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을 모두 '詩仙'이라 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즐겨 부르던 '酒仙'이라는 별칭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또 정겹기도 하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보(杜甫)는 그의 시에서 '이백은 한말 술에 시 100수를 지었고, 시를 지을 때는 황제가 불러도 가지 않았다(李白斗酒詩百篇 天子呼來不上船)'고 했다. 지금까지도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며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시인 이백, 그러나 1500년이나 먼저 살았고 우리와는 다른 仙界에 머물다 간 신선 같은 존재이며 불세출의 천재였던 그의 시를 끄집어 내어 씹어(膾炙) 보는 것에 주저함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글을 끄적이는 필자도 이제 인생의 한 바퀴(還甲)를 돌아 이백이 歸天하신 엇비슷한 나이(62세)가 되었기에, 이제 감히 그의 시를 꺼내어 '詩仙' 이백이 아니라 '人間' 이태백의 행로, 그가 어떤 꿈을 꾸었고 어떻게 마음 아파했고 좌절을 맛 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인생을 관조하였는지 상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이백을 시를 잘 짓는 술주정뱅이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서역 변방에서 태어나 중앙무대에 진출하여 主流가 되고자 엄청난 공부를 하였고 피나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던 사람 중의 하나다. 한잔 마시면 시가 술술 튀어나오는 것이 어찌 아무런 지식도 없이 가능한 일인가. 이백은 천성이 호방하고 술벗이 많아 음주를 무척 즐겼고, 두보는 성실하고 소심하여 술을 덜 마신 걸로 짐작하고 있으나 그렇지만은 아닌듯 싶다. 이백의 시 1000여 수 중 술에 대한 건 16% 정도인데 반해, 두보의 시 1400여 수 중 술에 대한 게 21%나 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백은 술을 즐겼지만 두보는 술에 원수진 사람처럼 마셨다 하니, 요새 얘기로 2,3차를 마다하지 않았고, 심지어 말에서 떨어져 문병왔을 때도 그들을 붙들고 술잔을 기울였다 하며 당뇨와 폐병으로 고생할 때도 술을 계속 마셨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두보는 60을 채우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다.
꿈과 야망
여기 우선 이백의 꿈과 야망이 옅보이는 시부터 소개한다
(*여기에 나오는 시는 시대순이 아니며-알 수도 없지만-풀이 또한 정석이 아니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분위기만 취하시길..)
行路難 가는 길이 험하구나
金樽淸酒斗十千 금동이엔 만냥이나 되는 청주가 있고 玉盤珍羞値萬錢 옥쟁반엔 만냥이나 되는 진수성찬 있지만 停杯投筯不能食 잔 놓고 젓가락 던진 채 먹지를 못하고 拔劍四顧心茫然 칼 빼들고 둘러보아도 마음만 망연하네 欲渡黃河冰塞川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장이 강을 막고 將登太行雪滿山 태행산에 오르려니 온 산엔 눈이 가득하네 長風破浪會有時 긴 바람 타고 파도를 넘을 때가 오리니 直挂雲帆濟滄海 구름같은 돛 펴 올리고 푸른 바다 건너리라 *斗 : 말, *十千 : 만 *珍羞 : 진귀한(珍) 음식물(羞) *筯 : 箸(저)와 같은 자, 젓가락 *挂(괘) :걸다, (사족 : 위 마지막 2구는 후진타오가 미국에 갔을 때 양국의 장래에 대해 이 시구를 인용하여 유명해짐) 또 이런 시구도 보인다. 欲上靑天覽日月 푸른 하늘에 올라 해와 달을 보리라 抽刀斷水水更流 칼 뽑아 끊어도 물은 계속 흐르고 擧杯消愁愁更愁 잔들어 씻어내도 시름 또 시름 男兒在世不稱意 남아로 태어나 세상과 뜻이 맞지 않으니 明朝散髮弄扁舟 내일 아침에는 산발로 편주를 저으리 (宣州謝脁樓에서의 작별 중 일부) 이백은 24세에 진사시험에 낙방하고 온 천하를 주유하면서 시를 짓고 벗들과 교유하다, 43세가 되는 나이에 여러 사람들의 천거로 현종(玄宗)의 부름을 받아 장안(長安)에 들어가 환대를 받고,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된다. 그러나 이백의 임무는 포고문 초안을 쓰거나, 임금의 향연에 불려나가 임금의 치적을 칭송하는 시를 짓는 일이 고작이었다. 