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추가절(仲秋佳節)
절기 중 으뜸이라면 당연히 추석 전후일 겁니다. 무덥고 후덥지근하던 날씨는 아침 저녁 불어오는 서늘한 가을 바람에 날려가고, 먹을 거리도 풍성한 그야말로 '아름다운 절기(佳節)' 지요. 그런데 문뜩 우리가 앞으로 몇번이나 한가위 달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나이 탓이겠지요. 아마 15번 정도, 잘하면 스무번 정도가 아닐까 꼽아 봅니다만..
牀前明月光(상전명월광) 침실로 스며드는 달 그리매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어찌 보면 서리가 내린 듯도 하이
擧頭望山月(거두망산월) 산 위에 뜬 달을 바라보고는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머나먼 고향을 생각하노라
이백(李白, 701~761)의 그 숱한 시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송하는 절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위 시의 우리말 새김은 신석정(辛夕汀, 1907~1974) 님의 것을 따왔는데, 역시 시는 시인이 번역을 해야 제맛이 나는군요. 3구와 4구에 '고개를 들어(擧頭)' 나 '고개를 숙여(低頭)' 를 새김에서 뺀 건 시인다운 생략법인지..
秋風玉露洗銀河(추풍옥로세은하) 가을 바람 옥같은 이슬 은하를 씻어내니
月色由來此夜多(월색유래차야다) 달빛은 예로부터 이런 밤에 가득한 법인데
惆悵浮雲能蔽日(추창부운능폐일) 애닲어라 뜬구름이 해를 가리니
停杯一問欲如何(정배일문욕여하) 술잔을 멈추고 묻노라, (밤중엔) 어쩌라고
정몽주 정도전 등과 같은 여말선초의 성리학자 양촌 권근(權近. 1352~1409)의 '仲秋' 라는 제하의 시입니다. 조선 건국에도 일조하며 신생 조선에서 대제학, 대사성 등의 벼슬을 역임합니다(그의 손자는 세조대의 권신 권람이지요).
歲歲年年夜夜懸(세세녀년야야현) 해마다 밤마다 뜨는 달이건만
仲秋三五最淸姸(중추삼오초정연) 한가위 보름달이 제일 곱다네.
對渠那得樽無酒(대거나득준무주) 너를 대함에 어찌 술이 없을쏘냐. *渠 : 어찌
爲倩良朋敞錦筵(위청량붕폐금연) 좋은 벗을 위해 멋드러진 잔치를 벌리리
조선중기의 문신 김효원(金孝元 1532~1590)의 ‘한가위 달을 완상하며(仲秋賞月)’ 입니다. 특이한 건 제1구에 같은 글자를 3번이나 중복(歲,年,夜)해서 쓴 것입니다. 절구(絶句)에서는 글자 수가 제한(5언시 20자, 7언시 27자)되어 있기에 같은 자를 거듭 쓰지 않는데도 거침없이 집어넣은 데서 오히려 시인의 자유분방함이 느껴집니다.
草虫鳴入床(초충명입상) 풀벌레 우는 소리 평상으로 스미니
坐覺秋意深(좌각추의심) 앉아서 느끼네, 가을이 깊어감을
雲散明月出(운산명월출) 구름은 흩어져 밝은 달이 떠 오르니
靑天如我心(청천여아심) 푸른 저 하늘은 내 마음과 같구나
어려운 한자가 없음에 오히려 놀라지 않으셨나요. 조선 후기의 문신 이최중(李最中, 1715~1784)이 아홉살에 지었다는 '卽景(눈앞의 정경)' 이란 제하의 시입니다. 어려운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게 잘 쓴 漢詩이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암튼 늙은이들 기죽이는 시가 아닌가 사료됩니다.
♥ 벗님들 모두 풍성한 한가위 되시고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