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路中에서 만나를 지고
꿈길에서 / 황진이 시, 김안서 역시, 김성태 곡
계속 뇌리에 맴돌던 그 시
위 한시는 황진이가 情人 소세양(蘇世讓)을 그리워하며 지은 상사몽(相思夢)으로 노랫말에도 나올 정도로 널리 회자되고 있으며, 그 아래는 김안서 님이 이를 번안한 멋들어진 우리 노래말 꿈길에서이다. (이미 필자가 <한시산책>에서 '황진이와 소세양' 그리고 '노랫말을 탄생시킨 한시'에서 소개한 바 있으니 참고하시길..)
그런데 필자가 처음으로 漢詩에 대해 끄적이는 계기가 되었던 이 시가 계속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이 시의 아름다음이라든지 애절함 같은 것이 아니고 우리말 새김이 어딘가 미흡하다는 생각에서 였다 (사실 그동안 이것이 마음에 걸려 여러 사이트를 찾아보고 우리말 새김도 여러번 고쳐 놓았었음을 고백함다.)
'꿈길에서'를 번안한 김안서
안서(岸曙)는 호이고 본명은 김억(金億; 1893~?)으로 소월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한문에도 조예가 깊어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시를 번안한 노랫말 '동심초'도 그의 작품이다. 그런데 꿈길에서의 경우 시의 아름다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겠으나, 제 4구를 제외하고 나머지 句는 '거의 창작'에 가까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우선, 첫구만 봐도 서로 그리며 서로 보는 것은(相思相見) 꿈에나 기댈 뿐(只憑夢) 이 바른 새김인데 꿈길 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는 좀 많이 나가지 않았나 싶다.
생소한 글자 '농(儂)'
제일 난해한 부분은 둘째 구인데 필자의 굳어진 머리로는 해석이 잘 안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번안도 헷갈리기는 매 한가지였다. 儂訪歡時 歡訪儂 을 우리말로 새김에 있어,
안서-- 그 임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한시미학을 쓴 정민 교수-- 임 찾아 떠났을 때 임은 나를 찾아왔네
그리고 다른 데 새김-- 내 찾아 떠난 길로 임이 다시 찾아오네
로 되어 있다.
이 한시 구절에서 문제가 되는 한자는 농(儂) 자와 환(歡)자이다. 나 儂자는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한시에서 본 적이 없는 글자로, 나를 지칭하는 我나 吾 그리고 여인들이 낭군이나 情人을 향해 쓰던 妾이라는 자가 쓰여질 자리가 아니가 생각된다. 추측컨데 운(韻)을 맞추기 위해 고심 끝에 찾아 낸 자가 아니가 싶다. 비슷한 분위기로 유희경이 매창(梅窓)을 그리며 지은 시를 보면 나 我 자를 쓰고 있다.,
娘家在浪州(낭가재랑주) 낭자(매창)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내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워도 서로 못보니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잎에 비 떨어질 젠 애가 끊겨
기발한 선택 '환(歡)' 자
제 2구를 글자 그래로 새기면 내가 기쁨을 찾았을 때(儂訪歡時) 기쁨도 날 찾았네(歡訪儂)인데, 도대체 뭔 애기인지... 오랫동안 괴롭혀 오던 이 구절, 어디에도 상세한 해설이 없는 이 문장이 최근 문득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즉 사랑함을 환희라 한다면 사랑하는 사람도 역시 기쁨(歡)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원래 의도했던 문장은 我訪君時 君訪我 였을 것인데, 시적인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 임(君)이나 그 사람(人) 대신 다소 에로틱(?)한 표현인 기쁨(歡)을 쓴 것은 아니었을까. 매창의 봄 심사(春思)라는 시엔 사람 人을 썼다.
東風三月時(동풍삼월시) 봄바람 불어오는 춘삼월
處處落花飛(처처락화비) 곳곳에 꽃잎 떨어저 흩날리는데
綠綺相思曲(녹기상사곡) 푸른 비단치마 입고 상사곡을 타 보아도
江南人未歸(강남인미귀) 강남 가신 임은 오지를 않네.
무엇이 '멀다(遙)'는 말인가
세번째 구절에서는 遼遼가 문제인데 遼 자는 멀다 는 뜻으로 두자가 겹치면 강조가 되어 '더 멀다' 또는 '아주 멀다'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다면 願使遼遼 他夜夢 의 해석이 원컨데 머나 먼 다른 밤 꿈에서는 이라야 되는데, 그렇게 절실한 님을 머나먼 미래의 꿈에서나 만나보고 싶나면 말이 되는가. 여기서 머나 먼 을 아득한 으로 바꾸고, 이것이 수식하는 단어가 다른 밤 이 아니라 그냥 꿈 이라고 본다면 말이 된다. 즉 다른 밤 아득한 꿈에서는 이라 하면 큰 무리는 없는 듯하다. 그래도 한가지 의문은 있다. 보통 7言體의 한시에서는 보통 4자, 3자로 나누어 해석한다.그런데 위의 번역은 2자, 5자로 나누어 해석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원 해석 방법을 따라 원컨데 아득한 임(願使遼遼) 다른 밤 꿈에서는(他夜夢) 이라 풀어 보았다.
매구마다 운(韻)을 맞춘 특이한 시
한시에서는 짝수 句 마지막 자의 운은 반드시 맞추어야 하며, 간혹 첫구의 마지막 자까지 같은 운을 쓰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相思夢에서는 매구 마지막 자의 운을 모두 맞춘 것이 특색이다. 마지막 자를 보면 몽(夢), 농(儂), 몽(夢), 봉(逢) 으로 운을 옹으로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예는 김삿갓의 시에 나온적이 있으나 매우 드믄 경우이다.
꿈속의 사랑(相思夢)
이를 참고하여 우리말로 다시 새겨보면,
相思相見只憑夢(상사상견지빙몽) 그리워 만나보고 싶어도 꿈속에서 뿐
儂訪歡時歡訪儂(농방환시환방농) 내 임을 찾아가면 임도 날 찾아나서
願使遙遙他夜夢(원사요요타야몽) 바라거니 아득한 님 다른 밤 꿈에서는
一時同作路中逢(일시동작로중봉) 같은 때 같이 떠나 길 가운데서 만나 보고파
6백년 전에 살았던 황진이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렇게 새긴 글을 무어라 말할지....
(님들의 좋은 의견을 기대함다!!)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김천배 작성시간 11.08.29 이렇게 한시풀이를 들으니 어렵네요 나중 풀이가 좀 부드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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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종선 작성시간 11.08.30 바둑에서는 최고봉인 9단을 入神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이르는데.......
우리 청계거사도 이미......
재미있는 내용과 풀이,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영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8.30 과찬의 말씀에 몸둘 바를....정형! 언제 쐬주라도 한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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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정종선 작성시간 11.08.30 Call! Any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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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1.08.31 위 글을 모 용고 동창회 사이트에 올렸더니 중국어 사전에는 歡자에 '사랑하는 사람'이란 뜻이 있다네요. 언제나 무식이 문제지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