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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열 컬럼, 수필

[서사시]하늘에 산다- 7편 : 새벽초계비행

작성자유근국|작성시간12.03.17|조회수210 목록 댓글 1

빨간 마후라의 서사시

 "하늘에 산다" 

                                                                          글: 박 종 권

 

 

수필편.7

 

 

새벽초계비행

 

 

새벽 4시, 새해 첫 초계비행 임무를 맡은 전투조종사들이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새해 동이 터져 오는 시간까지는 아직 멀었다. 문을 열고 나서니 겨울의 새벽 하늘 바람은 차다. 이륙  예정시간은 06시.

  멀리 산 넘어 기울고 있는 초승달이 유난히 맑고 시리다.

  팬텀기 조종사들이 모여 살고 있는 기지촌은 멀리 동쪽 소백산맥의 준령에서 내륙으로 뻗어 내려 온 팔공산 아래에 자리한 K-2  비행장의 울타리 안이다. 이 삭막한 울타리 안으로 새벽을 알려 오는 여명은 언제나 늦었다.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계급장과 명찰고 비행대대 휘장 등이 양쪽 가슴부위에 달린 길다란 통바지 조종복을 입는다. 20년이 넘도록 자랑스럽게 입어 온 조종복이다.최근에 새로 지급된 6연발 호신용 리볼버 권총도 어깨 너머로 찼다. 그리고 빨간 마후라를 대충 목에 주르고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발목이 긴 조종화의 지퍼를 끌어 오려 단숨에 신었다.

  새해 아침 첫 새벽비행을 위해 집을 나서는 순간이다.

 

  "갔다 올께"

  아내가 건네주는 크다란 국방색 헬멧 주머니를 건네 받을 때 마다 나누는 대화이다. 나는 아내의 오늘도 무사하기를 바라며 가슴 조이는 듯한 눈망울 때문에 집을 나설 때는 의도적으로 아내와 눈을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말없이 두 손 모아 아내가 건네는 커다란 녹색 주머니 속에는 깉은 국방 색으로 위장된 전투조종사 개인 전용 헬멧이 들어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최초 출격 조종사들이 수행해야 할 적지의 공격 목표와 항법지도, 기타 비행안전을 위한 점검철Check-list이 들어 있다.

  전투기를 몰기 전에 필히 입어야 할 G-suite중력복도 소중히 들어있어 묵직하다.

 

  헬멧에 있는 산소 마스크와 연결된 기다란 호스, 교신용 무선 마이크와 이어폰, 헬멧의 앞 이마에서 내리는 안면 보호용 특수색 안경 등 은 전투조종사에게 제 2새명처럼 소중한 부분이었다.

  이미 대기하고 있던 비상대기 촐동차에 임무 조종사들이 모여 들었다.

  오늘 영광스럽게도 조국 영공의 첫 비행, 새해 아침의 첫 초계비행임무에 엄선된 조종사들이다.

  통상적으로 전투조종사들은 하루의 비행임무를 마치고 비행대대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최종적으로 오늘 밤과 내일의 임무와 비행 편조를 확인한다.

 

  이미 야간 비상출동 대기조는 활주로 끝에 있는 비상대기실로, 야간 비행조는 개인 항공장구를 챙기고 전투기가 있는 주기장으로 가기 전에 임무 브리핑과 야간시력의 암 적응 등 이런 저런 준비로 긴장속에 바쁘다.

  주간 비행을 마친 조종사들은 내일의 임무와 편조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야간에 있을 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지명된 임무조 소위 15분 대기조, 30분 대기조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각자 비행 장구를 지침하고 동료 조종사들과 함께 기지촌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 간다. 전투 조종사들은 10년 내지 20년을 기지촌에서 아내의 기도 속에서 이렇게 하늘을 지키는 기본 임무 속에 낮과 밤의 긴장된 시간을 보내왔다.

  전투 조종사들이 모여사는 기지촌은 활주로에서 다소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전투기가 발진하는 그 폭음은 온 기지를 흔들었다.