어지러운 조정 분위기와 어용 문인으로서의 처지에 답답함을 느낀 이백은 장안의 한량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짓는데 몰두한다. 우정의 묘약 이백을 대표하는 시는 역시 '장진주(將進酒)'로 벗들을 불러 술을 권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잠간 이 시제에 대하여 언급하고 넘어 가기로 하자. 한문을 많이 접해 본 벗들은 잘 아시겠지만, '將'은 일종의 미래형 조동사로 영어에 shall이나 will에 해당되며 '進'은 '나오다' 혹은 '오다 '로 보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 '와서 한잔 하세' '한잔 하러 오시게' 로 해석함이 타당할 듯..(영어로 Come on, Shall we drink 쯤 될까...^^) 將進酒 와서 한잔 하세 君不見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黃河之水天上來 황하의 강물이 천상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 바다로 흘러가 다시 돌아 오지 못함을 又不見 또 보지 못하였는가 高堂明鏡悲白髮 지체높은 사람 거울에 비친 백발의 슬픔을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에 청사같던 머리털 저녁엔 눈같이 되었네 莫使金樽空對月 금술잔에 공연히 달빛만 채우려는가 千金散盡還復來 천금은 다 써도 다시 돌아온다네 會須一飮三百杯 술을 마시려면 삼백잔은 마셔야지 進酒君莫停 술잔이 가니 그대들 사양치 마시게 請君爲我傾耳聽 부디 날 위해 귀 기울려 주시게 但願長醉不用醒 그저 마냥 취해 깨고 싶지 않을 뿐 惟有飮者留其名 오직 술마시는 자만 이름을 남기리라 斗酒十千恣歡謔 말 술에 만금으로 마음껏 즐겼나니 徑須沽取對君酌 당장 술을 사와 그대들에게 권하리라 與爾同銷萬古愁 그대들과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이리라 여기서 이백을 흠모했던 정철이 지은 비슷한 제목의 우리 말 시,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빼놓고 갈 수 있겠는가? 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묶여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회오리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백이 얼마나 술 심부름을 많이 보냈길래 '술 사러 보냈는데 오지는 않고'란 시제의 詩도 다 있을까? 待酒不至(대주불지) 술 사러 보냈는데 오지는 않고 친구를 불러 밤을 새워 술을 마시기도 하고, 友人會宿(우인회숙) 친구와 모여 함께 묵으며 대작은 자연히 그 다음 날로 이어지기도 하고, 山中與幽人對酌 산속에서 그윽한 벗과 더불어 대작
人生得意須盡歡 인생에 뜻을 이루면 기쁨을 마음껏 즐기세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이 준 내 재능 쓰여질 날 있을 테고
烹羊宰牛且爲樂 양 삶고 소 저며 즐겁게 놀아보세
岑夫子 丹丘生 친구 잠부자 단구생이여
與君歌一曲 내 그대들을 위해 노래 한곡 하리니
鐘鼓饌玉不足貴 좋은 악기나 음식 그리고 보석이 무에 중한가
古來聖賢皆寂寞 예로부터 성현들 모두 적막하고
陳王昔時宴平樂 옛날 진왕은 평락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主人何爲言少錢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겠나
五花馬 千金裘 귀한 五花馬와 비싼 모피 옷을
呼兒將出換美酒 아이 시켜 좋은 술과 바꿔오게 하여
玉壺繫靑絲(옥호계청사) 푸른 끈 맨 술병 들고 갔는데
沽酒來何遲(고주래하지) 술 사오는 게 어찌 이리 늦은고
山花向我笑(산화향아소) 산에 꽃들이 나를 향해 웃음 지으니
正好銜杯時(정호함배시) 정말 술잔 기울이기 좋은 때로구나
晚酌東窗下(만작동창하) 저녁에 동쪽 창 아래서 술을 마시니
流鶯復在茲(류앵부재자) 날아다니는 꾀꼬리 여기도 있네
春風與醉客(춘풍여취객) 봄바람과 취한 나그네
今日乃相宜(금일내상의) 오늘에야 서로가 어울리누나
滌蕩千古愁。(척탕천고수) 천고의 시름을 씻어버리려
留連百壺飮。(류련백호음) 한자리에서 연거푸 백 병 술을 마셨네
良宵宜淸談。(량소의청담) 이 좋은 밤에 이야기나 나누어야지
皓月未能寢。(호월미능침) 밝은 달은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있는데
醉來臥空山。(취래와공산) 취기가 와 빈 산에 누우니
天地即衾枕。(천지즉금침) 천지가 바로 이불이요 베개로구나
兩人對酌山花開 두사람이 대작하니 산에 꽃이 피네
一杯一杯復一杯 한잔 한잔 또 한잔
我醉欲眠君且去 나는 취해 잠들려 하니 자네는 그만 가시게
明朝有意抱琴來 생각 나면 내일 아침에 거문고 안고 오시게반주없이 권주가 부르는 것도 이제 지치셨나 보다, 푸하하^^
