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용두열 컬럼, 수필

<한시산책>나이를 초월한 사랑, 김부용 이야기

작성자박영우|작성시간11.06.09|조회수442 목록 댓글 3
나이를 초월한 사랑, 김부용 이야기 
 
 

이별

그리움
路遠
길은 멀고
信遲
글월은 더디네요
念在彼
생각은 님께 있으나
身留玆
몸은 이 곳에 머뭅니다
紗巾有淚
비단 수건 눈물에 젖건만
雁書無期
편지 올 날은 기약이 없습니다
香閣鍾鳴夜
향각서 종소리 들려 오는 이 밤 
鍊亭月上時 
연광정에서 달이 떠오를 때에
依孤枕驚殘夢 
쓸쓸히 베게에 의지했다가 잔꿈에 놀라 깨어
望歸雲悵遠離 
돌아오는 구름 보니 멀리 떨어져 있음이 슬픔니다
日待佳期愁屈指
만나 뵈올 날을 날마다 시름겨워 손꼽아 기다리며
晨開情札泣支
새벽이면 일어나 정다운 글월 펴들고 턱을 괴고 우옵니다  
 

 

시는 김이양(金履陽; 1755~1845)과의 이별을 애닲어 하며 지은 '부용상사곡(芙蓉相思曲)'이란 시제가 붙은 *塔詩의 일부이다.  김부용(金芙蓉; 1813~1848?)은 송도 황진이, 부안의 이매창과 더불어 우리나라 三大詩妓로 일컬어지는 시인이요,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문집 ‘雲楚集’을 남긴 조선후기 순조 때의 기생이다. 이름은 부용, 호는 운초(雲楚). (*탑시란 한 글자로 부터 시작해서 각 구마다 한 자씩 더해가며 마지막에는 16자까지 이르는 탑 형태를 이루는 시 형식임)

 

 

사대부집 무남독녀로 태어났으나.

 

부용은 성천(成川)에서 청빈한 선비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일찍이 시재(詩才)를 떨쳤으나 불행하게도 10세 쯤에 부모를 모두 여의고 천애고아가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퇴기의 수양딸이 되어 기적에 올랐고, 타고난 미모와 천부적인 재능으로 열여섯 살에 벌서 가무 음률은 물론 시문에까지 능한 기생이 된다. 아래 시는 성천 신성강가의 절경에 있는 사절정(四絶亭)을 읊은 것이다,
 
亭名四絶却然疑(정명사절각연의)   정자 이름 어이하여 사절인고
四絶非宜五絶宜(사절비의오절의)   사절보다 오절이 더 마땅할 것을
山風水月相隨處(산풍수월상수처)   산과 바람, 물과 달이 어울린데다
更有佳人絶世奇(갱유가인절세기)   절세가인 더했으니 오절이 아닐소냐 
 
황진이를 송도삼절(松都三絶)이라 부르고 매창을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 하는데, 낸들 성천오절(成川五絶)이 못될쏘냐고.. 그런데 이 시를 짓게 한  선비는 *화답할 생각은 않고 허튼 수작을 늘어 놓으면서  다음과 같은 시로 부용을 희롱한다. (시로 화답한다 함은 7언체에는 7언체로 그리고 짝수 句 마지막 자의 운(韻)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선비는 갑자기 5언체로 시를 바꾼 것이니 당연히 반칙(?)이다)
 
平生一片心(평생일편심)   평생 나의 일편단심은
欲渡銀河水(욕도은하수)   은하수를 건너고 싶을 뿐이네  
 
자기가 무슨 견우라도 된다고 은하수를 건너고 싶다고 하는가. 이에 부용은 붓을 뺏어 다음과 같이 휘갈겨 놓고 사절정을 내려온다.      
 
銀河天上水(은하전상수)   은하수는 하늘에 있는 물인데
世人豈能渡(세인기능도)   속세의 인간이 어찌 건널 수 있으리오    
 
 
김이양 대감과의 인연
 
明珠一千斛(명주일천곡)   옥구슬 일천 말을
遞量琉璃盤(체량유리반)   유리 쟁반에 쏟는구나
箇箇團圓樣(개개단원양)   알알이 동골동골한 모양이 
水仙九轉丹(수선구전단)   신선의 환약이런가
 
시제가 '부용당에서 비 소리를 들으며(芙蓉堂聽雨)'이다. 신관사또로 부임한 유관준(劉寬埈)이 부용에게 평양감사 김이양 대감을 아느냐고 묻는다(대감이란 원래 정2품 이상의 관직에 오른 이를 일컫는 호칭이나 종2품 평양감사직에 있는 김이양을 대감으로 호칭하는 것은 정2품 판서를 이미 역임한 후이기 때문임).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뵈온 적은 없고 그분의 시는 많이 읽었노라고 부용은 대답한다. 그러자 대감께서도 네 시를 좋아하시는가 보다면서 두루마리 편지 한 장을 내민다. 편지에는 김이양 대감이 그의 제자이면서 자기 관하로 부임해 온 성천부사 유관준을 반기고 축하한다는 내용으로, 말미에 그곳에 詩才가 뛰어난 동기(童妓)가 있다고 들었다면서 잘 돌보아주라는 당부와 함께 그 동기가 지었다는 오언절구(五言絶句) 한 수가 적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위에 올린 시다.
 