  언제나 용감한 남편의 소리 같아서 그 굉음을 감내해야 했고 아내들은 남편이 돌아 올 때까지 여린 가슴을 조여면서 그 소리를 기다리며 살았다.

 

  오늘은 새해 아침 첫 새벽 비행이다.

  이 이른 시간에 희미하게 전등불이 켜져 있는 집은 새벽 비행 임무를 맡은 조종사의 집임에 틀림이 없다. 약속시간이 되자 그들을 태운 비상출동대기 차량이 기지촌을 조용히 떠났다. 기지의 관사촌은 길목의 가로등만 남긴 채 다시 적막과 어둠 속에 묻힌다.

 

  오늘 나와 함께 할 새벽 초계비행의 임무 조종사는 비행대대에서 가장 유능한 젊은 조종사다. 우리는 각자 탑승할 전투기가 있는 엄체호Igloo 위치를 찾아들어 갔다.

 

  먼저 와서 전투기 외부 점검과 연료보급으 재확인을 끝낸 정비사들과 무장사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활주로등과 유도로등이 아직 희미한 채 어둡고 적막하지만 팬텀기 주위에는 밤의 정적을 없다.

 

  비행이 없는 날 기지의 밤은 언제나 어둡고도 고요했다. 봄 가을  철 때도 기지촌의 외곽의 철조망을 넘어 먼 뒷산의 산새 소리, 활주로 주변의 억새풀 넘어 풀 벌레소리, 때때로 초가을 귀뚜라미 소리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적셔 주기도 했던 비 내림 소리도 들을 수 있었던 그런 밤의 적막이, 그런 고요가 이 순간 멀리 사라진 것이다.

  내가 타야 할 전투기의 주기장으로 들어서니 외부 발전기의 밝은 조명이 대낮처럼 밝아 눈이 부시다. 가능한 암적응을 위해 조종사들은 빛과 마주침을 피해야 한다. 한편 손전지로 동체와 날개의 이음새 사이로 항공기 기름과 엔진오일 등의 누수가 없는지 점검철의 항목들을 하나씩 짚으면서 학인 점검을 했고 항공기 기록부에 서명을 했다.

 

  이윽고 정비사의 도움을 받으며 좁은 전투기 좌석Cockpit 속으로 들어간다. 비상시에 탈출시킬 사출대Catapult 위에 몸을 앉히고 나서 깔고 앉은 구명정과 생환장비가 들어 있는 장구와 등에 업은 낙하산 장구와의 연결고리를 연결한 다음 전체가 한 묶음이 되도록 발목과 정상이 그리고 허벅지까지를 연결끈으로 묶었다.

 

  비상시 성공적인 탈출을 위해서다.

  비상시 탈출했어도 발목이 탈출구에 걸려서 부러지거나 깊은 상처로 생환 하지 못한 안타까운 사례가 많았다. 수천 번을 오르내렸던 조종석이라 아무런 느낌도 없이 수초 만에 사출 대와 구명정과 파라슈트와의 연결이 끝났다.

 

  이제 팬텀기에 시종을 걸기 시작해야 하는 약속 시간이 됐다.

  육중한 팬텀기가 생명을 얻기 시작하면 그 엔진의 소리도 그러하지만 양 날개와 동체에서 점멸하는 붉고 푸른 항법 등이 주위에 있는 모두를 긴장케한다. 특히 꼬리부분의 수직안전판 위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점멸하는 충돌방지 등Anti collison-light이 어두움 속에서 팬텀기의 육중한 전체 윤곽으르 선명히 잡아주었다.

 

  새해 아침 조국의 하늘을 제일 먼저 지키러 떠나야 하는 2대의 팬텀기가 생명을 얻은 것이다. 명령된 이륙시간에 앞서 편대장이 지시한 약속된 시간에 요기는 시동을 걸었고 편대장의 관제탑과의 교신으로 지상활주가 시작됐다. 팬텀기는 2인승 복좌 전투기로 전방석과 후방석의 기본임무가 달랐다.

