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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열 컬럼, 수필

<한시산책>빈정대기, 이기죽거리기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2.11.24|조회수274 목록 댓글 2

빈정대기, 이기죽거리기

 

 

 

"빈정거리는 것이 때로는 바로 말하는 것 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라는 말을 스페인의 사상가 발타자크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라는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예술가들 특히 시인의 경우 언제나 그 시대의 약자였을 터이므로 빈정대거나 이기죽거리는 시를 쓴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설령 폭군이나 힘있는 자의 압박이 없다해도 시의 묘미는 이렇게 속내를 바로 들어내지 않고 살짝 비트는데 더 묘미가 있다.

 

 

빈정거리기

 

빈정거리기의 명수는 오히려 시인도 아닌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아닐까. 수(脩) 나라의 장수 우중문이 30만 정예군을 몰아 압록강을 넘어 쳐들어 왔을 때, 을지문덕은 거짓으로 후퇴하여 수도 평양 부근까지 내려온 후 시 한수를 적어 우중문에게 보내는데,

 

(신책구천문)  귀신 같은 꾀는 천문을 통달하고

理(묘산궁지리)  신묘한 셈은 지리를 꿰뚫었구려

高(전승공기고)  전쟁에서 이긴 공이 이미 높으니

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았으면 그만두기 바라오

 

물론 그 뒤 진행상황은 보통(?)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라도 훤히 꿰고 있으리라 믿어 부언하지 않기로 한다.

 

조선조 곧은 선비의 표상이라 할 수있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선생. 생의 지표로 삼았던 개혁정치가 조광조(趙光祖)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서 끝내 출사하지 않고 향리에 묻혀 후학들을 가르친 선비 중의 선비다. 선생의 시에는 비아양을 넘어서는 시퍼런 서슬조차 느껴진다.

 

人之愛正士(인지애정사)    사람들이 바른 선비를 사랑하는 건

好虎皮相似(호호피상사)    호랑이 가죽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네 

生卽欲殺之(생즉욕살지)    살았을 땐 죽이지 못해 안달이고

死後方稱美(사후방칭미)    죽은 후엔 (호피가) 아름답다 떠들지

 

빈정거리는 시의 대미를 장식한 시인은 아마도 김삿갓이리라. 그의 해학 넘치는 시 두어 수 붙인다.  스무나무 아래서(二十樹下),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낯 설은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망할 놈의 집에서 쉰밥을 먹네
人間豈有七十事(인간기유칠십사)   인간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나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식식)   집으로 돌아가 선밥을 먹느니만 못하구나

 

스무나무(二十樹) , (낯) 설은 나그네(三十客), 망할 집(四十家), 쉰 밥(五十食), 이런 일(七十事) 그리고 서른 밥(三十食)은 우리식으로 풀이한 것으로 중국사람들이 보면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김삿갓이 어느 허접한 집에 묶게 되었을 때 한문을 겨우 터득한 주인장이 시 한수를 부탁한다. 이에 5언 율시 형식으로 휘갈겨 준다.

 

天長去無執(천장거무집)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花老蝶不來(화로접불래)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菊樹寒沙發(국수한사발)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枝影半從池(지영반종지)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江亭貧士過(강정빈사과)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大醉伏松下(대취복송하)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月利山影改(월이산영개)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通市求利來(통시구이래)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파격시라 이름 붙여진 대로 운(韻)은 잘 맞지않고 뒤부분이 다소 어색한 감이 없지 않으나. 별로 어려운 한자도 없고 내용도 이해가 되니 주인장은 감지덕지 받았을 것이다. 사실은 자기를 욕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한자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되는 것을,


 

천장에 거미집, 화로에 겉불 내음

국수 한사발, 지렁(간장) 반종지

강정 빈 사과, 대추 복숭아

월리(개) 사냥개, 통시(변소) 구린내

 

 

이기죽거리기

 

'이기죽거린다' 라는 말은  어쩌면 '빈정대다'나 '비아냥거리다'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러나 필자는 빈정대다 란 말은 다소 들어내놓고 하는 말이라면 이기죽거리다는 입안에서 우물우물 잘 알아듣지 못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생각된다. 갑이 아닌 을, 즉 약자의 다소 뒤틀린 심사를 나타낸 것은 아닐까.

