라 그 영향력과 정신적인 면 그리고 상징성 등을 종합할 때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는다면 바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일 것입니다. 전형적인 늦깎이였던 그는 카우보이였고 무법자였으며 거친 형사였죠. 그는 단순히 영화 주인공이 아닌 명감독으로서 하나의 신화가 되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처음부터 대단한 걸작을 발표한 천재감독으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세르지오 레오네(마카로니 웨스턴)와 돈 시겔(형사물)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영화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고, 연출을 시작한 1971년 이후로는 거의 매년 한편씩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라는 것에 대해 탐구해 왔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그 많은 영화들에 출연하고 연출하면서 수많은 시행 착오를 겪고 경험을 하고 평가를 받으면서 배우에서 감독으로 단련을 해온 것입니다. 한 작품 한 작품 영화 미학을 터득해 나가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과 이미지를 결합하여 꾸준히 자신의 스타일을 다져 나갔던 것입니다. 타고 난 재능과 요령으로 지름길을 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한 계단 한 계단을 밟으며 명예의 전당으로 올라왔던 셈입니다.

 

그렇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던 그는 나이 62세 영화인생 40년을 앞두고 <용서받지 못한 자 1992>라는 영화를 만듭니다. 16번째 장편 연출작이고 그해 전 세계 비평가들로부터 최고의 영화로 극찬의 극찬을 받았습니다. 물론 199365회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공식적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진정한 거장의 반열의 오릅니다.

 

그는 오랜 기간 영화에 대해 사색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고 세상은 그의 전진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90세에 들어선 노령임에도 이 고독한 건맨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을 걸고 여기저기 자신의 명상과 철학의 흔적을 남기며 천천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 늦깎이 배우로서의 시작 >

 

성장 속도가 빠른 배우라면 이미 스타가 되어 있을 25세에 이스트우드는 배우를 시작합니다. TV 연속극 <로하이드>(59~65)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스타덤에 오른 계기는 34세 때 찍은 <황야의 무법자>(64)였습니다. 첫 감독작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71)를 내놓았을 때는 41세였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자>(92)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을 땐 63세였습니다.

 

그리고 65세의 나이에 로맨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95)를 찍었습니다. 그리고 74세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4)에서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았습니다. 그는 대단한 슬로 스타터(slow starter)인 셈입니다. 이스트우드처럼 꾸준히 자신의 비전을 넓혀갔던 배우나 감독은 없을 것 같습니다.

 

* <더티 해리>에서

 

그리고 위에서 나열한 놀라운 연대기가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그가 건강했기 때문인데, 2006년에 9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 프란체스카 루스 이스트우드는 아들에게 건강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남겨준 셈입니다. 이스트우드는 단 한 번도 조급한 적이 없었습니죠.

 

그리고 항상 뭔가를 배우는 자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주급 75달러를 받았던 시절, 그는 실습생이었습니다. 그는 <괴물의 복수>(55) <타란툴라>(55) 같은 BSF 영화에, 자막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하며 출연하고 있었고.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긍정적으로 회고합니다. “배울 게 많은 시절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야 했고, 맘에 들지 않는 스토리라도 해야 했다. 많은 배우와 아이디어와 감독을 접했다. 그러면서 배웠다. 이 사람처럼 해야겠다 혹은 이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겠다"라고.

 

 <카우보이 시절>

 

하지만 그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쫓겨납니다. 이유는 황당했습니. 그의 목울대가 너무 크기에 배우로서 부담스럽다는 것이었습니다. 해고당했을 때 그는 빈털터리였습니다. 하지만 배우 생활을 접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습니다. 나이 때문은 아니었고. 그는 이미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를 필요로 한 장르가 바로 TV 서부극이었습니다.

 

<매버릭>(59, TV)에 잠깐 출연한 후 그는 친구 따라 CBS 방송사에 놀러갔다가 그곳 간부의 눈에 들어 <로하이드>라는 서부극 드라마에 일약 주연으로 기용됩니다. 그리고 무려 7년 동안 라우디 예이츠라는 캐릭터로 살아간다. 물론 제한된 캐릭터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한 어떤 기반이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와 찍었던 세 편의 마카로니 웨스턴 때문에 우린 그를 무법자라고 생각하지만, 그에겐 동전의 양면처럼 카우보이의 이미지 또한 있습니다. <퍼펙트 월드>(93)<스페이스 카우보이>(2000) 같은 영화에서 그는 자신의 출발점을 다시 환기시킵니다.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사선에서>(93)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무법자나 형사가 되기 전, 훨씬 더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법을 고수하고 정의를 추구했습니다.

  

<무법자 시절>

 

이스트우드가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보여준 무표정은, 사실 긴 시간이 응축된 마스크였습니다. 재즈 애호가였던 그는 레스터 영 같은 연주자를 보며 가슴이 고동쳐도 냉정을 유지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제임스 딘 같은 배우, 잭 케루악 같은 작가, 쳇 베이커 같은 뮤지션이 보여준, 새로운 방식의 섹시함 또한 이스트우드의 머릿속에 기억되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써먹을 시간이 왔습니다.

  

그는 이미지들을 기억해냈습니다. 사실 <황야의 무법자>에 내정된 배우는 제임스 코번이었지만, 가난했던 이탈리아 영화계는 15,000달러의 개런티를 지불하고 이스트우드를 대타로 기용했습니다. 레오네는 이스트우드의 나른하고 양미간을 찌푸릴 때의 고양이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역할을 만들어나가면서 이스트우드가 영감을 받은 캐릭터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61)에 나오는 미후네 도시로였습니다. 이스트우드는 비정하고 잔인한 게리 쿠퍼 같았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원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습니다. 바로 신화적이며 전형적인 캐릭터였습니다.