  전방석 조종사가 시동을 걸고 연료 계통과 유압상태를 중심으로 전투기의 계기판과 모든 조종상태를 점검하는 동안 후방석 조종사는 레이더 작동 상태와 관성항법 공격장비INAS등의 각종 기능 상태BIT 점검을 끝낸다.

 

  팬텀기가 붕정만리鵬程萬里 날아갈 생명력을 얻어 지상 활주를 시작하자 나는 관제타에 조명을 밝혀주기를 요청했다. 그동안 희미했던 활주로등과 유도로등의 조명이 주변의 잎새들 사이로 확 밝아져 왔다. 삭막하고도 넓은 비행장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여명의 순간이다.

 

  이륙예정 시간은 6시. 아직 5분 전이다. 활주로 진입직전의 최종 점검구역Last chance area에서 임무 조종사와 지상의 정비사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륙시간에 앞서 마지막 점검을 끝낸다.

 

  어둠에 가려 그들의 얼굴은 읽을 수 없지만 편대장인 나는 수년간 그들과의 긴밀했던 접촉과 대화로 그들의 몸 놀림과 걸음거리로도 그들이 누구인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의 민첩한 동작 하나 하나를 유심히 지켜본다.

  최종 점검지역 들어선 팬텀기 사이사이를 정비사와 무장사가 날개와 동체 밑으로 이리저리 기어들며 그새 연료나 오일의 누수가 없는지, 공중에서 적기와 만났을 때 일격 필추의 무기인 공대공 미사일의 안전핀이 제대로 됐는지, 1,200 발의 20mm 6문의 발칸포기가 제대로 발사되도록 장진과 안전핀이 제거 됐는지 임무에 따라 적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레이저 유도 폭탄이나 흑백 광학 유도 미사일 등의 작동에 이상이 없는지 이륙 전 최종적으로 재확인하는 것이다.

  전투 조종사들 못지 않게 그들의 최종 확인 임무가 더욱 중요하다. 드디어 기장으로부터 현광봉이로 크게 원을 그리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는 수신호가 왔다. 이어 편대장인 내가 엄지 손가락을 눈높이로 세워 짧게 응답하고, 점검하는 동안 잠시 열어 놓았던 켄노피를 수신 호에 맞추어 닫자 2번기도 동시에 닫았다. 그러자 전투기의 좁은 좌석은 찡 하는 느낌으로 공기를 노여 왔다. 이륙 전 마지막 필수 점검인 산소호홉기 레버를 100% 산소에 맞추었다.

  임무를 위한 지상에서의 모든 점검을 끝냈다.

  새해 첫 영공의 초계비행이라 무거운 책임감이 가슴을 누린다.

  요기를 바라보니 이륙준비가 끝났다는 수신호가 왔다.

  서로 외관상의 모습을 보며 편대 이륙을 해도 이상이 없음을 재확인하고 주파수를 지상관제 주파수에서 이착륙 관제주파수로 바꾸어 이륙허가를 요청했다.

  "Taegu tower, alpha flight ready for take off"

 

  이윽고 관제탑으로부터 세련된 톤으로 이륙을 승인하는 응답이 왔다.

  "alpha flight, clear to take off"

  "roger alpha" 

 

  나는 관제탐에 이륙허가를 명확하게 복명하고 이륙해야 할 긴 활주로를 다시 응시했다.

  활주로 양 옆 풀잎 높이 사아사이로 활주로 표시등이 멀리까지 원근법으로 일직선으로 좁혀져 왔다. 반드시 지켜야 할 생명의 좁다란 길을 확인하고 주 날개에 뒤쪽으로 접혀진 보조 날개의 반을 지침서대로 아래로 내렸다. 다소 길어진 날개의 곡면이 이륙시 양력을 도아 줄 것이다. 최적 이륙을 위한 조종간 기본 위치도 양력 각도 3~5도에 맞추어 있는지 최종 확인하고 오른 손에 잡은 조종산을 다시한번 꽉 잡아 흔들었다.