 

술 한말에 시 백수를 지었다는 이백(李白, 701~762 盛唐 ). 그가 평소 존경하여 마지않던 대선배 시인이며 다섯 버드나무(五柳)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은 도연명(陶淵明, 365~427 東晉)에 대해서도 한 펀치 날리신다

 

陶令日日醉(도령일일취)  도연명 선생은 날이면 날마다 취해

不知五柳春(부지오류춘)  다섯 버드나무에 봄이 온 줄 몰랐네

素琴本無絃(소금본무현)  거문고에는 본래 줄이 없었고

酒用葛巾(녹주용갈건)  술을 거를 땐 갈건을 사용했다지

 

당나라의 여류 시인 설도(薛濤, 770?~830?)는 가문이 몰락하자 호구지책으로 기생의 길로 들어선다. 그녀의 빼어난 미모와 시로 당대의 고관대작이나 이름 꽤나 날리던 시인들과도 가까이 교류한다. 그러나 적잖은 이별과 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남정내들이란 믿을 게 못되다고 느껴서인지 이런 아리송한  시를 남겼다. 버드나무의 꽃솜털을 노래하다(柳絮詠)

 

二月楊花輕復微(이월양화경부미)   2월(음력)의 버드나무 꽃은 가볍고 미세하여

春風搖蕩惹人衣(춘풍요탕야인의)   봄바람에 흔들리며 사람들의 옷가지에 엉겨붙는다

他家本是無情物(타가본시무정물)   이 분들(?)이 본시 아무런 뜻이 없는 물질이라 그런지

一向南飛又北飛(일향남비우북비)   한편 남쪽으로 날라가 또 다시 북쪽으로 날라간다

 

버드나무 꽃 솜털을 빗대어 남자들의 지조없음을 질타한 시가 분명한게, 3째 구에 '他家' 즉 집 家 자를 사람이 아닌 식물체에 쓴 것을 보아도 짐작이 간다. 

 

우리나라 시인으로 이죽거림의 비조(鼻祖)는 아마 고려 무신정권 시절을 굳건히 버텨온(?) 문신 이규보 (李奎報, 1168~1241 )일 것이다. 그는 최충헌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는데 선비들로 부터 비난을 받을 때면 "나라도 벼슬을 해야 당신들 술이라도 한잔 사 줄 게 아니냐." 고 받아 넘겼다는 일화가 있다. 그의 시 중 해학 넘치는 내용이 많은데, 두 수만 골라 여기 붙인다. 저녁에 달을 바라보며 지었다는 시(晩望),

 

李杜啁啾後(이두주추후)    이백과 두보가 한바탕 떠들고 간 뒤에

乾坤寂寞中(건곤적막중)    천지가 온통 적막하기만 하네

江山自閑暇(강산자한가)    강산은 저절로 한가해 지고

片月掛長空(편월괘장공)    조각달만 먼 하늘에 걸려 있네.

 

주추(啁啾) 라는 어려운 한자는 새들이 모여 시끄럽게 지저기는 걸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이백과  두보가 당시 얼마나 많은 시를 남겼기에 그들이 떠난 세상이 온통 적막강산이라고 하였을까. 詩仙과 詩聖에 대해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불경스럽다고 할까 아니면 발칙하다고 할까? 그러나 어찌 보면 무식한 무신들 서슬에 말한마디 못하는 먹물(?)들의 침묵을 해학넘치게 표현한 것일 게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무력한 자신에 대해서도 이죽거리는 시를 지었다는 사실이다. 우물에 비친 자기를 보고 장난삼아 지은 시(炤井戱作),

 

不對靑銅久(불대청동구)   오랫동안 거울을 안 보았더니

吾顔莫記誰(오안막기수)   내 얼굴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네

偶來方井(우래방소정)   우연히 맑은 우물에 비친 모습이

似昔稍相知(사석초상지)   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녀석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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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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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원백 | 작성시간 12.11.24 난 여태 “ 이죽거리다 ” 로 알고있었는데 이기죽이군~찾어보니 줄임말이네
  • 작성자류영철 | 작성시간 12.11.27 해학과 풍자가 어우러진 많은 시조를 같이 보게 해주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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