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휴가란 일부 팔자좋은 사람들의 소일거리로만 생각 되었었고 좀 경제사정이 나아지자 너도나도 짧은 휴가기간이 아까워 바닷가 해수욕장으로 몰려 북새통을 이룬다. 그러나 요즘은 나이가 좀 들어서인지는 몰라도 시원한 시냇물에 발 담그고 시를 읊조리는 선인들이 즐겨 하던 피서를 하고 싶어진다. 여기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옛시인들의 시 몇수를 골라 부채 대신 보내니 시원한 여름을 보내시기 바란다.
竹裏館-왕유(王維, 699~759 唐)
獨坐幽篁裏(독좌유황리) 홀로 대숲 속에 앉아
彈琴復長嘯(탄금복장소) 거문고를 타다가 휘파람을 불어본다
深林人不知(심림인부지) 깊은 숲에 찾아오는 사람 없고
明月來相照(명월래상조) 밝은 달만 서로 비추는구나
대숲이 아니라도 편백나무 숲속에서 거문고는 없더라도 휘파람만 불어도 좋을 듯하다. 중국 명시선집에 거의 빠지지 않는 왕유는
산수화에도 뛰어난 다재다능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죽리관'과 같은 자연을 노래한 빼어난 서정시가 많다.
江村-두보(杜甫, 712~770 唐)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유) 맑은 강물 한 굽이 마을을 감싸 흐르고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강촌의 긴 여름 일마다 그윽하다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절로 가고 절로 오는 대청 위의 제비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서로 친하여 서로 가까운 건 물가운데 갈매기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자식은 바늘 두들겨 낚시를 만드네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병 많음에 요긴한 건 오직 약물이니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하찮은 이 몸 이것 외에 무엇을 구하리
두보가 말년에 이렇게 '강촌'에서 처자와 함께 유유자적하며 살았는지, 아니면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의 읊은 것인지 모른다. 두보는 거의 평생을 처자와 떨어져 객지로 떠돌다 우리 나이보다도 젊은 58세로 세상을 뜬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그의 생애중 이런 한가로운 생활이 비록 있었다 하더라 아주 잠시 동안이었을 것만은 확실하다.
가야산 독서당에 붙여(題伽倻山讀書堂)-최치원(崔致遠, 857~? 통일신라)
狂奔疊石吼重巒(광분첩석후중만) 첩첩한 산과 바위를 울리며 미친듯이 쏟아지는 물소리에
人語難分咫尺間(인어난분지척간) 사람 소리 지척에서도 분간키 어려워라. 常恐是非聲到耳(상공시비성도이) 항상 시비(是非)하는 소리 귀에 들릴까 두려워 故敎流水盡籠山(고교류수진롱산) 흐르는 물소리로 온 산을 쌓고 있구나
최치원은 말많고 시비하는 세상을 등지고 가족을 데리고 가야산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가야산에서도 풍광이 가장 아름답다는 홍유동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시로 지금도 농산정 바위에 새겨져 있다.얼마나 세상의 시끄러움이 싫었길래 홍유동의 물소리로 귀를 막고 싶었을까(최치원은 가야산에서 학처럼 고고하게 살다 100살에 학이 되어 홀연히 날아 가셨다(?)고.전해진다.)
여름 구름에 기이한 봉우리 많다(夏雲多奇峰) - 정지상(鄭知常, ?~1135 고려 전기)
白日當天中(백일당천중) 눈부신 해 하늘 복판에 왔는데
夏雲自作峰(하운자작봉) 여름 구름 저절로 봉우리를 만드네
僧看疑有刹(승간의유찰) 중이 보고선 절이 있나 의심하겠고
鶴見恨無松(학견한무송) 학이 보고선 소나무 없음을 한탄하겠네.