  언제나 전투 조조앗들에게 그러하듯 활주로는 우리들의 생명선이고 우리는 그 길에 목숨을 걸었다. 우리는 이 길로 반드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내일 다시 이 길을 떠날 수 있다.

  고개를 돌려 요기를 보니 날개를 나란히 한 요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엄지를 세워 이륙 준비에 이상이 없음을 최종적으로 알려 왔다. 함께 디지를 떠나 하늘로 비상하는 약속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가자 하늘로!

  나는 약속 동작으로 숙인 머리를 들면서 그 동안 힘 두어 지탱하고 있던 양발의 브레이크 페달을 동시에 확 풀었다. 동시에 조종산을 잡고 있던 오른 손의 중지로 조종관 앞부분에 연결된 빨간색 Sterring-butt0n방향조정 버턴을 눌러 편대가 활주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이륙 진행방향을 일직선이 되게 유지했다.

 

  드디어 창공을 향해 육중한 펜텀기의 편대이륙을 위한 빠른 활주가 시작된 것이다.

  펜텀기의 편대 이륙하는 모습은 참으로 장관이다.

  평소 단시 이륙을 시도하지만 편대 이륙을 하노라면 이를 보는 사람들, 조종사들까지도 걸음을 멈추고 하늘로 치솟는 모습을 긴장된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 도약하는 순간의 장엄함과 가슴으로 전달되어 오는 긴장감으로 자기 스스로 신념의 조인이었음을 새삼 발견하곤 했다.

  편대비행에는 말이 필요치 앟고 오직 침묵 숙에 행동만이 요구되었다. 두 사람이 한 몸 처럼 그 일거수 일투족이 혼연일체가 되어야 한다. 한치의 착오도 없이 두 마음이 한 마음이듯 함께 비상하는 것이다. 이렇듯 편대 이륙의 모습은 상호신뢰와 동지애의 최고 경지다.

  숨결 조차도 멈춘 채 조종간에 전달되어 오는 순간, 새로운 생명감을 느끼며 요기와 함께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는 이 엄청난 공간의 변화는 과히 정신과 과학이 결홥된 최고의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전투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왼손으로 움켜 잡았고 있는 출력조절기Throttles를 90% rpm에서 100% rpm으로 전개하면서 후기 연소기After burner를 터트렸다. 요기는 편대장의 수신호에 따라 브레이크 페달에서 두발을 떼는 동시에 왼손에 잡고 있던 두 개의 Throttles 뭉친연로 조절기를 최고로 전개하면서 후기연소를 함께 터트려 속도를 맞추어야 한다. 이 때 지축을 뒤흔드는 제트 엔진의 폭음과 함께 뒤로 분출되는 불기둥Frame은 우주 공간으로 발사되는 로켓 못지 않다.

  어두운 적막을 걷어내고 뿜어대는 시뻘건 불기둥에서 팬텀기는 용강로 같은 시뻘건 새 생명을 얻었고 우리는 새벽 하늘로 솟아 오르니 새로운 하늘의 세계가 전개되어 온다.

  전투기를 떠받치고 있던 양쪽 바퀴Landing-gear를 동체 속으로 집어넣고 보조 날개를 접어 넣자 팬텀기는 순식간에 음속으로 치닿는다. 그 속도를 최적 상승속도시속250마일로 바꾸어 하늘로 치솟으니 어언 간에 2대의 팬텀기 편대는 조국의산하와 하늘을 지키는 신념의 조인이 된다. 새벽의 조국 하늘에 초계비행이 시작된 것이다.

 

  "항공통제본부 나오라, 여기는 팬텀기 알파 편대다." 나는 항공통제본부를 불렀다.

  영공수호의 방패요, 불침번인 요격 관제사와 레이더다 감시요원들은 새벽 초계비행 임무 편대가 이륙했음을 예측하면서 사전에 약속된 비밀 주파수로 우리와의 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는 항공통제본부다. 알파 편대는 방위Vecter 330, 고도Angel 35, 주파수Channel 12를 계속 유지하라 오바."