 

* <황야의 무법자>에서

 

그는 말이 아닌 몸으로 연기했고, 표현을 억제했습니다. 영국의 대배우이자 이스트우드와는 <독수리 요새>(69)에서 공연했던 리처드 버튼은 이스트우드의 연기 스타일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클린트는 스펜서 트레이시, 제임스 스튜어트, 로버트 미첨 같은 배우의 계보를 잇고 있다."라고...

 

그에겐 역동적인(?) 무기력함이 있습니다. 카메라 앞에선 아무것도 안 할 것처럼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결국엔 모든 것을 해냅니다. 표현을 최소화하고 표정을 아끼는 배우. 그런 면에서 이스트우드는 미국의 전통적인 남성상에 맞닿아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그가 이탈리아에서 찍었던 영화에 대해, 고향인 미국의 저널과 대중은 냉소적·폭력적이라고 비판했고, 이스트우드를 냉혹한 살인자로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있었고 새로운 액션 영웅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황야의 무법자>에서

 

<‘더티 해리시리즈의 막나가는 형사 시절>

 

마카로니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이스트우드는 서부극이 쇠퇴하자 돈 시겔의 <더티 해리>(1971)에서 강력 경찰로 이미지를 쇄신하게 됩니다. <더티 해리>는 그의 마초적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각인시켰죠.

 

매그넘(대형 권총)으로 범죄자들을 무차별 사살하는 거친 형사 더티 해리는 아직도 대중들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이스트우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후, <더티 해리> 시리즈는 큰 인기를 끌어 1988년까지 5편의 시리즈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직접 감독으로 나서게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하리 시리즈의 돈 시겔 감독으로부터 감독이 되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이에 그는1971년 맬파소 프로덕션이라는 제작사를 차립니다. 맬파소 프로덕션을 통해 그는 1973년 사이코 스릴러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로 감독 데뷔해 이후부터는 감독과 배우로 활동합니다. 이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배우보다는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아나갑니다.

 

감독으로서 그는 돈 시겔이나 세르지오 레오네 등 함께 작업했던 감독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두 감독의 방식은 이스트우드의 절제된 연기 스타일을 만들었고 그의 영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건틀릿>(1977), <브롱코 빌리>(1980), <파이어 폭스>(1982), <페일 라이더>(1985) 등을 감독하였고, 재즈 뮤지션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버드>(1988),<추악한 사냥꾼>(1990) 등에 이르러서는 감독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절제된 스타일의 대표작은 93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작 <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입니다. 그의 감독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용서받지 못한 자>는 서부영화를 결산하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그는 영화를 떠나 잠시 외도를 하는데, 1986년부터 2년간 캘리포니아주 카멜시()의 시장 직을 역임합니다. 이후, <사선에서>(1993)에 배우로서 출연하였고, <퍼펙트 월드>(1993),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 <앱솔루트 파워>(1997), <미드나잇 가든>(1997)를 감독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기도 합니다.

 

특히,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선 잔잔하고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담하게 연출, 메릴 스트립과 직접 로맨스그레이 커플을 연기하기도 하여 한국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이후 <밀리언달러 베이비>, <미스틱 리버>, <아버지의 깃발>,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체인질링>, <그랜 토리노>, <인빅터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 <설리,허드슨강의 기적>, <라스트 미션>과 같은 걸작들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에서

  

*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에서

  

<음악인으로서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배우면 배우, 감독이면 감독, 게다가 자신이 만든 영화의 음악 작곡까지. 영화에 관한한 이만한 팔방미인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할리우드 최정상의 배우임과 동시에, 지난 40년간 모든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은 그야말로 이시대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 제작자. 영화계의 거장이자 우상으로 모든 부문에서 작품성, 흥행성을 인정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게다가 그는 아직도 열정적으로 영화계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10대 때부터의 꿈이었다는 음악가로서의 자질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이스트우드는 그동안 틈틈이 자기가 만든 영화의 메인 타이틀도 작곡하는 솜씨를 보여주어 왔습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의 메인 타이틀인 “Claudia's Theme"이 대표적인 곡인데 기타가 주 멜로디를 리드하고 잔잔하게 관현악과 합쳐져 가는 이 주제곡의 성공은 이스트우드로 하여금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음악에 까지 손을 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 작품 이전에도 그는 이미 두 개의 영화음악을 만든 적이 있지만, 이 영화의 성공이후, 그는 오랫동안 그토록 사랑하는 재즈에 기반을 둔 창작 실력으로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에서 만만치 않은 음악적인 재능도 과시를 하였고 이후 <아버지의 깃발><그랜 토리노>에서도 메인 타이틀을 작곡함으로써 대단한 재능을 과시한 바 있습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한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변호정 | 작성시간 20.06.19 서부쵝오의 총잡이
    클린트이스트우드가어느새
    백발노인이되어 인생무상을느낍니다
    그의 길쭉한매그넘총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총알이 악당 양마치들 몸땡이에 사정없이
    박힐때마다 기분 째집니다
    미남에다 장신의 잘빠진 뽀다구
    아엠 빅휀임다
  • 작성자블라디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6.19 변호정 판 <신 한글 맞춤법 사전>이 나올 날이 곧...ㅎㅎㅎ
    코로나 시절에 건강 조심하세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