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태풍(颱風)은 그 진로가 아주 특이합니다. 보통 오키나와(沖繩)와 제주도를 지나 북상하던 태풍은 슬그머니 동쪽으로 틀어 경상도 남쪽 바다를 지나 부산 권역으로 빠져나가는 게 보통이지요. 요번처럼 한반도를 종단하는 코스는 찾아보기 힘든데, 아쉽게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평양 부근에서 소멸되었네요.
태풍을 한자로 ‘큰바람 颱’자를 쓰는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모두 그 약자인 ‘台’ 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수한 우리말로 ‘큰비바람’ 쯤이 될듯하네요. 우리는 비와 바람이 함께 몰아치면 ‘비바람’이라 하는데 한자로는 風雨라고 하지요. 통상 앞에 나오는 字가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면, 우리는 태풍이 지나갈 때 비의 영향를 더 많이 받고, 중국(일본 포함)은 바람의 피해가 더 크다는 게 아닐까요.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바람은 그래도 견딜만 한데, 큰비에 따른 산사태, 개울이나 강의 범람은 속수무책이 아니었을까?
비와 바람(風雨)를 읊조린 한시 몇 수
동서당쟁(東西黨爭)으로 멸문지화를 당해 하루아침에 노비로 전락한 조선 중기 학자 송한필(宋翰弼)의 시,
花開昨夜雨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花落今朝風 오늘 아침 바람에 지누나.
可惜一春事 가련타, 한낱 봄날의 일이여!
往來風雨中 비바람 속에 왔다가 가는구나.
秋史 김정희 선생의 '소나기(驟雨)',
樹樹薰風葉欲齊 나무마다 더운 바람 불어와 (파초)잎 한쪽으로 쏠리고,
正濃黑雨數峰西 곧바로 먹구름 빗줄기 서쪽 봉우리로부터 몰려오네.
小蛙一種靑於艾 쑥보다 더 새파란 청개구리 한 마리가,
跳上蕉梢效鵲啼 파초잎 끝에 뛰어올라 까치처럼 우는구나
당나라 유학파 학자이며 대시인 최치원(崔致遠), 조국 신라에 봉사하고자 했으나 골품제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절망하여 말년에 가야산으로 잠적합니다. 불후의 명시 ‘가을 밤 비는 내리고(秋夜雨中)’,
秋風唯苦吟 가을 바람에 씁쓸히 읊조리나니,
世路少知音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드물구나.
窓外三更雨 창밖은 한밤중 비는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잔 앞 만리를 내닫는 마음.
중국인 시 몇 가락
당나라 이백과 동시대의 자연파 대시인 맹호연(孟浩然)의 절창 한수(春曉),
春眠不覺曉 봄잠에 노곤하여 날 새는 줄 몰랐는데,
處處聞啼鳥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夜來風雨聲 밤사이 비바람이 치던데,
花落知多少 꽃은 또 얼마나 졌을까?
태풍을 만나 고전하는 詩聖 두보(杜甫, 唐)의 시 ‘태풍에 띠집은 부서지고(茅屋爲秋風所破)’
八月秋爲風怒號 팔월이라 가을 되어 성난 바람 불어와,
卷我屋上三重茅 띠로 이은 세 겹 지붕 둘둘 말아 걷어가네.
茅飛渡江灑江郊 강 건너 날아간 띠 풀 강기슭에 뿌려지고,
高者挂罥長林梢 높이 날아간 건 나뭇가지 끝에 걸리고,
下者飄轉沈塘坳 낮은 것은 바람에 굴러 진창에 빠졌네.
南村群童欺我老無力 남촌의 애놈들 날 힘없는 늙은이라 얕잡아 보고,
忍能對面爲盜賊 뻔뻔스레 눈 앞에서 도둑질을 일삼네.
公然抱茅入竹去 공공연히 띠를 안고 대숲으로 사라지니,
脣焦口燥呼不得 입술은 타고 입은 말라 소리도 못 치고,
歸來倚仗自歎息 돌아와서 지팡이에 몸을 기대고 한숨만 짓누나.
(下略)
^위 시는 두보 생애의 황금기라는 양자강 변 금관성(錦冠城, 지금의 청두成都)에 지낼 때인 두보 나이 오십 전후에 쓴 시. 이곳에는 두보초당(杜甫草堂)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