 

  우리는 지시대로 330도 비행 방위를 유지 할 것과 비행고도 35,000피트로 비행 할 것을 복명하고 지정 주파수 #12로 바꾸고 비행정보를 받았다. 영공의 가장 높은 고도에서 가장 바른 속도로 가장 강한 독수리가 된 것이다.

  전투 조종사들은 주야를 불문하고 기지를 떠나 하늘에 오르면 일단 항공통제본부와 교신하여 무장 상태와 비행 가능 상태를 알리며 영공방위의 가용전력으로 대기자 명단에 등록되도록 보고해야 한다.

  영공을 침투하는 그 어떤 항적에도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전투조종사들은 언제나 전투준비를 갖추고 그들의 전술관제와 통제하에서 영공수호 비행을 했다.

  기본 무장은 4발의 전방위 공대공 미사일 2발의 열 추적 미사일 1,200발의 발칸 포의 기본 무장을 하고 일단 유사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며 기본 임무들을 수행했다. 365일 낮과 밤의 구별 없이 지상에 서는 별도의 전력이 적 도발에 대비하고 응징보복을 하기 위해 레이저 유도폭탄과 광학 유도 미사일을 장착한 임무 편조가 항상  대기했다.

  적 전쟁지도부와 항공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결정적 한 순간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전투기 조종사들은 이렇게 매 순간 전쟁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서 신년을 맞이하는 새벽의 초계비행은 더욱 감격적이고 감동적이다. 겨울철의 새벽은 참으로 춥고 어두워 쉽지 않지만 온 국민이 흐망찬 새해를 맞이하는 새벽, 나라를 지키는 첫 비행의 임무는 그 어떤 임무와도 비견할 수 없는 자랑스런 비행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새벽 초계비생은 비행 안전과 임무의 성공을 위해 임무 조종사의 선발도 신중했고 누구나 선택되기를 바랐다.

 

  편대장은 편대장대로 요기는 요기대로 임무에서 그 능력의 평가를 받았다. 나는 지난 날 요기로 있을 때 가장 믿음직스러운 요기가 되고자 했다. 어디든지 데리고 가고픈 능력있는 요기가 되려 비행술을 익히고 연마했다. 편대장이 되었을 때는 요기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분대장, 편대장이 되고자 했다. 저 편대장이면 어디든지 따라나서겠다는 하늘의 무사가 되길 바랬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하며 신념의 조인이 되고자 했었다.

  이 높은 고도 빠른 음속, 여명이 밝아 오는 조국의 꿈틀거리는 산하는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편대 간격을 밀집편대에서 일정 공간을 넓힌 초계 편대 대형을 유지하도록 날개를 흔들어 지시하고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초계구역으로 진입해갔다.

 

  고도 35,000 피트의 수도 상공에 이르니 밝아 오는 동해와 서해가 한 눈에 보인다. 노략될 수도 없고 되어서는 안 될 조국 하늘의 새해 새벽 초계비행을 하노라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라라 다짐케 된다.

 

  항공통제본부에서 비행 지시에 따라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초계비행을 하면서 요기와 위치를 재확인하고 전투기 상태를 재 점검한다.

  간격을 넗힌 항진 대형으로 따르는 요기의 동체 후미에서 하얀 비행운Contrail이 길게 번져 나온다. 참으로 새벽의 깨끗한 하늘에 남기는 발자취는 아름답다기 보다 신비스럽다.

  그것이 한없이 부러워 후미용 거울을 보니 나의 발자취도 길게 번져 나오고 있다.

  비행운이 분출될 때는 위치 노출 때문에 즉각 고도를 더 높이거나 낮추는 것이 공중전의 기본 교리이지만 오늘의 새벽 초계비행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새해 아침 누군가가 하늘을 지키고 있음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하늘에 수놓듯 하얀 비생운은 길게 길게 뻗어갔다. 나는 우리가 줄기차게 뻗어내는 Contrail에서 우리의 호국 정신을 국민에게 확인케 하고 싶은 것이다. 이 아름다운 강산을 내가 지키고, 이 평화로운 산하를 굽어 보며, 내 어머니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를 새삼 느끼는 것이다. 이제 찬란히 새해가 동해의 심연에서 솟았다. 누가 이 아침의 조용한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하였는가, 새벽의 초계비행은 더 높고 더욱 빠르다.