그날 경치 좋기로 이름난 강선대(降仙臺)에서 신관사또 환영연회가 있었는데, 취흥이 돌자 부용에게 시 한수 지어 보라 이르자, 부용은 자기 이름을 넣어 한수 지어 올린다.
 
芙蓉花發滿池紅(부용화발만지홍)   부용(연꽃)이 곱게 피어 못 가득히 붉은데
人道芙蓉勝妾容(이도부용승첩용)   사람들이 부용(연꽃)을 보고 나보다 곱다하네
今日遇從堤上過(금일우종제상과)   오늘 우연이 둑 위를 따라 지나가는데
如何人不看芙蓉(여하인부간부용)   어찌하여 사람들은 꽃은 안보고 나만 보는가
          *두번째 구절의 는 '말하다'라 새김
 
이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시를 칭찬한다. 신관사또 유관준(劉寬埈)도 이에 화답하여 한수 읊는다.
 
成都美妓玉羅裳(성도미기옥라상)    성천의 예쁜 기생 아리따운 비단치마
幅幅春風步步香(폭폭춘풍보보향)    폭폭이 봄바람이요 걸음마다 향기로다
黃鶴金獅迎相舞(황학금사영상무)    황학춤금사자춤이 어울려 돌아가니
降仙樓上降仙娘(강선루상강선랑)    강선루 위에는 선녀가 하강한 듯 하구나 
 
 
평양에서 김이양 대감을 만나고
 
얼마가 지난 후 부용에게 성천부사가 평양감사에게 인사차 가는데 같이 안 가겠느냐는 기별이 왔다. 부용으로서는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당대의 이름난 시인이요 지체 높은 대감인데도, 세상이 모두 한갓 노류장화로 여기는 일면식도 없는 자기의 詩까지 기억해준 김이양을 만나고 싶은 생각에 가슴 설레인다. 김이양을 만나 보니 이미 77세 홍안백발의 노대감으로 학같이 고고한 선비요 신선 같이 인자한 할아버지였다. 부용을 기생으로 대하지 않고 손녀처럼 귀여워하면서 한 사람의 시인으로 대해 주는 평양감사와 성천부사를 따라 대동강과 능라도, 부벽루, 연광정, 모란봉, 을밀대을 두루 돌면서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즐기던 꿈같은 며칠이 지났다. 
 
부용은 성천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서 김이양 대감을 모시게 해달라고 유관준 사또에게 간청한다. 역시 그럴 요량으로 부용을 데리고 왔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던 차에 기꺼운 마음으로 스승에게 그 뜻을 아뢰었고, 김대감도 흔쾌히 받아들여 곁에서 먹이나 갈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시중을 들도록 하였다. 이렇게 여러달이 지나 달빛 교교한 밤, 조촐한 술상을 올리고 늦도록 거문고를 타면서 오늘은 돌아가지 않고 대감을 모시겠노라 하였다. 술기운이 거나한 노대감은 "너는 '노랑유부(老郞幼婦)'라는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부용은 “성수패설(醒睡稗說 - 작가와 연대 미상(조선후기?)의 한문으로 된 이야기 총 80편으로, 음담패설· 일반민담· 소화 등이 하천민을 주인공으로 수록되어 있다. 중국 고사도 섞여 있는 점으로 미루어 중국 설화를 차용하였음을 알 수 있음)에 나오는 노랑유부라는 시라면 일찍이 접해 본바 있습니다.”라고 아뢰고 낭랑한 목소리로 서슴없이 읊조린다. 
 
二八佳人八九郞(이팔가인팔구랑)    열여섯 아리따운 신부에 일흔둘 신랑
蕭蕭白髮對紅粧(숙숙백발대홍장)    호호백발과 붉은 단장의 여인이 마주하
忽然一夜春風起(홀연일야춘풍기)    홀연히 한 밤에 봄바람 일어나니               
吹送梨花壓海棠(취송이화압해당)    하얀 배꽃 날아와 붉은 해당화를 누르네
          (다소 외설스럽지요^^)     

노대감은 허공을 보고 허탈하게 웃으며 “나는 八九郞보다도 다섯 살이나 더 많으니라.” 한다. 이에 부용은 “소첩도 二八佳人보다 세 살이 많사옵니다.” 하여 원앙금침에 들게 된다. 잠시 후, 노대감이 “너는 이미 春水滿四澤이로구나.”하고 조용히 속삭이니 부용은 “대감께서도 夏雲多奇峰이옵니다.”하고 응수한다. 여기서 잠시 이들의 <19금>(?) 이바구에 인용한  도연명(陶淵明 365~427 東晉)의 '4계절(四時)'을 흝어보고 가자.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 물은 사방 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하운다기봉)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가 많네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뿌리고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겨울 산마루엔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
 