그리고 이제는 낮이나 밤이나 상관하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시는데,
自遣 (자견) 스스로를 보내며
對酒不覺瞑(대주불각명) 술잔 기울이다 보니 어두어지는 줄 몰라
落花盈我衣(낙화영아의) 꽃이 떨어져 내 옷깃을 덮었는데
醉起步溪月(취기보계월) 취한 채 일어나 달 비친 개울을 걸어 간다
鳥還人跡稀(조환인적희) 새들는 둥지로 돌아가고 인적도 끊겨
春日醉起言志(춘일취기언지) 봄날 취해 일어나 말하다
處世若大夢(처세약대몽) 세상에 처함이 큰 꿈과 같거늘
胡爲勞其生(호위노기생) 어찌 그 삶을 수고롭게 하랴
所以終日醉(소이종일취) 종일토록 취하여서는
頹然臥前楹(퇴연와전영) 쓸어져 앞기둥에 엎드렸다가
覺來眄庭前(각래면정전) 깨어나 뜰앞을 흘낏 보니
一鳥花間鳴(일조화간명) 새 한마리 꽃 사이에서 우네
春日獨作(춘일독작) 봄날 홀로 술마시며
東風扇淑氣(동풍선숙기) 봄바람 맑은 기운 부채질하고
水木榮春暉(수목영춘휘) 물과 나무 봄빛에 무성하구나
白日照綠草(백일조녹초) 밝은 해 초록색 풀을 비추고
落花散且飛(낙화산차비) 낙화는 흩어져 날리는 구나
孤雲還空山(고운환공산) 외로운 구름 빈 산을 돌고
衆鳥各已歸(중조각이귀) 뭇 새들 모두가 돌아가고
彼物皆有托(피물개유탁) 저들 모두 저 갈 곳이 있는데
吾生獨無依(오생독무의) 내 인생 의지할 곳 하나 없네
對此石上月(대차석상월) 이 바위 위의 달을 바라보며
長醉歌芳菲(장취가방비) 오래 취해 향기로운 풀을 노래하노라
체념과 관조
이백은 관운이 지질이도 없었다. 안록산의 난 때에 현종의 아들 영왕 린의 권유에 못이겨 그의 막하에 가담하지만, 그 세력의 확장을 경계하던 숙종에 의해 역모로 얽혀 사형선고를 받고 옥살이 끝에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중앙 관직에 남아 있던 술친구, 시친구들의 도움으로 곧 사면되었다. 이 전후 쯤부터 사람에 대한 실망이랄까, 홀로 술을 마시게 된다. 月下獨酌 중 제 1수와 2수를 보면,
月下獨酌 其一(월하독작-1) 달 아래서 혼자 술을
花間一壺酒(화간일호주) 꽃 사이 놓인 한 동이 술을
獨酌無相親(독작무상친) 친한 이 없이 혼자 마시네
擧盃邀明月(거배요명월) 잔 들어 명월을 부르니
對影成三人(대영성삼인)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
月旣不解飮(월기불해음) 달은 원래 마실 줄 모르고
影徒隨我身(영도수아신) 그림자는 그저 내 흉내만 내는구나
暫伴月將影(잠반월장영) 한 동안 달과 그림자를 벗해
行樂須及春(행락수급춘) 봄이 가기전에 마땅히 즐겨야지
我歌月排徊(아가월배회)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대고
我舞影凌亂(아무영능란) 내가 춤추면 그림자 더욱 어지러워 지네
醒時同交歡(성시동교환) 깨어서는 모두 함께 즐기고
醉後各分散(취후각분산) 취한 뒤에는 제각기 흩어진다
永結無情遊(영결무정유) 무정의 교유를 길이 맺었으니
相期邈雲漢(상기막운한) 먼 은하에서 서로 만나길 기약하세
月下獨酌 其二(월하독작-2)
天若不愛酒(천약불약주) 하늘이 만약 술을 즐기지 않는다면
酒星不在天(주성불재천) 어찌 하늘에 酒星이 있으며
地若不愛酒(지약불애주) 땅이 술을 즐기지 않는다면
地應無酒泉(지응무주천) 어찌 땅에 酒泉이 있으리요
天地旣愛酒(천지기애주) 하늘과 땅이 이미 술을 사랑한 바
愛酒不愧天(애주불괴천) 술을 좋아함이 어찌 부끄러운 일이요
已聞淸比聖(이문청비성) 이미 청주는 성인에 비견한다 들었고
復道濁如賢(복도탁여현) 또한 탁주는 현인에 견준다 하였으니
聖賢旣已飮(성현기이음) 성현을 이미 다 마셨는데
何必求神仙(하필구신선) 어찌 신선을 구하리요
三盃通大道(삼배통대도) 3잔은 대도에 통하고
一斗合自然(일두합자연) 1말이면 자연과 하나가 된다
俱得醉中趣(구득취중취) 취중에 얻은 온갖 흥취를
勿謂醒者傳(물위성자전) 깨어 있는 이들에게 말하지 마소
이태백이 장안으로 들어가 한림학사를 하던 시절 하지장이란 문인이 그의 시를 읽고는 경탄하여 '이건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다, 하늘 나라에서 귀양 온 신선의 작품이지..' 이때부터 이백은 '적선(謫仙)'이란 별명은 이렇게 얻게 되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이태백은 결국 역모에 연루되어 귀양을 가게 되고 다행히 풀려 났으나 몇년을 못채우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돌아간다. 여기에 두보(杜甫)가 지은 '이백에게(寄李白)' 첫 4句를 붙이며 맺는다.
昔年有狂客(석년유광객) 지난 날 웬 미친놈이 있어
號爾謫仙人(호이적선인) 그대를 하늘에서 귀양 온 신선이라 불렀지
筆落驚風雨(필락경풍우) 붓끝 떨어지면 비바람도 놀라고
詩成泣鬼神(시성읍귀신) 시 지으면 귀신도 눈물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