  높고 푸른 하늘을 이렇게 자유로이 날며 어느 때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패기에 찬 요기와 함께 동이 터져 오는 이 찬란한 하늘에서 초계비행을 할 때가 올 까? 언제인가는 통일의 그 날이 올 것이다.

 

  항공통제본부에서 수도 상공으로 초계비행의 후속편대가 오고 있음을 알려온다. 임무를 완수한 의무와 책임감이 자유를 넘어 행복감으로 번져 온다. 이제 돌아 가자, 이제 기지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이 빠를 속도와 높은 고도에서 조싱이 되어 해동청 보라매처럼 자유롭고 억센 날개를 서서히 접으면서 대지를 향해 내려 가자. 우리의 안전한 귀환이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 행복 속에 새해 새 아침 새로운 시작을 다함께 맞이하게 해야 한다.

  진정한 우리들의 행복은 새처럼 하늘을 나는 자유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유 속에서 책임을 다해 내는 것에 있음을 새삼 느끼며 나는 날개를 두세번 흔드러댔다. 약속된 명령을 내린 것이다. 요기가 편대장의 지시에 따라 밀집 편대를 이루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힘으로 가장 빠르게 날고 있다.

  동해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태양의 빛으로 하늘 속으로 번져 오는 대지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하고 찬란했다.

 

1981.새해아침   

 

 

팬텀기로 새벽 비행을

  

아직 동이 터 오르기 까지 시간이 이르다.

이륙 예정시간 06시

사랑하는 아내는 벌써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있다.

 

아니들의 잠든 모습,

계집 아이는 인형을 안고

둘째 놈은 엎드려 자고 있다.

 

새벽의 따끈한 커피를 마시노라면

무사하기를 바라는 아내의 눈길

조종복에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둘러 문을 나서면

2월의 하늘 바람은 차고 별은 외롭다.

 

황량한 활주로, 애기 팬텀 주위에는

이미 밤의 정적은 없다.

반가이 맞는 믿음직한 정비사

날개를 나란히 할 억센 요기의 모습

시동장비의 요란한 엔진소리

이미 임무를 위한 약속은 되어 있다.

 

이제 새벽의 먼동이 서서히 밀려오고

육중한 전폭기는 생명을 얻어 활주를 시작한다.

우리의 생명선인 긴 활주로를 따라

편대는 이륙되었다.

 

지금 낭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이륙완료 후 요기로 부터의 응신

"2번기 엔계통 이상없음 오버."

"1번기도 양호하다 대형을 유지하라."

 

이제 우리는 범할수 없는 강한 독수리

기수는 하늘로 치솟으며 북으로 향한다.

 

누가 이 아침의 조용한 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 하겠는가!

멀리 동해 찬란한 솟아 오르는 태양

아침의 신비스러운 안개 속에 움직이는 산하.

아, 내 조국은 정녕 아름다운 강산!

영공엔 레이더에 잡힌 어느 항적도 없다.

어느 누구도 노략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될

동해의 만곡선을 따라 펼쳐지는 이 조국의 모습,

 

새벽의 초계비행은 더 높고 더욱 빠르다.

수도 상공의 초계비행

이 높은 고도, 이 빠른 음속

동해와 서해가 한 눈에, 그리고 멀리

원산만이 보인다.

 

푸른 하늘이여!

어느 때쯤 이렇게 아름다운 강산을

패기 찬 요기와 함께 두만강을 따라

북만주 건네보며

동이 터오는 하늘

초계비행을 할까.

 

1970.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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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정종선 | 작성시간 12.03.19 공군사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듯.........
    70년대 마이아미의 어느 술집 이름이 " cockpit " 저게 뭔 소리지???
    아마 cocktail을 주로 제공한다는 뜻일까....하다가 실제 뜻을 알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던.....
    아! 빨간 마후라, Pilot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었던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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