그러나 좋은 일이란 오래가지 않는 법, 꿈같은 날이 몇 달 가지도 않아 과만(瓜滿; 만기)이 되지도 않은 김이양은 호조판서(戶曹判書)가 되어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부용은. 성천기생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평양기생으로 남자니 다음 감사의 수청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사려깊은 김이양 대감은 귀경 후 부용을 기적에서 빼 준다. 그러나 한양가신 대감은 소식도 없고 애가 타는 부용은 대감을 그리는 애절한 시들을 쏟아낸다.
 
垂楊深處依開窓(수양심처의개창)    수양버들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小院無人長綠苔(소원무인장녹태)    님없는 뜰엔 푸른 이끼만 길게 자라고
簾外時聞風自起(렴외시문풍자기)    주렴 밖에 가끔 봄바람 절로 일면 
機回錯認故人來(기회착인고인래)    님 오시나 속은 것이 몇번이던고
 

위의 시는 이미 소개한 바 있는 '봄바람(春風)'이란 7언절구다. 그리고 5언체의 애닲은 시 한 


 

春風忽駘蕩(춘풍홀태탕)    봄바람은 화창하게 불어오는데
山日又黃昏(산일우황혼)    서산에는 또 하루 해가 저무는구나.
亦如終不至(역여종부지)    오늘도 임 소식은 끝내 없건만
猶自惜關門(유자석관문)    그래도 아쉬워 문을 닫지 못하네
                         첫 구절의 駘蕩은 '화창하다'로 새김 

 

그래도 대감이 살아 있을 때는 부용이 기거하던 녹천정으로 모여드는 시인묵객들을 응대하면서 시름을 달랬지만 세월은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91세를 일기로 노대감이 세상을 떠나자 땅이 꺼지는 듯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고,  다음과 같은 시로서 떠난 임을 회상한다.


風流氣槪湖山主(풍류기개호산주)   풍류와 기개는 호산의 주인이요

經術文章宰相材(경술문장재상재)   경술과 문장은 재상의 재목이었네

十五年來今日淚(십오년래금일루)   15년 동안 정든 임 오늘의 눈물

峨洋一斷復誰裁(아양일단부수재)   끊어진 우리 인연 누가 다시 이어 줄고


都是非緣是夙緣(도시비연시숙연)   인연 아닌 인연을 맺어온 인연

旣緣何不趂衰前(기록하불진쇄전)   피치 못할 인연이면 젊어서나 만나지

夢猶說夢眞安在(몽유설몽진안재)   꿈속에서 꿈을 꾸니 진실은 어디 있나

生亦無生死固然(생역무생사고연)   살아도 산 게 아니요 진실로 죽은 것을


水樹月明舟泛泛(수수월명주범범)    달 밝은 수정에 배는 둥둥 떠 있고

山房酒宿鳥綿綿(산방주숙조면면)    술 익은 산방에 새는 지저귀는데

誰知燕子樓中淚(수지연자루중루)    누가 알리 누각에서 홀로 우는 눈물

洒遍庭花作杜鵑(쇄편정화작두견)    뜰악에 흩어져 두견화로 피어나리

       세번째 구절의 燕子는 제비 새끼로 어미를 기다리는 '외로운 처지'를 의미한 듯    


김이양 대감은 향리인 천안 광덕산 기슭에 뭍히고, 부용은 홀로 녹천정을 지키다가 몇 해 후에 세상을 뜨자 그가 생전에 소망했던 대로 대감 곁으로 간다. 그러나 당시의 법도 상 갈은 묘역에 묻히지는 못하고 같은 산자락이긴 하지만 좀 떨어진 언덕에 뭍혀 먼 발치에서 나마 바라보고 있으리...

 

 

-박완종의 '성천기생 김부용의 시와 사랑'에서 일부 참조-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천배 | 작성시간 11.06.10 멋있는 인생들이었네요.91세에 대감이 죽었다니 당시로 봐선 꽤 장수했네요,아마 부용이덕이 아닐까합니다.
  • 작성자정종선 | 작성시간 11.06.23 프레이보이 왕국의 " 휴. 헤프너 " 대 선배님이 여기 계셨네.....
    그 이름 김 이양, 어찌 김 양기와 헤갈리누만.....
    야! 진짜 부럽다 60의 나이 차를 건너뛰니.....
    나도 실망하지 말고 이제부터 초등학생 눈여겨 봐야겠구나~~~
  • 답댓글 작성자박영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6.24 정형! 어부인께서 건재해 계신데 함부로 눈 돌리지 마슈^^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