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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음회

< 고전 명작영화 산책(제14편) > 영화 <콰이강의 다리> & 명장 데이비드 린 감독 이야기

작성자블라디고|작성시간22.01.19|조회수783 목록 댓글 0

 

[ 영화 <콰이강의 다리> ]

 

명장 데이비드 린 감독이 멜로드라마와 문예물 등의 작품에서, 웅장한 서사시 형태의 대작 영화로 연출 방향을 바꾼 첫 작품인 <콰이강의 다리>는 그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해 7개 부문을 휩쓸면서

그에게 첫 감독상을 안겨 주었습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비극적인 마지막 장면과 첫 오프닝 장면이 유명한데 휘파람을 불면서 포로 수용소를 행진해 오던 연합군 포로들의 남루한 차림과 먹지 못해서 피골이 상접한 모습들..,

  

특히 밑창이 다 떨어져 나가 너덜너덜한 군화를 신고 ‘콰이 마치’에 맞춰 제자리 걸음을 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합니다. 윌리엄 홀던, 알렉 기네스, 잭 호킨스등 명배우들의 명연기와 함께 휘파람 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지는 주제가 ‘콰이강의 행진’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잊지 못할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된 곳은 태국의 ‘타마캄’이라는 곳으로, 당시 일본군은 군인과 군수물자 운송을 위해 미얀마와 타이를 잇는 다리를 메클롱 강 위에 만들었습니다. 실제로는 두개의 다리를 만들었는데, 먼저 임시로 사용하는 목조 다리를 세웠고 몇 달 뒤에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은 다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두개의 다리는 2년 동안 사용되었고, 1945년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부서졌는데 콘크리트 다리는 보수작업을 거친 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리가 완성되자마자 폭파된다는 영화 속 설정은 완벽한 허구인 셈입니다. 건설 과정에서 연합군의 포로 1만3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강제로 동원된 민간인 사망자는 8만~10만 명을 헤아렸습니다. 영국군 포로들을 대표하는(사진, 왼편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오른편 영국군 포로 대표 니콜슨 대령)

니콜슨 대령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은 필립 투지 중령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니콜슨처럼 영국군의 자긍심을 위해 다리 건설을 독려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최대한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불개미를 풀어 나무를 갉아먹게 한다든지, 콘크리트를 엉망으로 배합하는 등의 사보타지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정글 속 현장은 극도로 열악했고 뱀과 거머리가 득실거렸으며 배우와 스태프는 폭염에 시달렸습니다. 그럼에도 워낙 꼼꼼한 데이비드 린 감독은 단 하나의 숏을 위해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매달리는 집요함을 보였고, 그 결과 배우나 스태프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하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위의 동영상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던 ‘콰이 마치’가 흘러나오는데 옛날 고리짝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 간략한 줄거리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때 미얀마 국경 부근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포로로 잡혀온 영국군 대령 니콜슨(알렉 기네스 분)은 전형적인 군인 기질을 가진 완고한 장교입니다.(사진, 미군 포로 시어즈-윌리엄 홀덴)

일본군 포로수용소장 사이토 대좌(세슈 하야카와 분)는 엄격하지만 인간미를 갖추 장교로 나옵니다.

 

콰이강 계곡에 타이 방콕과 미얀마 양곤을 잇는 철도용 다리를 건설하라는 임무가 포로수용소에 주어지자 사이토 대좌는 니콜슨 대령과 마찰을 빚게 됩니다.

  

국제협정을 무시하고 영국 장교까지 노동을 시키려는 명령에 따를 수 없다고 대항하는 니콜슨과 사이토의 알력 속에, 미군 포로 시어즈(윌리엄 홀덴 분)는 수용소 탈출에 성공합니다.(사진, 영국군 포로들)

니콜슨 대령은 사이토 대좌를 누르고 투철한 군인 정신과 지도력을 발휘해 독단으로 다리를 완공시킵니다.

 

다리가 완공되는 날 시어즈는 영국군 유격대와 함께 나타나 다리에 폭파장치를 합니다. 고위급들을 태운 첫 기차는 아무것도 모른 채 다리를 건너다 니콜슨의 눈앞에서 다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납니다.

 

콰이강의 다리는 점령국 일본과 패전국 영국이 서로의 자존심을 대결하는 상징적 구축물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파괴되고 맙니다. 다리가 파괴됨으로써 제국주의도 함께 붕괴되는 것을 영화는 암시해 줍니다.

 

[ 거장 데이비드 린의 영화 인생 ]

 

1908년 영국 크로이던에서 태어났습니다. 10대 시절 우연히 본 영화에 매료되어 무작정 영화계에 입문, 스튜디오에서 잡역부 등으로 일하면서 1930년대에는 편집기사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42년 영국 최고의 극작가이자 배우인 노엘 카워드와 공동연출로 영화를 만들어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이후 감독은 영화 <밀회>를 통해 치밀한 내러티브와 상징적이고 아름다운 화면 구성으로 감독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데이비드 린 감독이 거대한 스펙터클을 자랑하는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만든 가장 아름다운 영화로 손꼽히기도 합니다. 이후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스크린으로 담아내면서 <위대한 유산 >, <올리버 트위스트> 등의 영화를 찍습니다.

  

1950년대 중반 린 감독은 할리우드 자본을 축으로 대작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콰이강의 다리>, <아라비아의 로렌스 >, <닥터 지바고 > 3편의 작품을 연출했습니다.

 

연출 초기에는 영국 영화를 통해 아름답고 소박한 영국의 리얼리즘을 표상했던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이후, 이러한 방대한 규모의 영화들을 70mm의 렌즈로 사막과 설원의 광대함을 스크린에 담아내어 시각미의 극치를(사진, 영화 '닥터 지비고'에서)

선사하면서 후대의 블록버스터급 영화감독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죠.

 

<닥터 지바고>의 대성공 이후 <라이언의 딸>을 내놓았지만, 평단의 차가운 비판에 상심이 너무 깊어서였는지 14년 동안이나 작품을 내놓지 않던 린 감독은 1984년 <인도로 가는 길 >을 만든 후 차기작을 준비하던 1991년 83세의 나이로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여섯 작품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영화를 남겼으나 그의 작품은 모두 26개의 오스카 트로피를 획득해, 영화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습니다.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인간의 장대한 드라마를 탁월한 역량을 능숙하게 펼쳐 보였습니다.

 

특히 풍경 묘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일류급이었죠. 정교하고(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섬세한 화면과 장대한 스케일의 그의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후대의 감독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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