이 시는 햇살 부신 여름날 시원한 산속의 정경을 읊은 것으로, 이런 곳이라면 마땅히 절이 있을 듯하고, 학이 내려 앉을 만한 멋드러진 소나무가 서있을 법하다. 정지상은 고려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대동강에서의 이별을 노래한 '送人"으로 후대에도 칭송이 자자하다. 시제가 '夏雲多奇峰'인데 일설에 의하면 정지상이 과거릏 보러가기 전날 밤 꿈속에서 夏雲多奇峰이란 제목을 보고, 다음날 과거에 응했더니 정말 같은 제목이어서 꿈의 계시로 급제했다고 한다(아시는 분이 많겠지만 夏雲多奇峰은 도연명의 四時 중 둘째구 여름에 해당되는 시구다.)
내 생의 뜻을 말하다(述志)-길재(吉再, 1353-1419 고려 말~조선 초)
臨溪茅屋獨閑居(임계모옥독한거) : 개울가에 초가집 지어 한가히 홀로 사니
月白風淸興有餘(월백풍청흥유여) : 달은 밝고 바람은 맑아 즐거움이 넘치네
外客不來山鳥語(외객부래산조어) : 손님 찾아오지 않아도 산새들과 이야기 나누고
移床竹塢臥看書(이상죽오와간서) : 대나무 둔덕으로 평상을 옮겨 누워 글을 읽는다오
고려의 옛 도읍 송도를 돌아보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라 읊었던 시인, 말년엔 초야에 뭍혀 이렇게 한가롭게 지내셨는지 모른다. 아니면 詩題에서도 풍기듯이 다만 뜻과 생각이 그러했는지도...
스스로 읊다(自詠) - 권호문(權好文, 1532(중종27)~ 1587(선조20))
簾捲野經雨(염권야경우) 주렴 드니 들에는 지나가는 빗줄기
襟開溪滿風(금개계만풍) 옷깃 가득 안겨드는 시원한 냇바람.
淸吟無一事(청음무일사) 일없이 청아한 한 수 시를 읊으니
句句是閑功(구구시한공) 구절구절 참 이렇게 한가로울 수가.
권호문은 퇴계의 제자로 학문이 출중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이름처럼 글을 좋아하여(好文) 그의 호를 붙여 만든 문집 松巖集에 아름다운 시를 많이 남겼다.
윤서중 시의 운으로(次尹恕中韻) - 李達(이달 1539-1612)
京洛旅遊客(경낙여유객) : 서울을 떠도는 나그네야
雲山何處家(운산하처가) : 구름과 산 어디메가 그대 집이뇨.
疎煙生竹徑(소연생죽경) : 엷은 안개 대나무숲 길위에 피어오르고
細雨落藤花(세우낙등화) : 보슬비는 등꽃 위로 떨어진다.
방랑시인을 딱 세사람만 꼽으라면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에 바로 삭발하고 산천구곡을 떠 돈 김시습, 홍경래에 투항한 할아버지를 조롱한 시를 지어 장원급제한 후 자책과 역적의 자식이라는 오명이 싫어 삿갓을 쓰고 정처없이 떠 돈 김삿갓 그리고 詩文에 뛰어났으나 서얼이라는 신분상의 질곡속에 살다 간 삼당시인(三唐詩人) 이달(李達)이 그들이다. 허난설헌과 허균의 스승이기도 한 천재시인 이달의 심사를 잘 나타낸 시이다
한시와 묵향이 있는 오두막 (http://blog.naver.com/ywparki)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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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류영철 작성시간 11.08.04 좋은 글 많이 소개해주셔서 감사. 거사님은 시문을 읆으시다가 혹 틈을 나시면 한시의 韻律을 서양음악과 더불어 접합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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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박영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8.05 西韻(?)을 들으러 가고 싶은 생각은 굴뚝 같은데 날짜가 토욜 오후라서...암튼 감사합니다 영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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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종선 작성시간 11.08.09 셔터맨으로 피서는 언감생심???
덕분에 피서 잘 다녀왔습니다~~~ -
작성자김천배 작성시간 11.08.10 박거사 , 산으로 올라가야될 것 같은데....노래좋고 글도 좋고 퓽류인들도 멋있고 이렇게 여름은 더위모르게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